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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共感) W] 윤재국 퓨처스팀 코치 "항상 노력하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SSG 랜더스 2014. 6. 27. 09:53

SK 퓨처스팀 윤재국(39) 주루코치는 지난해까지 모교인 인천고의 지휘봉을 잡고 있었다. 그는 2009년 은퇴 후 청원고등학교의 타격 인스트럭터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이후 인천고에서 코치, 감독으로 아마추어에서 꽤 오랜 경력을 쌓았다.


아마추어 지도자로 입지를 굳혀가던 그가 프로행을 택한 것은 막연한 프로 진출에 대한 생각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사실 은퇴를 결정한 뒤에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후배들한테 알려주는게 '야구인으로서 임무가 아닌가'하는 생각으로 모교에서 코치를 시작하게 됐다. 그러던 어느 때부터 아마추어 선수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좋지만, 해가 갈수록 발전하는 프로야구판에서 뒤쳐진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았다. 내가 뒤쳐진다는 생각이 들어 야구 지식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고 털어놨다. 작년 전국체전을 앞두고 SK의 코치 제안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던 윤 코치는 “대회가 끝난 뒤에도 SK가 끝까지 기다려줘서 운좋게 프로에서 코치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며 “프로야구로 다시 돌아오면 내 자신이 더 발전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SK는 윤 코치가 선수를 잘 관리하고 시야가 넓다는 점에서 그를 높이 평가했다. 또한 젊은 선수들을 육성하는데 있어 윤 코치의 아마추어 지도 경력도 매력적이었다. 

윤 코치는 1998년 쌍방울에 2차 1순위로 계약금 1억500만원을 받고 입단한 유망주 출신이다. 하지만 재능을 꽃피우기에는 부상이 너무 많았다. 많은 팀들이 윤 코치의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 안정감있는 수비와 주루플레이에 끊임없이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그는 6번이나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하지만 2009년 부상으로 인해 결국 선수생활을 접었다. 윤 코치는 프로 10시즌 동안 통산 타율 2할5푼7리(1766타수453안타), 19홈런 53도루 170타점 234득점의 성적을 남겼다.



그에게 SK는 고향이나 다름없다. 첫 출발은 쌍방울이었지만 곧 흡수돼 재창단한 팀이 SK였다. 그는 SK의 창단 멤버로 시작해 은퇴도 SK에서 했다. 더불어 프로 첫 코치도 SK에서 시작하게 됐다. 윤 코치는 “SK는 내게 고향팀이나 다름없다. 내가 원했던 팀에서 이런 기회를 얻었다는게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가족도 인천에 있어서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최근 퓨처스팀 성적이 좋다. 분위기는 어떤가?

“분위기가 정말 좋다. 선수들 모두 뭔가 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예전에는 1군 선수들이 내려오면 단순히 컨디션을 점검해서 열흘만 채우고 올라가려는 생각이 강했다. 지금 퓨처스팀에 오는 1군 선수들은 그렇게 느슨하게 운동할 수 없다. 부족한 점을 채워 1군에 다시 올라갔을 때 최상의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코칭스태프 모두가 노력하고 있다. 특히, 멘탈적으로 다가서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그런 점들이 1군으로 올라간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는데 일조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젊은 코치들이 많아 대화가 편하다는게 장점 아니겠나.”


-SK시절 동료였던 강혁, 박정환 코치를 퓨처스팀에서 다시 만났다.

“강혁 타격코치나 박정환 (내야)수비코치나 프로팀 코치는 처음 맡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함께 운동했던 인연이 있어서 서로 의지하면서 많은 도움을 주고받고 있다. 박정환 코치는 이전에 구단 전력분석원으로 활동 했는데 나에게 도루나 주루플레이에 필요한 정보를 많이 알려준다. 또 내가 외야 수비도 지도하다보니 강혁 코치에게 상대 투수나 타자의 특징에 대해 자주 묻는다. 같이 뛰었던 선수들을 코치로서 다시 만나니 감회가 새롭다.”


-SK 창단 멤버였다. 그 때 SK와 현재 SK는 어떤 차이가 있나.

“2000년 SK와 지금 SK도 다르지만, 은퇴 직전인 2009년 SK와 비교해도 다른 점이 많다. 지금은 1, 2, 3군이 따로 운영되면서 선수단 운용이 시스템적으로 더 단단해지고 세분화됐다. 

이제는 퓨처스팀의 존재 이유가 단순히 1군을 서포트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퓨처스팀도 목표와 계획을 갖고 결과를 창출해야 한다. 구단도 그런 부분에 중점을 두고 지원을 해주고 있다. 점차 좋은 쪽으로 발전해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현역 시절 파이팅이 돋보이는 선수였다. 지금 선수 때를 떠올리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신인 때는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그 후에 팀을 몇 번 옮기고, 사건과 부상 등으로 선수 생활에 위기를 수차례 넘기면서 ‘야구를 꼭 하고 싶다’는 절실함이 생겼다. 자랑할 게 별로 없는 선수 생활이지만 매 경기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은퇴를 결심했을 때는 오히려 홀가분했다. 늘 뛸 팀이 있었던 것도 감사한 일이다. 성공적이지는 못했지만 내 자신에게 충실했기 때문에 후회나 미련은 없다.”



-선수 시절에 부상이 참 많았는데 아쉬운 부분은 없나.

“정말 부상이 많았다.(웃음) 마지막에 은퇴를 결심한 이유도 부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생각은 '프로야구 선수라면 부상도 곧 실력'이라는 것이다. 코치의 시각에서 보면 선수가 다치지 않고 풀타임을 뛰어야 구상대로 시즌을 치를 수 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어야할 선수가 부상으로 이탈하면 계산이 틀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보면 나도 계산이 어려운 선수였던 셈이다. 지금은 잦았던 부상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조언을 선수들에게 해줄 수 있어 코치 생활에 도움이 되더라. 플레이하는 입장이 아니라 지켜보는 입장이 되니 공부가 많이 된다.”


-6개팀 유니폼을 입은 것도 특이한 경력이다.

“맞다. 트레이드된 선수에게 조언을 잘해줄 수 있다. 트레이드로 여러 팀을 옮겨봤는데, 어찌됐든 트레이드는 선수와 팀 모두에게 필요한 제도이다. 대신 트레이드를 통해 기회를 잡은 선수는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내가 처음 SK에서 롯데로 트레이드 됐을 때는 한번도 트레이드에 대해 생각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그런데 그때, 기회를 잡은 선수가 더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고 야구에 더욱 집중하게 됐다.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지만 ‘이 팀이 나를 필요로 하는구나’라는 동기 부여가 중요하다. 트레이드 됐다고 실망하기 보다는 나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왔고, 그 기회를 통해 한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게 중요하다. 야구는 어디서나 똑같다. 팀이 원하는 역할을 소화한다면 전 소속팀보다 더 빛나는 선수가 될 수 있다.”


-퓨처스팀에 좋은 선수가 많다고 들었다. 현재 선수들을 평가해달라.

“현재 SK 퓨처스팀 선수들은 누구 한명을 꼽기 힘들 정도로 모두 열심히 하고 재능이 넘친다. 고교선수들에게 프로 진출이 얼마나 큰 꿈인지 잘 안다. 어려운 경쟁을 뚫고 프로팀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무궁무진한 재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퓨처스팀 선수들 중에서 SK의 미래를 책임질 선수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흰 도화지와 같다. 앞으로 어떻게 그려 나가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올해는 퓨처스팀에서 1군에 올라와 활약하는 선수들이 많다.

“박계현은 두달 정도 함께 했는데 정말 인상적인 선수다. 주력, 센스를 모두 갖춘 선수다. 도루는 과감성이 중요한데 박계현은 완성단계다.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할 때 무릎이 먼저 닿는 점만 고치면 더 좋을 것 같다. 김재현도 주루 능력이 뛰어나다. 경험이 많고 저돌적이면서도 안정적이라 언제든 자기 몫은 충분히 해주는 선수다. 이명기 역시 훌륭한 베이스러닝 능력을 갖췄다. 작년에 당한 부상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는데 잘 이겨내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나.

“노력하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단순히 아는 것만 가르치는게 아니라, 늘 스스로 공부하고 발전해가면서 그 지식을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SK팬들에게 인사를 한다면.

“선수 때부터 그랬지만 항상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 성과도 보여줘야 하지만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늘 최선을 다하고, 항상 노력하는 코치로 초심을 잃지 않겠다. 1군 뿐만 아니라 우리 퓨처스팀도 늘 관심을 갖고 응원해달라.”


이정호 스포츠경향 기자 alph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