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김연훈(31)이 돌아왔다. 공익근무를 마치고 지난 2월 SK로 복귀했다. 다만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소집해제 후 3개월은 야구를 다시 할 수 있는 몸을 만드는 시간이었다. 강한 훈련에는 이골이 난 김연훈이지만 그 3개월은 인고의 세월이었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간절함이었다”고 김연훈은 떠올린다. 5월 말부터 퓨처스 경기에 출전하기 시작한 김연훈은 어느덧 1군을 꿈꾸고 있다. 꿈꾸는 자는 언제나 청춘이다.
●야구를 떠난 뒤 얻은 깨우침
2011시즌이 끝나자 김연훈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이가 꽉 찼기에 병역의 의무를 더 이상은 미룰 수는 없었다. 공익근무와 경찰청 야구단 입대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했다. 김연훈의 최종 결정은 공익근무였다. 야구를 할 수 없는 공백을 택한 것이다. 왜였을까? “사실 지금 와서는 조금 후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당시 시점에서는 정말 야구가 하기 싫었다.” 김연훈은 군산중학교 시절부터 고질적인 허리통증을 안고 있었다. 어떤 훈련도 다 버티는 이미지이지만 시한폭탄 같은 허리와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공익 입대 뒤 “1년 동안은 야구는 쳐다보지도 말자”고 생각했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허리가 낫지 않아 다시 야구를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두려움이 일었다. 주위에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외로웠다. 어찌할 바를 몰라 그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풀었다. 그러다보니 74kg였던 체중은 88kg까지 불어났다. 무서워졌다. 정말로 다시는 야구를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났다. 생활을 바꿨다. 살을 빼는 것은 고통스러웠지만 참았다. 제대 후 SK로 복귀한 현재 체중은 입대 직전과 별 다르지 않다.
다시 입은 SK 유니폼, 김연훈은 “새로 입단한 것 같다”고 말한다. 이제는 정말 야구가 하고 싶어서 하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뛰었던 SK였지만 새로운 팀 같다. 다시 처음부터 어린 선수들과 경쟁을 해도 즐겁다. 당장 2군에서 주전을 잡는 것이 목표다. 그래야 1군의 부름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경기를 뛰면 뛸수록 감각이 돌아오고 있다는 점이다. 유격수와 2루수 글러브 2개를 늘 지니고 다닌다. 팀이 원하면 대수비든, 대주자든 무엇이든 해내야 하는 자신의 쓰임새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이름으로
김연훈은 전라북도 군산에서 자라 고등학교(군산상고)까지 다녔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쌍방울의 열혈 팬이었다. 최태원(현 LG코치)이 김연훈의 우상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어느 날 군산구장에서 해태와 쌍방울의 경기가 있었다. 해태 이종범(현 한화코치)이 어린 소년 앞에서 환상적인 활약을 보여줬다. 관중들은 이종범을 향해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 순간 김연훈은 야구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마침 모교인 군산초등학교에 야구부가 있었다.
문제는 야구부에서 김연훈을 받아주려 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부터 김연훈은 말랐고, 작았다. 선생님을 졸라서 겨우 승낙을 얻었다. 그 다음에는 어머니가 고비였다. 어머니는 외동아들이 야구하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김연훈도 지지 않았다. 2주 동안 공부를 전혀 하지 않는 ‘파업’을 했다. 결국 어머니도 손을 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야구였지만 막상 해보니 너무 힘들었다. 중학교 때는 허리가 너무 아파서 운동을 포기하려 했다. 이때 마음을 돌리게 해준 사람은 어머니였다. 처음엔 야구를 말렸던 어머니가 이번에는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끝까지 해야지”라고 김연훈을 타일렀다. 군산상고 졸업 뒤, 받아주는 대학교가 없어서 또 야구를 그만둘 위기에 처했다. 이때도 ‘뭐하면 좋을까’라고 막막했을 때, 기적처럼 성균관대가 손을 내밀었다.
2007년 고향 팀이나 다름없는 KIA가 2라운드 16순위로 뽑아줬다. 계약금은 1억원이었다. 그러나 기회를 줬던 KIA는 2008년 5월4일 돌연 김연훈을 SK로 트레이드시켰다. 투수 전병두와 함께 SK로 오게 된 김연훈은 실망감보다 기대감을 안고 인천으로 왔다. 이곳에서 어떤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예감했다. 실제 2008년부터 4년간 1군 유틸리티 맨으로 활용됐고, 이 기간 SK는 한국시리즈에 모두 진출해 2차례에 걸쳐 우승을 해냈다.
SK 전성기의 영광을 누렸던 김연훈은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팀이 필요로 하는 선수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퓨처스리그에서 30살의 여름을 나고 있다. 서른, 잔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영준 스포츠동아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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