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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조의 여왕] 지고 지순한 사랑, SK 박정배·장희선 부부

SSG 랜더스 2015. 11. 25. 11:37

힘들 때 같이 있어주는 사람이 있어 견뎌내고, 기쁠 때 같이 기뻐해주는 사람이 있어 더 좋은 것이 사랑의 가장 큰 힘이다.


SK 투수 박정배(33)도 그런 아내 장희선(33) 씨가 있어 지난 10여 년을 꿋꿋이 버틸 수 있었다. 쉽지 않은 운동의 길, 그리고 프로의 길을 걸으며 함께 인생의 길을 만들어온 박정배-장희선 부부의 지고지순한 러브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인연이란

대학수능시험을 마치고 대학 입학 직전, 한창 미팅의 세계로 빠져드는 시기다. 두 사람도 그때 처음 만났다. 워낙 과묵한 성격의 박정배와 대조적으로 활발한 희선 씨의 만남은 차분하게 천천히, 친구에서 연인으로 변해갔다.


“5대5 단체 미팅이었어요. 처음 봤을 때는 워낙 말이 없어서 답답하고 무서운 이미지였어요. 그런데 이틀 뒤에 연락이 왔더라고요. 신인생 환영회에 파트너로 같이 갔었죠. 그냥 친구였어요. 그러고선 또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기더니 나중에 다시 연락이 오더라고요. 그때부터 교제하기 시작했어요.” 두 사람은 그 뒤로 8년 동안 연애를 했다. 많은 커플이 그렇듯 싸우고 화해하고를 반복하며 흘러간 시간이었다. 하지만 인연은 거스를 수가 없다.


“1년 정도 사귀다가 한 번 크게 싸우고 헤어졌어요. 저는 싸우면 말을 하고 풀어야 하는 성격인데 신랑은 그렇지가 않거든요. 워낙 조심하고 얌전한 성격이에요. 그런 것 때문에 결국 연락이 끊어졌죠. 그러다 대학 3학년 때였어요. 친구들이 야구를 보러 가자고 해서 동대문 야구장에 갔어요. 저는 야구를 잘 몰라도 친구들은 야구를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관중석에 앉아있는데 친구가 갑자기 ‘어, 정배네’ 해서 보니 관중석 저쪽 멀찍이 그 사람이 앉아있더라고요. 한양대 경기 끝나고 다른 경기를 보고 있었나봐요. 그날 다시 연락이 됐고, 일주일 뒤에 그 사건이 벌어졌어요.”


야구선수 박정배, 아내가 없었다면

박정배는 한양대 재학 시절 촉망받는 우완 투수였다. 그러나 발목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고 잠시 야구 인생에 제동이 걸렸다. 동대문 야구장에서 우연히 희선 씨와 재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큰 부상을 당했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보고 제가 연락을 했어요. 5~6달 정도 입원해있었는데 거의 매일 병원에 갔던 것 같아요. 그냥 가만히 앉아서 같이 이야기 나누는 것밖에 한 것은 없는데 저도 그때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대학 졸업을 앞두고 발목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은 박정배는 많이 좌절했다. 병원에 누워 다시 야구를 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함과 속상함에 혼자 많이 싸워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때 매일 병원을 찾아와 이야기 나누며 마음을 다독여준 사람이 바로 희선 씨였다.


“그때는 걷기가 힘든 상태였어요. 의사도 운동은 더 이상 하지 못할 것 같다고 했거든요. 지금도 자세히 보면 똑바로 걷지를 못해요. 신발도 푹신한 것만 신어야 하고요. 그렇게 크게 다쳐서인지 야구를 더 이상 안 하겠다 하더라고요. 모든 것을 놔버린 사람처럼 더 이상 못할 것 같다는 얘기만 했던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마음은 큰데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할 수 없다고요. 그런 말을 들으니 저도 많이 속상하더라고요. 배운 것이 야구밖에 없는데 여기서 포기하면 어떻게 하냐고 했죠. 뛰어난 재능이 있어도 살아가기 힘든 세상인데 그런 재능이 있는 사람도 흔치 않잖아요. 야구 잘 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데 왜 포기하려 하냐고 거의 매일 얘기했었죠. 그러다 어느 날부터 마음을 먹었는지 재활을 다시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박정배는 지금도 “아내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야구를 하고 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가슴 아픈 시간들은 잊고

그렇게 희선 씨의 격려 속에 박정배는 다시 야구공을 잡았다. 그리고 두산에 입단했다. 잠실야구장 근처에서 자취를 하던 박정배를 위해 희선 씨는 직장까지 근처로 옮겼다. 있는 듯 없는 듯, 점심시간을 이용해 야구하는 남자친구를 위해 식사 준비를 해놓고 다시 직장으로 가는 ‘우렁각시’였다. 두 사람은 2008년 결혼을 했다. 첫째 딸 가율이도 태어났다.


프로 생활이 쉬울 리가 없다. 박정배에게는 또 한 번의 시련이 찾아왔다. 2011년 시즌을 마친 뒤 방출됐다. KBO 리그보다 퓨처스리그에 있던 시간이 훨씬 많았지만 방출은 다른 문제였다. “좋았던 기억도 많지만 방출된 기억이 워낙 큽니다. 그 뒤 더 강한 선수가 될 수 있는 밑거름이 된 것도 같지만 결혼도 했고 아기도 있는데 방출돼서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첫째가 두 돌 지났을 때였고, 사실은 둘째 아이 임신한 것을 그때 막 알았을 때였거든요. 그래서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어요. 본인은 더 힘들텐데 아기가 생겼다는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워낙 힘들어하니까 그때는 ‘할 줄 아는 게 야구밖에 없잖아. 돈을 벌 수 있든 없든 포기하지 말라’는 말도 차마 하지 못했어요. 감수성이 짙은 사람이라 운동에 집중하지 못할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한 달 정도 됐을 때쯤 SK 이만수 감독님께서 전화를 주셨어요. 그 전화를 받고서야 둘째 가진 이야기를 했죠. ‘왜 말 하지 않았느냐’고 많이 혼났어요. 워낙 오래 만나서 상대를 잘 아니까 그런 상황에서도 서로 배려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 야구 오래오래 해요

그렇게 힘들었던 시간은 이제 지나갔다. 부부는 훨씬 강해졌다. SK에서 박정배는 핵심 투수가 되어있다. 물론 피하고 싶은 부상은 어쩔 수 없이 찾아오기도 했다. 2014년 어깨 수술을 받은 뒤 꼬박 1년을 재활에 매달렸던 박정배는 지난 8월 마운드로 돌아왔다. 8월 2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LG전 등판을 마치고 박정배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 소식은 모든 언론 매체에 거의 도배됐다.


“그날 저도 온라인으로 기사를 봤죠. 원래 잘 우는 사람은 아닌데 가율이 낳았을 때 엄청 많이 울어서 제가 많이 놀렸거든요. 그 뒤로는 그런 일 없었는데 그날 그렇게 울었더라구요. 집에 오자마자 제가 ‘울보냐’고 놀렸더니 ‘넌 모르면 말하지 말라’며 쑥스러워하더라고요. 참 많이 아픈 편이고 그래서 부상에 대한 걱정을 참 많이 해요. 부상 뒤 재활이 얼마나 힘든지 아주 잘 아는 사람이니까요.” 그렇게 14년을 함께 한 희선 씨가 있기에 박정배는 항상 버틴다. 또 아빠를 위해서 좋아하는 과자 ‘홈런볼’도 야구 시즌 중에는 절대 먹지 않는 아이들, 큰 딸 가율(6)이와 둘째 아들 태령(3)이가 있어 박정배는 힘든 재활의 시간을 견뎌내고 다시 마운드로 돌아왔다. 이제 힘찬 내년을 준비한다. 그리고 희선 씨는 오늘도 남편을 이렇게 응원한다.


“나는 당신이 야구를 정말 오래오래 하면 좋겠어요. 아직 말을 잘 못하는 태령이도 어린이집에서 ‘우리 아빠 야구 선수’라고 얘기하고 다닌대요. ‘아빠를 엄청 자랑스러워 하는 것 같다’고 선생님이 얘기하셨어요. 저한테 매일 미안하다고 하지만 저는 당신이 고맙습니다. 아프지 말고,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야구 우리 같이 오래오래 해요.”



글/ 김은진 스포츠경향 기자  사진/ 장희선 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