랜더스 스토리/랜더스人

[공감(共感) W] Adieu! 전병두, '모두의 마음이 모인 마지막 5구'

SSG 랜더스 2016. 10. 9. 11:33


불꽃같은 3년, 그에 못지 않게 치열했던 5년간의 재활. SK 와이번스 팬들의 마음에 8년이라는 세월의 흔적을 남기고 전병두(32)가 마운드에 작별을 고했다.


8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SK의 2016시즌 정규리그 최종전 선발투수는 전병두였다. 



외야에 있는 불펜에서 전병두가 모습을 드러내자 관중들은 한 목소리로 '전병두'의 이름을 연호했다. 관중석의 파란 물결은 전병두의 상징이 되어버린 '푸른색 글러브'가 그려진 파란 손수건이었다.


28명의 팬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눈 뒤 마운드에 올라 몸을 푼 전병두는 삼성의 1번타자 김상수와 상대했다.



1구는 스트라이크, 2구도 스트라이크였다. 세 번째 공은 볼. 전병두가 뿌린 4번째 공을 김상수가 받아쳤다. 결과는 파울. 전병두는 이를 악물고 5구째를 던졌다. 김상수가 또다시 방망이를 휘둘렀다. 타구는 유격수 김성현 앞으로 굴러갔고, 결과는 아웃이었다. 왼쪽 어깨가 완전치 않아 팔 각도가 전성기 때와는 달랐지만 그는 그렇게 그의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냈다.


"홈런은 맞아도 되지만, 볼넷은 절대 내주고 싶지 않다"던 전병두는 미소짓고 있었고 그와 전성기를 함께 했던 동료들이 모두 마운드로 달려왔다. 전병두는 동료 한 명, 한 명과 모두 진한 포옹을 나눴다.



이윽고 교체를 위해 마운드에 오른 것은 김원형 투수코치가 아닌 에이스 김광현이었다. 김광현과도 포옹을 나눈 전병두는 뒤이어 등판할 윤희상을 기다리며 야구공을 한참 바라봤다. 전병두는 윤희상에게 공을 건네며 진하게 포옹을 나누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전병두의 2011년 10월6일 광주 KIA전 이후 1829일 만에 1군 등판이자, 투수로서 마지막 등판은 그렇게 끝났다. 은퇴 경기 전까지 평소와 다를 것이 없다던 전병두는 "막상 경기 날이 되니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마운드에 오르려니 너무 떨렸다. 그런데 경기는 경기더라. 공을 던질 때는 다시 맘이 편안해졌고 아웃카운트를 잡고는 예전처럼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전병두의 뒤를 이어 마운드에 오른 윤희상은 전병두의 은퇴 경기인 만큼 꼭 이기고 싶어했다. 경기 전부터 "긴장된다"를 연발했고, 등판을 마친 뒤에도 "꼭 이기고 싶어서 한국시리즈보다 긴장되더라"고 토로했다.

 

전병두의 통산 성적은 29승29패 16세이브 14홀드 평균자책점 3.86이다. 화려한 현역 시절을 보낸 스타들마저 은퇴식을 하지 못한 경우가 많은 KBO리그에서 은퇴식을 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고 볼 수 있는 성적일수도 있다. 하지만 전병두에게는 그렇게 화려하게 선수생활을 한 사람들도 가질 수 없었던 특별한 뭔가가 있었다.


이번 은퇴경기와 은퇴식을 기획한 류선규 SK 전략프로젝트팀장은 "전병두가 얼마나 성실하게 재활해왔는지 알기에 구단에서 정말 안타까워했다. 그것이 최초로 은퇴경기를 하게 된 이유"라며 "성적이 좋아서 은퇴식을 마련한 것이 아니다. 누구보다 모범적인 모습이 감동을 줬다. 좋은 모습을 보였던 3년보다 재활하는 5년간의 울림이 더 컸다. 위대한 업적을 기리는 것보다 모범이 되고 모두가 사랑하는 선수를 위한 은퇴식을 마련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김용희 감독은 이미 순위가 결정된 후 치러진 이날 경기 선발 라인업을 전병두와 많은 시간을 보낸 선수들 위주로 구성했다. 전병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이 날의 의미를 더해주기 위해서였다. 심판들은 전병두가 한 타자를 상대한 후 투수코치 대신 김광현이 마운드에 오르는 것을 허락했고, 상대팀인 삼성 라이온즈도 전병두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전병두가 한 타자를 상대한 후 다른 유형의 투수인 윤희상 선수가 등판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역시 전병두와 고락을 함께 한 동료 선수들이다.


은퇴경기에서 김원형 투수코치 대신 교체를 위해 마운드에 올라가겠다고 자청했던 김광현은 이와 함께 전병두 헌정 영상의 내레이션을 맡았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흔쾌히 내레이션 요청을 수락한 김광현은 "행사를 망칠까봐 걱정이 된다"며 정성스럽게 공을 들여 내레이션을 했다는 후문이다.


김광현은 "(전)병두 형이 우리 팀으로 처음 트레이드 돼 왔을 때 룸메이트를 하면서 친해졌다. 병두 형이 하나부터 열까지 많이 챙겨줬다. 형이라기보다 엄마 같았다. 그런 형이 다쳤을 때 나도 마음이 아팠고, 재활을 같이 하며 같은 목표를 바라보며 운동하기도 했다"고 회상햇다.


이어 "옆에서 지켜보며 성실한 형의 모습이 감탄했고, 꼭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결과적으로 많이 아쉽고 슬프지만, 형의 마지막 마운드에 오를 때 함께 하고 싶어서 자진해서 구단에 요청했는데 다행히 들어주셨다"고 설명했다.



전유수는 은퇴식 행사와 관련하여 구단에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은퇴식을 준비 중이던 구단에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마무리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가 2013년 은퇴할 당시 앤디 페티트와 데릭 지터가 교체를 위해 마운드에 오른 동영상을 보내며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관계자는 "전병두 선수가 한 타자를 상대한 뒤 선수들이 모두 올라간 것은 전유수 선수가 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전했다.

 

평소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쑥쓰러워 하던 선수들도 '전병두 은퇴식을 알리기 위해서라면 무조건'이라며 선뜻 나섰다.


채병용의 제안으로 SK 선수단은 지난달 25일부터 모두 모자에 전병두의 등번호인 '28번'을 적고 경기에 나섰다. 윤희상은 지난달 25일 문학 한화전에서 승리투수가 된 뒤 응원단상에 올라 팬들을 향해 "10월8일에 열리는 (전)병두 형 마지막 등판 경기에 많이 와달라"고 당부했다.


롯데 자이언츠도 도움을 줬다. SK가 지난 4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전 전병두의 '절친' 노경은(32)의 깜짝 선물 영상을 제작하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흔쾌히 협조했다. 전병두는 "직접 인터뷰한 것을 보니 고맙더라"며 반겼다.

 

모두가 마음을 모은 덕일까. 이날 삼성과 6-6으로 맞서며 접전을 벌였던 SK는 7회말 2사 1루에서 터진 박정권의 결승 3루타에 힘입어 전병두의 은퇴 경기이자 정규리그 최종전을 7-6 승리로 마쳤다.

 
이날 경기가 끝난 뒤 이렇게 모두의 마음이 모인 전병두의 은퇴식이 시작되었다. 먼저 빅보드를 통해 상영된 14분 분량의 영상에는 SK 유니폼을 입은 이후부터 전병두의 발자취가 빠짐없이 담겼다.


팬들의 뇌리에 가장 많이 남아있는 2009년 5월23일 문학 두산전에서의 9타자 연속 삼진, 2011년 10월6일 광주 KIA전 등판, 5년간 매일같이 오전 7시에 경기장에 나와 재활에 매달리던 모습, 올해 치른 3군 등판, 이날 은퇴경기까지 흡사 '전병두 다큐멘터리' 같았던 영상의 배경에는 김광현의 목소리가 깔렸다.


 


영상이 끝나고 컴컴해진 경기장은 팬들이 흔드는 불빛으로 장식됐다. 김광현의 소개로 전병두가 등장하자 경기장은 팬들이 '전병두'를 연호하는 소리로 가득 찼다. 


기념앨범, 유니폼액자, 꽃다발 및 선수단 기념패, 프로야구선수협회 공로패, 팬 연합회 감사패 전달이 이뤄진 뒤 전병두는 자신의 유니폼을 벗었다. 아쉬워하는 관중들의 탄식 속에 전병두는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의 유니폼을 2017년 2차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에 SK 지명을 받은 김성민에게 건넸다. 'SK 28번'이라는 등번호가 7년만에 전병두가 아닌 다른 선수의 주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채병용의 송사와 전병두의 은퇴사가 끝나고 선수들은 모두 마운드로 모였다. 선수들은 전병두를 헹가레치며 새 출발을 응원했다.



전병두는 "제가 그렇게 큰 선수가 아닌데 모두가 오늘 하루 대단한 스타인 것처럼 대해줘 너무나도 감사할 따름이다. 과분한 관심을 받으면서 은퇴하게 돼 정말 감사하고 오늘 하루는 정말 잊지 못할 것 같다"며 "정말 앞으로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다.


뉴시스 김희준 기자 jinxiju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