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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共感) W] 퓨처스감독 박경완의 '선수 은퇴식', 그 날의 비하인드 스토리

SSG 랜더스 2014. 4. 8. 10:38

2014년 4월 5일은 SK 구단 역사에 길이 남을 ‘축제의 날’이었다.


SK는 이날 당일 경기를 승리한 것은 물론이고 경기 후 열린 레전드 포수 박경완(42.현 SK 2군 감독)의 은퇴 및 영구결번식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야구장을 찾은 2만여 관중 대부분이 끝까지 남아 한 시간 가량 그라운드에서 열린 행사에 눈과 귀를 기울였다.


거센 바람과 뚝 떨어진 기온이 무색할 정도였다. 이번 행사를 담당한 JR 이두영 팀장은 “기초 아이디어는 지난해 말부터 진행을 했는데, 영구결번식을 진행하자는 구단의 이야기를 듣고 올해 1월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박경완의 은퇴가 결정된 지난해 10월부터 은퇴식에 대한 기획을 했지만 구단 영구결번이 결정된 올해 1월부터 전체적인 행사의 틀이 잡히기 시작했다. 3개월간의 준비 기간을 거친 것이다.



완성도가 높았다. 무엇보다 주인공인 박경완의 아이디어는 물론이고 팬들까지 함께해 더욱 의미가 컸다. 이 팀장은 "원래 경기 전 시구를 박경완 감독이 하면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김원형 투수코치가 포수 프로텍터를 몰래 쓰고 받는 걸 기획했다“며 ”하지만 박경완 감독이 자기가 그래도 포수인데, '내가 2루에 송구하는 게 더 낫다'는 아이디어를 냈고, 반영했다“고 귀띔했다. 실제 이날 시포를 한 박경완은 김원형 코치의 시구를 받아 정확하게 2루로 던졌다. 선수 시절 장비를 제공했던 미즈노사에서 보내준 포수 프로텍터를 찼고, 현역 시절의 모습 그대로를 재연해냈다. 팬들은 열광했다.


경기 후 열린 공식 은퇴식에선 남녀노소, 나이를 불문한 40여명의 팬들이 그라운드로 내려와 아낌없는 박수를 쳐줬다. 이 팀장은 “각 루에 10분씩 박경완 감독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그랬다. 사연이 있는 팬 위주로 섭외했고, 선수 시절 사진을 가지고 계신 네분을 뽑아서 그 사진을 대형 액자로 만들어 (박경완 감독께) 선물로 드리고 그랬다"고 말했다. 


박경완의 영구결번은 프로야구 모든 구단을 통틀어서 12번째였다. 하지만 SK 구단만 놓고 봤을 때는 역사에 남을 수 있는 첫 번째다. 행사를 기획하는 입장에서도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 팀장은 "구단 첫 영구결번이어서 거기에 중점을 뒀다. 중앙 펜스에서 대형 유니폼을 제막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자리가 자갈이 있는 곳이라 직원들이 직접 들어가 평평하게 작업을 따로 했다“며 ”리프트도 쉽게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크레인을 투입해 설치를 했다“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이어 ”2010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을 때 김광현 선수가 90도로 박경완 감독에게 인사한 부분이 팬들에게 신선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행사에서 보여주면 소소하고 감동적인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추가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김광현이 던지고, 박경완이 받는 이른바 ‘라스트 캐처’ 세리머니였다. 홈팬들의 추억을 자극할 수 있는 명장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남모를 에피소드도 있었다.


이 팀장은 “전날 리허설 때 저희 직원이 직접 받아도 보고 그랬는데 공이 보이지 않더라. 그래서 위험하다고 판단해 조명을 더 설치했다. 사전에 김광현 선수에게 '세게 던지면 안 된다'고 말했고, 박경완 감독에게도 '조심해서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진짜로 던지더라”며 “총 2개를 던졌고, 첫 번째 던진 연습구가 끝인 줄 알고 폭죽도 터트리고 그랬는데 김광현 선수는 ‘팬들에게 장난스럽게 하면 안 된다’며 (예상하지 못했던) 두 번째는 진짜 세게 던지더라. 보는 저희도 깜짝 놀랐고, 이래서 프로는 다르구나 싶었다"고 감탄을 자아냈다.


행사 성공의 관건은 무엇보다 날씨였다. 하지만 경기 전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그라운드에 잠시 방수포가 덮히기도 했다. 이 팀장은 “박경완 감독이 경기 전 행사를 준비할 때 시포를 하기 위해 포수 장비를 찼다”며 “정식 경기에 나가는 것처럼 장비를 준비하고 계시더라. 그 순간 갑자기 비가 내려 '비가 옵니다 감독님' 그렇게 말을 하니까, '그럼 안 되는데' 이러면서 스윽 나가더라. 그런데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고 껄껄 웃었다.


바람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이 팀장은 “바람을 비롯한 날씨 때문에 힘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내 “무엇보다 감독님이 갑자기 사라지셔서 애가 탔다. 원래는 8회말이 되면 외야로 오셔서 행사(경기 후 박경완 감독은 스포츠카를 타고 외야에서 내야로 들어왔다)를 준비해야 하는데, 9회가 끝나도 보이지 않더라”며 “여기 저기 인사를 많이 하러다니셔서 우리와의 약속 시간을 인지하지 못하셨던 것 같다. 구단 프런트도 찾으러 다니고…그러다보니까 예정됐던 시간보다 조금 늦게 행사기 시작됐다"고 에피소드를 전했다.


행사를 기획하는 입장에서도 이번 일은 만감이 교차하는 큰 ‘사건’이었다. 그는 “SK의 첫 영구결번이고 레전드를 만드는 자리 아닌가. 6년째 SK와 일하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행사를 하면서도 의미 자체가 남달랐다. 현장을 찾은 팬들은 물론이고 우리 스태프도 많이 울었고, 뭉클했다"고 돌아봤다.


배중현 일간스포츠 기자 bjh1025@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