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스물 몇살 밖에 안됐는데 굴곡많은 인생을 살았다면, 그 고생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하지만 굴곡의 끝자락에서 희망을 향해 매진하고 있다면 더욱 뜨거운 응원을 보내줘야 한다.
SK 와이번스에 또 한 명의 유망주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고교와 대학 시절 숱한 부상으로 제대로 기량을 키워보지도 못하고 프로에서 외면받았던 그는 지금 1군 무대를 향해 조금씩 희망을 키워가고 있다. 주인공은 입단 2년차 외야수 조용호다. 1989년생이니 우리 나이로는 27살이다. 팀내 동기로 한동민과 안정광이 있다. 둘 다 조용호보다 일찍 프로 무대를 밟았다. 현재 퓨처스리그에서 주전 중견수로 활약하고 있는 조용호는 늦은 나이에 데뷔한 만큼 매일매일, 매경기가 소중하다.
그는 고교 졸업을 앞두고 프로의 부름을 받지 못해 단국대에 진학했다. 야탑고 시절 부상이 많아 실전 경험이 적었던 탓에 프로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조용호는 대학에서 기량을 갈고닦아 반드시 프로 무대에 뛰어들겠다며 각오를 단단히 했다. 그런데 또다시 부상의 악령이 찾아왔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슬라이딩을 하다 어깨를 다쳐 수술을 두 번 받았다. 경기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2학년 후반부터였다. 워낙 자질이 뛰어나고 열정이 있었기 때문인지 그는 금세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았다. 빠른 발과 정확한 타격, 안정된 내야수비가 조용호의 강점이었다. 그런데 4학년이던 2011년 드래프트를 앞두고 예기치 못한 부상이 또 왔다.
조용호는 "연습경기를 할 때였습니다. 1루수와 부딪히면서 발목을 다쳤는데 인대 2개가 끊어지고 뼛조각이 7개나 나왔어요. 지금도 뼛조각이 남아 있습니다"면서 "수술은 안하고 두 달 동안 병상에 누워만 있었어요. 가을쯤 나았는데 이미 드래프트가 끝나 2개 구단을 찾아가 테스트를 받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어요.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었지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대학 졸업 후 갈곳없던 그의 선택은 군복무였다. 집이 있는 경기도 구리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했다. 당시 개인 훈련은 하지 않았다. 야구를 거의 포기하는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퇴근 후 가끔 유소년 스포츠클럽에 나가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지만 앞길은 막막하기만 했다. 지난해 봄 군복무를 마친 그는 돌파구는 야구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성남고를 찾아 후배들과 무작정 훈련을 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선수들도 보였다. 기회가 왔다. 당시 육성총괄을 맡고 있던 김용희 감독이 대학 선수들을 둘러보던 중 성남고에서 조용호를 발견한 것이다. 김 감독은 그때 대학관계자들로부터 조용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성남고를 찾은 것이었다.
"감독님께서 당장 계약을 하는게 아니라 테스트하고 싶은데 생각이 있느냐고 물으셨어요. 물불을 안 가릴 때였으니 감독님 말씀을 듣고 바로 오게 됐죠." 당초 테스트는 3개월 예정이었지만 조용호는 한 달만에 통과했다. 죽을 힘을 다해 치고 던지고 달렸다. 비록 신고선수였지만 와이번스 유니폼을 받아들 때는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어머니한테 바로 전화를 드렸지요. 집이 좋은 상황도 아니었고 어머니도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그런만큼 더 좋아하신 것 같아요."
조용호는 올해 정식으로 등록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포지션은 이미 입단 때 내야수에서 외야수로 바꾼 상태였다. 연봉은 KBO 규정상 최저인 2700만원. 한 푼도 못벌고 방황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좋아하는 야구를 하면서 돈까지 받으니 지금처럼 행복한 적도 없었던 것 같단다.
사실상 올해가 데뷔 시즌이다. 시즌 초반에는 처음이라는 부담감도 있고 경기 감각이 완전치 않은 상황이라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외야에 자리가 생기면서 출전 기회가 많아졌다. 조용호는 "아픈 선수들이 나와 그 자리를 채우러 들어갔는데 게임을 뛰니까 감각이 생기고 그러면서 좋아지더라고요"라고 했다. 후반기가 시작된 요즘도 조용호는 3할대의 타율을 유지하며 기량을 키워나가고 있다.
그러나 아쉬운 부분은 빠른 발의 장점을 크게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도루는 투수와의 타이밍 싸움인데 아직 그걸 잘 못합니다. 그린라이트까지 줬는데 성공률이 좋지 않으니 잘 안 뛰게 됩니다. 팀에 민폐를 끼칠 수는 없죠. 코치님하고 열심히 연습해서 많이 뛰는 선수가 될 겁니다"며 의욕을 불태웠다.
우투좌타인 조용호는 키 1m70로 단신이다. 그런 때문인지 롤모델로 삼는 선수가 조동화와 이용규다. 출루, 번트, 득점, 도루 등 발빠른 선수들이 할 수 있는 강점을 그대로 살리고 싶다고 했다. 지금 퓨처스리그에서는 주로 중견수를 보지만 좌,우익수로도 손색없는 실력을 펼치고 있다.
과연 조용호에게 1군 기회가 언제쯤 올까. SK는 다른 팀들에 비해 외야진이 풍부하다. 당장 1군 외야에는 김강민, 조동화, 이명기, 김재현 등이 버티고 있다. 퓨처스리그서도 외야에서 생존경쟁이 치열하다. 조용호는 "일단은 시즌 마칠 때까지 부상 안당하고 9월 엔트리 확대 시점을 목표로 해나갈 생각입니다"라고 했다.
이어 그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열심히 더하고 더 많이 배워서 1군서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야구를 그만두는 날까지 하루하루 최선을 할겁니다"라며 속깊은 포부를 밝혔다.
노재형 스포츠조선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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