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 고려대는 14년 만에 춘계리그 우승컵을 차지했다. 전국대회 우승은 2001년 추계리그 우승 이후 5년 만이었다. 누구보다 2승 평균자책점 0.69를 기록하며 마운드를 버텨준 에이스의 역할이 주효했다. 이 선수는 결국 최우수선수상을 받았고, 그해 8월에 열린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1순위로 비룡군단 유니폼을 입었다. 주인공은 SK 오른손 투수 이창욱(30)이다.
SK는 지난 16일부터 열렸던 한화와의 원정 3연전에서 '1승'보다 값진 '이창욱'이라는 선수 발굴에 성공했다. 이창욱은 17일 경기에서 2이닝 1피안타 무실점 호투하며 프로 지명 8년 만에 값진 첫 승을 거뒀다. 끝내기를 맞을 수 있는 연장 11회 등판해 첫 타자 정범모(27)에 안타를 허용했지만 정근우(32)와 김태균(32), 외국인 타자 피에(29)를 포함한 후속 여섯 타자를 퍼펙트로 막았다.
이창욱의 등판과 결과가 값졌던 이유는 그동안 그가 밟아온 험난했던 여정과 맞물려있다. 이창욱은 지명 후 계약금만 1억3000만원을 받은 유망주였다. 당시 스카우트였던 허정욱 매니저는 "시속 140km대 초반의 직구를 던졌지만 볼끝과 제구가 좋았다"며 "선발보다는 중간 투수로 1~2년 안에 쓸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고 회상했다. 실제 포크볼을 주종으로 사용하는 이창욱의 변화구 각도는 예리하다. 개인 통산 첫 번째 등판이었던 지난 15일 문학 두산전(1⅓이닝 2자책점)에서는 포크볼을 결정구로 왼손 타자 김현수(26)와 정수빈(24)을 삼진 처리했다.
좋은 공을 가지고 있었지만 문제는 '부상'이었다. 이창욱은 지명 직후 모교인 군산상고에서 훈련을 하다가 어깨를 다쳤고, 곧바로 수술대에 올랐다. 끝이 보이지 않는 재활의 시작이었다. 허 매니저는 "입단 후 어깨 통증 때문에 재활군에 있었고, 수술과 재활을 반복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김경태 재활군 코치가 본 이창욱의 첫 인상은 '불안'이었다. 김 코치는 "부상 전력 때문에 불안해서 제대로 던지지 못하는 것 같았다"며 "자세히 보니 투구폼에서 문제가 보여, 기본적인 동작들을 수정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귀띔했다. 지난해부터 2군에서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한 이창욱은 안정된 기량을 뽐냈다. 무엇보다 아프지 않은 게 고무적이었다. 타구에 맞아서 재활군에 내려간 적은 있어도 어깨 통증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었다.
마인드도 바뀌었다. 김 코치는 "처음 창욱이를 만났을 때는 많이 어두웠다. 프로로서 자기 몫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힘들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회복하고 생활을 밝게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첫 번째 목표였다. 나중에는 어깨가 안 아프고 자신감이 생기니까 자연스럽게 많이 밝아졌다"고 고마워했다.
미완의 대기였던 이창욱이 '1군 투수'로 급성장한 터닝포인트는 지난해 9월에 참가한 교육리그였다. SK는 9월17일부터 34일 동안 미국 애리조나에서 열린 교육리그에 총 33명의 선수단을 참가시켜 선진야구 습득과 유망주 발굴에 힘썼다. 미국 마이너리그팀 및 멕시코 프로팀과 21차례 연습경기를 치렀고, 이창욱은 팀에서 유일하게 2점대 평균자책점을 찍으며 교육리그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쉽지 않았던 구단의 결정을 의미 있게 만든 '호투'였다. 사실 이창욱은 교육리그 참가가 불분명했다. 류선규 당시 육성기획팀장은 "투수쪽에서 누구를 데려 가야하는지 고민이 많았다"며 "그 중에서도 이창욱은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선수"라고 돌아봤다. 이유는 있었다. 보통 20대 초중반의 젊은 선수들이 가는 교육리그에서 올해 나이 서른인 이창욱이 뛰는 건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류 팀장은 "어깨 부상을 당하고 실전에 나온 게 지난해 처음이었다"며 "고민 끝에 넣었지만 그게 전환점이 됐다"고 밝혔다.
교육리그에서 인스트럭터로 참여했던 가이 콘티는 이창욱을 올 시즌 기대주로 찍었다. 콘티는 2004년 메츠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한 체인지업 마스터로 유명하다. 2005년에 FA(프리 에이전트)로 팀에 합류한 통산 219승 투수 마르티네즈로부터 '하얀 아버지(White Daddy)'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반한 게 이창욱이다. 다소 늦었지만 의미 있는 첫 발을 내딘 이창욱의 미래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배중현 일간스포츠 기자 bjh102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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