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지다. ‘특별히 감칠맛이 난다’는 뜻의 남도 사투리다. 여기서 말하는 ‘감칠맛’은 크게 두 가지 사전적 의미가 있다. 1. 음식물이 입에 당기는 맛. 2.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 여기서 두 번째 뜻이 본 에디터가 SK 와이번스 외야수 김강민을 만났을 때 받았던 느낌과 정확히 일치한다. 국내 최고의 외야수라는 타이틀을 가졌음에도 이런 부분을 과시하기는커녕 한없이 겸손한 자세로 자신을 낮추는 선수. 그러면서 진솔한 이야기로 어떠한 질문에도 막힘없이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풀어내는 김강민은 그야말로 ‘개미지다’는 표현과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비록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에선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지만,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국가대표 외야수’ 김강민.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으로 잔뜩 무장한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감칠맛 나는 매력에 빠질 것이라 확신한다.

Photographer Lee Yong Han Editor Ikrae Choi Location Munhak Baseball Stadium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화보촬영에 임하던 김강민은 촬영 중간중간 어색함을 감추지 못했다. 2001년 비룡군단의 유니폼을 입으며 시작한 프로생활이 어느덧 14년째. 리그를 대표하는 외야수로서 이런 미디어와의 만남이 익숙할 법도 한데 아직도 촬영이 어색할까? “힘들어요. 솔직히 20대 초반엔 이런 스포트라이트를 즐겼죠. 그땐 이런 것 하나하나가 귀했으니까요. 하지만 서른 살이 넘으면서 조금은 멋쩍어진 것 같아요.” 본인 표현처럼 연신 멋쩍은 모습을 보이다가도 막상 카메라 앞에선 진지하게 촬영에 임하는 김강민. 그를 만난 건 7월 31일, 후반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찾아온 SK 와이번스 휴식일이었다. 후반기 4경기에서 타율 0.375, 1홈런, 5타점의 불방망이를 휘두르던 김강민에게 이번 휴식은 독이 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지만, 그는 이런 상황을 탓하지 않았다. “아쉬운 건 없어요. 휴식일 이후에 성적이 계속 좋으면 보약 같은 휴식인 거고 성적이 떨어진다면 제가 그 사이에 관리를 못한 거겠죠.”



화려한 이중생활. 타자 김강민


이번 시즌을 앞두고 김강민에게 주어진 특명은 ‘톱타자로의 변신’. 사실 그간 김강민은 5번 내지는 6번 타순에서 주자를 불러들이는 타자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런 만큼 톱타자로의 변신이 쉽지는 않았을 터. 하지만 1번 타자에 차츰 적응할 때쯤 중심타자들이 연달아 빠지며 다시 5번 타자로 나서는 날이 늘어갔다. 솔직한 소감을 물어봤다. “(타순을 오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확실해요. 직접 해보니까 그걸 느끼겠더라고요. 일단 1번과 5번은 타석에 들어설 때 상황 자체가 많이 다르니까요. 물론 제가 매 타석 안타를 친다면 어떤 타순이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겠지만 타격이라는 게 상당히 어렵다 보니까…. (웃음) 그래도 지금은 ‘투잡’에 대한 적응을 잘 마친 것 같아요.” 그렇다면 1번 타자로의 도전을 위해 그는 어떤 것을 준비했을까? “사실 제가 이전까지 도루가 굉장히 약했어요. 애초에 욕심도 많이 없었고 한 시즌에 10개 전후로 기록하면서 정말 필요한 순간에만 뛰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1번 타자는 필수적으로 도루를 해야 하는 위치잖아요. 리드와 스타트 준비를 굉장히 많이 했죠. 또 출루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데 사실 선구안은 단시간에 좋아지기 힘들다고 생각해요. 대신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준비한 게 지금처럼 좋은 성적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작년보다 모든 부분에서 나아지겠다. 그리고 2루타를 최대한 많이 치고 싶다.” 시즌을 앞둔 김강민은 이렇게 두 가지 목표를 밝혔다. 올 시즌 김강민이 기록한 2루타 24개(8월 13일 기준)는 자신의 커리어하이 기록이다(종전 22개, 2013년). 2루타를 제외한 타격 지표 대부분에서도 지난 시즌 기록을 넘고 있는 김강민에게 이번 시즌 전반기까지의 중간평가를 부탁했다. “제 생각보단 순항하는 것 같아요. 초반 페이스가 굉장히 좋았기 때문에 그때보단 떨어진 것 같은데…. 그래도 시즌 시작하기 전에 걱정했던 1번 타자로서의 역할은 어느 정도 잘 수행하는 것 같아요. 사실 2루타를 많이 치겠다고 말한 이유도 1번 타자를 염두에 뒀기 때문이죠. 아무래도 1번 타자가 2루타를 많이 치면 중심타선으로 연결됐을 때 득점이 날 확률이 높아지니까요. 시즌이 끝날 때까지 2루타 30개 이상은 치고 싶어요.”



스스로 평가처럼 2014년 김강민은 1번과 5번에서 모두 제 몫을 하고 있다. 1번 타순에선 0.339의 고타율을 기록 중이며, 도루도 24개로 데뷔 이래 가장 많다(종전 23개, 2010년). 또한, 주자가 없을 때보다 있을 때 그리고 득점권에 가까워질수록 타율이 높아진다. 클린업트리오로서의 면모도 뽐내고 있는 것이다. (주자 없을 시 0.289, 주자 있을 시 0.340, 득점권 0.344, 만루 0.500) 비결이 있을까? “지난 시즌 막판 5번 타순에서 경기를 많이 했는데 그때 타격감이 좋았거든요. 그게 올해까지 이어지는 것 같아요. 특히 만루상황처럼 결정적인 기회에선 의식적으로 차분해지려고 노력해요. 흥분되는 상황이잖아요? 하지만 조금이라도 흥분하면 상대 투수에게 져요. 분명히 그래요. 이런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경험이 쌓이면서 대처하는 방법이 좋아진 것 같아요.”


또한, 이번 시즌 김강민의 성적을 이야기할 때 장타를 빼놓을 수 없다. 홈런 13개로 이미 데뷔 이후 가장 많이 공을 담장 밖으로 날려 보냈으며, 5할이 넘는 장타율(0.512)을 기록 중이다. 겨우내 장타력 상승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지 궁금하다. “장타력을 기르는 게 참 쉽지 않아요. 타석에서 자기 스윙을 강하게 가져간다는 자체가 말로는 쉬운데 굉장히 어렵거든요. 캠프에서 힘을 기르기 위해 꾸준히 연습했던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이렇게 좋은 성적이 나오면서 동시에 내년 과제를 얻었어요. 지금처럼 3할 이상 타율을 유지하면서 파워를 조금 더 늘리고 싶거든요. 야구는 참 하면 할수록 어렵네요. (웃음)”



노력형 짐승. 중견수 김강민


사실 이런 ‘타자 김강민’ 이상으로 인정받는 건 ‘중견수 김강민’이다. 엄청난 수비범위 덕에 얻게 된 별명이 ‘짐승’이다. 이에 대해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솔직히 처음엔 기분이 좋지 않았죠. 사람한테 짐승이라는데 누가 좋아하겠어요. (웃음) 근데 듣다 보니 어울리는 것 같아요. 입에도 잘 붙는 것 같고. 사실 그런 별명 자체가 어느 정도 인정받는다는 거니까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에요. 앞으로 더 잘해야 할 것 같아요. ‘잘한다, 잘한다.’ 하면 더 잘하고 싶은 게 제 욕심이거든요.”


질문을 던져봤다. ‘9회 2사 만루 위기에서 슬라이딩 캐치로 팀을 구해내는 호수비’와 ‘끝내기 안타’. 둘 중 어떤 게 더 짜릿할까? 그러자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곰곰이 고민하더니) 힘든 건 끝내기 안타가 더 힘든 것 같아요. 그런 만큼 짜릿한 것도 끝내기 안타겠죠? 솔직히 끝내기 호수비 했다고 해서 동료 선수들이 막 뛰어 나오진 않잖아요. (웃음) 사실 호수비가 나와도 경기에서 지면 잘 기억나지 않아요. 정말 잘한 플레이도요. 결국, 팀이 이기는 게 최우선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김강민이 꼽는 롤모델은 누굴까? “이번 시즌 도루에 신경 쓰면서 느낀 건데 이종범 코치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에요. 공격과 수비, 주루 모든 부분에서 최고의 모습을 유지하셨잖아요. 직접 해보니까 체력적으로 쉽지 않더라고요. 그렇지만 제가 이종범 코치님을 닮고 싶다고 말하기 조심스러운 게 그것 자체가 실례인 것 같아요. 그분은 닮을 수조차 없는 경지인 것 같거든요. (웃음) 그런데 전 사실 선배든, 후배든 가리지 않고 주위 사람을 보면서 많이 배우는 편이에요. 특히 타격은 (최)정이 보면서 느끼는 게 상당하죠. (강)정호(넥센 히어로즈)도 대단한 것 같고요. 수비는 조원우 코치님 붙잡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요. 기본적인 동작보단 특정 상황에서 코치님은 어떻게 플레이하셨는지 많이 물어보는 편이에요. 저보다 경험이 많으니 수비에 대해 저보다 많이 알고 노하우가 쌓인 분이니까 막힘없이 대답해주시죠.” 또한, 김강민은 단순히 국내 선수들뿐 아니라 해외에서 활약 중인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며 자신의 것으로 만들 부분이 있는지 끊임없이 연구한다. “요즘은 앤드류 맥커친 선수(피츠버그 파이어리츠)가 참 매력적이에요. 체구도 동양인에 비해 크지 않으면서 파워가 대단한 것 같아요. 저도 이번 시즌 장타에 많은 신경을 쓰다보니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네요. 수비는 말할 것도 없고요.”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학생. 스스로 고교 시절을 돌아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갈피를 잡지 못했던 모습이라고 한다. 비록 지금의 김강민은 리그를 대표하는 외야수지만, 사실 경북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그는 팀을 대표하는 투수였다. “초등학교 땐 포수 하다가 중학교 땐 투수와 타자를 번갈아서 했죠. 내야와 외야를 오가면서요. 하지만 투수가 정말 하고 싶어서 고등학교 진학 후엔 한우물만 팠죠. 그러다 손가락 골절로 3개월 가까이 야구공을 잡지 못했는데 그 후 투수로서의 감이 확 줄었어요. 그때 감독님이 타격 재능이 아까우니까 투수에 매달리지 말고 야수에 전념하라고 하셨어요. 그때부터 내야수로만 경기에 나섰죠. 프로 지명도 내야수로 받았고요. 이것저것 다 잘하고 싶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일반학생들처럼 진로 고민을 꾸준히 한 셈이네요.” 하지만 ‘투수성애자’ 김강민의 마운드에 대한 열정은 프로 지명 후에도 꺾일 줄 몰랐다. 데뷔 시즌이던 2001년을 투수로 보냈지만 단 한 번도 1군 마운드에 오르지 못하며 결국 다시 내야수로 돌아서게 됐다. “1년 해봤으니까 후회는 없어요. 그렇지만 아직도 투수에 대한 로망은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그래서 제가 투수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수비에 더 집중하는 것도 있고요.”



“국가대표는 영광이면서도 부담되는 것”


그렇게 야수로 전환한 뒤 국내 최고의 중견수로 이름을 떨치던 김강민은 지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에 발탁되며 생애 첫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때 당시의 솔직한 소감을 물어봤다. “태극마크를 단다는 건 무조건 영광스러운 일이에요. 하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부담감이 상당하죠. 엔트리가 발표됐을 때 10~15분은 좋았어요. 꿈인가 생시인가 싶고요.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엄청난 부담감이 밀려왔어요. 그리고 금메달 따서 숙소에서 그 메달을 가만히 볼 때, 그때 처음으로 실감 나면서 마음이 놓였어요. 그전까지 몇 달 동안 계속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리면서도 어디에 내색도 못해서 많이 힘들었죠.”


하지만 이번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명단에선 김강민 이름을 찾을 수 없다. 홈인 인천에서 열리는 대회인 만큼 아쉬움이 크진 않을까?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물론 앞서 말한 부담감을 느끼진 않아도 되지만, 그 부담감을 안고도 하고 싶은 게 국가대표니까요. 하지만 저보다 더 좋은 선수들이 많이 갔기 때문에 저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금메달을 기대하고 있어요.” 일부 팬들은 이번 엔트리 탈락으로 의욕이 떨어져 성적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염려의 목소리를 보냈다. 하지만 김강민은 이런 시선을 단호히 거부했다. “만약 그런 이유로 성적이 떨어진다면 그건 선수로서 아직 성숙하지 못한 거겠죠. 엔트리에 발탁된 선수들이 기록 등 모든 부분에서 저보다 낫기 때문에 불만이나 이런 건 전혀 없거든요. 그냥 뽑힐 선수들이 뽑혔구나 싶은? 제가 3할 8푼에 홈런 20개 쳤다면 뽑히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그러지 못했으니까, 제가 그만큼 잘하지 못했으니까 뽑히지 못했겠죠.”


그렇다면 태극마크를 먼저 달았던 선배 입장에서 후배들에게 남길 조언이 있진 않을까? 당부의 말을 남겨달라는 에디터 요청에 ‘전부 나보다 나은 선수들인데 제가 무슨 조언을 할 수 있겠어요.’라며 거듭 머쓱해하던 김강민은 선수들이 가장 신경 써야 하는 부분으로 몸 관리를 꼽았다. “다치면 안 돼요. 특히 이번 대회는 예년과 달리 시즌 중반에 진행되기 때문에 지금부터 각별히 신경 써야 할 거예요. 사소한 부상이라도 대회에 가면 영향이 클 테니까요.”



NASA에 가고 싶던 대구 소년 김강민


김강민은 이번 시즌이 끝난 뒤 FA 자격을 얻는다. SK는 시즌 시작 전부터 8명의 예비 FA 선수를 보유했다는 이유로 주목의 대상이 됐다. 그중 현재 성적이 가장 좋은 건 김강민이다. FA 시즌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은 어떨까? “FA는 잘해도 스트레스, 못해도 스트레스인 것 같아요. 신경 쓸 게 너무 많거든요. 그렇지만 부담은 없었어요. 사실 지난 시즌 끝나고 굉장히 설렜어요. FA 시즌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지난 시즌 막판 타격감이 정말 좋았거든요. 시즌을 어떻게 치를지 구상하느라 여념이 없었죠. 하지만 막상 시즌이 시작되니까 너무 힘드네요. 그나마 시즌 초반에 멋모르고 날뛰면서 성적을 한껏 끌어올렸던 게 지금까지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FA라는 건 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기 때문에 빨리 시즌이 끝났으면 좋겠어요. 요즈음 시간이 잘 안 가는 것 같은 이유가 이 때문일까요? (웃음)”


이제는 야구선수를 희망하는 누군가의 꿈이 된 김강민. 그의 어린 시절 꿈은 지금 모습처럼 ‘최고의 외야수’였을까? “아뇨. 사실 이루고 싶은 꿈은 따로 있었어요. (잔뜩 민망해하다가) 진짜 솔직하게 얘기할게요. NASA(미국항공우주국)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전원 웃음) 근데 재밌는 건 NASA에서 뭘 하고 싶다는 계획은 없었어요. 그냥 NASA 자체가 멋있어서 들어가고 싶었던 것뿐이거든요. 설혹 청소하더라도 말이죠. NASA에 가려면 수학을 잘해야 할 것만 같아서 다른 과목 다 버리고 수학만 공부했던 적도 있어요. 실제로 성적도 좀 올랐고요. 그게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꿈이었는데 지금은 비행기 타는 것도 싫어하는 걸 보면 참 사람 일은 모른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웃음)” 그렇다면 은퇴하고 NASA에 지원해보는 건 어떨까? “그럴까요? 사실 야구 외적으로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게 굉장히 많거든요. (잠시 고민하다가) 아! 그래도 이번 생엔 야구만 하고 싶어요. 그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대신 다음 생에 천재의 아들로 태어나는 건 어떨까요? 공부를 취미로 삼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요. 그렇게 살면 NASA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전원 웃음)”


김강민은 팬들 기억 속에 ‘최고의 외야수’로 남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이미 어느 정도 꿈을 이룬 건 아니냐는 에디터 질문에 “아직 멀었죠.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아져야 하고, 그 후에도 그걸 유지하려고 부단히 노력해야겠죠.”라고 각오를 밝힌 김강민. 그에게 야구란 어떤 의미일까? “솔직히 어릴 땐 먹고살기 위해 야구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제가 세상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된 것 같아요. 다른 건 야구만큼 자신 없거든요. 돈벌이 수단에서 자아실현의 수단이 된 셈이니까 이 정도면 저 야구하길 잘한 거죠?”


김강민은 인터뷰 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옆구리 통증 탓에 재활군으로 내려갔다. 남은 시즌에 대한 자신감으로 차있던 김강민의 부상 소식을 듣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던 각오가 전부 물거품이 되진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거기에 개인 통산 1,000경기 출장에 13경기만을 남겨둔 상황이라 이번 시즌 중 기록 달성이 무난해 보였기에 아쉬움은 더욱 컸다. 하지만 김강민은 지난 14일, 재활군에 내려간 뒤 정확히 10일 만에 다시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규정상 채워야 하는 10일이 끝나자마자 다시 1군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처럼 에디터가 만난 김강민은 자신의 야구를 완성하기 위해 부상쯤은 금세 털고 부상 이전의 좋았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할 선수다. 그 유명한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재능은 쉽게 잊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면 당신의 이름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개미진 매력의 소유자 김강민이 항상 팬들에게 성실한 선수로 기억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 아닐까? 다시 예전처럼 1군 무대에서 뛰어놀 짐승의 모습을 기대한다.


[사담(私談) ‘Who say!’]

2010년 결혼 후에도 여전히 여성 팬들에게 인기가 많은데 비결이 있을까요?

(손사래를 치며) 박희수, 김성현, 김광현이 있는데 제가요? (한참을 망설이다) 굳이 꼽자면 제가 콧대가 좀 높지 않나요? 이걸로 할게요. (웃음)


그렇다면 스스로 생각하는 팀 내 외모 순위는요?

다섯 손가락 안엔 들지 않을까요? (이)한진이나 (김)광현이가 있으니까요. 근데 외모라는 게 얼굴이 아니라 전체적인 느낌을 따지는 거 아닌가요? 그럼 광현이가 1등이죠. 일단 기럭지 자체가 대단해요. 운동 끝나고 샤워할 때 보면 살벌해요, 아주. 기사 쓸 때 타이틀로 ‘김강민, 나는 광현이의 벗은 몸을 봤다.’ 이건 어때요? (전원 웃음)


같은 팀 선수를 제외하면 친한 선수는요?

결국, SK를 거친 선수들인데, 한화 정근우랑 삼성 김희걸이요. 아 희걸이는 개명했죠? 김건한. 개명하면 뭐, 어차피 사람은 똑같은데요. (웃음) 그 외엔 동기였던 롯데 박준서? 이 정도네요.


스트레스는 주로 어떻게 푸세요?

어릴 땐 노는 걸 좋아했어요. 잠은 죽어서 자면 된다는 생각에 몸을 혹사시킬 정도였죠. 근데 그때 너무 놀아서일까요? 이제는 달라졌어요. 제가 생긴 건 이래도 술을 정말 못하거든요. (웃음) 가족들이랑 있고, 집에서 가끔 오락이나 하면서 밖을 잘 안 돌아다녀요. 아! 요즘은 새로운 재미가 생겼어요. 지난 4월 세상에 나온 딸을 보는 거예요. 아무리 힘들어도 딸을 보는 순간 스트레스가 다 사라져요. 그 재미에 사는 것 같아요.


아내 자랑을 한다면요?

음식을 잘해요. 근데 하려고 안 해서 문제죠. (웃음) 딸한테도 참 잘하고. 전형적인 현모양처인 것 같아요. 요즘은 아기 때문에 극장가거나 이런 데이트를 못 하니까 아쉬운데, 아이가 좀 크면 다시 예전처럼 알콩달콩 지내고 싶어요.

Posted by SK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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