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는 한 팀당 투수, 야수 합쳐 27명의 선수로 경기를 치른다. 하지만 그 27명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도록 음지에서 온 힘을 다하는 이도 적지 않다. 그 중 한명이 SK 불펜포수 이석모(25)다. 경기 전 선수들이 훈련을 할 수 있도록 그라운드에 세팅을 하고, 훈련을 마친 뒤 뒷정리를 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관중석을 채우는 많은 관중들은 그의 존재조차도 모르지만, 그는 행복하기만 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야구를 하고, 자신의 꿈이었던 프로야구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기 때문이다.
喜 (기쁠 희)
이석모는 2009년부터 SK의 불펜포수로 일했다. 올해 2015년이니 벌써 횟수로 7년째다. 인천 동산중과 강원도 원주고를 거쳐 서울문화예술대로 진학해 야구를 계속 했지만, 1학년이던 2009년 SK 관계자의 제안을 받고 선뜻 SK에서 일하게 됐다. 이석모는 “처음에는 이렇게 오래 일하게 될 줄 몰랐다. 하지만 막상 일하게 되니 이 일의 매력에 빠져 계속 하게 됐다. 학교도 휴학 상태였지만, 지금은 그만둔 상태”라고 밝혔다.
SK 선수들을 7년 동안 보다 보니 형, 동생처럼 친해진 것도 당연하다. 이석모는 “오래 함께 생활하니 다 친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박)정권이 형하고 친하다. 3년 전부터 우연히 가까워졌는데 이틀에 한 번 꼴로 전화통화를 한다. 정권이 형은 아직도 20대 같은 몸을 갖고 있다. 탄력도 좋아 선수생활도 오래할 것 같다”며 웃었다.
선수들 사이에서 신뢰도 두텁다. 외야수 이명기는 "오랜 기간 동안 (이)석모와 SK에서 함께 했는데 정말 성실하다. 일을 잘하고 착해서 모든 선수들이 다 좋아한다."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포수 정상호는 "친화력이 좋고 붙임성이 뛰어나서 형, 동생할 것 없이 모두가 좋아한다. 팀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인재다."라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이석모는 홈경기를 하는 날이면 하루 14시간을 야구에 매달린다. 9시에 출근해 전력분석 일을 하다가 선수들의 오후 훈련을 앞둔 2시에 그라운드로 나가 훈련 장비 등을 세팅한다. 훈련이 시작되면 선수들의 훈련을 돕는다. 불펜포수로 투수들이 던지는 공을 받아주기도 하고, 타자들에게 배팅볼을 던져주기도 한다. 경기 시작 후에는 전력분석팀을 돕는다. 야구장에서 밤 11시가 다 돼서야 퇴근길에 나선다. 하지만 힘들지 않다. 이석모는 “프로 선수와 함께 움직이고 하는 일이 많은 만큼 배우는 게 많다. 새로운 것들을 배워가는 게 재미있고 기쁘다”고 밝혔다.
怒 (성낼 로)
이석모도 야구를 했다. 아무리 프로 선수라지만 그들에게 배팅볼을 던지고, 그들의 훈련 보조 역할을 하는 게 쉽진 않았다. 이석모는 “처음에는 실력 차를 느끼지 못했고, 선수들의 훈련을 도우면서 자존심이 상한 적도 있고, 스스로 화도 났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어린 나이여서 그랬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지금은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후배들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고 있다. 이석모는 “후배들에게 ‘지금 하는 일에 대해 창피하다는 생각을 하지 마라. 프로의식을 갖고 하면 창피한 일이 아니다. 불펜포수만 하고 끝낼 게 아니라 여기서 많은 일을 배워 다른 일도 할 수 있다’고 얘기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후배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주기 위해서라도 이석모는 더 열심이다. 현재 훈련 보조뿐 아니라 올해부터는 전력분석팀 업무를 돕고 있다. 3년 전부터 어깨 너머로 배워오던 전력분석 업무에도 투입된 것이다. 그는 “솔직히 전력분석 쪽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힘들었을 것 같다. 그 간 준비를 해와서 그런지 특별한 어려움 없이 잘 배우고 있다”고 좋아했다.
怒 (슬플 애)
이석모의 기분은 SK 선수단과 궤를 같이 한다. 이석모는 “아무래도 선수들과 같이 다니다 보니까 선수와 한마음이 된다. 하루, 하루 양은 냄비처럼 변한다. 성적이 좋을 때 좋고, 안 좋으면 슬프다. 하루 좋다가 또 지면 안 좋다”며 웃었다.
하지만 이석모는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제 몫을 못하는 게 유일한 슬픔이다. 아직 20대 중반이지만 두 아이의 아빠다. 첫째가 초등학교 1학년, 둘째는 6살이다. 이석모는 “애들이 커가는 과정을 제대로 보지 못해 아빠로서 마음이 아프다. 애들이 ‘가지마’라며 울기라도 하면 일하러 나가기는 발걸음이 더욱 무거워진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가장이니 더 열심히 일할 수밖에...”라며 안타까워했다.
아직 아이들은 아빠를 보기 위해 야구장을 찾진 않는다. 이석모는 “초등학생이지만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모른다. 야구장에서 일하는 것만 안다. 솔직히 선수로서 뛰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기에 부모로서 떳떳하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樂 (즐거울 락)
이석모는 SK와 함께 하기 시작한 첫 해인 2009년 KIA와의 한국시리즈에서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하지만 이듬해 2010년 대구에서 삼성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석모는 “대구에서 끝날 때 (김)광현이 형이 삼진을 잡았다. 나도 모르게 미친 듯이 그라운드로 뛰어 나갈 정도로 기뻤다. 내 앞에 (이)호준(현 NC)이 형이 있었는데 밀치고 나갔다. 호준이 형도 안 보일 정도로 날아갈 듯 좋았다. 그 때가 가장 즐거웠던 순간 같다”며 웃었다.
이 일 자체가 즐거움이라는 게 이석모의 얘기다. 이석모는 “타자에게 배팅볼을 던져줬는데 타자가 경기 전에 ‘석모야, 잘 치면 네 덕이다’라고 말하고 그날 경기에서 잘 치거나, 선발투수의 몸을 풀어줬는데 미리 ‘잘할 거 같다’고 말하고 경기에 나가서 잘 던지면 기분 좋다. 끝나고 따로 와서 또 ‘고맙다’고 해준다. 이 일을 하는 즐거움과 보람인 것 같다”고 밝혔다.
이웅희 스포츠서울 기자 iaspir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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