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더스 스토리/랜더스人

'DUGOUT STORY' SK 와이번스 이재원

SSG 랜더스 2014. 8. 27. 10:59

SK 와이번스에 대해 큰 관심이 없던 팬이라면 지금 타격 순위표 꼭대기를 장식하는 이름을 보고 ‘어디서 나타난 걸까?’라는 생각부터 들지 모른다. 사실 작년까지 그는 수비에 나서지 못하는 반쪽짜리 선수였다. 거기에 공격의 기회는 왼손 투수를 상대할 때만 주어지니 반의반 쪽만 남았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주위에서 응원을 아끼지 않는 팬과 동료들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괴물’ 류현진과의 비교에 대한 속내부터 야구선수로서의 욕심, 그리고 기대해 마지않는 4할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까지. 인터뷰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유쾌한 남자, 이재원을 만나보자.

Photographer Ming Park Intervier Taejin Yoon Text Ikrae Choi Location Munhak Baseball Stadium Sponsored MATTONI



‘요즘 따라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4할과의 치열한 밀당을 하고 있는데 컨디션은 어때요?

요즘에는 매일 안타를 2개씩은 쳐야 타율이 유지되니까 스트레스가 심해요. 체력적으로도 조금씩 힘이 들고요. 아무래도 날씨가 더워지니까 기술적인 것 보다는 체력적인 부분이 조금 더 신경 쓰이는 것 같아요.


포수는 예나 지금이나 어린 야구선수들에게 기피 포지션이잖아요. 처음 포수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어렸을 때부터 포수를 했어요. 처음 시작은 덩치가 커서 하게 됐죠. 누가 시킨 것보단 자연스러운 이끌림? (웃음) 사람들을 어우르고 끌어당기는 성격이거든요. 인내심도 강한 편이고요. 감독님들은 이런 성격이 포수랑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어요. 근데 지금 생각하면 포수로 경기에 나서는 게 제 가치를 더 높이는 거로 생각해요. 포수로 나가서 팀을 승리로 이끌 때의 쾌감은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이끌림’으로 마스크를 쓴 이재원 선수는 고교 시절 정말 최고의 포수였어요. 당시 고교 감독들은 ‘이재원 같은 포수를 데리고 경기를 해봤으면 좋겠다’는 희망 사항을 이야기했는데, ‘고등학생 이재원’은 어떤 모습이었어요?

부모님께서 다른 데 한눈팔지 못하도록 매일 야구장에 출퇴근시켜주셨어요. 그러면서 집-야구장-집-야구장을 반복하는 생활이었는데, 이런 뒷바라지 덕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죠. 고등학교 다닐 땐 성적이 좋다 보니 야구가 재밌었어요. 그리고 그 비슷한 느낌을 프로 와서는 올해 처음 느끼는 것 같아요.


SK 왕조가 시작된 2007년, 한화와의 개막전에 지명타자로 선발출장 했어요. 당시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사실 제가 그 해 스프링캠프를 못 갔거든요. 하지만 개막전 선발투수였던 (류)현진이한테 고등학교 때부터 강했다는 이유로 개막전 한 경기는 뛰게 됐죠. 그리고 곧바로 2군으로 가기로 예정됐고요. 그런데 그 경기에서 홈런과 2루타를 쳤어요. 그러면서 1군에 남았고 기회를 얻으면서 차츰 왼손 투수 킬러라는 별명까지 듣게 됐죠. 그렇게 1년 내내 백업으로나마 1군에 머물렀어요.


이야기가 나왔네요. 이재원의 이름 뒤엔 항상 류현진이라는 이름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어요. 팬들 사이에선 류현진 거르고 이재원, ‘류거이’로 불리기도 했고요. 스트레스가 심했을 것 같아요.

사실 1년 차 땐 조금 힘들었죠. 아무래도 비교가 많이 되니까요. 그런데 그 이후에는 현진이가 워낙 높은 곳으로 올라가다 보니 의식조차 못 했죠. 어느 정도 수준이 비슷해야 질투도 하고 그럴 텐데. (웃음) 팬들이 현진이와 저를 비교하면서 아쉬워하는 건 제가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성격상 그런 걸 금방 잊으려고 하는 편이라 ‘이걸 꼭 이겨내야 좋은 선수가 될 거야’라는 생각으로 버틴 것 같아요. 근데 현진이가 야수였으면 모를까 포지션이 다르니까 경쟁이라는 생각 자체를 안 한 것 같아요. 근데 올해는 특히 현진이가 잘하면 저도 잘하는 징크스가 생겨서, 지금보다 더 잘했으면 좋겠어요.



고교 시절 최고의 포수였던 이재원이 프로에선 성장통을 겪었잖아요?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텐데요.

2010년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감독님이 마운드 앞에 볼 1,000개를 갖다놓고 펑고를 쳐주셨어요. 수비력을 키우기 위한 훈련이었죠. 그때 감독님이 “억울하면 기술을 익혀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기술을 익히는 것, 그게 정답이었던 것 같아요. 감독님은 저의 기술적인 부분을 키워주시기 위해 일본에서 따로 배터리 코치를 모셔 오기도 하셨죠. (세리자와 코치님이요?) 네. 그때 포수로서의 기술적인 토대를 많이 마련한 것 같아요. 지금 SK의 김태형 코치님도 정신적, 기술적으로 되게 많이 도와주시고요. 또 야구 외적으로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도 좋은 분들이 많았고, (뿌듯해 하며) 이렇게 보면 제가 인복은 참 타고난 것 같아요.


인복이 타고났지만,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선배 한 명은 있을 것 같아요.

김재현 선배님이요. 사실 전 김재현 선배님과 플래툰을 한 것 자체가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대단한 분이 저 같은 사람과 경기를 반반 나눠서 나가니까 저보단 선배님이 더 스트레스를 받았죠. 선배님은 사실 저 때문에 은퇴하셨거든요. 2010 시즌이 끝나고 “내가 계속 뛰면 너에게 기회가 가지 않을 것 같다”며 저를 배려해주신 거죠. 락커도 바로 옆이었고… 참 추억이 많은 선배예요. “너 때문에 내가 은퇴하니까 꼭 자리를 잡아”라고 당부해주셨는데 하필이면 저도 2010 시즌을 마치고 입대를 했죠. (웃음) 그러자 김재현 선배님께서 “이럴 거면 내가 2년 더 뛰었지”라며 안타까워하던 게 아직도 기억나요. 올해 초에 성적이 좋으니까 선배님께서 보람 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 얘기를 듣고 저도 어느 때보다 좋은 자극이 되더라고요. 지금도 정말 감사한 분이에요.


김재현 선수의 배려에도 훌쩍 떠났던 군대, 거기서의 생활은 어땠어요?

훈련소가 제일 힘들었어요. 발목이 아파서 의무대에 갔는데 타이레놀을 주더라고요. 머리 아파도 타이레놀 발목도 타이레놀. (웃음) 그게 서러워서 ‘내가 지금 뭐하는 건가’하는 생각에 눈물이 찔끔했어요. (아련한 눈빛으로) 원래 그러는 편이 아닌데. 상무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할 땐 경기에서 지면 군화와 군복을 입은 채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같은 얼차려를 받기도 했고요. 근데 정신적으로 힘들었지 몸은 덜 힘들었어요. 군대라서 야구 이외엔 할 게 없었거든요. 누가 야구를 억지로 시키는 것도 아니고요. 다른 선수들은 이게 힘들다고 생각할진 모르겠지만 저는 오히려 편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한 것 같아요.



흔히 상무나 경찰청 출신 선수들은 군 복무 중 많은 걸 배웠다고들 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SK에서 시합을 못 나가고 대타 생활을 하다 보니 기술적인 발전이 없었는데 상무에서 시합을 많이 나가면서, 비록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매 경기 얻는 게 있더라고요. 제가 프로생활하면서 포수보단 지명타자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처음엔 감독님이 기회를 안 주셨어요. 그래서 2년 차 땐 감독님께 기회를 달라고 말씀드렸고 저에게 믿음을 주셨죠. 그러면서 한 시즌을 운영하는 노하우나 경기감각 같은 걸 배운 것 같아요.


사실 유망주라는 칭호는 어린 선수들에겐 영예롭지만, 이재원 선수에겐 무려 9년간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어요. 유망주라는 칭호, 어땠어요?

민망했죠. 작년 마무리캠프 때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다짐했어요. 주전급 선수들은 마무리 캠프에 가도 컨디션 관리 위주의 훈련을 하지만 1.5~2군 선수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꽉 채워서 훈련을 하거든요. 그렇게 8~9년을 하다 보니까 너무 힘들어서 ‘올해로 진짜 마무리캠프 끝이다. 내년엔 1군에 자리 잡는다’라고 각오를 다졌어요. (작년 캠프 이전엔 이런 생각을 따로 안 했어요?) 그전엔 당연히 훈련에 따라가는 거라고 수동적으로 생각했는데 작년엔 각오가 좀 남달랐던 것 같아요. 나이도 점점 차는데 이대로 있어선 안 될 것 같더라고요. 시즌 시작 전부터 품었던 독한 마음이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올 시즌 역시 기존 선수들에 루크 스캇의 영입까지, 시작은 왼손 투수 스페셜리스트로 분류됐었어요. 많이 허탈했을 것 같아요.

초반엔 열심히 준비했는데 작년과 마찬가지로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니까 실망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우연찮은 기회에 출장기회를 얻었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면서 이렇게 잘 풀린 것 같아요. (이번 시즌 반전의 계기가 된 경기를 꼽자면요?) 4월 12일 삼성전이요. 전날 스캇이 아파서 라인업에서 빠졌고 제게 기회가 주어졌는데 4타수 3안타 5타점으로 좋았어요. 그런데 하필이면 그 시리즈 후 4일 휴식일이라서 ‘이 감을 유지하지 못하고 끝나는 건 아닌가?’하고 불안했죠. 하지만 그다음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도 좋은 활약을 이어가며 자리를 완전히 잡게 된 것 같아요.


올 시즌 이렇게 갑자기 성적이 좋아지게 된 이유는 뭘까요?

갑자기 좋아졌다고 하긴 좀 그런 게…. (민망해하며) 사실 코치님들이나 다른 팀 선수들이 항상 제게 ‘너는 무조건 잘할 거야, 기회가 없을 뿐이야’라는 말을 많이 했거든요. 어릴 땐 저도 그 말을 믿고 각오를 다졌지만 그렇게 계속 나이만 먹으니까 이대로 끝날 것 같은 생각에 약간은 불안하기도 했죠. 부담도 됐고요. 이제야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것 같아요. 배트도 약간 뭉툭한 거에서 얇은 걸로 바꿨어요. 타격자세도 기존엔 덩치에 비해 움츠리는 폼이었는데 좀 더 큰 자세로 가져갔고요. 이런 것들이 그 기대에 부응하게 된 원동력인 것 같아요.


왼손 투수 상대로 타율이 0.479(7월 14일 기준), 5할에 육박하는데…. 이재원 선수는 쳤다 하면 4할, 5할이네요(웃음). 1군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을 때도 왼손 투수를 상대하는 능력만큼은 인정받았는데 따로 비결이 있어요?

8년 동안 왼손 투수 킬러라고 불렸죠. 현진이와 비교되는 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오히려 그 말이 너무 듣기 싫었어요. 반의반 쪽 선수라는 이야기 같았거든요. (반의반 쪽이요?) 수비 못 해서 반쪽인데 오른손 투수의 공을 못 치니 또 반이 깎이죠. 왼손 투수 킬러라는 건 동시에 오른손 투수 공은 못 친다는 뜻이니까요. 원래 전광판에 나오던 왼손 투수 킬러라는 제 소개 멘트도 바꿔달라고 직접 말했어요. (지금 나오는 Mr.클러치로 해달라고 직접 말한 거예요?) 네(웃음). 민망하긴 한데 중요할 때 잘 칠 테니까 클러치 히터로 해달라고 했는데 그렇게 바꿔주더라고요.



타율과 타점, 득점권 타율 모두 포수 중 1위예요. 이 중 가장 중요시하는 기록은 뭐예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타점이요. 주변에서는 4할, 타격왕에 대해 이야기가 많은데, 물론 타격왕에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더 중요한 건 타점이라고 생각해요. 수치로 말한다면 100타점? 최정 선배가 1군에 복귀하면서 저한테 타점 기회가 부쩍 늘었어요. 포수로서는 투수들 평균자책점도 좀 내렸으면 좋겠고요. 주전 포수로 나가니까 이제 그런 것도 신경 쓰게 되더라고요. (주전 포수로 나가면서 그런 부분이 달라졌나 봐요?) 사실 5월 초엔 뭐가 뭔지 구분도 못 하고 나갔는데 이제는 좀 보이는 것 같아요. 내가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수비에서도 좀 더 자신감이 생기고.


도루 저지율이 0.375로 100이닝 이상 포수로 나선 선수 중 1위예요. 본인이 생각하는 수비력은 어느 정도인 것 같아요?

지금은 좀 올라온 것 같아요. 코치님들이 워낙 칭찬을 많이 해주시거든요. 사실 경험이 부족하니까 지금의 감만 유지했으면 좋겠어요. 경기에 많이 나서면서 점점 더 나아지겠죠?


이만수 1군 감독에겐 김시진이 있었고 박경완 2군 감독에겐 김원형이 있었던 것처럼 가장 합이 잘 맞는 투수는 누구예요?

(김)광현이요. 지금도 고마운 게 광현이는 투수임에도 선수들을 아우르는 뭔가가 있어요. 사실은 포수인 제가 해야 하는 역할인데 아직 제가 그런 면에서 부족함이 많거든요. 그래서 광현이한테 “네가 포수 한 명 살렸다”라며 고마움을 표한 적도 있죠. (이는 단순히 이재원의 느낌이 아니다. 김광현은 이재원과 배터리를 이룬 5경기에서 3승 1패, 평균자책점 2.91로 호투했고 이재원은 0.471의 고타율로 화답했다. 반면 이재원과 호흡을 맞추지 않은 12경기에서 김광현은 6승 5패, 3.7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 중이니 둘은 그야말로 찰떡궁합이다.)


아시안게임 2차 엔트리에도 여전히 이재원 선수의 이름이 있어요. 소감 부탁해요.

두 달 만에 사람인생이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싶어요. 예비엔트리 뽑힌 거 자체만으로도 영광이지 나가야겠다는 욕심이 크진 않아요. (강민호, 양의지 선수들과 경쟁할 이재원만의 강점은 뭘까요?) 보이는 걸로 따지면 타격이 아닐까요? 하지만 경험이나 기술적인 부분에서 형들이 저보다 더 좋잖아요. 게다가 포수는 수비가 중요하니까요. 그런 걸 보완해야겠죠?


겹경사에요. 데뷔 후 처음으로 올스타에, 그것도 선발로 나서게 됐어요. 기분이 어떠세요?

올스타전이야 해마다 항상 나가고 싶었죠. ‘언제 나가나…’하면서 다른 선수들 부러워하고요. 그래서 이번엔 저도 투표 열심히 했어요. (웃음) 다들 그러지 않나요? 올스타전 참가가 확정되고 광현이한테 “졸졸 쫓아다닐 테니 나 좀 데리고 다녀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준비하고 있는 퍼포먼스는요?) 앞으로 몇 번 더 나가게 돼서 여유가 생긴다면 가발을 쓴다거나, 포수 장비를 차고 타석에 들어서는 재밌는 걸 해보고 싶어요. 하지만 지금은 처음 나가는 거라 설레면서도 긴장이 많이 되거든요. 그냥 어이없는 실수만 안 했으면 좋겠어요. (오히려 팬들이 올스타전에 기대하는 건 그런 실수가 아닐까요? 마음 편히 가지세요.) 아! 감사합니다.


얼마 전엔 조동화 선수 응원가로 화제를 모았어요.

룸메이트 조동화 선배가 4할 타자의 기를 받고 싶다고 부탁해서 기꺼이 응했어요. 공개된 동영상으로 보면 민망한데 경기장에서 들으면 좀 괜찮게 나오는 것 같아 다행이에요. (자신 있게) 평소 노래를 좀 괜찮게 부르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팬들과 소통하다 보니 이재원 선수에게 붙여진 별명도 많아요. 노안이라는 별명 알고 있어요?

물론이죠. 신인 때 사이판 훈련을 가서 완전 시커멓게 탔었거든요. 그때 포털사이트에 이재원을 치면 HOT 멤버 이재원이랑 당시 제 사진이 나란히 나오는데…. 어휴, 그건 제가 봐도 좀 심하더라고요. (웃음) 사실 지금 얼굴이 중1 때 얼굴이거든요. (더 큰 웃음) 성격상 크게 신경 안 써요. 인천고 돼지라서 인돼라는 별명이 있는 것도 아는데 전 사실 돼지보다 고릴라 쪽에 가깝다고 생각해서 공감은 잘 안 돼요.


주전 포수 이재원, 4번타자 이재원, 수위타자 이재원. 이처럼 여러 가지 타이틀 중 가장 애착이 가는 타이틀은 뭔가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주전 포수죠. 올해 목표 중 하나가 다른 것보다 포수로서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거였어요. 그런데 지금 꾸준히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까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성적과 관계없이 만족하고 있어요.


포수가 타격왕을 차지한 건 1984년 이만수 감독이 마지막이에요. 그만큼 포수가 체력적으로 힘들기 때문이 아닐까요? 30년 동안 나오지 않는 포수 타격왕에 대한 욕심은?

4할엔 욕심이 없지만 아까 말한 것처럼 타격왕엔 도전해보고 싶어요. 이제 시즌 절반 이상 지났으니 다치지 않고 더 노력해야죠. (얘기가 나왔으니 돌리지 않고 물어볼게요. 4할 도전은 어떨 것 같아요?) 솔직히 4할에 대한 욕심은 그다지 없어요. 그런데 굳이 4할에 얽매이기보단 그렇게 큰 목표를 세워놓고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다 보니 지금처럼 높은 타율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아요.


2군의 설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이재원 선수니까 여전히 2군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을 것 같아요.

저도 선배님들한테 좋은 얘기 많이 들었으니까 후배들에게도 조언을 해주려고 하는 편이에요. 사실 야구가 잘 안 풀리면 그 스트레스를 술 마시고 노는 걸로 푸는 선수들이 있는데 기회는 언젠가 오거든요. 하지만 그렇게 놀면서 시간을 보내면 그 기회를 못 잡게 되죠. 그런 것들이 정말 아쉬워요.


드디어 유망주라는 알을 깼는데 그동안 기다려 준 SK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해요.

현진이랑 비교하면서 실망도 하셨을 텐데 그럼에도 응원을 많이 해주셨어요. 정말 감사하죠. 제가 인천에서 나고 자란 인천사람이니까 인천에 대한, SK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요. 앞으로도 인천에서 계속 야구하면서 좋은 선수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참 애증이 많을 것 같아요. 이재원이 생각하는 야구는?

(찬찬히 고민하다가) 멘탈 게임? 2군에서 잘하다가 1군에서 도저히 못 하는 선수들이 있잖아요. 그런 건 사실 기술적인 부분보단 떨려서 자기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 더 크거든요. 저도 그런 시절이 있었고요. 이런 걸 극복할 수 있는 선수가 성공하는, 철저한 멘탈 스포츠인 것 같아요.


야구선수로서 목표는요?

포수로서 많은 경기에 나서는 것과 3할 타율에 대한 욕심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다치지 않는 것 같아요. 다치지만 않으면 올해 초 목표한 것도 대부분 이룰 것 같고요. 야구가 참 좋아요. 그래서 야구 정말 오래 하고 싶어요.


인터뷰 감사합니다. 인천의 안방마님 이재원의 활약을 앞으로도 기대할게요!

저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