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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共感) W] 다시 시작하는 야구인생, SK 강혁 코치

SSG 랜더스 2014. 6. 26. 09:20

SK 와이번스 퓨처스팀은 요즘 활기가 넘친다. 6월 들어 타선이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2군으로 내려왔던 박정권 임훈 등 주전 타자들이 타격감을 회복하고 돌아가 연일 맹타를 터뜨리고 있는데다 기존 유망주 타자들도 부쩍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4일 현재 SK는 팀타율 2할9푼9리로 퓨처스 북부리그서 경찰청(0.316)에 이어 2위에 올라있고, 팀 OPS(장타율+출루율)도 8할5푼9리로 역시 경찰청(0.905)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퓨처스팀 타격을 이끌고 있는 강 혁 코치(40)의 지도력 덕분이라는 구단 내부의 평가다.

하지만 강혁 코치는 손사래를 친다. 강 코치는 "워낙 자질이 좋은 선수들이 많습니다. 선수들하고 맞춰가는 것이 중요하죠. 맞춤식이라고 할까요? 서로 대화하고 단점을 보완시키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강 코치는 이어 "이곳에 온지 8개월 정도 됐는데, 처음에는 저를 믿지 못했던 친구들이 지금은 잘 따르고 있습니다. 임훈과 박정권도 이곳에 있다가 올라가서 잘 하고 있어 개인적으로 기분이 좋아요"라며 활짝 웃었다.



SK는 강 코치가 선수 시절 마지막으로 몸담았던 팀이다. 지난 2007년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은 강혁은 그동안 제2의 인생을 열기가 쉽지 않았다. 프로 지도자로 일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가 지도자로 첫 발을 내디딘 곳은 리틀 야구다. 2008년 말부터 SK가 운영하던 사랑나눔 야구교실에서 유소년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능력을 인정받아 공익근무시절 인연을 맺은 인천 남구청이 2009년 리틀야구단을 창단해 초대 사령탑을 맡게 됐다.


지난해까지 어린이들을 가르치면서 지도자 능력을 조금씩 키워갔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왔다. 지난해 말 SK가 퓨처스팀 타격코치로 그를 부른 것이다. 강 코치의 지도 철학중 으뜸은 인성 교육이다. 야구 이전 사람이 돼야 한다. 강 코치는 "지도자가 되고 보니 인성 부분도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느낍니다. 더불어 야구는 죽을 때까지 하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유니폼 입고 있을 때가 행복하다는 것을 선수들이 깨달아야 합니다"라며 "그런데 요즘 후배들은 너무 자기 밖에 모르는 것 같아요. 리틀 야구단을 할 때도 인성을 강조했습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고 선수들에게 너무 딱딱한 지도자로 다가가지는 않는다. 형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강 코치는 "후배들하고 재밌게 지내다 보니 나도 젊어지는 것 같아요"라면서 "좋은 글귀 같은 것이 있으면 선수들한테도 보내줍니다.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고, 힘들 때 그런 글귀를 보면 힘이 나거든요. 개인적으로 아는 심리학 박사님이 계시는데 좋은 말들을 보내주십니다. 우리가 선수였을 때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지요"라며 웃었다. 이어 강 코치는 "되도록이면 선수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잘 칠 때는 말안해도 잘 하니까 괜찮지만, 못 칠 때는 엉덩이를 툭 쳐준다든가, 어깨를 두드려준다든가 친숙한 제스처로 편하게 대해주려 합니다. 그게 저의 지도 방식이라면 방식이랄까"라고 강조했다.



강 코치는 선수 시절 승부욕이 강하고 1등에 대한 욕심이 컸다. 남들보다 훈련을 몇 배 했다는 것이 그를 가르친 지도자들의 기억이다. 강 코치도 그런 선수들을 좋아한다. 현재 SK 퓨처스팀 타자중 '될 성부른 나무'로 그는 김도현(22)을 꼽는다. 지난 2011년 넥센에 입단해 2012년 SK로 이적한 김도현은 현재 SK 퓨처스팀에서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 이날 현재 타율 3할5푼7리, 9홈런, 32타점을 기록중이다. 외야수인 그는 매년 1군 경험을 했다. 올시즌에도 3경기에 나가 7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그러나 아직 주전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고 있다. 강 코치는 "SK의 차세대 4번타자라고 봅니다. 파워도 있고, 마인드가 너무 좋습니다. 성격이 두산 홍성흔같은 친구죠. 지금은 단계별로 밟아가고 있으니, 곧 스타가 될겁니다. 지금처럼 열심히 해줬으면 합니다"라고 설명했다.


강 코치는 신일고 시절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하는 등 타격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고교를 졸업하던 1993년 한양대와 OB 베어스 간의 이중 등록으로 물의를 빚어 한국야구위원회로부터 영구 제명 처분을 받았다. 대학 입학 후에도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맹활약을 이어갔지만, 프로에 진출할 수는 없었다. 1997년 실업 야구단인 현대 피닉스에 입단한 강 혁은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 참가해 금메달을 따내면서 영구 제명 징계가 풀렸다. 하지만 그동안 쌓였던 마음고생과 잦은 부상으로 인해 프로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2007년 은퇴할 때까지 프로 통산 2할4푼9리의 타율과 18홈런, 115타점의 기록을 남겼다.

그래서 강 코치는 철저한 전문가가 되고 싶어한다. "개인적으로 선수 때 못다 이룬 꿈이 있었죠. 묵묵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이 분야(타격)에서 만큼은 강혁이 최고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노재형 스포츠조선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