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배울 때 가장 처음 접하는 것이 ‘ABCD’ 순으로 나가는 알파벳이다. 알파벳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없다. 육성과 점진적 리빌딩 기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SK의 최근 화두도 어쩌면 ‘ABCD’였을지 모른다. 더 높은 수준을 위해 가장 기초적인 단계부터 차근차근 다졌다. 활동기간의 끝자락인 11월의 화두였다.
SK는 29일로 2017년 선수단 일정을 사실상 마감한다. 지난 달 27일부터 일본 가고시마현 사쓰마센다이에 마무리캠프를 꾸렸던 선수단이 29일 귀국한다. 인천SK행복드림구장과 강화SK퓨처스파크로 나뉘어 마무리훈련을 했던 선수들도 29일로 공식 훈련을 끝내고 비활동기간으로 돌입한다. 각자 훈련 일정은 달랐지만 화두는 전체적으로 동일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았던 것을 ABCD로 정리했다.
‘Ace’ 김광현, 복귀 시동 걸었다
가고시마 마무리캠프에서 가장 반가웠던 이름은 단연 김광현이었다. 올해 1월 팔꿈치인대접합수술(토미존 서저리)을 받고 전열에서 이탈한 김광현은 그간 남모를 땀을 흘리며 재활에 매진했다. 다행히 경과가 좋다. 철저한 자기관리 덕에 한 번도 전 단계로 돌아가지 않고 속도를 냈다. 오히려 구단이 김광현의 ‘오버 페이스’를 걱정할 정도다.
이번 가고시마 마무리캠프는 김광현의 그간 재활 성과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불펜에서 90% 이상의 힘으로 공을 던지는 단계였기 때문이다. 설사 통증이 재발할까봐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김광현은 불펜 피칭을 무난하게 소화하며 내년 정상 복귀의 청신호를 쏘아 올렸다. 통증이 없었던 만큼 다음 단계로 나아갈 발판을 마련했다. 의도적으로 시즌 출발을 늦추겠지만, 현재 페이스라면 내년 개막 대기도 가능하다.
김광현은 2월 스프링캠프에서 다른 선수들과 동일한 일정을 소화하는
게 목표다. 지금 추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구단도 희망을
봤다. 전략도 분주히 짜고 있다. 김광현의 팔꿈치에 부하를
주지 않기 위해 철저히 이닝을 관리할 예정이다. 일단 매주 금요일에 등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다른 선수들과의 일정을 맞춰 추가 휴식을 줄 예정이다. 마운드의
가장 중요한 퍼즐이 복귀 채비를 갖추고 있다.
‘Bullpen & Base running’ 17시즌의 아쉬움을 극복한다.
SK의 2017년을 돌아볼 때 가장 아쉬움이 남았던 것은 역시 불펜과 베이스러닝이었다. 항상 불펜 전력이 좋았던 SK이기에 올해 성적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베이스러닝도 주루사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긍정적인 수확을 거뒀으나 ‘공격적인 베이스러닝’이라는 당초 목표를 모두 이루지 못했다는 게 내부의 냉정한 평가다. 이번 가고시마 캠프의 주된 화두로 떠오른 것은 당연했다.
손혁 투수코치의 부임으로 SK 불펜도 활기가 돈다. 시즌 막판 제 구위를 찾기 시작한 서진용이 내년을 벼르고 있고, 백인식이 정상적으로 복귀했다. 한국에서 훈련을 소화한 베테랑 선수들도 충분히 피로를 풀며 내년에 대비했다. 손 코치는 “올해는 아무래도 성과가 좋지 않다보니 선수들 스스로 위축되는 부분이 있었다”면서 “더 좋아질 가능성이 충분한 선수층이다”라고 확신했다. 내년 스프링캠프까지 치열한 경쟁이 이어질 전망이다.
주루는 업그레이드를 시도했다. 주루의 정확도 자체는 높아졌지만, 아직도 소극적인 점이 있다는 게 정수성 코치의 이야기다. 거포 자원들이 많아 뛰는 야구가 쉽지 않다는 한계도 있었다. 하지만 젊은 선수들이 가능성을 내비쳐 정 코치의 얼굴에도 미소가 폈다. 박승욱, 정진기, 조용호 등 지난해에도 지도를 받은 선수들은 물론, 박성한, 안상현, 최민재, 이재록 등 뛸 수 있는 어린 선수들의 발견에 의의를 뒀다. 점진적인 발전이 기대된다.
‘Contact’ 거포 군단에 정교함을 더하라
SK는 올해 역대 한 시즌 팀 홈런 신기록을 달성했다. 무려 234개의 대포를 쏘아 올리며 KBO 리그 역사에 획을 그었다. 2~3년 전부터 추구한 ‘홈런 프로젝트’가 빛을 발한 한 해였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정확도는 떨어졌다. SK의 팀 타율은 2할7푼1리로 리그 최하위였다. 홈런과 타율은 대개 상충 관계를 갖는 경우가 많지만, SK 타선이 더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는 이 수치가 개선되어야 한다.
구단이 강조하는 것은 ‘생각하는 타석’이다. 확실한 목표의식과 자신의 폼을 가지고 들어가야 정확도도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상황에 맞지 않는 타격이 많이 나왔다는 게 구단의 반성이다. 이에 자신의 확고한 이론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가고시마 캠프에서는 야간 훈련의 비중을 줄이고 비디오 분석을 통한 활발한 토론이 이어졌다. 잘못된 폼과 생각으로 백날 방망이를 돌려봐야 소용없다. 확실한 진단과 개선 방향이 선수의 머릿속에 있어야 한다.
선수들의 의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자평하는 가운데 기술적인 부분에서의 대폭적인 수정이 이뤄진 선수들도 있다. 올해 타격이 부진했던 이재원은 점차 자신의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는 호평을 받았다. 가장 좋아진 선수는 최승준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욕심을 버리고 타격폼을 간결하게 수정한 결과 타구질이 좋아졌다. 정진기 등 나머지 선수들도 시즌 중 잠시 미뤘던 타격 매커니즘 수정에 박차를 가했다. 정확도가 좋은 최민재도 수확이었다. “더 좋아질 일만 남았다”는 게 솔직한 자신감이다.
‘Defence’ 방패 점검, 승부는 수비가 가른다
시즌을 치르다보면 쉽게 이기는 날도 있고, 비교적 일찍 포기하는 날도 있다. 그래서 야구는 3할3푼3리와 6할6푼6리 사이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실제 순위표를 보면 10개 팀이 대개 다 이 범위에 몰린다. 이 차이를 가르는 것은 결국 박빙 승부에서의 강인함이고,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수비다. 실책 하나, 혹은 보이지 않는 사소한 부분 하나가 승패를 가르는 경기는 숱하게 많다.
수비는 SK의 최근 몇 년 과제였다. 하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는 없다. 2016년 SK의 수비율은 9할7푼8리로 리그 8위였다. 올해는 9할8푼으로 소폭 올랐으나 순위는 똑같이 8위에 머물렀다. 이 수치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표는 확고부동하다. 한순간에 개선될 문제는 아니지만, 인내를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이번 가고시마 캠프에서도 수비 훈련에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다행히 가능성이 보이는 선수들이 많다. 이번 캠프에서 2루 수비를 봐 화제를 모았던 조용호는 무난하게 수비 훈련을 수행했다. 또래 유격수 중 수비 하나는 최고로 평가받는 박성한은 가파른 성장세를 선보이며 눈도장을 받았고, 안상현은 타고 난 센스를 바탕으로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박승욱에 대한 기대치는 여전하다. 그 외 외야수들도 강훈련을 통해 경험과 자신감을 쌓았다. 정진기는 1루 수비를 병행했는데 기대 이상이라는 평가였고, 이재록은 수비 하나만 놓고 보면 당장 1군에서도 쓸 수 있는 수준이라는 호평이었다.
OSEN 김태우 기자(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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