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멈출 줄 모르는 불방망이로 전 구단 야구팬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는 선수, SK 와이번스 이명기에게 따라다니고 있는 별명이 있다. 바로 ‘진기명기 이명기’다. ‘진기명기’란 진귀한 그릇, 즉 보기 힘든 명품을 뜻하는 말로 스포츠에서는 쉽게 보지 못하는 신기한 명장면을 뜻하기도 한다. 올 시즌 ‘진기명기’ 호수비, ‘진기명기’ 타격감을 전부 보여주며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팬들의 머릿속에 제대로 각인시킨 이명기. 이제 그의 이름 明(밝을 명), 起(일어날 기)처럼 밝게 일어날 준비를 모두 끝마쳤다.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선수이자 훌륭한 야구 실력과 훈훈한 외모, 재치 있는 입담과 센스까지 모두 갖춘 이 시대의 진정한 ‘매력남’ 이명기를 만나보자.

Photographer Jorip Editor Lee Sun Kyung Location Munhak Baseball Stadium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화보 촬영을 먼저 진행했다. 물오른 타격감으로 계속해서 인기 상승 중인 그는 올해 정말 많은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전문 화보 촬영 요청은 더그아웃 매거진이 처음이었고 화보 촬영 경험이 한 번도 없어 많이 어색하고 쑥스럽다고 했다. “포즈 잡고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어려워요. 제가 쑥스러움을 많이 타서요. (웃음) 야구보다 더 어려운 것 같아요.” 하지만 어렵고 어색하다는 대답과는 다르게 이내 화보 촬영에 익숙해졌는지 야구 실력만큼이나 멋진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다.


28경기 연속 안타의 주인공 이명기,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화보 촬영이 끝난 후,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28경기 연속 안타 대기록 달성으로 한국 프로야구 역대 공동 3위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에 대한 축하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웃음) 시합에 나갈 때마다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하다 보니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아요. 제 손으로 28경기 연속 안타를 쳤지만, 만약 다시 그때처럼 해보라고 하면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한 달 조금 넘게 그 페이스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데 그게 실제로는 정말 어렵거든요.”


그가 말한 것처럼 연속 안타 기록은 다른 기록들과는 달리 매 경기 꾸준히 안타를 쳐야 하기 때문에 달성하기 가장 어려운 기록으로 손꼽힌다. 이렇게 어려운 기록을 세웠을 당시 그의 소감을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29경기 연속 안타를 치지 못하고 마지막 타석에서 아웃 됐을 때 아쉬움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그렇지만 제 야구 인생으로 봤을 때 돈으로도 사지 못할 값진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요.”


28경기 연속 안타가 대단한 기록인 만큼 그 기록이 끊길 뻔했던 고비도 여러 번 있었다. 특히 28경기 연속 안타를 친 9월 13일 경기는 말 그대로 정말 극적이었다. 9회 마지막 타석에 들어선 그는 투수 키를 넘기는 빗맞은 내야 안타를 쳤고 끊길 뻔했던 기록을 다시 이어 나가게 된다. “마지막 타석에서 공을 쳤는데 빗맞아서 투수 머리 위로 살짝 넘어가더라고요. 제가 종종 내야 안타도 치는 편이라 투수 머리 위로 공이 넘어가는 그 순간에 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1루 베이스로 전력 질주했어요. 1루 베이스를 딱 밟고 세이프가 되는 순간 기록을 다시 이어갈 수 있어서 좋았지만, 팀이 크게 지고 있어서 좋아하는 티를 많이 낼 수는 없었습니다. (웃음)” 


이명기가 마지막 타석에서 내야 안타를 치기 전까지, 사실 이명기 자신 보다 그의 팀 동료들이 더 애타했는데, 그 모습이 TV 중계 화면에 잡히기도 했다. 이명기가 마지막 타석에서 극적으로 내야 안타를 치며 기록을 다시 이어나가게 됐고, 그제야 더그아웃에 있던 SK 선수들도 한숨을 돌렸다. 그러면서 당사자인 이명기보다 더 기뻐해 줬다. “제가 평소에도 저희 팀 형들과 잘 지내고 있는데요. 그 경기가 끝나고 형들이 저에게 정말 수고했고 대단하다고 칭찬 많이 해주셨어요. 같은 팀 형들로부터 칭찬받으니깐 기분이 정말 좋더라고요.” 평소 같은 팀 동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낸다는 그의 원만한 성격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는 28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달성함으로써 존경하는 선배님이자 한 때는 같은 팀에서 땀을 흘렸던 박재홍 해설위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기록을 진행하는 기간에 박재홍 선배님을 뵌 적은 없었지만, 기록이 끝나고 선배님께서 해설하러 오셨을 때 만나 뵙게 됐어요. 정말 축하하고 수고 많이 했다고 제 어깨를 두드려주시더라고요. 정말 감사했어요.”


그는 박재홍 해설위원 외에도 캐넌히터 김재현 해설위원으로부터 많은 조언을 받았다고 한다. “기록을 세우는 동안에 김재현 선배님이 해설하러 오신 적이 있었어요. ‘앞으로 안타를 계속 쳐야 하는데 그 점에 대해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타석에 들어가서는 네 볼만 치라’고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셨죠. 저는 정말로 그 조언을 듣고 난 이후에 그것만 생각하고 타석에 들어갔어요. 그 결과 엄청난 기록을 달성하게 됐잖아요. 저에게 정말 큰 도움을 주신 것 같아요. 김재현 선배님은 제가 어렸을 때 주장을 맡아 저를 이끌어 주신 적도 있었기 때문에 저한테는 특별한 선배님이신데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셔서 감사드려요.”


그가 28경기 연속 안타를 치는 동안 SK는 17승 10패 1무를 기록하며 이명기가 잘할 때 팀 역시 웃는 경우가 많았다. 이명기가 27경기 연속 안타를 쳤던 경기에서는 SK가 팀 통산 1000승을 달성하기도 했다. “27경기 안타를 칠 때는 연속 안타 기록에 대한 관심을 받을 때라서 부담이 됐었는데 그래도 첫 타석에 안타가 바로 나와서 부담을 덜고 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 안타가 팀 통산 1,000승에 어느 정도 보탬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명기는 27경기 연속 안타 기록과 팀 통산 1,000승, 둘 중에 어떤 것을 더 기뻐했을지 궁금해졌다. “사실 1,000승은 내일 할 수도 있는 건데…. (웃음) 연속 경기는 당일 당일이 기록이잖아요. (웃음)” 라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그 말을 듣고 있던 SK 홍보 직원이 ‘보고 해야겠다.’고 장난스럽게 말을 꺼내자 그는 “둘 다 좋았어요.”라고 대답을 바꾸며 시원하게 웃어 보였다.



그가 세운 28경기 연속 안타는 정말 대단한 기록이다. 30년이 넘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이명기가 세운 28경기 연속 안타보다 더 많은 연속 안타를 기록했던 선수는 31개의 연속 안타를 친 롯데 박정태와 39개의 연속 안타를 쳤던 삼성 박종호 두 명뿐이었다. 이명기는 박정태와 박종호를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후보로 뽑혔다. 그렇기 때문에 연속 안타 기록을 바라보는 팬들의 간절함은 무척 컸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명기는 9월 14일 경기에서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며 8회 초 대수비로 교체됐고, 28경기 연속 안타에서 기록을 마감하게 된다. 역대 최장 연속 안타를 기록할 수 있는 유일한 후보로 여겨졌기 때문에 팬들의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었다. 9회에 타순이 돌아오게 된다면 다시 한 번 기회가 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7회 마지막 타석에 들어서기 전에 이번 타석 이후에 교체될 것이라고 어느 정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마지막 타석에서 정말 많은 집중을 했었는데 결과는 아웃이었죠. 그래도 그렇게 큰 아쉬움은 없었던 것 같아요. 네 번이나 타석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다 못 쳤던 거잖아요. 팀 승리도 중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더 큰 기록을 세울 수 있었는데 대수비로 교체되어 선수 본인은 아쉬움이 더 클 것 같았다. “대수비로 교체된 것에 대해서는 전혀 아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그 날 경기 타석에서 조금 머뭇거렸던 것이 아쉽더라고요. 첫 타석에서 슬라이더를 툭 쳐서 아웃 됐는데 그다음 타석부터 슬라이더만 생각하다 보니깐 직구에 방망이가 잘 안 나갔거든요. 경기가 끝나고 난 이후에 생각해보니깐 그게 가장 아쉬웠던 것 같아요.”


이어 그는 28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마감했을 당시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제가 어느 정도 연속 안타 목표를 잡은 상태였어요. 39경기까지는 많이 남아 있는 상태였고 31경기가 단일 시즌 최다였기 때문에 31경기를 목표로 잡았었죠. 그래서 앞으로 3경기만 더 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결국 28경기 연속 안타로 마감하게 됐잖아요. 그 이후에 아시안게임 휴식기로 보름 정도 쉬었는데 쉬면서 ‘보름 동안 더 스트레스받을 바에는 오히려 미리 끝난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웃음)”


연속 안타를 세우는 기간 동안 그는 또 다른 잊지 못할 기록도 세운다. 9월 5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5타수 5안타 2타점 3득점을 기록하며 절정의 타격감을 선보인 것이다. 특히 3루타만 쳤으면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3루타가 마지막 타석에서 남았던 것이 아니라 마지막 타석에서 홈런을 치면서 3루타가 남았던 거라 크게 아쉽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 날 제가 야구하면서 안타를 제일 많이 쳤던 날이라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고 다시 생각해도 정말 기뻐요.”


이렇게 미친 타격감을 선보이고 있는 그는 5월부터 9월까지의 월간 타율이 모두 3할이 넘는 꾸준함까지 보이며 완벽에 가까운 선수로 진화하고 있다. 그의 꾸준함의 비결은 ‘집중’이었다. “저는 확실하게 주전이 보장된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이기고 있는 경기든 지고 있는 경기든 제가 나가는 한 타석에 항상 집중했어요. 왜냐하면 안타를 못 치면 다음 날 경기에 못 나가는 시절을 겪기도 했었고 항상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 타석 한 타석이 소중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높은 타율이 나오게 된 것 같아요.”


꾸준함 외에도 또 하나의 주목해야 할 점은 우 투수, 좌 투수, 언더 투수를 가리지 않고 모든 종류 투수를 상대로 좋은 성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인터뷰 전날 안타를 추가하면서 총 안타 94개를 기록 중이었다. (10월 6일 기준) 앞으로 남은 경기 동안 안타 6개를 추가하면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세 자릿수 안타를 기록하는 것이다. “저희가 지금 6게임 남았는데요. 남은 경기에서 안타를 계속 친다는 생각 보다는 좋은 공을 골라서 출루할 생각이에요. 좋은 공을 골라 치다 보면 볼넷으로 나갈 수도 있는 거고 또 좋은 공을 쳐야 좋은 타구도 나오잖아요. 안타 욕심보다는 출루를 많이 한다는 생각으로 타석에 들어설 생각입니다.” (이후 10월 15일 잠실 두산전에서 데뷔 첫 100안타 달성)


또한 평소 그의 타격 모습을 보면 잡아당기는 타격 보다는 밀어치는 타격을 주로 한다. 프로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선택이었다. “제가 2군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작년부터 1군에서 시합을 뛰게 되면서 투수들이 몸쪽 승부보다는 바깥쪽과 변화구 승부를 많이 한다는 걸 알았어요. 그러다 보니 제 스윙 자체가 그쪽에 맞춰서 약간 변형된 것 같아요. 아무래도 바깥쪽 공과 변화구는 포인트를 늦게 잡고 쳐야 좋은 타구가 많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밀어치는 타격이 많아진 것 같아요.”



SK 와이번스로 입단, 힘든 시간을 버텨내고 꽃을 피우다

이명기는 인천고 시절, 고교야구 3대 외야수로 꼽힐 정도로 출중한 실력을 갖춘 선수였다. 이를 인정받아 2006년 2차 지명 8라운드 전체 63순위로 SK 와이번스에 입단한다. 지명 당시 SK 스카우팅 리포트에는 ‘막강 인천고를 이끌었던 공수주 삼박자를 갖춘 기대주로 안산공고 에이스 김광현이 가장 무서워하는 상대로 주저 없이 지목한 실력파 선수’라고 적혀 있었다. “(김)광현이가 한 인터뷰를 고등학교 때 우연히 봤었는데 말을 좋게 해줘서 제가 그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웃음) 그때 당시 좋은 선수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저를 지목해줬잖아요. 만약에 광현이가 미국 진출해서 잘한다면 제 자식들한테 자랑 좀 하려고요. (웃음)”


하지만 그는 입단 이후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었다. 2011년 군 복무 이전까지 1군 출장은 단 14경기로 유명보다는 무명에 가까운 선수였다. “그때 당시 저희 팀 외야수들의 실력이 저 보다 다 좋았어요. 저는 형들에 비해 타격이나 수비, 주루 등이 조금씩 부족했고요. 그래도 김성근 감독님께서 저에게 어느 정도 시합을 내보내 주려고 하셨는데 제가 경기 나갔을 때마다 결과가 다 좋지 못했죠. 기술적으로나 멘탈적으로 약간씩 부족하지 않았나 싶어요. 수비를 나갔을 때는 경험이 없다 보니 잔 실수도 많이 했었고, 타석에서는 야간 게임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공이 정말 잘 안 보였어요. 그래서 얼토당토않게 스윙을 했었죠. 그러다 보니 1군에 올라왔을 때 자신감이 떨어지더라고요. 또 1군 출장 기회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몇 타석 들어가지 않는 상황에서 뭔가 보여 줘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있었어요. 그래서 욕심을 내게 됐고, 이런 점들이 계속 반복되면서 안 좋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그는 군 입대 전까지 5년 동안 2군 생활을 버텨냈다. “제가 2군에서 5년 정도 생활했는데 그때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 나름대로 야구를 열심히 했고 또 야구를 주로 생각하면서 다른 모든 걸 절제하고 살았는데 결과가 좋지 못하니깐 ‘여기까지가 내 한계인가.’ ‘내가 재능이 없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의욕이 떨어졌어요.”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그는 2011년에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시작하며 야구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야구가 하기 싫어졌던 그는 군 복무를 시작한 후 1년 동안 아예 야구를 손에서 놓아 버렸었다고 고백했다. “1년 동안 그냥 놀고 있었는데 미리 군대를 다녀온 동기들이 1군에서 뛰고 있는 모습을 TV 중계로 보게 됐었어요. (김)재현(8번)이나 (김)성현이가 경기를 뛰는 걸 보니깐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어요. 또 운동선수가 1년을 쉬다 보니깐 몸이 근질거리기도 했고요.” 동기들로부터 자극을 받은 그는 새로이 마음을 다잡았다. 몸도 만들고 야구 연습도 다시 시작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상무나 경찰청이 아니었기 때문에 야구 연습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공익근무를 마치면 5시, 6시 정도였는데요. 근무가 끝나고 나면 바로 인천고등학교로 달려갔어요. 제가 인천고등학교 출신이기도 하고 인천고등학교 학생들이 야간연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천고등학교 학생들과 같이 야구 연습을 했었어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야구 연습을 하며 서서히 꽃 피울 준비를 시작했던 것이다.


흔히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 철이 든다고 말한다. 이명기 역시 군 복무를 통해 스스로를 변화시켰다. “사실 군대 가기 전에는 야구하면서 실수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그런데 군대를 다녀와서는 그런 두려움 보다는 잘해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변화하게 됐어요. 그리고 1년 동안 쉬면서 백수생활도 할 짓이 못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웃음) 사람은 역시 일을 해야 해요. (웃음)”



이명기는 군 제대 이후인 2013년에 그의 응원가에 나오는 ‘초신성’처럼 화려하게 등장한다. 에디터가 ‘초신성’이라는 단어를 말하자 이명기는 엷은 웃음을 띠며 응원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바꿔 달라고 하려고요. (웃음) 저는 신경을 잘 안 쓰는 편인데 야구장 오는 제 주변 분들이 동요 같다고 하세요. 저는 강한 스타일의 곡이 더 좋아요. (웃음)” 그러자 SK 홍보 직원이 응원가를 책임지고 바꿔주겠다며 굳은 약속을 했다. 아마 다음 시즌에 SK 팬들은 강렬한 음악으로 이명기를 응원할 수 있을 것이다.


응원가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운 뒤, 군 복무 이후의 이야기를 마저 이어 나갔다. 군 제대 이후 2013시즌에 복귀한 그는 시즌 초반에 이명기라는 이름 세 글자를 천천히 알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5월 8일 경기에서 수비 도중 발목 인대 부상을 당하게 된다. 부상을 당했을 당시만 해도 큰 부상이 아닐 거라는 소식이 들렸지만, 결과는 시즌 아웃이었다. “제가 야구를 하면서도 크게 다쳐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처음 다쳤을 때도 그냥 발목이 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다음날 일어나 보니깐 발목이 엄청나게 많이 부어 있더라고요. 병원을 갔는데 양쪽 발목 인대가 끊어졌다는 판정을 받았어요. 한두 달 쉬면 복귀할 수 있다고 해서 마음 편하게 먹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안 낫더라고요. 넉 달이 넘었는데도 걸으면 아플 정도로…. 그때부터 의사 진단과 너무 차이가 나다 보니깐 불안해지기 시작했죠. 그렇게 6개월 정도 지나고 가서 재활 캠프도 다녀오고 인대에 좋다는 음식도 먹어 가면서 노력했더니 지금은 아주 건강해졌습니다. (웃음)”


보통 운동선수들은 긴 재활의 시간을 겪으면서 재활 자체도 힘들어하지만 예전과 같은 기량을 되찾지 못할까 봐 심리적으로 더 불안해하는 경우가 많다. “기술적으로는 그렇게 불안하지 않았어요. 기술적인 것보다는 제가 많이 뛰어야 하는 스타일인데 발목을 다쳐서 주력이 느려질까 봐 그게 가장 걱정됐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괜찮으니깐 팬분들께서 걱정 안 해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웃음)”



으!리!남! 이명기, 함께 걸어갈 친구들이 있어 행복하다

최근 SK 팬들은 ‘8706트리오’ 때문에 야구 볼 맛 난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8706 트리오’란 87년생, 06년도 입단 동기인 이명기, 김성현, 이재원을 일컫는 말이다. 같은 나이, 입단 동기 외에도 셋은 입단 이후에 주목을 못 받다가 올해 동시에 모두 포텐을 터트렸다. 그래서 그런지 이 셋의 우정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애들이랑 힘든 2군 생활을 계속 같이 해서 그런지 끈끈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끈끈한 만큼 장난도 자주 치는데요. 원정 숙소에 가면 성현이 방에 놀러 가서 서로 ‘네가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이야기해요. (웃음) 장난이고요. 사실 재원이랑 성현이가 1군에서 먼저 자리를 잡아 줬기 때문에 제가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어요. 야구를 하다 보면 힘들고 지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서로 이야기 나누면서 서로에게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이명기, 이재원, 김성현, 셋의 시너지 효과는 무척 대단했다. “아무래도 친구가 잘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요. 또 자극도 받으면서 ‘나도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초반에 재원이가 엄청나게 잘했는데 부러우면서도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재원이는 타석에서 보면 무슨 마흔 살 먹은 베테랑처럼 여유가 넘쳐요. 잘 맞든 안 맞든 타석에서의 표정이 한결같은데 그런 표정과 행동을 배우고 싶어요. 그리고 성현이는 우리나라 내야수 중에서 공을 가장 잘 던지는 선수인 것 같아요. 성현이한테 직접 배우기도 했었는데 ‘아무 생각하지 말고 저 타겟만 보고 던지라고 가르쳐줬었어요. 그런데 개인적인 능력 차이가 있어서 그런지 말처럼 쉽게 잘 안되더라고요. (웃음)”


셋은 야구 외적으로도 평소에 자주 붙어 다니는 ‘베스트 프렌드’라고 했다. “가끔 쉬는 날이나 비 오는 날에 같이 밥 먹어요. 재원이가 정말 잘 먹는 편인데 특히 고기를 좋아해서 만나면 고기를 많이 먹습니다. (웃음)”

       

서서히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이명기의 수많은 여성 팬들이 궁금해하는 질문, ‘결혼’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꺼내 보았다. 보통 운동선수들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싶어 일찍 결혼하는 편이다. 이명기 역시 결혼을 생각할 수 있는 나이였다. “더그아웃 매거진에서 처음 공개하는 건데요. 내년 시즌 끝난 뒤에 결혼할 생각입니다. 그런데 주위에서 내년 되어 봐야 안다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아! 그리고 저 여성 팬 별로 없어요. (웃음) 저희 팀에서는 (한)동민이랑 (김)성현이가 여성분들한테 인기가 많은 것 같아요. 저는 만만해서 그런지 초등학생들과 아저씨들한테 인기가 많더라고요. (박)정권이 형과 팬층이 비슷한 편이죠. (웃음)”


올해 그 누구보다 행복한 시즌을 보낸 이명기는 지금보다도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시즌이 끝난 후에 자신이 보완해야 할 점도 미리 염두에 두었다. “제가 저희 팀 외야수들에 비해 수비 능력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잖아요. 그래서 수비 보강을 위해 연습을 많이 해야 할 것 같고요. 그리고 제가 팀에서 1번 타자를 하고 있는데 타 팀 1번 타자들보다 부족하지 않게 비시즌 동안 보완할 생각입니다.”


이어서 그는 언제나 자신을 응원해 주는 SK 와이번스 팬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날씨가 더워도, 비가 와도 항상 경기장을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몇 게임 남지 않았는데 끝까지 응원해주세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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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수육 찍어 먹기 vs 부어 먹기

▶ 양념 치킨 vs 후라이드 치킨

(치킨 좋아하세요?) 많이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먹어도 살이 잘 안 찌는 체질이라 가끔 먹어요.

▶ 아메리카노 vs 카페라테

▶ 여름 vs 겨울

제가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에요. 그리고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같은 행사가 많아서 더 좋아요. (웃음)

음악 듣기 vs 독서

(또 다른 취미가 있다면?) TV 보는 거 좋아해요.

명치로 vs 진기명기

진기명기는 초등학생 때부터 듣던 별명이라 감흥이 없어요. (웃음) 명치로는 스즈키 이치로 같은 대단한 선수를 닮았다는 뜻이니깐 좋아요.

1번 타자 vs 2번 타자

역할은 거의 비슷한 것 같지만 아무래도 팀에서는 1번 타자가 더 주목받잖아요.

▶ 우익수 vs 좌익수

계속 좌익수로 나가고 있어서 그런지 제 포지션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 농군 패션 vs 긴 바지 패션 

TV 중계로 보면 농군 패션이 안 어울리더라고요. (웃음)

▶ 만루 홈런 vs 안타 10개

아직 만루 홈런을 못 쳐봤지만, 만루 홈런보다는 안타 10개가 팀에 기여도가 더 높은 것 같고 기록적인 면에서도 좋은 것 같아요.

긴 머리 이성 vs 짧은 머리 이성

여자 친구가 긴 머리예요. (웃음)

▶ 다시 태어난다면 야구 선수 vs 다른 종목 선수

우리나라에서 야구가 제일 인기가 많잖아요. 그리고 야구 선수로서의 보람도 크고 성취감도 있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도 전 야구선수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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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방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이명기에게 가장 아쉬웠던 순간이나 후회되는 순간을 뽑아 달라고 했다. 그러자 “기억이 잘 안 나요. 저는 잘하든 못하든 다음 날 되면 모두 잊고 새로 시작하는 편이거든요. 사람이 계속 못 하는 것만 생각하면 위축될 수 있고, 또 계속 잘하는 것만 생각하면 거만해질 수 있잖아요. 그래서 하루하루만 생각하려고 하고 있어요.” 위축과 거만, 거만과 위축을 중간에서 잘 컨트롤 할 수 있었기에 지금의 이명기가 있을 수 있었다. 그가 앞으로 얼마나 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줄지 다음 시즌이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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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K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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