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사연이 많다. 2004년 입단 후 올해로 프로 10년차인 윤희상(28.SK)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포크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구리 리틀 야구단' 등 여러 가지 것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다.
윤희상은 지난해 SK 마운드에 나타난 '난세의 영웅'이었다. 2011년까지 통산 39번 등판에서 3승 밖에 올리지 못했지만 2012시즌엔 28번의 등판에서 10승을 따내며 단숨에 '新 에이스'라는 칭호가 붙었다. 선발 투수들의 연쇄 부상 속에서도 '무적'에 가까운 모습으로 유일하게 이탈 없이 로테이션을 지켜냈다. 이만수(55) SK 감독은 "우리 팀의 보물 같은 존재다. 희상이가 없었다면 SK 선발 마운드 운용이 힘들었을 것"이라며 "너무 고맙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시즌 활약은 생애 첫 성인대표팀 국가대표로 발탁되는 영광으로 이어졌다. 2004년 입단 후 짙게 끼었던 구름이 지나가니 찬란한 태양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의 이력 중 가장 앞부분을 차지하는 '구리시 리틀야구단' 출신 중 어느새 가장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선수가 됐다.
# 윤희상은 지난 3월에 열린 WBC에 참가했지만 부상에 따른 컨디션이 좋지 않아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때문에 몸을 추스르는 시간이 필요해 시즌 개막 후 로테이션에 '지각 합류' 했다. 하지만 첫 세 번의 선발등판에서 모두 승리를 따내며 평균자책점 1.77로 순항을 거듭하고 있다.
"불펜 위해 긴 이닝 던져야죠"
-뒤늦게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다.
"전지훈련(지난 2월 미국 플로리다) 때 타구에 팔을 맞은 후 많이는 아니었지만 몸을 만드는데 있어 지연이 됐다. 컨디션도 100%인 상태로 1군에 올라온 게 아니어서 많은 걱정을 했는데 결과가 좋으니까 기분도 좋다."
- 페이스가 좋다.
"지난해 전반기에 5승을 했는데, 이번에는 3승(5일 현재)을 거두고 있다. 경험해보니 승이 쌓일 때는 확 되고 안 될 때는 한없이 되지 않더라.(웃음) 지금 3승을 했지만 승에 대한 특별한 생각은 없다. 팀 사정이 좋지 않을 때니까 부상당하지 않고, 로테이션을 지키면서 불펜을 아낄 수 있게 최대한 많은 이닝을 던지는 게 목표다."
- WBC에 다녀온 게 도움이 됐나.
"타구에 공을 맞은 영향 때문인지 WBC에 다녀와서 힘들었다. WBC가 아니었다면 시즌 들어가기 전에 하루라도 더 쉬고, 완쾌된 상태로 공을 던질 수 있었다. 하지만 WBC를 뛸 수 있을 정도의 통증이었고, 무엇보다 국가대표라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다. (KIA 김진우의 부상에 따른)대체선수였기 때문에 내가 빠지게 되면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할 것 같은, 그런 게 있었을 것이다. 시합에 나오진 못했지만 빠른 페이스로 몸을 만들려고 하다 보니 개막 후 바로 들어오지 못하고 시간이 걸렸다."
- 부담이 컸던 것 같은데.
"솔직히 많았다.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 최대한 잘 던져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성격 자체가 부담을 많이 느끼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런 부담감 보다는 야구를 즐기고, 거기에서 행복을 느끼려고 한다. 항상 '마운드에 서는 게 즐겁고, 재밌구나'하는 생각을 한다.(웃음)"
- 대회 참가 여파로 시즌 후반에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을까.
"결과를 받았을 때 WBC 때문이라고 핑계대고 싶지 않다. 몸을 만드는 과정이 힘들었던 것이지 시즌 들어와서는 별개의 문제다. 다르게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포크볼 고마워, 네 덕에 1군 지킨다"
# 윤희상의 프로야구에서도 손꼽히는 포크볼러다. 긴 손가락을 이용한 포크볼의 궤적은 타자들의 배트를 허공에서 휘두르게 만든다. 하지만 포크볼은 '인내'의 결과다. 어깨 부상 후 무리가 가지 않는 투구폼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터득한 구종이다. 그는 "50여 명이 넘는 국내 투수는 물론이고 일본 투수 동영상까지 보면서 참고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투구 동작을 찾아갔고, 몸에 딱 맞는 포크볼로 '제2의 야구인생'을 열었다.
- 상대하기 어려운 타자가 있다면.
"일단 (박)병호(넥센)가 까다롭다. 이승엽(삼성) 선배님, (손)아섭(롯데)이도 잘한다. 무엇보다 포크볼을 가장 잘 공략하는 타자는 한화 김태균 선수인 것 같다."
- 포크볼을 던지는 투수 중에서도 가장 위력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아직 배울점이 많다. 자부심은 아니더라도 속으로는 '포크볼아 고맙다. 너 때문에 1군에 있다' 이렇게 생각하곤 한다.(웃음)"
- 로진백을 많이 사용하기로 유명한데.
"포크볼을 던질 때 긴 손가락을 이용해 채는 스타일이다. 때문에 손가락 옆에 물집이 많이 생긴다. 손가락도 보호하고 공을 던지는 느낌이 좋아 로진백을 많이 사용한다. 투구 중에 (로진 뭍은 손으로) 모자도 자주 만져 2~3게임하고 나면 바꾸는 편이다."
- 지난해 유독 두산(4게임 선발·2패 평균자책점 8.38)에 약했는데.
"4경기를 모두 전반기에 등판했다. 전반기에는 맞더라도 힘 있는 투구를 하자고 생각해 유인구를 쓰는 것보다 바로바로 승부에 들어가 많이 맞았다. 후반기에는 패턴을 바꿔 투구했다. 1년여의 시간이 흐른만큼 올 시즌 맞대결이 기대된다."
- 올해 목표가 있다면
"1군에 있으면서 2군에 없는 게 어디냐고 생각을 한다. 2군에 있을 땐 재활군에 없는 게 어디냐고 반문한다. 순간순간마다 행복을 느끼려고 한다. 10승에 150이닝 이상을 기록하고 싶지만 지금 상황에 만족을 하고, 매 순간 업그레이드를 하고 흥미를 가지려고 한다."
# 윤희상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구리시 리틀야구단'이다. 윤희상은 1996년 창단한 구리시 리틀야구단에서 야구를 시작했다. 두산 타자 윤석민(28)과 오재일(27), KIA 투수 윤석민(27)이 창단 동기다. 첫 출발은 내야수였다. 그는 일전에 "수비를 괜찮게 했던 것 같다. 계속 내야수로 뛰었으면 '최장신 야수'(193㎝)가 되지 않았을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97년 한 TV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진행한 '제2의 이종범을 찾아라'라는 방송에 출연해 기량을 뽐내기도 했다.
"리틀야구단 동기 윤석민과 대결 행복"
- 최근 재활 중인 윤석민(KIA)과 통화는 자주하나.
"항상 걱정되니까 몸 상태가 어떤지 물어보는 편이다. 나도 부상으로 인한 재활을 겪었기 때문에 공감한다. 형이니까 먼저 연락해 안부도 묻고 그렇게 하려고 하는 편이다.(웃음)"
- 조언도 해주는 편인가.
"워낙 영리하기 때문에 자기가 알아서 충분히 컨디션을 조절하더라. 심리적인 부분도 잘 컨트롤 할 수 있는 선수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배울점이 많다."
- 올 시즌 맞대결도 할 수 있는데.
"개인적인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기에는 석민이와 붙는 게 가장 좋다. 또 SK와 KIA가 붙으면 관중도 꽉 차고 여러 면에서 시너지 효과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운이 좋아 개인 성적이 괜찮지만 성적이 좋지 않으면 비난의 화살이 오지 않겠나. 만약 맞붙어서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런 부분도 생각해야 할 것 같다.(웃음) 오해의 화살을 받지 않도록 포커페이스를 잘 유지 해야겠다."
- 당시 별명이 울보라고 하더라.
"울보도 있고, 건빵도 있다. 울보는 정말 많이 울어서, 건빵은 '건방지다'고 주변에서 놀리면서 붙여준 별명이다. 지금은 울지 않는데, 어렸을 때는 하고 싶은 대로 되지 않거나 성적이 좋지 않으면 울었다."
- 프로 입단 후 부상으로 인해 동기들보다 출발이 좋지 않았다.
“어깨 수술(2006년 7월)을 하고 야구를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끝났구나'하는 마음이 들더라. 수술을 하고 공익근무로 군복무를 했다. 재활을 하면서 헬스장가서 몸을 만들었는데 도저히 공을 던지지 못하겠더라.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공익근무를 할 때 주말에 쉬거나 밤에 혼자 훈련을 하면서 '야구를 정말 좋아하긴 좋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라."
- 그 기간 동안 타자 전향도 고려했는데.
"동료인 송은범과 정우람을 통해 야구 배트를 공수 받아 연습을 하기도 했다."
- 리틀야구단 코치로도 잠시 활동했는데.
"공익근무 때 파견 근무식으로 잠시 구리시 리틀야구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내가 있었을 당시 가르쳐주셨던 코치님이 감독이 되셔서 인연이 닿았다. 아주 잠시 동안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야구에 대한 생각과 태도 등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 어린이들에게 포크볼을 가르쳤나.
"어렸을 때는 무조건 직구를 던져야 한다.(웃음)"
8년의 사랑... 시즌 끝나면 결혼할래요
"집값이 만만치 않더라고요.(웃음)"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결혼'이라는 단어에 '함박웃음'으로 반응했다.
윤희상(28)은 "올 시즌이 끝나고 결혼할 것 같다"며 "집을 알아보고 있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더라. 결혼 준비하는 게 쉽지 않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시즌 종료 후 8년 동안 알콩달콩 사랑을 키워 온 1살 연상의 이슬비(29)씨와 백년가약을 맺을 계획이다. 스물여덟의 많지 않은 나이지만 '믿음'의 결과는 '결혼'이다.
프로 입단 당시 계약금으로 2억원을 받았을 정도로 유망주였던 윤희상은 부상과 군입대가 겹치면서 야구 인생에 있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은 경험이 있다. 그리고 이런 비슷한 '위기'를 8년 동안의 연예기간 동안 숱하게 겪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윤희상은 "정말 좋아해도 8년을 만나는 건 쉽지 않다"고 운을 뗀 후 "만남과 헤어짐을 몇 번 경험했다. 하지만 지금의 여자친구가 가장 좋다는 생각을 하게 돼 결혼을 결심했다"며 "내 야구인생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여자친구도 그런 부분이 비슷하다"고 애틋함을 드러냈다.
첫 만남 당시 패션 스타일리스트과 학생이었던 여자친구는 졸업 후 쇼핑몰 모델로 활동하고, 직접 운영을 하는 등 관련 분야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집안 사정상 꿈을 바꿨다. 이후 태백에 있는 모 대학의 간호학과에 입학해 공부를 새롭게 했고, 시험에 합격해 현재는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쉽지 않은 결정과 과정이었지만 여자친구는 묵묵히 제 역할을 다했다.
프로야구 선수 중 안티팬이 없기로 유명한 윤희상은 "(주위에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게) 때론 부담이 되기도 한다"고 손을 내저었지만 "(그런 부분이) 여자친구 부모님한테 점수를 따기도 한 것 같다"며 감사했다. 하나를 제대로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야구'와 '연애'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이 기사는 IS BALL Vol.19에 실린 기사입니다.
인천=배중현 기자 bjh102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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