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와이번스는 지난 8월 열린 신인 2차 드래프트에서 서울고 졸업 예정자인 우투우타 내야수 임석진(18)을 호명했다. 임석진은 작년 대통령배에서 2경기 연속 만루 홈런을 때리는 등 우수한 체격 조건에 아마추어에서 보기 드문 파워히터다. 투수로도 140㎞ 이상을 던질 수 있는 강한 어깨를 가져 이번 드래프트에서 고교 내야수 최대어로 꼽혀왔다. SK 와이번스는 차세대 중심타자로 성장을 기대하면서 임석진을 뽑았다.
임석진은 “사실 올해 힘든 일이 많아 드래프트에서 상위 지명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너무 빨리 뽑혀서 놀랐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석진은 지난 겨울 훈련 도중에 부상으로 거의 두 달을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봐야 했지만,올해 황금사자기에서 최다 홈런상으로 보란듯이 재기하면서 변함없는 가치를 인정받았다. 임석진은 “SK 와이번스의 지명을 받은 뒤로 무엇보다 가족들이 너무 좋아했다. 제가 워낙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어머니가 해달라는 음식을 많이 해주셨다. 전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더 잘해주신다”면서 넉살좋게 웃었다.
임석진은 SK 와이번스와 1억3000만원에 계약했다. 머지않아 SK 와이번스 유니폼을 입고 꿈꾸던 프로 무대에 발을 내디디게 되는 임석진은 “SK 와이번스가 강팀이란 것은 알고 있지만 사실 잘 알고 있는 팀은 아니다. 지명 이후에 많은 분들이 SK 와이번스가 팀 분위기가 좋고, 팀 워크가 끈끈한 팀이라고 알려주셨다”면서 “그러고 보니 저희 고향 선배들도 많다”며 기뻐했다. 임석진은 전라북도 군산이 고향인데 SK 와이번스에도 이대수, 박종훈, 박계현 등 군산 출신 선배들이 1군 무대에서 활약중이다.
야구는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했다. 군산 신풍초등학교 2학년 때 야구에 입문한 임석진은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운동에 아주 뛰어난 소질을 보이거나 야구를 특별히 좋아했던 소년은 아니었다. 임석진은 “아주 소심했던 학생이었다”고 떠올렸다. 처음에는 그저 남들보다 힘이 좋고, 체력이 좋아서 하던 야구였다. 막연히 이 길이 아니면 안될 것 같아 야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야구를 하면서 서울 이수중학교로 진학했을 때는 가족들과 떨어져 살면서 고비도 있었다. 임석진은 “중학교 때 가족과 떨어졌을 때는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 그 때 혼자 살면서 어른스러워져야 한다는 생각에 많이 강해진 것 같다. 오히려 야구선수로서는 많은 자양분을 얻은 시기”라고 했다.
2015년 임석진은 야구선수로서 품어왔던 두 가지 꿈을 한꺼번에 이뤘다. SK 와이번스의 지명을 받은 직후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2015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에 참가하면서 태극마크도 달았다. “어쩌면 프로에 가는 것보다 더 큰 꿈이 태극마크였다. 대표팀에 뽑혔을 때가 야구를 시작한 이후로 가장 기분이 좋았다. 청소년 대회 태극마크는 내 나이에만 경험할 수 있는 값진 기회아닌가”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이종도 설악고 감독은 전국의 내노라하는 선수들 가운데 대표팀의 중심인 4번 타순에 임석진을 낙점했다. 임석진은 4번 타자로 국제대회에서 늘 껄끄러운 상대였던 대만전에서 결정적인 2타점 2루타를 때렸다. 하지만 대회 전체적으로는 그리 좋은 성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임석진은 “만족할 성적을 못냈지만 좋은 경험을 했다. 새로운 감독님과 코치님에게 배우고, 잘하는 선수들과 경쟁하면서 시야가 넓어진 것 같다. 우리보다 체격이 좋은 선수들을 상대로도 편하게 야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자신감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청소년 대표팀에서 만났던 임석진의 첫 인상은 ‘딱딱하다’였다. 그라운드에서는 대부분 무표정한 모습이 많았다. 그 또래에서 보기 힘든 과묵한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모습 역시 SK 와이번스가 주목한 임석진의 장점이다. 임석진은 “내가 만드는 이미지”라면서 “잡담을 하는 대신에 파이팅을 하는 것이 내 스타일이다. 말 보다 야구에 집중하려고 한다. 팀에 그런 사람도 필요하지 않나. 친구들과 있을 때는 그렇지 않다”며 웃었다. 스카우팅 리포트에는 ‘훈련자세가 좋아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는 선수로 후배들이 잘 따르며 카리스마와 리더 기질이 있다’고 적혀있다. 임석진 스스로도 "훈련 자세는 내 장점”이라고 할 정도로 자부심이 크다. 10대 후반의 선수에게서 베테랑 선수에게서나 볼 수 있는 의젓함이 느껴졌다.
임석진은 “초등학교 감독님이 야구에 대한 예의에 중점을 두셨다. 부모님도 그런 부분을 강조하셨는데 ‘야구로 성공해야 겠다’는 마음이 커진 뒤로 그런 생각이 더욱 강해진 것 같다. 특히 부상 후에 훈련 한 번이 더 간절해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라운드 밖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는 유쾌한 화법과 솔직하고 당찬 자세로 분위기를 주도했다. 각오를 이야기할 때는 신인의 패기가 넘쳤다. 임석진은 “내가 생각하는 장점은 장타력 보다 홈런을 칠 수 있다는 점이다. 요즘에는 그런 타자가 없어 희소성을 인정받은 것 같다”면서 “인천 SK행복드림구장이 홈런도 많이 나온다고 하던데 나한테는 기회인 것 같다”며 신인의 당찬 각오를 이야기했다.
엉뚱한 매력도 있다. “사실 초등학교 때는 왼손타자를 하려고 했는데 당시 오승택 감독님께서 그 때쯤이면 우타거포가 없을 거라고 조언하시면서 오른쪽타자를 하라고 하신 것이 (프로에 지명된)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감사하다”며 뒤늦은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롤모델은 박석민(삼성)을 이야기했다. 비슷한 체형에 같은 포지션을 소화하고, 재미있게 야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란다. 특별한 인연도 있다. “인터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박석민 선배님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대통령배가 끝나고 서울고로 글러브와 배트 3개, 장갑, 아대 등을 직접 보내주셔서 감동을 받았다.”
2경기 연속 만루홈런 기록은 임석진의 인생을 바꿨다. 임석진은 작년 대통령배 글로벌선진학교, 16강 배재고전에서 연속 만루홈런을 때리면서 대회 최우수선수로 선정됐다. 자신의 첫 만루홈런이면서 미래에 ‘스타’가 되더라도 자신의 이름 석자 뒤에 따라다닐 의미있는 기록이다. 그리고 기술적으로도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임석진은 “1학년 동계훈련 때 전에 OB에서 뛴 임형석 인스트럭터의 지도를 받으면서 타구에 힘이 실리는 느낌이 있었는데 만루홈런 이후에는 펜스 앞에서 잡히던 타구가 넘어가고 있다”며 “이전에는 때리기 급급했다면 이제는 상하체를 활용해서 치는 느낌을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임석진은 이미 유연성과 파워를 기르는 운동을 병행하면서 프로행을 준비하고 있다.
임석진은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르지만 프로무대가 설레고, 궁금하다”며 “나는 신인이다. 삼진을 당하고, 실책을 하더라도 주눅들지 않고 신인의 패기로 붙어보겠다. 지금은 공수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중이다. 지금보다 배짱있게 야구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또 “언젠가는 한 시즌 최다 홈런을 때려 홈런왕 타이틀을 갖는 것이 꿈”이라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이정호 스포츠경향 기자 alp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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