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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共感)W ] '톰과 제리의 1년' 최재성-허민혁이 함께 보는 곳

SSG 랜더스 2020. 1. 14. 10:05

그들은 반대편에 앉아 있었다. 적이었다. 서로를 넘어야 승리를 가져갈 수 있는 상황.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잠시나마의 동정조차 사치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묘하게 끌렸다. 최재성은 허민혁에 대해 “신체조건과 공이 엄청 좋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허민혁은 최재성에 대해 “제구가 참 좋았다”고 떠올렸다.

두 선수는 고교 시절 지역 라이벌로 자주 만났다. 최재성은 천안북일고의 에이스, 허민혁은 공주고의 에이스였다. 항상 치열한 승부가 벌어지곤 했다. 허민혁은 “나는 선발로 던지고 있었고, 재성이는 마무리였다. 직접적으로 맞대결을 한 기억은 별로 없다”면서도 “굉장히 잘 던졌다. 사이드암인데도 제구가 참 좋았다. 그래서 처음부터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껄껄 웃었다. 

최재성은 “민혁이의 제구가 딱히 좋은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농담을 던지면서 “신체조건과 공이 엄청 좋았다. 날이 잡히면 정말 잘 던졌던 투수”라고 떠올렸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충청권의 두 에이스가 차례로 SK 유니폼을 입었다. SK는 2019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최재성을 3라운드에, 허민혁을 4라운드에 지명했다. 더그아웃 반대편에서 서로를 넘어야 했던 두 선수는, 이제 같은 배를 타고 함께 가는 사이가 됐다.


장난 속의 진심… 톰과 제리 같았던 1년

고교 시절까지만 해도 그라운드에서 으르렁댔던 두 선수는 프로 입단 후 급격히 가까워졌다. 무엇보다 강화SK퓨처스파크 숙소의 룸메이트가 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신인 선수는 2인 1실을 쓰는데, 두 선수는 1년간 함께 하며 많은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짓궂은 장난 이야기를 한참이나 털어놓는 두 선수의 표정은 배꼽을 잡는 ‘톰과 제리’의 실사판이었다. 반대로 서로를 격려했던 이야기에서는 진한 동료애도 느낄 수 있다.

두 선수는 내내 서로를 향해 장난을 치면서도 “기 싸움과 같은 것은 없었다. 쉬는 시간에는 게임도 하고, 이야기도 많이 했다”고 했다. 특히 최재성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았을 때는 위로와 격려가 이어졌다.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학 새내기 사이인 것 같으면서도, 어엿한 프로선수로서의 의젓함도 느낄 수 있었다. 

최재성은 “못 던지는 것은 아니었는데 세게 던지면 통증이 있었다. 다 나은 것 같아 싶어 던졌는데 세게 던지면 또 아프면서 기간이 길어졌다”고 어려웠던 시기를 털어놨다. 허민혁은 말없이 최재성의 상처를 보듬어줬다. 허민혁은 “일부러 조용하게 지내지 않았다. 기분을 풀어주려고 많이 노력했다. 장난도 많이 쳤다”고 했다. 그런 허민혁을 바라보는 최재성의 얼굴은 미소가 가득했다.

최재성이 먼저 퓨처스팀(2군)에 올라갔을 때는 반대였다. 허민혁은 “나는 계속 3군에 있었다. 못 올라가고 있었다”고 고민을 드러냈다. 그때 밝은 성격인 최재성은 “장난식으로 계속 이야기를 했다”면서 “장난을 쳐도 잘 받아줬다. 그렇게 기를 살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의기소침해 있는 것보다는,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싶었던 동기의 진심을 느낄 수 있다.

가까워진 사이만큼 새로 배우고 싶은 것도 많다. 최재성은 연신 “구위가 부럽다. 정말 좋다”고 했다. 반대로 허민혁은 “내가 제구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제구가 부러웠다”고 말한다. 서로의 장·단점이 뚜렷한 만큼 오히려 어깨너머로 더 배울 수 있는 여건이기도 하다. 사안마다, 기억마다 티격태격하는 두 선수가 룸메이트를 잘 만났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이유다.


내년에는 1군에서… “힘내자 동기야”

사실 강화에서의 1년이 마냥 즐거웠던 것은 아니었다. 중반까지 3군에 있었고, 2군에서도 나름대로의 보완점과 싸워야 했다. 최재성은 “유인구의 경우, 고등학교 때는 조금 빗나가도 속는 타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2군 타자들은 다 골라내더라”고 했다. 허민혁은 “고등학교 때만큼 투구가 되지 않았다. 마운드에서 시원시원한 모습이 사라졌다”고 인정했다. 

그런 두 선수에게 하나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바로 지난해 11월 열렸던 호주 캔버라 유망주 캠프 참가였다. 1년 동안 룸메이트로 붙어 있었는데 나란히 유망주 캠프행 티켓도 끊었다. 팀 마운드의 미래로 인정을 받은 셈이다. 그만큼 재능이 있고, 하고자 하는 열정도 있다. 처음으로 1군 캠프에 합류한 두 선수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나름대로 배운 것이 많은 캠프였다.

최재성은 “1군 코치님들이랑 운동을 하니까 초반에는 긴장이 많이 됐다. 그런데 장난도 많이 쳐주시고, 코치님들도 선수 특성에 맞게 잘 가르쳐주시는 것 같다. 경기 때도 잘 던져서 기분이 좋았다”면서 “웨이트트레이닝과 체중을 불리는 것에 중점을 두라고 하셨다”고 미소를 지었다. 

허민혁은 “처음으로 1군 코치님들이랑 해봤는데 처음에 던지는 것을 보시고 디테일하게 알려주시더라. 처음보다는 많이 좋아진 것 같다”면서 “관심 있게, 집중적으로 봐주셨다. 질롱코리아에 가서도 투구를 찍어서 보내라고 하셨다. 스트라이드 나가는 연습을 많이 했다. 감독님도 코치님도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하셨다”고 캔버라 캠프를 총평했다.

내년 1군 진입에 대한 목표는 같다. 최재성은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위주로 던진다. 좌타자 상대할 때는 체인지업이 괜찮은데 우타자 몸쪽으로 던지는 연습을 하고 싶다. 타자들과 붙어서 상대하고 싶다. 구종을 많게 하고 싶다”고 다부지게 했다. 질롱코리아에 간 허민혁은 “위축되거나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구속은 던지다보면 올라올 것이다. 경기를 하려면 제구가 되어야 한다. 최대한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남겼다.

1년간 같이 지냈는데 이제는 잠시 이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최재성은 “두 달 동안 못보게 되는 정이 많이 붙어서 그런지 아쉽다”면서 “조심히 마무리를 하고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혼자 조금 외로운데…”라고 멋쩍게 웃은 허민혁도 “열심히 해서 내년에는 같이 1군에 올라갔으면 좋겠다”고 동기의 손을 잡았다. 1군에서도 손을 맞잡는 날을 기다리는 두 선수는, 이제 더 큰 꿈과 우정과 함께 2020년을 바라보고 있다.

스포티비뉴스 김태우 기자 skullboy@spotv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