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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共感) W] '2등 선수에서 1등 프런트로...' 육성팀 스카우트 조영민 매니저

SSG 랜더스 2015. 1. 23. 17:55

"유니폼 입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은퇴한 야구인들이 한결같이 내뱉는 아쉬움이다. 그들에게 젊은 시절 푸른 그라운드를 누빌 때만큼 행복했던 시기는 없는 듯하다. SK 와이번스는 이번 겨울 2명의 걸출한 스타 출신 선수가 유니폼을 벗고 새로운 인생길을 열어젖혔다. 이승호와 제춘모다. 한창 잘 나갈 때, 그들에게는 프로야구를 대표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SK 프런트의 일원이 됐다. 이승호는 스카우트, 제춘모는 퓨처스리그 투수코치로 야구 인생 2막을 올렸다. SK 구단은 두 선수의 변신 소식을 직접 알리며 응원을 부탁했다. SK는 최근 유니폼을 벗은 선수에게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주는, 즉 일자리 창출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오고 있다.

 

조영민 매니저의 선수시절 모습


1년여전 이맘 때, 선수 출신의 한 젊은 야구인이 SK에서 일자리를 찾아 새 인생을 시작했다. 스카우트팀 조영민 매니저(34)의 이야기이. 꾸준히 프로야구를 지켜봐 온 팬이라면 떠올릴 수 있는 투수 출신이다. 광주일고, 연세대를 졸업하고 지난 2004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다. 프로 첫 해 8세이브를 올리며 주목받았다. 이듬해 SK로 둥지를 옮겼다. 외야수 조원우를 탐내던 한화가 트레이드 카드로 조영민을 SK에 제시했다. 당시 SK "컨트롤과 볼끝이 좋고, 투수에게 있어 가장 큰 장점인 싸움꾼 기질이 있다"며 조영민을 평가했었다.


그러나 SK에서 활짝 꽃피울 것 같았던 그의 야구는 오래가지 못했다. 2008 38경기에서 평균자책점 3.74를 기록하며 전성기를 맞는가 싶던 그는 2009~2010년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뒤 1군 기회를 좀처럼 얻지 못했다. 2012년 시즌 후 그에게 돌아온 것은 방출 통보. 2013년 어렵게 LG 트윈스의 부름을 받고 재기를 노렸으나 그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2013년말 삶의 막막한 한계에 부딪혀 괴로워하던 즈음, SK의 러브콜이 날아들었다.


조 매니저는 "부상을 당해서 은퇴한 것은 아니다. 야구를 못했기 때문이다. 두 번 방출을 당하고 보니까 안되겠다는 마음이 들더라" "SK서 나올 때와 달리 LG서 방출됐을 때는 그리 마음이 복잡하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은퇴)준비를 했고, 다른 것을 해보겠단 생각을 했었다. 가족들도 야구쪽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싶다면 하라고 했다. 그 즈음 김용희 감독(당시 육성총괄)께서 'SK에서 스카우트를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의하셔서 오게 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나 선수로서의 아쉬움은 크게 남았다. 조 매니저는 "자신감도 많이 떨어졌고 실력도 모자랐지만, 솔직히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1군에서 기회를 잡고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LG에서 2군도 아닌 3군까지 떨어졌었는데, 다른 팀을 간다고 해서 기회가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실력이 안되는데 고집을 부릴 수는 없었다. kt NC를 간다고 해도 실력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며 은퇴 결심 이유를 털어놨다.


이같은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몰릴 후배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다. 조 매니저는 "선수들이 기로에 서면 다른 팀 가서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여기서 못하는데 다른데 가면 달라지겠는가. 지금 있는 곳에서 열심히 하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안되면 다른 곳에서 기회를 찾는게 맞다. 불평불만보다는 열심히 해보고 선택해야 한다. 그냥 돌파구만 찾으려 한다면 은퇴해서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나도 '다른 팀에 가면 할 수 있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었지만 그것은 아니었다"고 조언했다.


작년 말 구단 종무식 당시 우수직원상을 수상한 조영민 매니저


조 매니저는 올해 프런트 2년차다. SK 스카우트팀의 어엿한 '실세'로 활약중이다. 지난해 말에는 구단에서 수여하는 우수직원상도 받았다. 그렇지만 스카우트는 여전히 까다로운 일이다. 그는 "야구만 하다가 책상 앞에서 업무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문서작성 같은 부분이 특히 쉽지 않았는데 이제는 좀 적응이 됐다. 조금 있으면 부산, 제주도에서 고등학교, 대학교 팀들의 연습경기가 열리기 때문에 더 바빠질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스카우트로 변신한 뒤 이룬 첫 번째 작품은 지난해 8월 신인드래프트 2 1번으로 지명한 충암고 출신 우완 조한욱이다. SK 스카우트팀이 종합 판단해 1라운드에서 뽑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 그를 분석 평가한 것은 투수 출신 조 매니저였다. 그는 "공도 빠르고 마인드도 좋고, 고등학생 치고 변화구를 스트라이크로 던질 능력도 있다. 성장 확률이 높다고 봤다. 다른 애들보다 좀 강한 볼을 던지고 신체도 좋다. 147~148㎞까지 나오는 정통 오버핸드 투수다"라고 조한욱을 소개했다.


나름대로 스카우트 원칙도 있다. "덩치나 신장이 좋은 친구들, 그리고 기술적으로 팔스윙이 빠르다든가, 변화구를 잘 던진다든가 각자의 장점을 프로에 와서 살릴 수 있느냐를 본다. 프로에 와서 바로 쓸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가다듬어야 한다. 또한 선수가 처한 상황이 열악해도 가능성이 있는 친구들은 프로에 와서도 잘하는 경우가 많은데그런 선수들을 더 찾아내는 게 내가 할 일이다좋은 원목을 고른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조 매니저는 기회를 준 SK 구단이 고맙기만 하다. 그는 "사무실에는 비선수 출신 프런트들도 많은데 거리감없이 함께 잘 지낸다. 따뜻하게 챙겨주신다. 일적으로 도움도 받고, 제가 프런트라는 낯선 도전을 할 수 있도록 믿음도 주신다" "SK는 참 따뜻한 직장인 것 같다. 여러모로 도와주시고 상도 주시고..."라며 밝게 웃었다.


딸 은재양과 함께


조 매니저 가족은 경기도 일산에 산다. 지금은 비시즌이라 그래도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어 가장으로서 행복하다. 하지만 시즌이 시작되고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가면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 딸 은재(10)양도 많이 커서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안다. 그는 "딸이 이제 커서 야구 왜 안하냐고 물어본다다른 사람하고 같이 TV에 안 나오냐고 하기도 한다예전 영상을 보여주면 좋아한다. 지금 (선수로서)좋은 모습을 못 보여줘서 아쉽다"고 했다.


SK는 향후 전력 보강에 대해 외부 영입보다는 자체 유망주 육성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했다. 지난해 조영민, 이번에 이승호 스카우트를 뽑은 것도 이 때문이다. 조 매니저에 대한 SK의 기대감은 올시즌에도 크다.


노재형 스포츠조선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