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팬이라면 관심을 갖고 지켜봐도 좋을 선수가 한 명 있다. 바로 오른손 투수 이창욱(30)이 그 주인공이다. 이창욱은 20일까지 3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점이 10.38(4⅓이닝 5자책점)에 머무르고 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성적은 분명 좋지 않다. 필승조라고 하기에도 아직 역할도 크지 않다. 하지만 이 선수가 밟아온 험난했던 '시간'을 생각하면 마운드에서 던지는 공 하나하나가 '드라마'다.


이창욱은 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1번 지명을 받았다. 당시 1차 1번으로 비룡군단의 부름을 받은 선수가 에이스 김광현이다. 드래프트 동기가 양현종(KIA)과 김혁민(한화), 백정현(삼성). 당시 받았던 계약금이 1억3000만원이었을 정도로 팀에서는 우완 투수 중 최고 기대주였다. 당시 고려대 에이스하면 가장 먼저 떠올랐던 선수가 이창욱이었다.


하지만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입단 직후 모교인 군산상고에서 훈련을 하다가 어깨를 다쳤고, 끝이 보이지 않는 재활에 돌입했다. 이 사이 군대도 다녀와야 했다. 결국 7년간 1군 기록 없이 SK팬들로부터 잊혀졌다. 모두가 포기할 법했지만 이창욱은 '가족의 힘'으로 버텼다. 결국 지난해 애리조나 교육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더니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스프링캠프에도 참가했다. 어깨에 쌓였던 먼지가 날아갔다.



그리고 지난 15일 문학 두산전(1⅓이닝 3피안타 2자책점)에서 프로 데뷔 후 첫 1군 등판을 가졌다. 이틀 후인 17일 대전 한화전에선 2이닝 1피안타 무실점 쾌투로 팀의 7연패를 끊는 것과 동시에 감격적인 프로 첫 승을 신고했다. 정근우-김태균-피에 등 한화의 중심타자를 상대로 전혀 주눅 들지 않는 피칭이었다. 가능성이 보였다.


-1군 생활 어떤가.


"나에게는 소중한 경험이다. 하루하루가 새롭다."


-첫 등판에선 만감이 교차했겠다.


"너무 아쉬웠다.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기 때문에 확실하게 만족스러운 투구를 하고 싶었다. 투구는 몰라도 수비에서 그런 실수(투수 땅볼 후 2루 악송구)가 나오면 안 된다."


-교육리그를 다녀온 후 기량이 성장했다는 평가가 있는데.


"타자랑 싸우는 법을 배웠다. 유리하게 볼카운트 싸움을 하는 것이나 체인지업도 교육리그에서 본격적으로 던져보려고 했다. 여러 가지로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가이 콘티 인스트럭터로부터 극찬을 받았는데.


"콘티 코치로부터 많이 배웠다. 무엇보다 공을 빠른 게 던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가 던질 수 있는 곳에 정확하게 던지도록 강조하시더라. 제구력과 볼카운트 싸움에 대해 주문을 많이 하셨다. 지금 생각을 해도 너무 잘 배웠다는 생각을 한다."


-주종은 뭔가.


"카운트가 여유가 있을 때는 포크볼을 주로 던진다. 여기에 슬라이더나 커브도 있다."

 


-1군에 오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입단을 하자마자 수술을 했고, 바로 군대를 갔다. 3~4년을 쉬었던 것 같다."



-2군에서 기다리는 게 어렵지 않았나.


"쉽지 않더라. 군대를 포함해서 프로 8년차다. 기다리는 게 쉽지 않더라. 아마 나 혼자였으면 그만뒀을 거다. 하지만 가족(2007년 결혼·부인과 아들 둘)이 있으니까 버티게 되더라. 처음에는 어깨가 아파서 던지지 못했는데, 그만두더라도 공을 한 번 마음껏 던져보고 그러자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역할을 이제야 하게 된 것 같은데.


"그렇다. 첫 째(광빈·6)가 이제 야구를 볼 나이다. 와이프하고도 더 자주 연락하게 되더라.(웃음)"


-기회가 간절했겠다.


"2군에 있는 선수들은 모두 그렇다. 현재 1군에 있는 게 좋기도 하지만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것이기도 해서 어렵기도 하다."


배중현 일간스포츠 기자 bjh1025@joongang.co.kr

 

Posted by SK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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