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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共感)W]SK와이번스 혁신의 5가지 방향성

SSG 랜더스 2018. 6. 30. 21:09


 SK 와이번스는 ‘철학적’인 팀이다. 2014년 취임한 최창원 구단주 체제 이후 이런 지향성은 한층 강화됐다. 여느 야구단과 달리 SK는 ‘왜 야구단을 운영하는가?’와 같은 ‘가치’에 주목한다. 승리에 관해서도 ‘어떻게 이겨야 하는가’ 같은 과정과 방식에 집중한다.
 성과(승리) 자체가 아니라 ‘왜’와 ‘어떻게’에 시선을 두는 것이다. 과거 SK는 그토록 이겼음에도(2007년, 2008년, 2010년 한국시리즈 우승) 정작 존경받는 팀의 반열에 서지 못했다. 오히려 이길수록 내부적 피로감과 외부의 적대감이 짙어지는 상황 속에서 ‘이렇게 팀을 운영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회의에 빠졌다.
 2011년 8월 18일 이후 지금까지, SK의 전방위적 시도는 큰 틀에서 ‘시스템의 재설정’이었다. 물론 시행착오는 불가피했다. 어느덧 SK는 왕조(Dynasty)의 지위를 잃었다. 그러나 성공의 반대는 실패가 아닌 포기라는 말이 있듯, SK는 그릿(Grit)을 잃지 않았다. 꾸준함에서 발산되는 일관성의 힘이 서서히 팀 전체에 공유되어갔다. 그리고 2018년, SK는 성적과 팀 정체성(Identity)에 걸쳐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 이 기간, SK가 진행한 혁신을 5가지 방향성에서 바라봤다.

 


●1. 인프라 혁신

 박민규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우리사회 비주류에 관한 서사다. ‘프로답지 않은’ 프로야구팀 삼미 슈퍼스타즈의 연고지는 인천이었다. 인천은 서울, 부산 다음의 대도시다. 동시에 서울의 주변 수도권 도시다. 서울에 생업을 둔 인천시민들이 퇴근 후 야구장을 찾기란 물리적으로 쉽지 않다.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 관중이 가득 들어찰 때는 십중팔구 KIA 혹은 한화전이다. 인천에 호남, 충청 유입 인구비율이 높다. 이들의 정서가 인천에 동화되지 않은 것이다. 이러니 KBO의 제8구단이자 후발주자인 SK는 안방인 인천에서조차 팬 흡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SK는 2000년 KBO리그에 들어왔다. 인천 도원구장이 홈필드였다. 그해 관중은 8만 4563명. 평균 1281명이었다. 스포츠심리학에 따르면,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과의 일체감을 중시한다. 경기력도 떨어지고, 역사도 짧은 데다, 야구장마저 낙후된 팀을 응원하는 행위는 마이너리티 취향의 사람이 아니라면 선뜻 할 수 없는 일이다.
 여기 더해서 SK는 ‘신생팀 효과’를 거의 누릴 수 없는 태생적,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인천 팬들의 열성적 지지 속에서 1998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던 현대 유니콘스가 서울 입성을 전제로 수원으로 떠나버렸던 것이다. 인천 팬들의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 마당에 전북 전주가 연고지였던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SK가 나타났으니 반응이 냉랭할 수밖에 없었다. ‘물려받은 유산이 없다’가 아니라 ‘마이너스 유산’을 안고 태어난 셈이다. 
 영화 ‘마션’의 배경인 화성(Mars)과 같은 악조건에 처한 SK는 영화 ‘인터스텔라’의 유명한 대사처럼 ‘어떻게든 답을 찾으려’ 했다. 인프라 개선이 그 출발이었다. 환경을 개선해 팬의 일체감을 유도하는 ‘베블렌 효과’를 노린 것이다.
 SK는 2002년 인천SK행복드림구장(당시 명칭 문학구장)으로 이주했다. 메이저리그 야구장 부럽지 않은 최신식 시설이었다. 인프라 효과로 관중이 40만 2732명까지 늘었다. 평균관중은 6102명이었다. 2003년은 한국시리즈 준우승까지 했다. 그러나 좀처럼 ‘퀀텀점프’를 못했다. 30만~40만 명 사이를 맴도는 박스권에 갇혔다. 야구장에 팬을 끌어올 어떤 필연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SK는 판단했다. 그리고 2007시즌부터 SK는 그 필연성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2. 스포테인먼트 마케팅 혁신

 2007시즌부터 SK는 ‘스포테인먼트(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한 조어)’를 론칭했다. 스포테인먼트는 결국 마케팅 강화의 다른 말이다. 야구장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걸친 팬 서비스에 관해 ‘프런트는 야구장의 야구를 보지 말고, 관중석의 야구팬을 보라’는 메시지를 전파했다. 이후 스포테인먼트는 ‘2008년 스포테인먼트 2.0’, ‘2009년 스포테인먼트 2.0+’, ‘2010년 그린스포츠’, ‘2011년 에듀스포테인먼트’까지 시대정신을 따라 진화했다.
 이 기간, 2007년 홈 관중이 65만6426명까지 증가했다. 범접할 수 없는 숫자인 줄 알았던 평균관중 1만 명(1만 419명)을 돌파했다. 더 이상 비인기구단이 아니었다. 이어 2008년 70만(75만 4547명), 2009년 80만(84만1270명), 2010년 90만(98만3886명), 2012년 100만 관중(106만9929명)을 돌파했다. 이 6년의 시간, SK는 전부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갔다.
 야구장 인프라 개선도 병행됐다. 인천SK행복드림구장의 초대형 전광판 ‘빅 보드’는 화룡점정이다. 유럽 포르투갈 축구팀에서 견학을 올 정도로 세계 프로스포츠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스케일이다. SK는 ‘빅 보드’를 야구 정보 제공 플랫폼으로만 활용하는 차원을 넘어서 (야구장 잔디에 앉아서 보는) 영화, 뮤지컬 상영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은 이 시기, SK의 성적이다. 2013년 6위(91만2041명), 2014년 6위(82만9822명), 2015년 5위(81만4349명), 2016년 6위(86만5149명), 2017년(89만 2541명) 5위였다. 이 숫자가 유의미한 이유는 연 80만 명이 SK를 떠받치는 고정 지지층임을 확인한 것에 있다. 2000년에 비해서 시즌 관중은 10배 이상 증가했다. 세계 프로스포츠 마케팅 역사에서 보기 드문 스몰마켓 개척 사례다.
 더욱 긍정적 요소는 타 구단에 비해 높은 젊은 층 방문 비율이다. 상대적으로 승부에 함몰되지 않는 성향의 여성 팬, 가족 팬 층이 두텁다. SK는 야구경기만이 아닌 ‘고객만족’이라는 가치를 파는 집단으로 스스로를 규정한 이후의 성과다.
 


●3. 팀 컬러의 혁신

 야구경기 콘텐츠 측면에서도 SK는 ‘컬러’를 창출했다. ‘홈런의 야구’, ‘남자의 야구’가 그것이다. SK는 2017시즌 234개의 팀 홈런을 기록했다. 단일시즌 KBO리그 역사상 이렇게 많은 홈런을 친 팀은 없었다. 야구의 꽃이라 하는 홈런의 매력은 한순간에 상황을 반전시키는 의외성에 있다. 이런 SK 야구의 폭발력은 팬들을 열광시킨다. 무엇보다도 ‘SK 와이번스’를 떠올리는 순간, 조건 반사적으로 생성되는 어떤 ‘임팩트’를 생성하고 있다.
 SK 홈런야구의 이면에는 ‘합리성’이 자리한다. SK는 통계에 근거하는 세이버매트릭스를 중시하는 팀이다. 세이버매트릭스는 이미 메이저리그에서는 보편화된 개념이다. 결국 ‘야구선수의 능력치는 평균에 수렴한다’는 대전제에서 남들이 간과하는 통계에서 가치를 추출해 저평가 선수를 발굴하는 방식이다.
 숫자에 취약한 야구인들은 자신들이 쌓아놓은 ‘해자’를 넘어 ‘성역’을 침범하는 세이버매트릭스에 관한 거부감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된 마이클 루이스의 베스트셀러 ‘머니볼’은 결국 야구인과 세이버매트릭션의 헤게모니 다툼이 본질이다.
 이미 메이저리그에서는 방망이 한 번 잡아본 적 없어도, 노트북과 빌 제임스의 야구이론으로 무장한 아이비리그의 수재들이 야구단 고위직으로 채용되고 있다. 보스턴 레드삭스와 시카고 컵스의 저주를 푼 주역은 예일대 출신의 테오 엡스타인 단장이었다.
 어찌 보면 한국야구는 메이저리그보다 더 세이버매트릭스가 발붙이기 어려운 풍토였다. 야구인들끼리의 ‘카르텔’이 더 촘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씩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방향으로 다가오고 있다. 수용-공급 법칙에 의거해 야구선수 몸값이 비이성적으로 뛸수록 구단들도 대응책이 필요했던 것이다.
 SK는 그 흐름에 편승했다. SK 프런트의 수장인 염경엽 단장은 정통 야구인 출신임에도 통계에 관한 이해도가 높다. 염 단장 부임 전부터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SK는 통계 전문가들을 고용했다. 통계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 야구인들과 접점을 찾아나섰다. 학습과 토론하는 조직문화를 전략과 전술보다 앞에 뒀다.
 그렇게 SK 구성원 전체가 따라야 할 매뉴얼을 만들어나갔다. 매뉴얼의 영역은 선수 스카우트부터 육성, 트레이닝, 코칭까지 전 분야에 걸쳐있다.
 SK는 2018시즌, 2017시즌 이상의 홈런 페이스를 그리고 있다. SK의 홈런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치밀하게 기획된 상품이다. KBO리그에서 가장 타자친화적 야구장으로 검증된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 최적화된 타자들을 영입했고, 육성한 결과다.
 일본프로야구(니혼햄) 우승 감독이자 메이저리그(캔자스시티) 감독을 경험한 트레이 힐만을 영입한 배경은 그가 SK야구의 현대적 흐름을 수용할 적임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 힐만 감독은 취임 2년차인 2018시즌 더 나은 학습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시절, 일본인들의 문화를 알기 위해 니토베 이나조의 ‘무사도’를 탐독했다는 힐만 감독은 SK 프런트와의 소통에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즉 ‘협업’이 가능한 존재다. 
 SK는 아직 수비, 주루 등 디테일에서 미완인 팀이다. 그만큼 채워질 여지가 많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적어도 SK는 모방하지 않는다. ‘SK만의 길(SK-Way)’을 모색한다.

 


●4. 지역밀착 혁신
 
 SK는 신영철 대표이사 체제에서 스포테인먼트로 하드웨어적, 수량적 확장정책을 폈다. 이어 임원일 대표이사는 소프트웨어적 서비스를 강화했다. 인천SK행복드림구장 주차 시스템의 개선이 대표적이다. 드러나진 않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했다. 이런 토대 위에서 현 류준열 대표이사는 새로운 방향성을 추구했다. 야구인 출신 염경엽 단장을 2017년 영입한 뒤, 야구단 운영과 육성을 일임했다. 기획통인 류 대표이사는 역량을 ‘지역밀착’에 집중했다. 
 야구단의 지역밀착은 당위적이지만 그만큼 구체성을 띠기 어렵다. 류 대표이사와 SK는 ‘공유경제’의 개념을 야구에 접목하는 방식을 취했다. 메이저리그 워싱턴 내셔널스를 롤모델로 설정했다.
 야구단이 만들어낸 성과를 지역사회와 나누는 기존 틀을 벗어나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부터 지역사회와 결합하는 방식이다. 소위 ‘야구 공유 인프라 전략’이다. 
 예를 들면, 타자 박정권은 홈런과 안타 숫자에 비례해서 기부를 하는 방식으로 5년 이상 인하대병원 소아암 환자를 돕고 있다. 이런 선수 개인의 기부에 기업, 병원, 관공서 등이 네이밍을 걸고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전략의 핵심이다. 야구단이 개별적으로 해왔던 선행 활동 혹은 마케팅 활동에 스폰서 혹은 파트너를 결합시키겠다는 의도다.
 SK 권철근 홍보팀장은 “SK 와이번스의 자산이라면 선수, 야구장 그리고 야구장에 오시는 팬들이 해당된다. 이런 자산을 활용한 마케팅 활동에 지역사회 전체가 동참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가령 SK 야구 티켓을 구입한 팬들에게, 제휴를 맺은 지역매장 쿠폰북을 제공한다. 지역 학생들을 무료 초청하는 ‘스쿨데이’에 SK와 함께 후원을 해주는 회사를 찾는다.
 SK의 야구 공유 전략이 가장 빛났던 순간은 힐만 감독과 김광현의 모발 기부였다. 이들은 지난해 여름부터 머리카락을 길렀는데 그 이유가 소아암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뜻이 있었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 관련 단체를 물색한 끝에 SK는 길이 25㎝ 이상, 염색 및 펌 불가 등의 모발 기부 조건을 전달했고, 힐만 감독은 그 기준을 맞추기 위해 아직도 장발을 고수하고 있다. 
 팀 에이스이자 SK에서 가장 상징적 선수인 김광현 역시 미국 플로리다 캠프에서 힐만 감독의 사연을 전해들은 뒤, 감명을 받아 동참을 결심했다. 김광현은 2018시즌 선발 첫 승을 거둔 뒤, 기부를 위해 길었던 머리카락을 잘랐다. 야구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도 사회에 ‘울림’을 주려는 노력이었다.
 


●5. 프랜차이즈 스타 & 육성 혁신

 SK에 차별화된 무언가가 있다면 트레이닝, 코칭이라는 미시적 분야가 아니라 ‘조직문화’에 있을 것이다. 문화는 그 어떤 전략, 전술보다 우선한다. 그리고 이런 문화를 만들고, 진화시키는 주체는 결국 사람, 특히 리더다.
 SK의 2군 시설(Farm)이 위치한 강화도에서는 독특한 ‘경쟁문화’를 실험 중이다.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을 벤치마킹한 모델이다. SK는 육성자원으로 분류된 선수 전원을 3등급으로 나눈다. 이 가운데 1등급에 속한 선수는 소위 ‘데뷔조’다. 2군 코치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다듬는다. 반면 3등급에 들어간 선수는 잠재적 방출후보군이다. 알아서 끌어올리지 않으면 등급 향상이 어렵다.
 이 등급은 매달 코치진 회의를 통해 바뀐다. 선수 전원이 자기가 어느 등급에 속했는지를 알 수 있다. 대국민투표만 없을 뿐, 프로듀스 101 방식과 다르지 않다. SK 염경엽 단장의 아이디어다. ‘자발성을 측정하겠다’는 염 단장의 목표의식이 빚어낸 산물이다. 염 단장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열정(Passion)이다. 
 ‘단장 염경엽’은 ‘감독 염경엽’으로서 축적한 ‘역발상의 경험’을 SK 프런트와 현장에 이식하고 있다. SK는 KBO리그를 바라보는 ‘시야’부터 그렇게 접근한다. 이 팀의 트레이드 노선, 신인 드래프트 방향성 등을 자기 팀 우선주의 관점으로 보면 이해가 어렵다. ‘리그 전체가 발전해야 SK도 좋다’는 장기적, 거시적 안목을 갖고 의사결정을 내린다. 최창원 구단주 이하 프런트 전체의 지향성이 일치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프리에이전트(FA) 시장을 바라보는 시선도 타 구단과 기본적으로 차별화된다.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가진 SK는 프랜차이즈 스타에 강한 애착을 갖는다. 구단에 ‘로열티’를 보여준 FA 선수와 우선적으로 계약한다. 김광현, 최정 등 투타 아이콘 같은 선수들은 바깥의 시장 분위기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계약에 총력을 다 쏟는다. 김광현은 FA 계약 첫해인 2017시즌 1년을 통째로 수술과 재활에 바쳤음에도 4년 계약을 해줬다. 2018시즌 후 다시 FA가 되는 최정에게도 이미 최고의 예우를 해줄 준비를 마쳤다. 야구실력 이상으로 이들의 성장 스토리를 SK의 정체성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결국 SK의 전방위적 실험은 곧 ‘가치’라는 모호한 개념을 구체적인 무언가로 표출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SK가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단기적 성과가 돋보이지 않았던 시간의 냉담한 평가에도 원칙을 수정하지 않았다. 장기적 비전을 일관되게 추구한 과정에서 효율적 경영의 기반이 마련됐다. SK의 선수층과 전력순환, 팬 베이스에서 이 팀의 미래를 향한 낙관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스포츠동아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