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첫인상이란 것이 있다. SK 김성현의 첫인상은 그만의 또렷한 갈색 눈동자에서 시작됐다. 그의 첫인상은 눈동자에서 그치지 않고 외형까지 이어졌다. 눈에 보이는 모든 이미지들을 종합한 그의 모습은 전혀 야구선수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작은 체구와 얇은 목소리 그리고 곱상한 외모, 촬영하는 내내 부끄러운듯 소극적인 태도까지 말이다. 또한 뽀얀 그의 피부는 야구선수 하면 떠오르는 구릿빛 피부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하지만 첫인상은 주관적인 느낌이 상대의 외형과 교감하는 일차적인 결과물일 뿐! 김성현은 누구보다도 야구선수다운 자태로 그라운드에서만은 승부사적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첫인상의 틀을 깨는 반전을 보여주는 남자, 김성현을 본격적인 여름 레이스가 펼쳐지는 문학 야구장에서 만났다.
지난 5월 8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 SK 와이번스의 김성현은 다신 잊지 못할 짜릿한 경험을 했다. 7회 싹쓸이 3타점 2루타로 추격의 발판을 마련하더니, 9회 끝내기 안타로 10점차를 뒤집은 대역전극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KBO 사상 최다점수타 역전승을 만들었으며, 김성현 개인으로서는 첫 번째 끝내기였다. 김성현은 “무조건 초구를 친다는 마음이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대기 타석에서 정말 너무 떨렸어요. 차라리 나한테 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죠. (최)정이 형에게 ‘어떻게 해야하냐.’고 물었는데, 형이 ‘다 필요 없고 무조건 초구를 노려야 한다.’고 말해줬어요. 떨리고 긴장됐지만, 내가 한번 끝내보자 마음먹었더니 오히려 편해졌던 것 같아요.” 초구를 그대로 받아친 공은 그대로 좌중간을 가르며 날아간 끝내기 안타였다. KBO 최다점수차 역전극의 주인공으로 그가 우뚝 선 것이었다.
취미로 시작한 야구, 그에겐 즐거움이었다.
사실 김성현의 야구 인생이 그의 끝내기 안타처럼 짜릿한 것은 아니다. ‘최동원, 선동열 같은 위대한 선수가 될 거야!’라는 거창한 꿈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동네에서 야구를 즐기던 꼬마였고, 우연히 초등학교 야구부에 가입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어려서부터 워낙 공놀이를 좋아했어요 주말마다 친구들이랑 몰려다니며 야구하러 다니고 그랬죠. 그런데 학교에서 야구부원을 모집한다는 가정통신문을 받은 거에요. 부모님한테 말도 안 하고 혼자 1차부터 3차 테스트까지 보고 합격했어요.(웃음) 뒤늣게 부모님한테 야구해야 할 것 같다고 얘기했죠.”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도, 강력한 반대도 없었다. 그저 공부를 했으면 하는 어머니의 아쉬움이 남았을 뿐이었다. 그렇게 김성현은 야구를 시작했다. 그에게는 누구나 한 번쯤 겪을 법한 야구를 그만 두고자 하는 ‘학창 시절의 위기’도 없었다. 그저 야구하는게 행복하고 즐거울 뿐이었다고 말한다. “아무래도 운동부는 선∙후배라든지 규율이 심하잖아요. 그런 걸로 스트레스를 받긴 했지만 야구를 관두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던 순간은 없었던 것 같아요. 참 재미없죠?(웃음)
아직 잘 하는 건 아니에요. 그저 잘하는 척 하고 있을 뿐!
어느덧 프로 8년차. 2006년 비룡군단의 유니폼을 입은 김성현은 2009년 상무에 입단하여 군 문제를 해결했고, 작년부터 1군에 얼굴을 보이며 팀 내 입지를 쌓고 있다. 하지만 쉽진 않다. 박진만, 최윤석 그리고 나주환까지 무한 경쟁 중인 SK의 내야진 때문이다. 그 속에서도 그는 ‘수비’로 자신의 강점을 극대화 하려고 노력 중이다. “아무래도 제가 방망이를 잘 치는 게 아니니까, 수비를 잘해야겠죠. 안정감 있는 수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객관적으로 제가 수비를 잘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주위에서 형들이 ‘잘한다, 잘한다.’ 해주시니까 그냥 그거 믿고 하고 있어요. ‘내가 잘하고 있구나!’하면서.(웃음) 아직까진 잘하는 건 아니고, 그냥 잘하는 척 정도에요.” 사실 그는 메인 포지션인 유격수 외에도, 내야 전 포지션을 두루 소화한다. 2루수를 주로 겸업하고 있는데, 상무에서 2루수로 출장했던 만큼 “2루 수비에 더욱 자신감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의 세부 기록을 찾아보니 재밌는 점을 몇몇 발견했다. 첫 번째로,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그의 타율이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점이다. “후반에 나오면 이상하게 스타팅으로 출장하는 것보다 편한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경기 후반에 성적이 좋아서 다음 날 선발 출장하면 꼭 별로 안 좋더라고요.(웃음)” 내야진이 두터운 팀 특성상 교체 출장하는 일이 잦지만 줄곧 백업이라는 법도 없다. “어쨌든 간에 저는 주전이 보장된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나가서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크죠. 한번 못 치면 ‘내일은 꼭 잘해야 할 텐데.’ 그런 초조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요.”
두 번째로 재밌는 점은 투수 유형별 타율이다. 보통 언더핸드 투수를 상대로 약점을 갖고 있는 우타자들이 대다수다. 그런데 김성현은 오히려 좌완투수를 상대로 무안타인 반면, 언더핸드를 상대로 3할 5푼이 넘는 타율을 기록 중이다. “저 진짜 언더핸드 못 치거든요? 그런데 신기하게 안타가 되더라고요. 어려서부터 정말 못 쳤는데... 자신은 없는데 안타가 나와요. 저도 참. 하하”
고민으로 잠 못 드는 밤, A형이냐고요?
드디어 여름이다. 날씨가 더워지는 만큼 선수들의 체력관리법도 가지각색이지만, 김성현의 여름은 평상시와 다르지 않다. “특별한 체력 관리법은 없어요. 오랫동안 야구를 하며 수많은 여름을 보냈잖아요. 그냥 똑같이 보내는 것 같아요.” 인천에서 자취하며 지내는 그에게 어머니가 가져다주는 갖가지 보양식이 그의 유일한 체력 관리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가 자주 올라오시는데, 올라오실 때마다 하나씩 뭘 가지고 오세요. 장어, 홍삼, 복분자까지. 주시는대로 다 먹긴 하는데, 효과를 느껴본 적이 없어서… (웃음)”
김성현의 휴일은 주로 집이다. 요즘 혼자 사는 남자들은 밥도 잘해 먹고,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도 있다고 하던데, 김성현의 경우는 아닌 것 같다. 그는 전형적인 자취생 쪽에 가깝다. “사실 취미도 마땅히 없고, 그냥 집에서 TV 보는 거 좋아해요. 밥해 먹기도 뭐하고, 나가기 귀찮을 땐 그냥 굶기도 하고요.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걸 별로 안 좋아합니다. 휴식할 땐 정말 딱 쉬는 게 좋더라고요.”
그의 평소 생활에서 보이듯, 김성현은 활동적인 사람은 아니다. 고민거리가 있어도 주유ㅣ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혼자 안고 가는 편이다. 때문에 잠들기 전 침대에서 고민거리를 생각하다 잠을 못 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제가 좀 소심한 편인 것 같아요. 혈액형이요? 네, A형이에요.(웃음) 그런데 오히려 저는 화가 나더라도 꽁하기 보다는 금방 풀리는 편이에요. 실수했던 플레이를 생각하면서 화 내고, 열 내고 그러다가도 금방 잊는 성격이죠.”
요즘 제법 소녀 팬들이 늘었다는 말에 그는 웃음을 보이며 손사래를 쳤다. “정말 아주 가끔이에요. 시합 끝나고 나가면 음료수나 먹거리를 챙겨주시는 팬이 있어요. 선크림이랑 선물도 몇번 받아보긴 했는데, 사실 그게 뭐 대단하냐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전 너무 좋아요.(웃음) 선물을 받아서 좋은게 아니고, 절 알아주신다고 생각하니까요. 물론 인기가 많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야구선수라면 야구를 잘해야 인기가 많은 거죠! 그래도 가끔 제 등번호랑 이름으로 마킹한 유니폼 보면 야구하길 잘 했다는 생각도 해요. 이런 경험 못 해본 선수들도 많잖아요?”
팬들의 ‘사랑’ 이야기가 나온 김에 질문을 이어갔다. 올해 문학 야구장에 울리고 있는 김성현의 응원가에 대한 그의 만족도는 얼만큼일까? “괜찮은 것 같아요. 사실 따라 부르기는 좀 어렵더라고요. 또 낯 간지러운 가사도 있고. 하하. 사실 작년 시즌 초에는 응원가가 없었어요. ‘나도 응원가가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기다렸는데 끝까지 안 나오더라고요. 그러다 한번 물어봤더니 곧 만들어주신다며 지금 그 응원가를 만들어 주셨어요. 지금의 응원가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습니다.(웃음)”
SK의 빛이 되기 위해
그에게 이번 시즌은 남다르다. SK 또한 세대교체의 과정을 겪고 있기에 이번 시즌은 그에게 기회다. “작년 처음으로 1군에서 뛰기 시작했고, 올해 캠프에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어요. 하지만 생각만으로 야구가 더 잘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기회가 주어질 때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며 기다려야겠죠. 오늘은 설사 실수를 하더라도, 내일은 더 잘할 수 있다는 마음을 먹고 싶어요.” 올해 다소 아쉬운 팀 성적을 거두고 있는 SK이지만, 그의 목표는 분명했다. 어느 팀보다도 강한 백업으로 팀을 받치고 있겠다는 것이다. “백업이 잘해야 팀이 강해요. 저도 지금 사실 백업이잖아요. 제가 잘 하면 팀이 강해지리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팬들에게 ‘도리’를 다하겠다는 말을 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야구장 찾아주시고 응원해주시면,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그게 야구선수의 도리인 것 같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김성현과의 인터뷰가 시작되고도 좀처럼 그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그러던 순간 한줄기 빛으로 다가온 인물이 바로 윤희상이었다. 첫 와이드 인터뷰에 쩔쩔매는 후배를 위해 그는 연신 “오! 오!”라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김성현에게 힘을 줬다. 그가 웃음을 띠기 시작한 것이 그때부터였다. 더불어 “희상이 형이 좋은 조언을 해준 적은 없는 것 같아요.”라며 농을 띄우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첫 인터뷰의 낯선 경험을 한 김성현이 그의 응원가처럼 세상에 빛이 되는 안타를 치는 선수가 되길 더그아웃이 응원한다. 수줍음이 더 매력인 그에게 마지막 응원메시지를 보낸다. “김성현 선수! 다음에는 긴장하지 말고 재밌게 촬영해요! 응원하겠습니다.”
출처: 'DUGOUT'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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