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G 랜더스의 2021년 제주 서귀포 스프링 캠프는 일종의 전화위복이었다. 코로나19 여파로 불가피하게 국내에 캠프를 차릴 수밖에 없었지만 제주 캠프에 대한 선수단의 만족도가 예상 이상으로 높았기 때문이다.
선수단은 미국 플로리다 부럽지 않은 온화한 날씨를 누리면서 스케줄대로 차근차근 몸을 만들고 기량을 끌어올렸다. 제주에 만난 선발 박종훈은 “예전부터 존경하던 김원형 감독님이 새로 오시고 날씨도 좋고 팀도 더 단단해진 느낌이 든다. 빨리 시즌을 시작하고 싶다”는 말로 2021시즌을 향한 기대와 희망을 나타냈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의 이런 마음이 모인 덕분에 SSG는 제주 캠프를 무사히 완주하고 돌아왔다. 선수들과 팬들에게 잊지 못할 기억이 될 제주 캠프 3대 뉴스를 선정했다.
▲ 폰트·르위키, 적응도 실력도 ‘이상 무’
야구에서 마운드 전력이 팀 성적과 직결된다는 것은 상식에 가깝다. 2019년과 2020년 KBO리그 정규시즌 성적을 보면 팀 평균자책 상위 5개 팀과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5강 팀이 일치했다.
그중에서도 외국인 선발투수의 활약 여부는 팀 성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핵심 요소다. SSG가 지난해 정규시즌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외국인 구성을 완료했던 것도 일단 외국인 투수를 잘 뽑아야 2021년 도약을 기대해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SSG의 새 식구가 된 투수 윌머 폰트와 아티 르위키는 캠프 훈련 일정을 순조롭게 소화하면서 2021시즌 이들의 활약상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브랜든 나이트 외국인 투수 어드바이저가 국내 입국 직후 자가격리 기간부터 폰트, 르위키와 함께 생활하면서 이들의 국내 적응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나이트 어드바이저는 “KBO리그의 하루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틈나는 대로 폰트, 르위키에게 이야기해주고 있다”며 “폰트, 르위키는 성격이 좋고 국내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려고 한다. 이런 태도를 가진 선수들은 팀에 금세 적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력 면에서도 다른 구단 외국인 투수들과 비교해 뒤처지지 않는 공을 가졌다는 현장 평가가 나왔다. 1m93의 신장을 자랑하는 폰트는 높은 타점에서 내리꽂듯 던지는 빠른 공이 위력적이다. 르위키는 라이브 피칭과 청백전을 거치면서 제구력이 뛰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폰트는 “SSG의 지난해 성적은 이미 지나간 일이고 이제 새로운 시즌이 시작된다. SSG가 이기기 위해 나를 선택했으니 나도 최대한 많은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에만 집중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르위키도 “올해는 SSG가 다시 일어서야 하는 시즌”이라며 “이렇게 중요한 때에 나에게 원투펀치 역할을 맡겨줬다는 게 고맙다. 팀의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다짐했다.
▲ 선수단 마음 훔친 신세계의 특급 지원
SSG는 스프링 캠프 기간 기자들의 취재 열기가 가장 뜨거운 구단이었다. 신세계그룹 이마트가 KBO리그의 새 가족이 된다는 뉴스 때문이었다. 2월은 이마트의 야구단 인수 소식에서 시작해 미국 메이저리그 추신수의 SSG 입단 뉴스로 마무리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캠프 기간과 맞물려 구단주가 바뀐다는 것은 사실 선수들에게는 불안한 사건이다. 이마트는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훈련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했다. 캠프 첫날인 2월 1일 이마트 임원들이 선수단 숙소를 방문해 선수들을 격려하고 향후 야구단을 아낌없이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마트가 선수단에 매일 스타벅스 음료 100잔을 제공한 것도 화제였다. 캠프지였던 강창학야구장에는 매일 오전 11시 야구장 근처 스타벅스 매장에서 갓 제조한 음료 100잔이 어김없이 도착했다. 봄날처럼 따뜻한 서귀포 날씨 속에서 훈련했던 선수들은 시원한 스타벅스 음료 한 잔을 들이켜면서 숨을 고르고 땀을 식혔다.
선수들의 먹거리를 챙기는 이마트의 배려는 제주 캠프에서 돌아온 직후에도 이어졌다. 이마트는 선수단이 인천으로 돌아온 다음 날인 3월 7일 1군 선수단과 퓨처스 선수단, 군입대 선수들, 프런트 직원들의 자택에 ‘쓱배송’으로 먹거리 선물 꾸러미를 보냈다. 이마트의 이 같은 깜짝 이벤트는 ‘이마트가 운영하는 야구단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을 야구계에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 MVP의 영광은 한유섬·김택형에게
캠프에서 가장 인상적인 모습을 보인 선수에게 돌아가는 캠프 MVP는 투수조에서 김택형, 야수조에서 한유섬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통상적으로 20대 초반 유망주들이 캠프 MVP에 선정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결과가 이례적이다.
김택형과 한유섬은 지난 시즌의 부진과 부상을 털어버리고 올 시즌 다시 도약해야 하는 선수들이다. 김택형은 지난해 제구 문제로 2군에 머무는 시간이 길었고, 한유섬은 봄과 가을에 한 차례씩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1군에서 제 기량을 발휘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김원형 감독은 사령탑에 오른 직후 기자회견에서 올 시즌 정상 궤도에 올라야 할 선수로 한유섬을 첫손에 꼽았고, 김택형 역시 더 성장해야 할 선수라고 지목했다. 두 선수가 캠프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MVP로 뽑혔다는 것은 선수들 개인에게도 팀에도 청신호다.
김원형 감독은 한유섬에 대해 “자기 것을 만들고자 철저하게 노력하는 모습이 돋보였다. 그런 노력들이 청백전에서 좋은 타격과 수비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택형에 대해서도 “예전과 달라지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좋았다. 단순히 하루이틀에 그친 노력이 아니라 캠프 기간 꾸준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많이 발전했다”고 칭찬했다.
두 선수는 캠프에서의 좋은 분위기를 시즌 끝까지 유지하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한유섬은 “MVP에 선정될 줄은 몰랐다. 나이가 많은 내가 MVP가 되니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며 “출발이 좋은 만큼 즐거운 일이 많은 한 시즌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택형은 “캠프 내내 일정한 투구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전체적인 밸런스가 일정하게 유지되면서 투구 내용이 많이 좋아진 것 같다”며 “팀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최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