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보석 진주의 탄생은 잠시 껍데기를 연 조개에 모래알이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이물질의 침입으로 고통에 몸부림치던 조개가 그 모래알을 품고 인고의 시간을 견뎠을 때, 모래알은 최상품의 진주가 된다. 윤희상이 그렇다. 어릴 때부터 야구만을 바라보았던 그에게는 부상이라는 고통이 찾아왔다. 그가 8년에 걸쳐 시련을 견디고 나자, 그는 팀의 든든한 선발이 되었고 함께 인생을 살아갈 피앙세를 얻었다. 시련을 극복하고, 진주만큼이나 값진 역할을 하는 윤희상을 만나보았다.
Photographer Lee Yong Han Editor Somin Park
만나서 반갑습니다. 요즘 축하할 일이 많죠. 결혼 얘긴 잠시 뒤에 하기로 하고 먼저, 9월 월간 탈삼진왕이 되셨어요. 추석에 선보였던 7타자 연속 삼진은 특히나 대단하던데요.
9월 13일 두산전부터 삼진이 잘 잡혔어요. 마음가짐을 다잡고, 집중해서 경기에 들어가니까 좋은 결과가 나오더라고요. 그다음이 넥센과의 시리즈였는데, 팀이 두 번 다 져서 사실상 포스트시즌 탈락이 확정됐죠. 포스트시즌에 못 올라가니까, 남은 경기는 포스트시즌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던졌죠. 응원해주신 팬분들께 죄송한 만큼 성의 있는 플레이를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평상시 게임보다 집중을 잘하려 노력했죠. 그래서 그런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아요.
8월까지만 해도 4점대 중반이었던 방어율을 3.70까지 낮췄고, 후반기에 상승세가 대단했죠.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아까 말했던 것처럼 마음가짐도 다시 하고, 전반기보다 몸도 많이 좋아졌어요. 올 초 WBC 전에 캠프에서 다쳤던 게 이상하게 잘 낫질 않고, 몸도 안 올라왔었는데 후반기에 많이 좋아졌어요.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올스타전이 열리던 날 혼인신고를 했다고 들었어요. 후반기 상승세의 힘은 아무래도 가장이라는 책임감에서 생긴 것 아닐까요?
아직 아이가 없어서 책임감까지는 들지 않는데, 아내가 옆에 있으니까 심적으로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즐거운 일들이 생기니까 엔도르핀이 돌아서 그런가 봐요. 좋은 생각만 하고, 더불어 몸도 좋아지고요.
그렇게 인생의 엔도르핀이 된 아내에게 한 프러포즈가 화제가 되었어요. 그라운드 프러포즈는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프러포즈해야겠다고 마음으로 계속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데 딱히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구단 홍보팀으로 일하는 형에게 부탁했더니, 선뜻 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둘이서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나누어서 프러포즈를 기획하게 되었어요. (낭만적인 프러포즈에 부인분이 많이 감동하셨겠어요.) 끝나고 말로는 감동했다고 했는데요. 저는 준비하면서 정말 엉엉 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차분한 거예요. 그래서 조금 아쉬웠어요. 이게 약했던 건가 싶기도 하고요. (웃음)
이렇게 행복한 프러포즈까지 연애기간이 8년이라고 들었어요.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가 궁금해요.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제가 2006년에 어깨 수술을 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강남역이라는 곳을 임훈 선수와 같이 가게 되었어요. 그렇게 강남역을 걷다가 길거리에서 아내를 처음 봤어요. 처음 본 순간 반해버렸죠. 연락처를 받고 싶었는데 용기가 안 나서 못 받았어요. 결국, 지나치고 훈이랑 맥주 한 잔을 했죠. 한참을 마시다 자리를 옮기려고 가게에서 나왔는데, 아까 그 여자가 또 지나가는 거예요. 다시 만났는데도 말을 못 걸었어요. 결국,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돌아서 자리를 옮겨서 맥주 한 잔을 더 하고 나오는 길에 또다시 마주친 거예요. 그때는 이제 술기운도 조금 올라오고 용기가 나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연락처를 물어봐서 받았어요. 그렇게 어렵게 연락처를 받았는데, 제가 전화를 해도 아내가 한 통화도 안 받았어요. 그러면 보통 사람들은 두 통정도 전화하고 안 받으면 못하잖아요. 근데 저는 정말 이 여자를 놓치기 싫더라고요. 해볼 때까지 해보고 싶었어요. 그랬더니 10일 만에 전화를 받아주더라고요. 그렇게 연락을 시작했죠.
오랜 시간 만난 만큼 연애가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연애하면서 많이 싸웠죠. (웃음) 제가 공익생활하고, 아내가 간호 공부하는 대학이 멀어서 저희가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었어요. 차라리 두 시기가 겹쳤으면 좋았을 텐데, 제가 전역하자마자 아내는 공부를 하러 강원도로 갈 수밖에 없었어요. 서로 보질 못하니까 많이 힘들고, 싸웠던 시기였죠.
그렇게 연애를 하면서, 언제 ‘아! 이 사람이다, 이 사람과 결혼하겠다!’라고 느꼈나요?
일단 처음 본 순간 정말 예뻤어요. (웃음) 이 사람이면 결혼해서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 예쁘다” 이런 생각이 날 것 같았어요. 그렇게 얼굴이 예쁜데, 마음씨까지 예쁘더라고요. 제가 군대 간 2년 반 동안 기다려주고, 2군 생활하면서 힘들 때 절 챙겨주는 모습을 보고 확신이 생겼죠.
다시 야구 얘길 해볼게요. 시즌이 끝났는데 몸 상태는 어때요?
몸 상태는 좋은 편이에요. (시즌 전 부상이 있던 어깨는 어때요?) 어깨는 이제 거의 다 나았어요. 투수가 어깨 수술하고 일 년 선발로 뛰기 어렵잖아요. 그런데 잘 쉬었고, 어깨도 괜찮아요. 오히려 어깨 수술을 하고, 조심하자고 생각을 하니까 몸 관리를 더 잘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요즘엔 훈련만 하고 있나요?
우선 운동장에서 훈련을 받고 있고요. 요즘에는 밀린 예비군을 많이 다니고 있고요. 나라를 지켜야 하니까요. (웃음) 12월 14일에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니까 준비도 차근차근하고 있어요. 웨딩촬영도 갔다 왔고요. 그래도 여유 있게 지내고 있어요. (앞으로 팀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계속 지금처럼 운동하다가 27일에 일본 가고시마로 마무리 훈련을 가기로 일정이 짜여있어요.
매년 이맘때쯤엔 가을야구를 하고 있던 SK인데, 지금 훈련만 하는 게 어색할 것 같아요.
그러게요. (한숨) 원래 야구를 하고 있어야 하는데 야구를 보고 있어서요. 아쉬워요. 정말 많이요. 팬들한테 죄송스럽기도 하고요. (요즘 포스트시즌이 한창인데 보셨어요?) 예, 매 게임 다 보고 있죠. 팀이 6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그중에 저는 포스트시즌을 두 번 경험해봤는데요. 직접 하는 거랑 보는 거랑 또 다르잖아요.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지난해에는 선발 전환 첫 시즌에 10승을 달성했고, 올해는 선발투수 보직에 완전히 어울리는 선수가 된 것 같아요.
선발로 보직 전환이라고 표현하기보다는, 2군에 있다가 1군에 올라와서 2년 동안 선발로 자리를 잡았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선발이라는 자리에 만족하세요?) 저는 선발이 심적으로 편해요. 제가 못 던져서 팀이 지면 제가 패전투수가 되잖아요. 그러면 제 책임이라고 돌리면 되거든요. 그런데 중간계투나 마무리 투수는 앞에서 선발투수가 잘 던져 승을 만들었는데, 그걸 날리는 경우가 종종 있잖아요. 저는 그런 부담감을 갖고 던지면 힘든 것 같아요. 그래서 선발투수가 저에게 딱 맞는 것 같아요. 물론 쉽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 것 같아요.
올 시즌 개인 성적은 만족하세요? 목표는 10승 150이닝이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10승은 못했지만 150이닝이라는 이닝 수를 넘긴 거에 대해서는 만족하고 있어요. 왜냐면 제가 선발로 많이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거든요. 이번 시즌이 9구단 체제다 보니까 휴식일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용병선수들을 쓰는 게 아무래도 유리하니까 저는 게임 출장 횟수 자체가 적었어요. 그런데도 게임당 평균적으로 던지는 이닝이 많았거든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150이닝을 넘겼어요. (10승을 못한 게 아쉽진 않으세요?) 저도 승이 생각보다 없어서 아쉽죠. 그런데 승은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퀄리티스타트에 의의를 두고 싶어요. 제 성적에 대해 100% 만족은 아니지만, 만족하려고 합니다. 못했다 생각하면 스트레스만 받으니까요.
선발로서 책임감이 강하신 것 같아요. 매 인터뷰에서도 선발투수로서 꾸준하게 제 몫을 하고 싶다고 강조하기도 했고요. 그렇다면 내년 시즌 윤희상 선수의 목표는 어떻게 되나요?
내년 시즌도 똑같이 선발투수로서 150이닝 정도는 책임지고 싶어요. 선발 로테이션도 지켜가면서, 최대한 많은 이닝을 이끌어 가야겠죠. 그래서 중간계투 투수들이 “아, 희상이 나오면 6회까지는 몸 안 풀어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믿음을 주는 투수가 되고 싶어요.
최근 꾸준한 활약으로, 올해에는 팀 내 역대 2번째 연봉인상률을 기록했어요. 두 시즌 동안 보여준 모습으로 팬들의 기대도 확실히 높아졌고, 이번 연봉 어떻게 예상하세요?
연봉은 뭐 오를 것 같긴 해요. (웃음) 그런데 구단 사정도 있고, 구단 생각은 다를 수 있으니까요. 사실 제 생각이랑 구단이 예상하는 거랑 차이가 크지 않으면 쉽게 사인할 것 같아요.
이제는 웃으며 내년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만, 윤희상 선수는 힘든 시기가 길었어요. 2군 생활도 길었고 2006년엔 어깨 수술도 했죠. 그 시기엔 야구선수라는 게 힘들지 않았나요?
저는 어렸을 때도, 힘들었을 때도 매일매일 야구를 하고 싶었고, 지금도 매일 마찬가지예요. 야구 선수라는 게 힘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그 반대로, 야구가 정말 하고 싶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힘들었어요. 어깨 수술 했을 때는 야구를 정말 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었어요. 못해요. 그때 정말 힘들었어요. “아, 내가 빨리 포기해야 되는구나”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더라고요. (야구를 그만두실 생각마저 했었나요?) 생각해봤죠. 어깨 수술 하고 팔이 워낙 안 나아서 머리로는 야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마음으로는 야구가 정말 하고 싶은 거예요. 그러면서 나이는 점점 먹어가고, 돈은 벌어야 하고…. 많은 생각이 들었죠.
힘들었던 시기에 팀에서 힘이 되어주었던 존재는 없나요?
아유, 많았죠. (웃음) 모두가 저에게 힘을 주시려고 노력하셨어요. 특별히 생각나는 건 김상진 코치님이요. (코치님이 많이 챙겨주셨나요?) 특별히 챙겨주셨다기보다는, 남자들은 원래 힘들어도 말을 잘 못하잖아요. 정말 힘들 때 전화하면 따뜻한 조언을 한 번씩 해주셨죠. 아버지 같은 분이에요.
2군에 있던 시기에 캐치볼을 하다 우연히 발견한 포크볼이 윤희상 선수의 주무기가 되었어요. 포크볼의 위력을 높여 줄 다른 구종 개발은 하고 계신가요?
일단 내년에는 커브를 많이 던질 것 같아요. 올 시즌에 커브를 변형하면서 이것저것 배우고 있는데, 이번 스프링캠프에서도 커브를 많이 연습하려고 해요. (왜 하필 커브인가요?) 제가 우타자들한테 약해요. 원래 오른손 투수는 우타자한테 강하고, 왼손 투수는 좌타자한테 강해야 하는데 저는 의외로 오른손 타자한테 약해요. 그걸 극복할 방법으로 커브가 적당할 것 같아요. 커브를 좀 더 업그레이드시키고, 많이 구사하고 싶어요. 제 커브가 우타자들을 이길 수 있는 구종이라고 생각해요.
다소 무뚝뚝해 보이는데, 평소 성격은 재미있는 편이라고 들었어요.
아니요. 재밌지 않고, 오히려 썰렁하다는 타박을 많이 듣죠. (웃음) 개그를 많이 시도하는데 잘 안 먹혀요. (어떤 식으로 시도하시는데요?) 말장난 많이 치죠. 저 혼자 있으면 재미가 없고요. 옆에 재밌는 친구가 있으면 많이 묻어가요. (웃음)
작년 올스타전의 ‘강판 사건’과 자선 야구대회에서 이대호 선수 따라 하기 같은 걸 보면, 개그 욕심이 있는 것 같아요.
개그 욕심이 없지도 않지만, 많지도 않아요. 그냥 웃겨야지 이런 생각보다는, 야구장 나가서 즐거울 때 나오는 행동들이에요. 자선대회 나갔을 때는 좋은 취지로 야구를 한다는 게 즐겁고, 옆에서 선배님들이 해보라고 하시니까 그냥 즉흥적으로 하게 되더라고요. 올스타전도 처음 나가서 재밌었어요. 그런데 (최)정이가 홈런레이스를 나간다고 하는데 배팅볼 투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형이 할게!”하고 했는데 또 의도치 않게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서 웃음을 드린 것 같아요. (올스타전 배팅볼 투수 강판 사건은 팬들 사이에서 올스타전 명장면으로 꼽히기도 하는데요.) 해설위원님들이 해설 20년 했는데 배팅볼 투수가 강판당하는 것 처음 봤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웃음) 저도 재밌었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윤희상 선수를 보면, 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아요. 팀이 자신을 존중해주는 걸 느꼈다고 언급한 걸 봤어요. 윤희상에게 SK 와이번스는 어떤 팀인가요?
지금까지 저를 보호해준 팀이요.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어깨 수술하고, 군대 갔다 오고, 아프다고 했던 선수를 계속 기다려주고, 보호했잖아요. 고맙다는 생각이 많이 들죠. 그래서 이제는 제가 보답할 차례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SK 와이번스와 윤희상 선수를 응원하는 팬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상투적인 말일 수도 있지만, 항상 응원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정말 팬들의 응원 덕분에 힘이 납니다. 올해는 저희가 아쉽게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내년에는 포스트시즌에 올라갈 수 있도록 매 게임 한 구, 한 구에 최선을 다해서 의미 있는 공을 던지겠습니다.
***
팀의 에이스란 무엇일까. 혹자는 타자를 위협할 만한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라고 대답할 것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타자들의 헛스윙을 불러내는 다양한 변화구를 가진 투수라고 생각 할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팀의 에이스는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고 싶고, 뒤를 이어 던질 선수들을 위해 많은 이닝을 책임지고 싶다는 ‘윤희상’ 같은 투수가 아닐까. 이런 그가 팀의 에이스로서 제대로 실력을 보여준 지 이제 2년밖에 되지 않았다. 앞으로 오래도록 좋은 공을 던지는 윤희상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출처: 'DUGOUT'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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