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더스 스토리/랜더스人

[공감(共感) W] 노력으로 빚어낸 재능, SK 박인성

SSG 랜더스 2014. 8. 4. 13:43

이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운명은 ‘재능이 열정에 미치지 못 하는 것' 일 것이다. 프로는 노력하는 샬리에르보다 천부적인 모차르트가 우대받는 ‘불공평한’ 세계이다. 게다가 재능이 부족한 자가 노력마저 게을리 하면 그 끝은 뻔하다. 무제한 연장전처럼 끊임없는 노력만이 부족한 재능을 메꿀 수 있다. 힘들지만 그것이 프로의  세계이다.


●방출 일보직전에 되찾은 야구의 소중함

SK 박인성(24)은 2013년 겨울을 잊을 수 없다. 팀에서 곧 방출될 것이라는 소문이 귓가에 들려왔을 때의 그 심정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어떻게 입게 된 SK의 유니폼인데…’라는 생각이 뇌리를 찔렀다. 앞으로가 막연했다. 평생을 야구만 보고 살아왔는데 만약 방출되면 어떻게 살아야할지 혼란스러웠다. 일단 군대부터 가자고 생각은 했지만 심란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런데 기적처럼 SK는 마지막 순간에 박인성을 방출 명단에서 제외했다. SK로서는 큰 결정이 아닐지 몰라도 박인성은 인생이라는 항로에 등대가 밝혀진 순간이었다. 동시에 이를 악물게 됐다. SK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싶었고, 다시는 이렇게 살 떨리는 공포를 겪고 싶지 않았다. 그때부터 더 죽기 살기로 매달렸다. 마침 새로 부임한 박경완 퓨처스팀 감독이 그런 모습을 기특하게 봐주었다. 조금씩 출장기회가 늘어나더니 2014년 목표로 삼았었던 퓨처스팀 주전 자리를 꿰차게 됐다. 생애 처음 퓨처스 올스타로도 뽑혔다.



박인성의 장점은 공격적인 플레이 스타일이다. 초구부터 마음에 드는 공이 들어오면 주저 없이 방망이를 휘두른다. 너무 과감해서 코칭스태프가 ‘공을 보는 자세’를 조언할 정도다. 그런 공격성은 주루에서 더 빛난다. 4일까지 27개의 도루를 성공시켜 북부리그 전체 2위다. 더욱 돋보이는 점은 도루 성공률인데 처음 13개의 도루를 하는 동안 단 1개의 도루 실패도 없었다.  박인성은 “도루를 할 때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들어간다. 코치님들은 다리부터 들어가는 슬라이딩이 부상 위험을 줄인다고 가르쳐 주시는데 막상 실전에서 뛰면 머리부터 들어가는 슬라이딩이 조금이라도 빠르니까 그렇게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만큼 필사적인 것이다. 박인성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작은 체구로도 메이저리그 최고 2루수로 올라선 보스턴의 프랜차이즈 스타 더스틴 페드로이아(31)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1군에서 다시 기회가 와도 초구 치겠다”  

박인성은 2012년 SK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프로에 지명은 되지 못했즈만 구단 테스트를 합격해 SK로 올 수 있었다. 아직도 신고선수 신분이다. 휘문고를 졸업한 뒤 바로 프로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아무도 찾아주지 않자 세계사이버대학에 입학해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원래 이 대학은 2년제인데 2년을 채운 뒤에도 받아주는 프로 팀이 없자 1년을 더 다녔다. 만약에 그래도 받아주는 프로 팀이 없었다면 편입을 해서 다시 도전할 생각이었다. 


신고선수가 그렇듯 박인성의 마지막 꿈은 1군에서 뛰어보는 것이다. 이미 박인성은 지난해 1군 데뷔전을 치렀다. 시즌 최종전으로 열렸던 롯데전이었고, 상대투수는 홍성민이었다. 박인성은 “초구를 쳐서 우익수 플라이로 아웃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어쩌면 너무나도 짧았던 1군 경험이었다. 그러나 다시 가야할 곳이라 믿기에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박인성은 “1군에 올라가려면 퓨처스에서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운도 따라야 하는 것 같다. 나보다 더 잘하는 선수도 1군에 빈 자리가 없으면 쉽게 올라가지 못한다. 그러나 만약 다시 1군에 올라갈 기회가 생긴다면 작년보다는 신중하게 임하고 싶다”고 말했다. ‘데뷔타석에서 초구를 치고 곧바로 아웃된 것이 후회되지 않느냐’고 묻자 박인성은 “다시 1군에 올라가서도 초구에 좋은 볼이 들어오면 스윙을 하겠다”고 답했다. 박인성은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다. 스스로도 “낯가림이 심한 편”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야구장에만 나가면 공격적으로 변모한다. 왜 그런지는 본인도 설명하기 힘들지만 원래 플레이스타일이 그랬다고 한다. 타고난 무대 체질인지도 모르겠다.


김영준 스포츠동아 기자 gatzb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