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 Ik Rae Choi Photographer Ikjo Choi

더그아웃 매거진은 지난 51호, 두산 베어스 치어리더 팀을 만나 무대 위 화려한 일상에 대해 들어봤다. 반응은 좋았고 결과적으로 더그아웃 매거진 51호가 ‘완판’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궁금했다. 단상 아래에서 느끼는 그들의 삶은 어떨까? 치어리더라는 직업이 과연 남들의 시선처럼 화려하기만 한 직업일까? 그러던 차, 더그아웃 매거진은 또 한 번 여신들을 영접할 기회를 얻었다. ‘SK부심’으로 가득찬 SK 와이번스 치어리더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단상에서 내려온 그녀들의 유쾌한 수다를 더그아웃 매거진이 몰래 엿들었다.



더그아웃 매거진(이하 D) :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렇게 미녀들 사이에 둘러싸여 인터뷰 한 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 텐데요. 우선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배수현 : 반갑습니다. ‘유부녀 치어리더’ 배수현입니다!

강윤이 : 안녕하세요! SK에 새로 합류하게 된 강윤이입니다.

오지연 : 치어리더 팀장 오지연입니다! 반가워요!

이소연 : SK 응원팀의 분위기 메이커! 이소연입니다.

변형경 : 응원석에 팬분들이 한 분씩 늘어갈 때 가장 행복한 변형경입니다.

차영현 : 응원가 얘기 하는 시간이야? 저는 브라운 응원가를 좋아하는 차영현입니다.

김다희 : 저는 불티 응원할 때 제일 신나는 김다희입니다.

김현지 : 박정권 선수 응원가를 가장 좋아하는 김현지입니다.



희(喜) : 단상이 주는 기쁨

D : 이번 인터뷰는 조금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할까 합니다. ‘치어리더의 희·로·애·락’이라는 컨셉인데요. 여러분들께서 각각의 키워드에 맞춰 편하게 이야기를 나눠주세요! 제가 질문하는 것보다 조금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먼저 치어리더의 희(熙)입니다.

배수현 : 기쁜 순간? 뭐가 있을까.

오지연 : 언니 어제 드림팀 나갔었잖아요! (인터뷰 일자는 7월 27일. 바로 전날인 26일, KBS2 TV 예능프로그램 출발! 드림팀에 배수현 치어리더가 출연했었다.)

배수현 : 일찍 탈락했으니까 그건 기쁜 게 아닌 것 같은데? (웃음)

이소연 : 에이~ 아니에요! 그 자체가 하나의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같은 후배들에게 하나의 길을 보여주신 거니까요.

김다희 : 인터뷰 시작부터 오글거려. (웃음) 각자 치어리더가 되면서 처음 단상에 올랐을 때 기쁘지 않았어? 어떻게 치어리더가 됐는지부터 얘기하면 될 것 같은데?

이소연 : 나는 친구가 같이 해보자고 해서 시작했어. 친구 따라 단상에 온 것 같아. 뭐 대단히 준비를 많이 하거나 그러진 않았으니까. 무대에 선 저를 상상한 적은 한 번도 없고. 끼가 전혀, 정말 전~~혀 없었으니까.

오지연 : 사실 나도 딱히 끼가 있는 스타일은 아니었어. 학교 다닐 때 조용조용하고, 정말 평범했으니까. 그런데 나도 소연이처럼 친구 추천으로 일을 시작하게 된 거야. 끼가 없어서 처음에 정말 힘들었지. 독기가 있어서 될 때까지 오기로 버틴 편인 것 같아.



D : 치어리더라는 게 끼 없는 사람은 정말 힘들 것 같은 직업이에요. 그럼 반대로 치어리더 팀 중에 가장 끼가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치어리더 전원 : 오.지.연. 치어리더입니다! (전원 웃음)

오지연 :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돼. (웃음) 노력한 거죠. 말씀드린 것처럼 오기 하나로!

김다희 : 그런데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은 분명히 있어. 그렇게 보면 지연이는 타고난 거지. 표정부터 몸짓 하나하나가…, 어휴. 예술이야 진짜.

강윤이 : 수현 언니는 얼마 전에 머슬매니아 대회에 나가서 입상하기도 했는데, 그 때도 기쁘지 않았어요?

배수현 : 사실 내가 결혼하면서 은퇴 했었잖아. 그러다 다시 단상에 서게 된 건데. 나이 많은 내가 후배들에게 민폐 끼치지 않으려면 결국 철저한 자기관리 밖에 없을 것 같더라고. 은퇴 전에도 운동은 많이 했지만, 복귀 후에 더 신경 썼어. 나 하나 때문에 SK 치어리더 팀이 욕먹으면 안 되잖아. 그래서 ‘치어리더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머슬매니아 대회에 나간 거야. 아쉽게 2위 했지만 준비기간에 비해 좋은 성과를 얻은 것 같아서 뿌듯했어.

변형경 : 확실히 언니가 이렇게 결혼 후에도 좋은 모습 보여주는 게 후배 입장에선 다행스러워요. 치어리더는 일찍 은퇴한다는 편견이 있는데, 그걸 다 깨주고 있으니까요.

차영현 : WBC 피트니스 대회에서도 3관왕! 확실히 치어리더가 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것 같아서 언니한테 되게 고마워요.

배수현 : 내가 너희에게 매번 운동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야. 사실 팬들도 경기장에서 쉽게 운동할 수 있거든. 야구장에서 서서 응원하는 경우가 많잖아? 그때 까치발만 해도 운동효과가 커. 막대풍선 들었다 내렸다 이런 것도 그렇고. 그렇게 생활에서 조금씩 바뀌어도 건강을 찾을 수 있으니까.



노(怒) : 단상이 주는 아쉬움

키워드 – 치어리더란?

이소연 : 치어리더란? 극.한.직.업. (웃음)

차영현 : 진짜 맞는 말이네. 연습량이 많기 때문에 보이는 거랑 달리 몸이 많이 힘들어. 파스 붙이는 거야 일상이지.

변형경 : 나는 쉴 때마다 책을 읽잖아. 취미가 독서니까. 그런ㄷ…,

오지연 : 너 책 읽는 거 한 번도 못 본 것 같은데? (웃음)

변형경 : 무슨 소리야. 책을 달고 사는데. (웃음) 아무튼 ‘수면 위를 여유롭게 떠다니는 백조가 유난히 우아하고 화려해 보이는 까닭은, 물 아래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는 두 갈퀴의 쉼 없는 노력 때문이다’라는 말을 책에서 읽었어. 이게 치어리더와도 어울리는 것 같아. 겉보기엔 화려하지만, 남모르는 고통이 정말 많으니까.

배수현 : 우리는 특성 상 몸매 관리를 해야 하잖아? 경기 전에 복싱장에서 운동 하고, 관객 입장 1시간 전에 경기장 도착해서 대기실에서 연습하고. 그 루틴의 반복이 참 쉽지 않은 것 같아. 경기하는 세 시간은 빙산의 일각이지 일이 참 많은 것 같긴 해.

차영현 : 서울 사는 사람은 왔다갔다만 하면 하루가 끝나. 출근만 두 시간 걸리니까. 연장 가면 막차 끊길 때도 많고.

오지연 : 운동량이 많으니까 그만큼 다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아. 보이는 것과 달리 많이 뛰기도 하고.

김현지 : 보이는 것도 많이 뛰는 것 같아요. (웃음)

오지연 : 윤이는 발목 수술 후 재활 중이잖아. 많이 나아져서 공연은 하지만 아직 조심해야 돼. 사람들이 야구장 체력 소모 1위가 매점 아줌마, 2위가 치어리더라고 매겨놨더라고.

배수현 : 매점 이모는 범접할 수 없어. 우리는 수비 때라도 쉬고 있는데 매점 이모는 계속 서있으니까.

강윤이 : 재활 얘기가 나왔는데, 이제 100%는 아닌데 엄청 많이 좋아졌어. 조금만 더 재활마저 하면 일상생활 무리 없을 정도? 그래서 지금은 마음이 되게 편해. 재활도 프로 선수들보다 더 좋게 받고 있어서 이래도 되나 싶고. 너희도 대부분 내가 언니인데도 도와주려고 하잖아.

김다희 : 맞아. 결국 심리적인 부분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 힘든 것도 마찬가지야. 아무래도 웃어야 되는 직업이잖아. 단상에서는 무조건 웃어야 하니까.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나 기분 안 좋은 일 있을 때 억지로 웃어야 하는 게 힘든 것 같아.

이소연 : 큰 점수 차로 지고 있으면 확실히 힘들어. 분명히 힘든데, 관중들이 함께 안 해주시는 게 더 힘들어. 관중들이 같이 해주시면 0-20으로 지고 있어도 힘이 날거야. 그런데 관중분들이 안 해주시니까 우리는 오히려 배로 힘들지. 벽보고 하는 것 같고. 아무리 일어나라고 독려해도 아무도 안 일어나시니까.

배수현 : 또 야외스포츠는 해가 강한 날에 몇 배는 힘들지. 아무래도 날씨에 영향을 받으니까. 땀도 많이 나고.

김다희 : 맞아요. 그래서 우리는 항상 속옷을 두 벌 가지고 다니잖아요.

김현지 : 또 원정경기 땐 대기실이 없어서 일반 팬들 다니시는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잖아요.

김다희 : 아까 형경이가 말한 백조처럼 겉으론 화려한데 그런 고충이 있으니까 열악하지. 오지연 : 만약 홈팀 치어리더 중 친분 있는 사람이 있다면 대기실 놀러가서 갈아입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특별한 경우지.



키워드 – 체력관리 비결

배수현 : 체력관리? 다른 거 있나. 먹는 거지. (웃음) 근데 우리 진짜 다 잘 먹는 것 같아.

D : 이해가 안 돼요. 사실 저처럼 뚱뚱한 사람이 어디 가서 많이 먹는다면 다들 믿거든요. (에디터의 별명은 ‘파오후(많이 뚱뚱한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다.) 그런데 이렇게 마른 사람들이 많이 먹어봤자 저한텐 안 될 것 같은데….

차영현 : 보면 진짜 깜짝 놀랄걸요? 역시 처음엔 다들 이런 반응이지. (웃음) 일반인들보다 세 배는 먹는 것 같아. 정말, 엄청, 많이, 매우, 몹시, 무지, 되게, 진짜, 대단히 많이 먹는 것 같아.

오지연 : 케이크 큰 거 한 판 사놓고 혼자 먹고. 피자 두 세 조각씩 겹쳐서 먹고. 경기 때 밥 안 챙겨주면 표정도 변하고. (웃음)

배수현 : 우리가 거기에 유독 민감해서. (웃음)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어도 밥만 먹을 수 있으면 괜찮아.

김다희 : 화장실에서 밥도 먹을 수 있어요. (웃음)



애(哀) : 단상이 주는 슬픔

키워드 – 치어리더가 된 걸 후회한 적이 있다?

김다희 : 우리가 야구 경기 말고 일반 행사도 종종 가잖아. 아무래도 치어리더가 노출된 의상 입는 경우가 많은데, 짓궂은 분들이 기분 나쁜 행동 하실 때가 있어. 되게 수치스럽지. 면전에 대놓고 신체접촉까지 하시니까요. 실망스럽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배수현 : 그래도 지금 응원문화는 많이 성숙해진 것 같아. 내가 2003년부터 단상에 올랐는데 지금은 팬문화가 정말 성숙해졌어. 치어리더에 대한 이미지 자체도 그때에 비해 업그레이드 됐고. 그땐 치어리더라는 직업이 남자들의 성적인 부분에 치우쳤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며 치어리더가 방송도 출연하고, CF도 찍잖아.

차영현 : 언니, 저는 육체적으로 되게 힘들게 일하고 돌아왔는데 아무도 몰라줄 때가 힘들었어요.

치어리더 전원 : 왜 울려고 해? 울어라! 울어라! (웃음)

김현지 : 지연 언니가 가진 재능이 저에게는 없는 것 같아요. 부족함이 보일 때가 많아요. 그럴 때 슬프죠.

오지연 : 나도 처음엔 끼가 정말 없었다니까. 독기 품고 노력하면 실수도 줄여나갈 수 있을 거야.

변형경 : 처음엔 악플도 되게 상처였어. 뭐 응원동작 실수나 그런 건 얼마든지 비판받아 마땅한데. 성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건 진짜 상처였지.

이소연 : 난 이제 그러려니 해. ‘엽사’라고 하잖아? 이상한 표정으로 캡쳐된 사진들. 그런 것도 상처였는데 이젠 익숙해진 것 같아.

오지연 : 난 요즘 그런 사진 모으는 취미가 생겼어. 우리끼리 모이면 그거 보내면서 서로 디스하잖아. (웃음) 얼굴 확대해서 짤 보내주고. 이제는 ‘신박한 거 없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악플도 즐기고.



D : 최근 사진기자 이외의 일반 팬들까지 고가의 장비를 동원해 근접 사진을 찍잖아요. 아무래도 여러 가지가 신경 쓰일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이소연 : 앵글이 살짝 애매하신 분들이 있어요. 어차피 단상 아래에서 찍으실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가끔 유독 앵글이 애매하게 찍으시는 분들이 있어요. 이게 가끔 느껴지거든요.

차영현 : 저는 예쁘게 찍어주신다면 뭐 상관없던데요? (웃음)

김현지 : 맞아. 또 사진 찍을 때 무조건 팔짱 끼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사실 팔이 노출된 부분이니까 그냥 맨살이잖아. 오히려 우리가 경기 도중 땀 흘려서 팬들이 찝찝하실까봐 완곡히 거절해도 고집하시더라고. 여자로서 조금은 기분 나쁜 것 같아.

변형경 : 이제는 감흥이 없어. 처음에는 되게 싫고, 단상 내려가고 싶고 그랬는데. 지금은 ‘찍으세요~ 마음껏 찍으세요~’ 이런 느낌이야.


키워드 – 치어리더가 여자친구라면?

오지연 : 연애문제. 이것도 신경 안 쓸 수 없지. 처음에 만나면 우리 직업을 보고 되게 좋아하더라고. 그런데 만나다 보면 그게 싫은 거죠. ‘내가 좋아했던 그 모습이 싫어지는 거’는 되게 슬픈 거잖아.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이 내 여자친구한테 뭐라 하고, 사진 찍고. 그런 것들이 견디기 힘들겠지?

김다희 : 생활 패턴이 안 맞는 것도 되게 큰 부분 같아. 대부분 주말에 쉬는데 우린 주말에 일하니까. 그런 것 땜에 싸우고, 트러블이 생기면 오래 만나기 힘들지. 그래서 연애를 안 합니다! (웃음)

배수현 : 난 정말 다행인 게, 오히려 시댁에선 하고 싶으면 하라고 응원해주셨어. 남편도 나를 배려해주고 존중해주는 사람이고. 만약 남편이나 시부모님이 반대했다면 복귀 결정이 쉽진 않았을 거야.

이소연 : 이야! 역시 언니 사랑꾼. (웃음) 여러 모로 닮고 싶은 게 많아요.



낙(樂) : 단상이 주는 즐거움

키워드 - SK 응원단만이 가진 특색

오지연 : 특색? 아무래도 팬들과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게 아닐까? 단상이랑 응원석의 물리적 거리도 그렇고.

김다희 : 그렇지. 팬들 나갈 때마다 일일이 하이파이브 하고, 경기 졌을 땐 서로 독려도 하고.

변형경 : 가로 전광판에 가사가 나오는 것도 좋은 것 같아. 팬들이 따라 하기 쉬우니까. 가로 전광판을 도입한 건 SK가 국내 최초니까 뿌듯하기도 하고.

강윤이 : 그럼 다들 치어리더 하면서 언제가 가장 기뻤어? 기억에 남는 한 순간.

오지연 : 우승했을 때. 진짜 치어리더하길 잘했다고 생각했어. 2010년엔 막내여서 대구엔 안 갔는데 집에서 봐도 울컥울컥 하더라고.

차영현 : 우승은 못해봤는데. 관중들이 응원 엄청 열심히 해주시고, 메시지로 응원해주실 때 힘이 굉장히 솟아나는 것 같아.

이소연 : 난 내가 응원하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 보인다’고 칭찬해주실 때? 진심이 우러나는 거 있잖아. 그런 한마디 한마디가 참 힘이 되는 것 같아.

김다희 : 나는 내가 치어리더를 하면서 성격이 변한 걸 느꼈을 때 ‘치어리더 하길 잘했구나’싶었어. 전에는 소심하고, 남들 앞에 서면 위축되는 사람이었거든. 그런데 지금은 자신감도 붙고 사람들이랑 잘 어울리게 됐어. 만약 단상에 서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런 성격으로 살았겠구나 싶으니까 다행이지.


D : 긴 시간 수다 나누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웃음) 마지막으로 SK 팬들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한마디씩 부탁드릴게요!

변형경 : 저희 응원할 때 다같이 일어나서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저희도 응원할 맛이 나고, 신날 텐데요. 연안부두 같은 노래 떼창할 때 일어나면 멋있는데 소심하고 눈치 보는 분들이 많은 게 아쉬워요.

강윤이 : 처음인데 이렇게 예쁘게 봐주셔서 정말, 너무 감사드려요. 제 몸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모습 보이겠습니다. 이 친구들이랑 같이 화합하고, 단상에서 웃는 모습 많이 보여드리고.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드릴게요. 지금은 정말 이 말씀만 드리고 싶어요.

김다희 : 이길 땐 열심히 하지만, 지고 있으면 먼저 가시는 분들이 많아요. 이기든 지든 같이 기복 없이 했으면 좋겠어요.

이소연 : 형경이랑 비슷한데, 외야 쪽에도 개인단상이 있어요. 외야는 응원 안 하려고 오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래도 선수들이 기운 얻으려면 응원은 필수예요. 그게 승리로 이어지고요. 덥고 힘들어도 같이 힘내주셨으면 좋겠어요.

김현지 : 치어리더들에게 과도한 스킨십은 자제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술 드신 분들이 주로 그러시거든요.

차영현 : 새벽에 페이스북을 통해 전화를 하셔요. 그런데 그게 일반 전화와 달리 거절이 안돼요. 번호를 몰라도 걸 수 있고요.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이랑 이름만 떠요. 그럴 때 잠이 깨고 그러니까 그건 좀 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지연 : 야구장에서 이벤트를 많이 해요. ‘불금데이’라고 금요일마다 경기 끝나고 즐기고 놀거든요. 많은 분들이 저희랑 같이 함께 즐겁게 놀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일요일엔 복고데이라고 컨셉 공연도 하는데 요즘 노래만큼 반응이 좋진 않아요. 쳐다보기라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멍하니 핸드폰 보시면 맥이 정말 빠지거든요.

배수현 : SK 와이번스가 최근 치고 올라가는 흐름이잖아요? 저희 응원단도 언제나 힘차게 응원할 테니 문학구장 1루를 함성으로 채워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정영석 SK 응원단장이 치어리더들에게 보내는 편지

얘들아 반갑다. 이렇게 너희에게 편지를 쓰는 건 또 처음인 것 같은데 되게 오글거리네. 올 여름이 어느 시즌보다 더 더웠잖아. 너희와 함께 큰 사고 없이 여름을 보낸 것 같아 다행이야. 다른 팀 팬들은 아마 모를 거야. SK 팬이 언뜻 보기엔 수가 적어보이지만, 우리는 10개 구단 중 최고의 팬이라고 생각하잖아. 그런 분들 앞에서 응원을 지휘할 수 있는 건 어찌 보면 행운이라고 생각해. 내가 항상 강조하는 것처럼 단상의 분위기는 대기실에서 좌우되니까. 지금처럼만 서로 배려하면서 웃는 얼굴로 경기 준비하자. 남은 시즌, SK가 가을야구에 진출할 수 있도록 선수들에게 기를 주는 우리의 역할, 충실히 수행하자.

Posted by SK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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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멈출 줄 모르는 불방망이로 전 구단 야구팬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는 선수, SK 와이번스 이명기에게 따라다니고 있는 별명이 있다. 바로 ‘진기명기 이명기’다. ‘진기명기’란 진귀한 그릇, 즉 보기 힘든 명품을 뜻하는 말로 스포츠에서는 쉽게 보지 못하는 신기한 명장면을 뜻하기도 한다. 올 시즌 ‘진기명기’ 호수비, ‘진기명기’ 타격감을 전부 보여주며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팬들의 머릿속에 제대로 각인시킨 이명기. 이제 그의 이름 明(밝을 명), 起(일어날 기)처럼 밝게 일어날 준비를 모두 끝마쳤다.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선수이자 훌륭한 야구 실력과 훈훈한 외모, 재치 있는 입담과 센스까지 모두 갖춘 이 시대의 진정한 ‘매력남’ 이명기를 만나보자.

Photographer Jorip Editor Lee Sun Kyung Location Munhak Baseball Stadium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화보 촬영을 먼저 진행했다. 물오른 타격감으로 계속해서 인기 상승 중인 그는 올해 정말 많은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전문 화보 촬영 요청은 더그아웃 매거진이 처음이었고 화보 촬영 경험이 한 번도 없어 많이 어색하고 쑥스럽다고 했다. “포즈 잡고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어려워요. 제가 쑥스러움을 많이 타서요. (웃음) 야구보다 더 어려운 것 같아요.” 하지만 어렵고 어색하다는 대답과는 다르게 이내 화보 촬영에 익숙해졌는지 야구 실력만큼이나 멋진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다.


28경기 연속 안타의 주인공 이명기,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화보 촬영이 끝난 후,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28경기 연속 안타 대기록 달성으로 한국 프로야구 역대 공동 3위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에 대한 축하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웃음) 시합에 나갈 때마다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하다 보니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아요. 제 손으로 28경기 연속 안타를 쳤지만, 만약 다시 그때처럼 해보라고 하면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한 달 조금 넘게 그 페이스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데 그게 실제로는 정말 어렵거든요.”


그가 말한 것처럼 연속 안타 기록은 다른 기록들과는 달리 매 경기 꾸준히 안타를 쳐야 하기 때문에 달성하기 가장 어려운 기록으로 손꼽힌다. 이렇게 어려운 기록을 세웠을 당시 그의 소감을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29경기 연속 안타를 치지 못하고 마지막 타석에서 아웃 됐을 때 아쉬움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그렇지만 제 야구 인생으로 봤을 때 돈으로도 사지 못할 값진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요.”


28경기 연속 안타가 대단한 기록인 만큼 그 기록이 끊길 뻔했던 고비도 여러 번 있었다. 특히 28경기 연속 안타를 친 9월 13일 경기는 말 그대로 정말 극적이었다. 9회 마지막 타석에 들어선 그는 투수 키를 넘기는 빗맞은 내야 안타를 쳤고 끊길 뻔했던 기록을 다시 이어 나가게 된다. “마지막 타석에서 공을 쳤는데 빗맞아서 투수 머리 위로 살짝 넘어가더라고요. 제가 종종 내야 안타도 치는 편이라 투수 머리 위로 공이 넘어가는 그 순간에 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1루 베이스로 전력 질주했어요. 1루 베이스를 딱 밟고 세이프가 되는 순간 기록을 다시 이어갈 수 있어서 좋았지만, 팀이 크게 지고 있어서 좋아하는 티를 많이 낼 수는 없었습니다. (웃음)” 


이명기가 마지막 타석에서 내야 안타를 치기 전까지, 사실 이명기 자신 보다 그의 팀 동료들이 더 애타했는데, 그 모습이 TV 중계 화면에 잡히기도 했다. 이명기가 마지막 타석에서 극적으로 내야 안타를 치며 기록을 다시 이어나가게 됐고, 그제야 더그아웃에 있던 SK 선수들도 한숨을 돌렸다. 그러면서 당사자인 이명기보다 더 기뻐해 줬다. “제가 평소에도 저희 팀 형들과 잘 지내고 있는데요. 그 경기가 끝나고 형들이 저에게 정말 수고했고 대단하다고 칭찬 많이 해주셨어요. 같은 팀 형들로부터 칭찬받으니깐 기분이 정말 좋더라고요.” 평소 같은 팀 동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낸다는 그의 원만한 성격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는 28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달성함으로써 존경하는 선배님이자 한 때는 같은 팀에서 땀을 흘렸던 박재홍 해설위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기록을 진행하는 기간에 박재홍 선배님을 뵌 적은 없었지만, 기록이 끝나고 선배님께서 해설하러 오셨을 때 만나 뵙게 됐어요. 정말 축하하고 수고 많이 했다고 제 어깨를 두드려주시더라고요. 정말 감사했어요.”


그는 박재홍 해설위원 외에도 캐넌히터 김재현 해설위원으로부터 많은 조언을 받았다고 한다. “기록을 세우는 동안에 김재현 선배님이 해설하러 오신 적이 있었어요. ‘앞으로 안타를 계속 쳐야 하는데 그 점에 대해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타석에 들어가서는 네 볼만 치라’고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셨죠. 저는 정말로 그 조언을 듣고 난 이후에 그것만 생각하고 타석에 들어갔어요. 그 결과 엄청난 기록을 달성하게 됐잖아요. 저에게 정말 큰 도움을 주신 것 같아요. 김재현 선배님은 제가 어렸을 때 주장을 맡아 저를 이끌어 주신 적도 있었기 때문에 저한테는 특별한 선배님이신데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셔서 감사드려요.”


그가 28경기 연속 안타를 치는 동안 SK는 17승 10패 1무를 기록하며 이명기가 잘할 때 팀 역시 웃는 경우가 많았다. 이명기가 27경기 연속 안타를 쳤던 경기에서는 SK가 팀 통산 1000승을 달성하기도 했다. “27경기 안타를 칠 때는 연속 안타 기록에 대한 관심을 받을 때라서 부담이 됐었는데 그래도 첫 타석에 안타가 바로 나와서 부담을 덜고 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 안타가 팀 통산 1,000승에 어느 정도 보탬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명기는 27경기 연속 안타 기록과 팀 통산 1,000승, 둘 중에 어떤 것을 더 기뻐했을지 궁금해졌다. “사실 1,000승은 내일 할 수도 있는 건데…. (웃음) 연속 경기는 당일 당일이 기록이잖아요. (웃음)” 라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그 말을 듣고 있던 SK 홍보 직원이 ‘보고 해야겠다.’고 장난스럽게 말을 꺼내자 그는 “둘 다 좋았어요.”라고 대답을 바꾸며 시원하게 웃어 보였다.



그가 세운 28경기 연속 안타는 정말 대단한 기록이다. 30년이 넘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이명기가 세운 28경기 연속 안타보다 더 많은 연속 안타를 기록했던 선수는 31개의 연속 안타를 친 롯데 박정태와 39개의 연속 안타를 쳤던 삼성 박종호 두 명뿐이었다. 이명기는 박정태와 박종호를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후보로 뽑혔다. 그렇기 때문에 연속 안타 기록을 바라보는 팬들의 간절함은 무척 컸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명기는 9월 14일 경기에서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며 8회 초 대수비로 교체됐고, 28경기 연속 안타에서 기록을 마감하게 된다. 역대 최장 연속 안타를 기록할 수 있는 유일한 후보로 여겨졌기 때문에 팬들의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었다. 9회에 타순이 돌아오게 된다면 다시 한 번 기회가 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7회 마지막 타석에 들어서기 전에 이번 타석 이후에 교체될 것이라고 어느 정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마지막 타석에서 정말 많은 집중을 했었는데 결과는 아웃이었죠. 그래도 그렇게 큰 아쉬움은 없었던 것 같아요. 네 번이나 타석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다 못 쳤던 거잖아요. 팀 승리도 중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더 큰 기록을 세울 수 있었는데 대수비로 교체되어 선수 본인은 아쉬움이 더 클 것 같았다. “대수비로 교체된 것에 대해서는 전혀 아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그 날 경기 타석에서 조금 머뭇거렸던 것이 아쉽더라고요. 첫 타석에서 슬라이더를 툭 쳐서 아웃 됐는데 그다음 타석부터 슬라이더만 생각하다 보니깐 직구에 방망이가 잘 안 나갔거든요. 경기가 끝나고 난 이후에 생각해보니깐 그게 가장 아쉬웠던 것 같아요.”


이어 그는 28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마감했을 당시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제가 어느 정도 연속 안타 목표를 잡은 상태였어요. 39경기까지는 많이 남아 있는 상태였고 31경기가 단일 시즌 최다였기 때문에 31경기를 목표로 잡았었죠. 그래서 앞으로 3경기만 더 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결국 28경기 연속 안타로 마감하게 됐잖아요. 그 이후에 아시안게임 휴식기로 보름 정도 쉬었는데 쉬면서 ‘보름 동안 더 스트레스받을 바에는 오히려 미리 끝난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웃음)”


연속 안타를 세우는 기간 동안 그는 또 다른 잊지 못할 기록도 세운다. 9월 5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5타수 5안타 2타점 3득점을 기록하며 절정의 타격감을 선보인 것이다. 특히 3루타만 쳤으면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3루타가 마지막 타석에서 남았던 것이 아니라 마지막 타석에서 홈런을 치면서 3루타가 남았던 거라 크게 아쉽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 날 제가 야구하면서 안타를 제일 많이 쳤던 날이라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고 다시 생각해도 정말 기뻐요.”


이렇게 미친 타격감을 선보이고 있는 그는 5월부터 9월까지의 월간 타율이 모두 3할이 넘는 꾸준함까지 보이며 완벽에 가까운 선수로 진화하고 있다. 그의 꾸준함의 비결은 ‘집중’이었다. “저는 확실하게 주전이 보장된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이기고 있는 경기든 지고 있는 경기든 제가 나가는 한 타석에 항상 집중했어요. 왜냐하면 안타를 못 치면 다음 날 경기에 못 나가는 시절을 겪기도 했었고 항상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 타석 한 타석이 소중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높은 타율이 나오게 된 것 같아요.”


꾸준함 외에도 또 하나의 주목해야 할 점은 우 투수, 좌 투수, 언더 투수를 가리지 않고 모든 종류 투수를 상대로 좋은 성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인터뷰 전날 안타를 추가하면서 총 안타 94개를 기록 중이었다. (10월 6일 기준) 앞으로 남은 경기 동안 안타 6개를 추가하면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세 자릿수 안타를 기록하는 것이다. “저희가 지금 6게임 남았는데요. 남은 경기에서 안타를 계속 친다는 생각 보다는 좋은 공을 골라서 출루할 생각이에요. 좋은 공을 골라 치다 보면 볼넷으로 나갈 수도 있는 거고 또 좋은 공을 쳐야 좋은 타구도 나오잖아요. 안타 욕심보다는 출루를 많이 한다는 생각으로 타석에 들어설 생각입니다.” (이후 10월 15일 잠실 두산전에서 데뷔 첫 100안타 달성)


또한 평소 그의 타격 모습을 보면 잡아당기는 타격 보다는 밀어치는 타격을 주로 한다. 프로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선택이었다. “제가 2군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작년부터 1군에서 시합을 뛰게 되면서 투수들이 몸쪽 승부보다는 바깥쪽과 변화구 승부를 많이 한다는 걸 알았어요. 그러다 보니 제 스윙 자체가 그쪽에 맞춰서 약간 변형된 것 같아요. 아무래도 바깥쪽 공과 변화구는 포인트를 늦게 잡고 쳐야 좋은 타구가 많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밀어치는 타격이 많아진 것 같아요.”



SK 와이번스로 입단, 힘든 시간을 버텨내고 꽃을 피우다

이명기는 인천고 시절, 고교야구 3대 외야수로 꼽힐 정도로 출중한 실력을 갖춘 선수였다. 이를 인정받아 2006년 2차 지명 8라운드 전체 63순위로 SK 와이번스에 입단한다. 지명 당시 SK 스카우팅 리포트에는 ‘막강 인천고를 이끌었던 공수주 삼박자를 갖춘 기대주로 안산공고 에이스 김광현이 가장 무서워하는 상대로 주저 없이 지목한 실력파 선수’라고 적혀 있었다. “(김)광현이가 한 인터뷰를 고등학교 때 우연히 봤었는데 말을 좋게 해줘서 제가 그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웃음) 그때 당시 좋은 선수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저를 지목해줬잖아요. 만약에 광현이가 미국 진출해서 잘한다면 제 자식들한테 자랑 좀 하려고요. (웃음)”


하지만 그는 입단 이후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었다. 2011년 군 복무 이전까지 1군 출장은 단 14경기로 유명보다는 무명에 가까운 선수였다. “그때 당시 저희 팀 외야수들의 실력이 저 보다 다 좋았어요. 저는 형들에 비해 타격이나 수비, 주루 등이 조금씩 부족했고요. 그래도 김성근 감독님께서 저에게 어느 정도 시합을 내보내 주려고 하셨는데 제가 경기 나갔을 때마다 결과가 다 좋지 못했죠. 기술적으로나 멘탈적으로 약간씩 부족하지 않았나 싶어요. 수비를 나갔을 때는 경험이 없다 보니 잔 실수도 많이 했었고, 타석에서는 야간 게임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공이 정말 잘 안 보였어요. 그래서 얼토당토않게 스윙을 했었죠. 그러다 보니 1군에 올라왔을 때 자신감이 떨어지더라고요. 또 1군 출장 기회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몇 타석 들어가지 않는 상황에서 뭔가 보여 줘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있었어요. 그래서 욕심을 내게 됐고, 이런 점들이 계속 반복되면서 안 좋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그는 군 입대 전까지 5년 동안 2군 생활을 버텨냈다. “제가 2군에서 5년 정도 생활했는데 그때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 나름대로 야구를 열심히 했고 또 야구를 주로 생각하면서 다른 모든 걸 절제하고 살았는데 결과가 좋지 못하니깐 ‘여기까지가 내 한계인가.’ ‘내가 재능이 없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의욕이 떨어졌어요.”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그는 2011년에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시작하며 야구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야구가 하기 싫어졌던 그는 군 복무를 시작한 후 1년 동안 아예 야구를 손에서 놓아 버렸었다고 고백했다. “1년 동안 그냥 놀고 있었는데 미리 군대를 다녀온 동기들이 1군에서 뛰고 있는 모습을 TV 중계로 보게 됐었어요. (김)재현(8번)이나 (김)성현이가 경기를 뛰는 걸 보니깐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어요. 또 운동선수가 1년을 쉬다 보니깐 몸이 근질거리기도 했고요.” 동기들로부터 자극을 받은 그는 새로이 마음을 다잡았다. 몸도 만들고 야구 연습도 다시 시작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상무나 경찰청이 아니었기 때문에 야구 연습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공익근무를 마치면 5시, 6시 정도였는데요. 근무가 끝나고 나면 바로 인천고등학교로 달려갔어요. 제가 인천고등학교 출신이기도 하고 인천고등학교 학생들이 야간연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천고등학교 학생들과 같이 야구 연습을 했었어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야구 연습을 하며 서서히 꽃 피울 준비를 시작했던 것이다.


흔히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 철이 든다고 말한다. 이명기 역시 군 복무를 통해 스스로를 변화시켰다. “사실 군대 가기 전에는 야구하면서 실수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그런데 군대를 다녀와서는 그런 두려움 보다는 잘해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변화하게 됐어요. 그리고 1년 동안 쉬면서 백수생활도 할 짓이 못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웃음) 사람은 역시 일을 해야 해요. (웃음)”



이명기는 군 제대 이후인 2013년에 그의 응원가에 나오는 ‘초신성’처럼 화려하게 등장한다. 에디터가 ‘초신성’이라는 단어를 말하자 이명기는 엷은 웃음을 띠며 응원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바꿔 달라고 하려고요. (웃음) 저는 신경을 잘 안 쓰는 편인데 야구장 오는 제 주변 분들이 동요 같다고 하세요. 저는 강한 스타일의 곡이 더 좋아요. (웃음)” 그러자 SK 홍보 직원이 응원가를 책임지고 바꿔주겠다며 굳은 약속을 했다. 아마 다음 시즌에 SK 팬들은 강렬한 음악으로 이명기를 응원할 수 있을 것이다.


응원가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운 뒤, 군 복무 이후의 이야기를 마저 이어 나갔다. 군 제대 이후 2013시즌에 복귀한 그는 시즌 초반에 이명기라는 이름 세 글자를 천천히 알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5월 8일 경기에서 수비 도중 발목 인대 부상을 당하게 된다. 부상을 당했을 당시만 해도 큰 부상이 아닐 거라는 소식이 들렸지만, 결과는 시즌 아웃이었다. “제가 야구를 하면서도 크게 다쳐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처음 다쳤을 때도 그냥 발목이 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다음날 일어나 보니깐 발목이 엄청나게 많이 부어 있더라고요. 병원을 갔는데 양쪽 발목 인대가 끊어졌다는 판정을 받았어요. 한두 달 쉬면 복귀할 수 있다고 해서 마음 편하게 먹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안 낫더라고요. 넉 달이 넘었는데도 걸으면 아플 정도로…. 그때부터 의사 진단과 너무 차이가 나다 보니깐 불안해지기 시작했죠. 그렇게 6개월 정도 지나고 가서 재활 캠프도 다녀오고 인대에 좋다는 음식도 먹어 가면서 노력했더니 지금은 아주 건강해졌습니다. (웃음)”


보통 운동선수들은 긴 재활의 시간을 겪으면서 재활 자체도 힘들어하지만 예전과 같은 기량을 되찾지 못할까 봐 심리적으로 더 불안해하는 경우가 많다. “기술적으로는 그렇게 불안하지 않았어요. 기술적인 것보다는 제가 많이 뛰어야 하는 스타일인데 발목을 다쳐서 주력이 느려질까 봐 그게 가장 걱정됐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괜찮으니깐 팬분들께서 걱정 안 해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웃음)”



으!리!남! 이명기, 함께 걸어갈 친구들이 있어 행복하다

최근 SK 팬들은 ‘8706트리오’ 때문에 야구 볼 맛 난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8706 트리오’란 87년생, 06년도 입단 동기인 이명기, 김성현, 이재원을 일컫는 말이다. 같은 나이, 입단 동기 외에도 셋은 입단 이후에 주목을 못 받다가 올해 동시에 모두 포텐을 터트렸다. 그래서 그런지 이 셋의 우정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애들이랑 힘든 2군 생활을 계속 같이 해서 그런지 끈끈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끈끈한 만큼 장난도 자주 치는데요. 원정 숙소에 가면 성현이 방에 놀러 가서 서로 ‘네가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이야기해요. (웃음) 장난이고요. 사실 재원이랑 성현이가 1군에서 먼저 자리를 잡아 줬기 때문에 제가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어요. 야구를 하다 보면 힘들고 지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서로 이야기 나누면서 서로에게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이명기, 이재원, 김성현, 셋의 시너지 효과는 무척 대단했다. “아무래도 친구가 잘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요. 또 자극도 받으면서 ‘나도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초반에 재원이가 엄청나게 잘했는데 부러우면서도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재원이는 타석에서 보면 무슨 마흔 살 먹은 베테랑처럼 여유가 넘쳐요. 잘 맞든 안 맞든 타석에서의 표정이 한결같은데 그런 표정과 행동을 배우고 싶어요. 그리고 성현이는 우리나라 내야수 중에서 공을 가장 잘 던지는 선수인 것 같아요. 성현이한테 직접 배우기도 했었는데 ‘아무 생각하지 말고 저 타겟만 보고 던지라고 가르쳐줬었어요. 그런데 개인적인 능력 차이가 있어서 그런지 말처럼 쉽게 잘 안되더라고요. (웃음)”


셋은 야구 외적으로도 평소에 자주 붙어 다니는 ‘베스트 프렌드’라고 했다. “가끔 쉬는 날이나 비 오는 날에 같이 밥 먹어요. 재원이가 정말 잘 먹는 편인데 특히 고기를 좋아해서 만나면 고기를 많이 먹습니다. (웃음)”

       

서서히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이명기의 수많은 여성 팬들이 궁금해하는 질문, ‘결혼’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꺼내 보았다. 보통 운동선수들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싶어 일찍 결혼하는 편이다. 이명기 역시 결혼을 생각할 수 있는 나이였다. “더그아웃 매거진에서 처음 공개하는 건데요. 내년 시즌 끝난 뒤에 결혼할 생각입니다. 그런데 주위에서 내년 되어 봐야 안다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아! 그리고 저 여성 팬 별로 없어요. (웃음) 저희 팀에서는 (한)동민이랑 (김)성현이가 여성분들한테 인기가 많은 것 같아요. 저는 만만해서 그런지 초등학생들과 아저씨들한테 인기가 많더라고요. (박)정권이 형과 팬층이 비슷한 편이죠. (웃음)”


올해 그 누구보다 행복한 시즌을 보낸 이명기는 지금보다도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시즌이 끝난 후에 자신이 보완해야 할 점도 미리 염두에 두었다. “제가 저희 팀 외야수들에 비해 수비 능력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잖아요. 그래서 수비 보강을 위해 연습을 많이 해야 할 것 같고요. 그리고 제가 팀에서 1번 타자를 하고 있는데 타 팀 1번 타자들보다 부족하지 않게 비시즌 동안 보완할 생각입니다.”


이어서 그는 언제나 자신을 응원해 주는 SK 와이번스 팬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날씨가 더워도, 비가 와도 항상 경기장을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몇 게임 남지 않았는데 끝까지 응원해주세요. (웃음)”



3초 안에 선택하기

탕수육 찍어 먹기 vs 부어 먹기

▶ 양념 치킨 vs 후라이드 치킨

(치킨 좋아하세요?) 많이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먹어도 살이 잘 안 찌는 체질이라 가끔 먹어요.

▶ 아메리카노 vs 카페라테

▶ 여름 vs 겨울

제가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에요. 그리고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같은 행사가 많아서 더 좋아요. (웃음)

음악 듣기 vs 독서

(또 다른 취미가 있다면?) TV 보는 거 좋아해요.

명치로 vs 진기명기

진기명기는 초등학생 때부터 듣던 별명이라 감흥이 없어요. (웃음) 명치로는 스즈키 이치로 같은 대단한 선수를 닮았다는 뜻이니깐 좋아요.

1번 타자 vs 2번 타자

역할은 거의 비슷한 것 같지만 아무래도 팀에서는 1번 타자가 더 주목받잖아요.

▶ 우익수 vs 좌익수

계속 좌익수로 나가고 있어서 그런지 제 포지션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 농군 패션 vs 긴 바지 패션 

TV 중계로 보면 농군 패션이 안 어울리더라고요. (웃음)

▶ 만루 홈런 vs 안타 10개

아직 만루 홈런을 못 쳐봤지만, 만루 홈런보다는 안타 10개가 팀에 기여도가 더 높은 것 같고 기록적인 면에서도 좋은 것 같아요.

긴 머리 이성 vs 짧은 머리 이성

여자 친구가 긴 머리예요. (웃음)

▶ 다시 태어난다면 야구 선수 vs 다른 종목 선수

우리나라에서 야구가 제일 인기가 많잖아요. 그리고 야구 선수로서의 보람도 크고 성취감도 있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도 전 야구선수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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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방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이명기에게 가장 아쉬웠던 순간이나 후회되는 순간을 뽑아 달라고 했다. 그러자 “기억이 잘 안 나요. 저는 잘하든 못하든 다음 날 되면 모두 잊고 새로 시작하는 편이거든요. 사람이 계속 못 하는 것만 생각하면 위축될 수 있고, 또 계속 잘하는 것만 생각하면 거만해질 수 있잖아요. 그래서 하루하루만 생각하려고 하고 있어요.” 위축과 거만, 거만과 위축을 중간에서 잘 컨트롤 할 수 있었기에 지금의 이명기가 있을 수 있었다. 그가 앞으로 얼마나 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줄지 다음 시즌이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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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K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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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지다. ‘특별히 감칠맛이 난다’는 뜻의 남도 사투리다. 여기서 말하는 ‘감칠맛’은 크게 두 가지 사전적 의미가 있다. 1. 음식물이 입에 당기는 맛. 2.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 여기서 두 번째 뜻이 본 에디터가 SK 와이번스 외야수 김강민을 만났을 때 받았던 느낌과 정확히 일치한다. 국내 최고의 외야수라는 타이틀을 가졌음에도 이런 부분을 과시하기는커녕 한없이 겸손한 자세로 자신을 낮추는 선수. 그러면서 진솔한 이야기로 어떠한 질문에도 막힘없이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풀어내는 김강민은 그야말로 ‘개미지다’는 표현과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비록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에선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지만,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국가대표 외야수’ 김강민.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으로 잔뜩 무장한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감칠맛 나는 매력에 빠질 것이라 확신한다.

Photographer Lee Yong Han Editor Ikrae Choi Location Munhak Baseball Stadium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화보촬영에 임하던 김강민은 촬영 중간중간 어색함을 감추지 못했다. 2001년 비룡군단의 유니폼을 입으며 시작한 프로생활이 어느덧 14년째. 리그를 대표하는 외야수로서 이런 미디어와의 만남이 익숙할 법도 한데 아직도 촬영이 어색할까? “힘들어요. 솔직히 20대 초반엔 이런 스포트라이트를 즐겼죠. 그땐 이런 것 하나하나가 귀했으니까요. 하지만 서른 살이 넘으면서 조금은 멋쩍어진 것 같아요.” 본인 표현처럼 연신 멋쩍은 모습을 보이다가도 막상 카메라 앞에선 진지하게 촬영에 임하는 김강민. 그를 만난 건 7월 31일, 후반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찾아온 SK 와이번스 휴식일이었다. 후반기 4경기에서 타율 0.375, 1홈런, 5타점의 불방망이를 휘두르던 김강민에게 이번 휴식은 독이 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지만, 그는 이런 상황을 탓하지 않았다. “아쉬운 건 없어요. 휴식일 이후에 성적이 계속 좋으면 보약 같은 휴식인 거고 성적이 떨어진다면 제가 그 사이에 관리를 못한 거겠죠.”



화려한 이중생활. 타자 김강민


이번 시즌을 앞두고 김강민에게 주어진 특명은 ‘톱타자로의 변신’. 사실 그간 김강민은 5번 내지는 6번 타순에서 주자를 불러들이는 타자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런 만큼 톱타자로의 변신이 쉽지는 않았을 터. 하지만 1번 타자에 차츰 적응할 때쯤 중심타자들이 연달아 빠지며 다시 5번 타자로 나서는 날이 늘어갔다. 솔직한 소감을 물어봤다. “(타순을 오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확실해요. 직접 해보니까 그걸 느끼겠더라고요. 일단 1번과 5번은 타석에 들어설 때 상황 자체가 많이 다르니까요. 물론 제가 매 타석 안타를 친다면 어떤 타순이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겠지만 타격이라는 게 상당히 어렵다 보니까…. (웃음) 그래도 지금은 ‘투잡’에 대한 적응을 잘 마친 것 같아요.” 그렇다면 1번 타자로의 도전을 위해 그는 어떤 것을 준비했을까? “사실 제가 이전까지 도루가 굉장히 약했어요. 애초에 욕심도 많이 없었고 한 시즌에 10개 전후로 기록하면서 정말 필요한 순간에만 뛰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1번 타자는 필수적으로 도루를 해야 하는 위치잖아요. 리드와 스타트 준비를 굉장히 많이 했죠. 또 출루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데 사실 선구안은 단시간에 좋아지기 힘들다고 생각해요. 대신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준비한 게 지금처럼 좋은 성적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작년보다 모든 부분에서 나아지겠다. 그리고 2루타를 최대한 많이 치고 싶다.” 시즌을 앞둔 김강민은 이렇게 두 가지 목표를 밝혔다. 올 시즌 김강민이 기록한 2루타 24개(8월 13일 기준)는 자신의 커리어하이 기록이다(종전 22개, 2013년). 2루타를 제외한 타격 지표 대부분에서도 지난 시즌 기록을 넘고 있는 김강민에게 이번 시즌 전반기까지의 중간평가를 부탁했다. “제 생각보단 순항하는 것 같아요. 초반 페이스가 굉장히 좋았기 때문에 그때보단 떨어진 것 같은데…. 그래도 시즌 시작하기 전에 걱정했던 1번 타자로서의 역할은 어느 정도 잘 수행하는 것 같아요. 사실 2루타를 많이 치겠다고 말한 이유도 1번 타자를 염두에 뒀기 때문이죠. 아무래도 1번 타자가 2루타를 많이 치면 중심타선으로 연결됐을 때 득점이 날 확률이 높아지니까요. 시즌이 끝날 때까지 2루타 30개 이상은 치고 싶어요.”



스스로 평가처럼 2014년 김강민은 1번과 5번에서 모두 제 몫을 하고 있다. 1번 타순에선 0.339의 고타율을 기록 중이며, 도루도 24개로 데뷔 이래 가장 많다(종전 23개, 2010년). 또한, 주자가 없을 때보다 있을 때 그리고 득점권에 가까워질수록 타율이 높아진다. 클린업트리오로서의 면모도 뽐내고 있는 것이다. (주자 없을 시 0.289, 주자 있을 시 0.340, 득점권 0.344, 만루 0.500) 비결이 있을까? “지난 시즌 막판 5번 타순에서 경기를 많이 했는데 그때 타격감이 좋았거든요. 그게 올해까지 이어지는 것 같아요. 특히 만루상황처럼 결정적인 기회에선 의식적으로 차분해지려고 노력해요. 흥분되는 상황이잖아요? 하지만 조금이라도 흥분하면 상대 투수에게 져요. 분명히 그래요. 이런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경험이 쌓이면서 대처하는 방법이 좋아진 것 같아요.”


또한, 이번 시즌 김강민의 성적을 이야기할 때 장타를 빼놓을 수 없다. 홈런 13개로 이미 데뷔 이후 가장 많이 공을 담장 밖으로 날려 보냈으며, 5할이 넘는 장타율(0.512)을 기록 중이다. 겨우내 장타력 상승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지 궁금하다. “장타력을 기르는 게 참 쉽지 않아요. 타석에서 자기 스윙을 강하게 가져간다는 자체가 말로는 쉬운데 굉장히 어렵거든요. 캠프에서 힘을 기르기 위해 꾸준히 연습했던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이렇게 좋은 성적이 나오면서 동시에 내년 과제를 얻었어요. 지금처럼 3할 이상 타율을 유지하면서 파워를 조금 더 늘리고 싶거든요. 야구는 참 하면 할수록 어렵네요. (웃음)”



노력형 짐승. 중견수 김강민


사실 이런 ‘타자 김강민’ 이상으로 인정받는 건 ‘중견수 김강민’이다. 엄청난 수비범위 덕에 얻게 된 별명이 ‘짐승’이다. 이에 대해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솔직히 처음엔 기분이 좋지 않았죠. 사람한테 짐승이라는데 누가 좋아하겠어요. (웃음) 근데 듣다 보니 어울리는 것 같아요. 입에도 잘 붙는 것 같고. 사실 그런 별명 자체가 어느 정도 인정받는다는 거니까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에요. 앞으로 더 잘해야 할 것 같아요. ‘잘한다, 잘한다.’ 하면 더 잘하고 싶은 게 제 욕심이거든요.”


질문을 던져봤다. ‘9회 2사 만루 위기에서 슬라이딩 캐치로 팀을 구해내는 호수비’와 ‘끝내기 안타’. 둘 중 어떤 게 더 짜릿할까? 그러자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곰곰이 고민하더니) 힘든 건 끝내기 안타가 더 힘든 것 같아요. 그런 만큼 짜릿한 것도 끝내기 안타겠죠? 솔직히 끝내기 호수비 했다고 해서 동료 선수들이 막 뛰어 나오진 않잖아요. (웃음) 사실 호수비가 나와도 경기에서 지면 잘 기억나지 않아요. 정말 잘한 플레이도요. 결국, 팀이 이기는 게 최우선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김강민이 꼽는 롤모델은 누굴까? “이번 시즌 도루에 신경 쓰면서 느낀 건데 이종범 코치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에요. 공격과 수비, 주루 모든 부분에서 최고의 모습을 유지하셨잖아요. 직접 해보니까 체력적으로 쉽지 않더라고요. 그렇지만 제가 이종범 코치님을 닮고 싶다고 말하기 조심스러운 게 그것 자체가 실례인 것 같아요. 그분은 닮을 수조차 없는 경지인 것 같거든요. (웃음) 그런데 전 사실 선배든, 후배든 가리지 않고 주위 사람을 보면서 많이 배우는 편이에요. 특히 타격은 (최)정이 보면서 느끼는 게 상당하죠. (강)정호(넥센 히어로즈)도 대단한 것 같고요. 수비는 조원우 코치님 붙잡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요. 기본적인 동작보단 특정 상황에서 코치님은 어떻게 플레이하셨는지 많이 물어보는 편이에요. 저보다 경험이 많으니 수비에 대해 저보다 많이 알고 노하우가 쌓인 분이니까 막힘없이 대답해주시죠.” 또한, 김강민은 단순히 국내 선수들뿐 아니라 해외에서 활약 중인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며 자신의 것으로 만들 부분이 있는지 끊임없이 연구한다. “요즘은 앤드류 맥커친 선수(피츠버그 파이어리츠)가 참 매력적이에요. 체구도 동양인에 비해 크지 않으면서 파워가 대단한 것 같아요. 저도 이번 시즌 장타에 많은 신경을 쓰다보니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네요. 수비는 말할 것도 없고요.”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학생. 스스로 고교 시절을 돌아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갈피를 잡지 못했던 모습이라고 한다. 비록 지금의 김강민은 리그를 대표하는 외야수지만, 사실 경북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그는 팀을 대표하는 투수였다. “초등학교 땐 포수 하다가 중학교 땐 투수와 타자를 번갈아서 했죠. 내야와 외야를 오가면서요. 하지만 투수가 정말 하고 싶어서 고등학교 진학 후엔 한우물만 팠죠. 그러다 손가락 골절로 3개월 가까이 야구공을 잡지 못했는데 그 후 투수로서의 감이 확 줄었어요. 그때 감독님이 타격 재능이 아까우니까 투수에 매달리지 말고 야수에 전념하라고 하셨어요. 그때부터 내야수로만 경기에 나섰죠. 프로 지명도 내야수로 받았고요. 이것저것 다 잘하고 싶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일반학생들처럼 진로 고민을 꾸준히 한 셈이네요.” 하지만 ‘투수성애자’ 김강민의 마운드에 대한 열정은 프로 지명 후에도 꺾일 줄 몰랐다. 데뷔 시즌이던 2001년을 투수로 보냈지만 단 한 번도 1군 마운드에 오르지 못하며 결국 다시 내야수로 돌아서게 됐다. “1년 해봤으니까 후회는 없어요. 그렇지만 아직도 투수에 대한 로망은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그래서 제가 투수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수비에 더 집중하는 것도 있고요.”



“국가대표는 영광이면서도 부담되는 것”


그렇게 야수로 전환한 뒤 국내 최고의 중견수로 이름을 떨치던 김강민은 지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에 발탁되며 생애 첫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때 당시의 솔직한 소감을 물어봤다. “태극마크를 단다는 건 무조건 영광스러운 일이에요. 하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부담감이 상당하죠. 엔트리가 발표됐을 때 10~15분은 좋았어요. 꿈인가 생시인가 싶고요.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엄청난 부담감이 밀려왔어요. 그리고 금메달 따서 숙소에서 그 메달을 가만히 볼 때, 그때 처음으로 실감 나면서 마음이 놓였어요. 그전까지 몇 달 동안 계속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리면서도 어디에 내색도 못해서 많이 힘들었죠.”


하지만 이번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명단에선 김강민 이름을 찾을 수 없다. 홈인 인천에서 열리는 대회인 만큼 아쉬움이 크진 않을까?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물론 앞서 말한 부담감을 느끼진 않아도 되지만, 그 부담감을 안고도 하고 싶은 게 국가대표니까요. 하지만 저보다 더 좋은 선수들이 많이 갔기 때문에 저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금메달을 기대하고 있어요.” 일부 팬들은 이번 엔트리 탈락으로 의욕이 떨어져 성적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염려의 목소리를 보냈다. 하지만 김강민은 이런 시선을 단호히 거부했다. “만약 그런 이유로 성적이 떨어진다면 그건 선수로서 아직 성숙하지 못한 거겠죠. 엔트리에 발탁된 선수들이 기록 등 모든 부분에서 저보다 낫기 때문에 불만이나 이런 건 전혀 없거든요. 그냥 뽑힐 선수들이 뽑혔구나 싶은? 제가 3할 8푼에 홈런 20개 쳤다면 뽑히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그러지 못했으니까, 제가 그만큼 잘하지 못했으니까 뽑히지 못했겠죠.”


그렇다면 태극마크를 먼저 달았던 선배 입장에서 후배들에게 남길 조언이 있진 않을까? 당부의 말을 남겨달라는 에디터 요청에 ‘전부 나보다 나은 선수들인데 제가 무슨 조언을 할 수 있겠어요.’라며 거듭 머쓱해하던 김강민은 선수들이 가장 신경 써야 하는 부분으로 몸 관리를 꼽았다. “다치면 안 돼요. 특히 이번 대회는 예년과 달리 시즌 중반에 진행되기 때문에 지금부터 각별히 신경 써야 할 거예요. 사소한 부상이라도 대회에 가면 영향이 클 테니까요.”



NASA에 가고 싶던 대구 소년 김강민


김강민은 이번 시즌이 끝난 뒤 FA 자격을 얻는다. SK는 시즌 시작 전부터 8명의 예비 FA 선수를 보유했다는 이유로 주목의 대상이 됐다. 그중 현재 성적이 가장 좋은 건 김강민이다. FA 시즌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은 어떨까? “FA는 잘해도 스트레스, 못해도 스트레스인 것 같아요. 신경 쓸 게 너무 많거든요. 그렇지만 부담은 없었어요. 사실 지난 시즌 끝나고 굉장히 설렜어요. FA 시즌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지난 시즌 막판 타격감이 정말 좋았거든요. 시즌을 어떻게 치를지 구상하느라 여념이 없었죠. 하지만 막상 시즌이 시작되니까 너무 힘드네요. 그나마 시즌 초반에 멋모르고 날뛰면서 성적을 한껏 끌어올렸던 게 지금까지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FA라는 건 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기 때문에 빨리 시즌이 끝났으면 좋겠어요. 요즈음 시간이 잘 안 가는 것 같은 이유가 이 때문일까요? (웃음)”


이제는 야구선수를 희망하는 누군가의 꿈이 된 김강민. 그의 어린 시절 꿈은 지금 모습처럼 ‘최고의 외야수’였을까? “아뇨. 사실 이루고 싶은 꿈은 따로 있었어요. (잔뜩 민망해하다가) 진짜 솔직하게 얘기할게요. NASA(미국항공우주국)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전원 웃음) 근데 재밌는 건 NASA에서 뭘 하고 싶다는 계획은 없었어요. 그냥 NASA 자체가 멋있어서 들어가고 싶었던 것뿐이거든요. 설혹 청소하더라도 말이죠. NASA에 가려면 수학을 잘해야 할 것만 같아서 다른 과목 다 버리고 수학만 공부했던 적도 있어요. 실제로 성적도 좀 올랐고요. 그게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꿈이었는데 지금은 비행기 타는 것도 싫어하는 걸 보면 참 사람 일은 모른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웃음)” 그렇다면 은퇴하고 NASA에 지원해보는 건 어떨까? “그럴까요? 사실 야구 외적으로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게 굉장히 많거든요. (잠시 고민하다가) 아! 그래도 이번 생엔 야구만 하고 싶어요. 그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대신 다음 생에 천재의 아들로 태어나는 건 어떨까요? 공부를 취미로 삼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요. 그렇게 살면 NASA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전원 웃음)”


김강민은 팬들 기억 속에 ‘최고의 외야수’로 남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이미 어느 정도 꿈을 이룬 건 아니냐는 에디터 질문에 “아직 멀었죠.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아져야 하고, 그 후에도 그걸 유지하려고 부단히 노력해야겠죠.”라고 각오를 밝힌 김강민. 그에게 야구란 어떤 의미일까? “솔직히 어릴 땐 먹고살기 위해 야구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제가 세상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된 것 같아요. 다른 건 야구만큼 자신 없거든요. 돈벌이 수단에서 자아실현의 수단이 된 셈이니까 이 정도면 저 야구하길 잘한 거죠?”


김강민은 인터뷰 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옆구리 통증 탓에 재활군으로 내려갔다. 남은 시즌에 대한 자신감으로 차있던 김강민의 부상 소식을 듣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던 각오가 전부 물거품이 되진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거기에 개인 통산 1,000경기 출장에 13경기만을 남겨둔 상황이라 이번 시즌 중 기록 달성이 무난해 보였기에 아쉬움은 더욱 컸다. 하지만 김강민은 지난 14일, 재활군에 내려간 뒤 정확히 10일 만에 다시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규정상 채워야 하는 10일이 끝나자마자 다시 1군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처럼 에디터가 만난 김강민은 자신의 야구를 완성하기 위해 부상쯤은 금세 털고 부상 이전의 좋았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할 선수다. 그 유명한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재능은 쉽게 잊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면 당신의 이름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개미진 매력의 소유자 김강민이 항상 팬들에게 성실한 선수로 기억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 아닐까? 다시 예전처럼 1군 무대에서 뛰어놀 짐승의 모습을 기대한다.


[사담(私談) ‘Who say!’]

2010년 결혼 후에도 여전히 여성 팬들에게 인기가 많은데 비결이 있을까요?

(손사래를 치며) 박희수, 김성현, 김광현이 있는데 제가요? (한참을 망설이다) 굳이 꼽자면 제가 콧대가 좀 높지 않나요? 이걸로 할게요. (웃음)


그렇다면 스스로 생각하는 팀 내 외모 순위는요?

다섯 손가락 안엔 들지 않을까요? (이)한진이나 (김)광현이가 있으니까요. 근데 외모라는 게 얼굴이 아니라 전체적인 느낌을 따지는 거 아닌가요? 그럼 광현이가 1등이죠. 일단 기럭지 자체가 대단해요. 운동 끝나고 샤워할 때 보면 살벌해요, 아주. 기사 쓸 때 타이틀로 ‘김강민, 나는 광현이의 벗은 몸을 봤다.’ 이건 어때요? (전원 웃음)


같은 팀 선수를 제외하면 친한 선수는요?

결국, SK를 거친 선수들인데, 한화 정근우랑 삼성 김희걸이요. 아 희걸이는 개명했죠? 김건한. 개명하면 뭐, 어차피 사람은 똑같은데요. (웃음) 그 외엔 동기였던 롯데 박준서? 이 정도네요.


스트레스는 주로 어떻게 푸세요?

어릴 땐 노는 걸 좋아했어요. 잠은 죽어서 자면 된다는 생각에 몸을 혹사시킬 정도였죠. 근데 그때 너무 놀아서일까요? 이제는 달라졌어요. 제가 생긴 건 이래도 술을 정말 못하거든요. (웃음) 가족들이랑 있고, 집에서 가끔 오락이나 하면서 밖을 잘 안 돌아다녀요. 아! 요즘은 새로운 재미가 생겼어요. 지난 4월 세상에 나온 딸을 보는 거예요. 아무리 힘들어도 딸을 보는 순간 스트레스가 다 사라져요. 그 재미에 사는 것 같아요.


아내 자랑을 한다면요?

음식을 잘해요. 근데 하려고 안 해서 문제죠. (웃음) 딸한테도 참 잘하고. 전형적인 현모양처인 것 같아요. 요즘은 아기 때문에 극장가거나 이런 데이트를 못 하니까 아쉬운데, 아이가 좀 크면 다시 예전처럼 알콩달콩 지내고 싶어요.

Posted by SK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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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에 대해 큰 관심이 없던 팬이라면 지금 타격 순위표 꼭대기를 장식하는 이름을 보고 ‘어디서 나타난 걸까?’라는 생각부터 들지 모른다. 사실 작년까지 그는 수비에 나서지 못하는 반쪽짜리 선수였다. 거기에 공격의 기회는 왼손 투수를 상대할 때만 주어지니 반의반 쪽만 남았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주위에서 응원을 아끼지 않는 팬과 동료들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괴물’ 류현진과의 비교에 대한 속내부터 야구선수로서의 욕심, 그리고 기대해 마지않는 4할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까지. 인터뷰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유쾌한 남자, 이재원을 만나보자.

Photographer Ming Park Intervier Taejin Yoon Text Ikrae Choi Location Munhak Baseball Stadium Sponsored MATTONI



‘요즘 따라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4할과의 치열한 밀당을 하고 있는데 컨디션은 어때요?

요즘에는 매일 안타를 2개씩은 쳐야 타율이 유지되니까 스트레스가 심해요. 체력적으로도 조금씩 힘이 들고요. 아무래도 날씨가 더워지니까 기술적인 것 보다는 체력적인 부분이 조금 더 신경 쓰이는 것 같아요.


포수는 예나 지금이나 어린 야구선수들에게 기피 포지션이잖아요. 처음 포수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어렸을 때부터 포수를 했어요. 처음 시작은 덩치가 커서 하게 됐죠. 누가 시킨 것보단 자연스러운 이끌림? (웃음) 사람들을 어우르고 끌어당기는 성격이거든요. 인내심도 강한 편이고요. 감독님들은 이런 성격이 포수랑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어요. 근데 지금 생각하면 포수로 경기에 나서는 게 제 가치를 더 높이는 거로 생각해요. 포수로 나가서 팀을 승리로 이끌 때의 쾌감은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이끌림’으로 마스크를 쓴 이재원 선수는 고교 시절 정말 최고의 포수였어요. 당시 고교 감독들은 ‘이재원 같은 포수를 데리고 경기를 해봤으면 좋겠다’는 희망 사항을 이야기했는데, ‘고등학생 이재원’은 어떤 모습이었어요?

부모님께서 다른 데 한눈팔지 못하도록 매일 야구장에 출퇴근시켜주셨어요. 그러면서 집-야구장-집-야구장을 반복하는 생활이었는데, 이런 뒷바라지 덕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죠. 고등학교 다닐 땐 성적이 좋다 보니 야구가 재밌었어요. 그리고 그 비슷한 느낌을 프로 와서는 올해 처음 느끼는 것 같아요.


SK 왕조가 시작된 2007년, 한화와의 개막전에 지명타자로 선발출장 했어요. 당시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사실 제가 그 해 스프링캠프를 못 갔거든요. 하지만 개막전 선발투수였던 (류)현진이한테 고등학교 때부터 강했다는 이유로 개막전 한 경기는 뛰게 됐죠. 그리고 곧바로 2군으로 가기로 예정됐고요. 그런데 그 경기에서 홈런과 2루타를 쳤어요. 그러면서 1군에 남았고 기회를 얻으면서 차츰 왼손 투수 킬러라는 별명까지 듣게 됐죠. 그렇게 1년 내내 백업으로나마 1군에 머물렀어요.


이야기가 나왔네요. 이재원의 이름 뒤엔 항상 류현진이라는 이름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어요. 팬들 사이에선 류현진 거르고 이재원, ‘류거이’로 불리기도 했고요. 스트레스가 심했을 것 같아요.

사실 1년 차 땐 조금 힘들었죠. 아무래도 비교가 많이 되니까요. 그런데 그 이후에는 현진이가 워낙 높은 곳으로 올라가다 보니 의식조차 못 했죠. 어느 정도 수준이 비슷해야 질투도 하고 그럴 텐데. (웃음) 팬들이 현진이와 저를 비교하면서 아쉬워하는 건 제가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성격상 그런 걸 금방 잊으려고 하는 편이라 ‘이걸 꼭 이겨내야 좋은 선수가 될 거야’라는 생각으로 버틴 것 같아요. 근데 현진이가 야수였으면 모를까 포지션이 다르니까 경쟁이라는 생각 자체를 안 한 것 같아요. 근데 올해는 특히 현진이가 잘하면 저도 잘하는 징크스가 생겨서, 지금보다 더 잘했으면 좋겠어요.



고교 시절 최고의 포수였던 이재원이 프로에선 성장통을 겪었잖아요?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텐데요.

2010년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감독님이 마운드 앞에 볼 1,000개를 갖다놓고 펑고를 쳐주셨어요. 수비력을 키우기 위한 훈련이었죠. 그때 감독님이 “억울하면 기술을 익혀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기술을 익히는 것, 그게 정답이었던 것 같아요. 감독님은 저의 기술적인 부분을 키워주시기 위해 일본에서 따로 배터리 코치를 모셔 오기도 하셨죠. (세리자와 코치님이요?) 네. 그때 포수로서의 기술적인 토대를 많이 마련한 것 같아요. 지금 SK의 김태형 코치님도 정신적, 기술적으로 되게 많이 도와주시고요. 또 야구 외적으로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도 좋은 분들이 많았고, (뿌듯해 하며) 이렇게 보면 제가 인복은 참 타고난 것 같아요.


인복이 타고났지만,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선배 한 명은 있을 것 같아요.

김재현 선배님이요. 사실 전 김재현 선배님과 플래툰을 한 것 자체가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대단한 분이 저 같은 사람과 경기를 반반 나눠서 나가니까 저보단 선배님이 더 스트레스를 받았죠. 선배님은 사실 저 때문에 은퇴하셨거든요. 2010 시즌이 끝나고 “내가 계속 뛰면 너에게 기회가 가지 않을 것 같다”며 저를 배려해주신 거죠. 락커도 바로 옆이었고… 참 추억이 많은 선배예요. “너 때문에 내가 은퇴하니까 꼭 자리를 잡아”라고 당부해주셨는데 하필이면 저도 2010 시즌을 마치고 입대를 했죠. (웃음) 그러자 김재현 선배님께서 “이럴 거면 내가 2년 더 뛰었지”라며 안타까워하던 게 아직도 기억나요. 올해 초에 성적이 좋으니까 선배님께서 보람 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 얘기를 듣고 저도 어느 때보다 좋은 자극이 되더라고요. 지금도 정말 감사한 분이에요.


김재현 선수의 배려에도 훌쩍 떠났던 군대, 거기서의 생활은 어땠어요?

훈련소가 제일 힘들었어요. 발목이 아파서 의무대에 갔는데 타이레놀을 주더라고요. 머리 아파도 타이레놀 발목도 타이레놀. (웃음) 그게 서러워서 ‘내가 지금 뭐하는 건가’하는 생각에 눈물이 찔끔했어요. (아련한 눈빛으로) 원래 그러는 편이 아닌데. 상무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할 땐 경기에서 지면 군화와 군복을 입은 채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같은 얼차려를 받기도 했고요. 근데 정신적으로 힘들었지 몸은 덜 힘들었어요. 군대라서 야구 이외엔 할 게 없었거든요. 누가 야구를 억지로 시키는 것도 아니고요. 다른 선수들은 이게 힘들다고 생각할진 모르겠지만 저는 오히려 편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한 것 같아요.



흔히 상무나 경찰청 출신 선수들은 군 복무 중 많은 걸 배웠다고들 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SK에서 시합을 못 나가고 대타 생활을 하다 보니 기술적인 발전이 없었는데 상무에서 시합을 많이 나가면서, 비록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매 경기 얻는 게 있더라고요. 제가 프로생활하면서 포수보단 지명타자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처음엔 감독님이 기회를 안 주셨어요. 그래서 2년 차 땐 감독님께 기회를 달라고 말씀드렸고 저에게 믿음을 주셨죠. 그러면서 한 시즌을 운영하는 노하우나 경기감각 같은 걸 배운 것 같아요.


사실 유망주라는 칭호는 어린 선수들에겐 영예롭지만, 이재원 선수에겐 무려 9년간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어요. 유망주라는 칭호, 어땠어요?

민망했죠. 작년 마무리캠프 때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다짐했어요. 주전급 선수들은 마무리 캠프에 가도 컨디션 관리 위주의 훈련을 하지만 1.5~2군 선수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꽉 채워서 훈련을 하거든요. 그렇게 8~9년을 하다 보니까 너무 힘들어서 ‘올해로 진짜 마무리캠프 끝이다. 내년엔 1군에 자리 잡는다’라고 각오를 다졌어요. (작년 캠프 이전엔 이런 생각을 따로 안 했어요?) 그전엔 당연히 훈련에 따라가는 거라고 수동적으로 생각했는데 작년엔 각오가 좀 남달랐던 것 같아요. 나이도 점점 차는데 이대로 있어선 안 될 것 같더라고요. 시즌 시작 전부터 품었던 독한 마음이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올 시즌 역시 기존 선수들에 루크 스캇의 영입까지, 시작은 왼손 투수 스페셜리스트로 분류됐었어요. 많이 허탈했을 것 같아요.

초반엔 열심히 준비했는데 작년과 마찬가지로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니까 실망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우연찮은 기회에 출장기회를 얻었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면서 이렇게 잘 풀린 것 같아요. (이번 시즌 반전의 계기가 된 경기를 꼽자면요?) 4월 12일 삼성전이요. 전날 스캇이 아파서 라인업에서 빠졌고 제게 기회가 주어졌는데 4타수 3안타 5타점으로 좋았어요. 그런데 하필이면 그 시리즈 후 4일 휴식일이라서 ‘이 감을 유지하지 못하고 끝나는 건 아닌가?’하고 불안했죠. 하지만 그다음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도 좋은 활약을 이어가며 자리를 완전히 잡게 된 것 같아요.


올 시즌 이렇게 갑자기 성적이 좋아지게 된 이유는 뭘까요?

갑자기 좋아졌다고 하긴 좀 그런 게…. (민망해하며) 사실 코치님들이나 다른 팀 선수들이 항상 제게 ‘너는 무조건 잘할 거야, 기회가 없을 뿐이야’라는 말을 많이 했거든요. 어릴 땐 저도 그 말을 믿고 각오를 다졌지만 그렇게 계속 나이만 먹으니까 이대로 끝날 것 같은 생각에 약간은 불안하기도 했죠. 부담도 됐고요. 이제야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것 같아요. 배트도 약간 뭉툭한 거에서 얇은 걸로 바꿨어요. 타격자세도 기존엔 덩치에 비해 움츠리는 폼이었는데 좀 더 큰 자세로 가져갔고요. 이런 것들이 그 기대에 부응하게 된 원동력인 것 같아요.


왼손 투수 상대로 타율이 0.479(7월 14일 기준), 5할에 육박하는데…. 이재원 선수는 쳤다 하면 4할, 5할이네요(웃음). 1군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을 때도 왼손 투수를 상대하는 능력만큼은 인정받았는데 따로 비결이 있어요?

8년 동안 왼손 투수 킬러라고 불렸죠. 현진이와 비교되는 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오히려 그 말이 너무 듣기 싫었어요. 반의반 쪽 선수라는 이야기 같았거든요. (반의반 쪽이요?) 수비 못 해서 반쪽인데 오른손 투수의 공을 못 치니 또 반이 깎이죠. 왼손 투수 킬러라는 건 동시에 오른손 투수 공은 못 친다는 뜻이니까요. 원래 전광판에 나오던 왼손 투수 킬러라는 제 소개 멘트도 바꿔달라고 직접 말했어요. (지금 나오는 Mr.클러치로 해달라고 직접 말한 거예요?) 네(웃음). 민망하긴 한데 중요할 때 잘 칠 테니까 클러치 히터로 해달라고 했는데 그렇게 바꿔주더라고요.



타율과 타점, 득점권 타율 모두 포수 중 1위예요. 이 중 가장 중요시하는 기록은 뭐예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타점이요. 주변에서는 4할, 타격왕에 대해 이야기가 많은데, 물론 타격왕에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더 중요한 건 타점이라고 생각해요. 수치로 말한다면 100타점? 최정 선배가 1군에 복귀하면서 저한테 타점 기회가 부쩍 늘었어요. 포수로서는 투수들 평균자책점도 좀 내렸으면 좋겠고요. 주전 포수로 나가니까 이제 그런 것도 신경 쓰게 되더라고요. (주전 포수로 나가면서 그런 부분이 달라졌나 봐요?) 사실 5월 초엔 뭐가 뭔지 구분도 못 하고 나갔는데 이제는 좀 보이는 것 같아요. 내가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수비에서도 좀 더 자신감이 생기고.


도루 저지율이 0.375로 100이닝 이상 포수로 나선 선수 중 1위예요. 본인이 생각하는 수비력은 어느 정도인 것 같아요?

지금은 좀 올라온 것 같아요. 코치님들이 워낙 칭찬을 많이 해주시거든요. 사실 경험이 부족하니까 지금의 감만 유지했으면 좋겠어요. 경기에 많이 나서면서 점점 더 나아지겠죠?


이만수 1군 감독에겐 김시진이 있었고 박경완 2군 감독에겐 김원형이 있었던 것처럼 가장 합이 잘 맞는 투수는 누구예요?

(김)광현이요. 지금도 고마운 게 광현이는 투수임에도 선수들을 아우르는 뭔가가 있어요. 사실은 포수인 제가 해야 하는 역할인데 아직 제가 그런 면에서 부족함이 많거든요. 그래서 광현이한테 “네가 포수 한 명 살렸다”라며 고마움을 표한 적도 있죠. (이는 단순히 이재원의 느낌이 아니다. 김광현은 이재원과 배터리를 이룬 5경기에서 3승 1패, 평균자책점 2.91로 호투했고 이재원은 0.471의 고타율로 화답했다. 반면 이재원과 호흡을 맞추지 않은 12경기에서 김광현은 6승 5패, 3.7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 중이니 둘은 그야말로 찰떡궁합이다.)


아시안게임 2차 엔트리에도 여전히 이재원 선수의 이름이 있어요. 소감 부탁해요.

두 달 만에 사람인생이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싶어요. 예비엔트리 뽑힌 거 자체만으로도 영광이지 나가야겠다는 욕심이 크진 않아요. (강민호, 양의지 선수들과 경쟁할 이재원만의 강점은 뭘까요?) 보이는 걸로 따지면 타격이 아닐까요? 하지만 경험이나 기술적인 부분에서 형들이 저보다 더 좋잖아요. 게다가 포수는 수비가 중요하니까요. 그런 걸 보완해야겠죠?


겹경사에요. 데뷔 후 처음으로 올스타에, 그것도 선발로 나서게 됐어요. 기분이 어떠세요?

올스타전이야 해마다 항상 나가고 싶었죠. ‘언제 나가나…’하면서 다른 선수들 부러워하고요. 그래서 이번엔 저도 투표 열심히 했어요. (웃음) 다들 그러지 않나요? 올스타전 참가가 확정되고 광현이한테 “졸졸 쫓아다닐 테니 나 좀 데리고 다녀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준비하고 있는 퍼포먼스는요?) 앞으로 몇 번 더 나가게 돼서 여유가 생긴다면 가발을 쓴다거나, 포수 장비를 차고 타석에 들어서는 재밌는 걸 해보고 싶어요. 하지만 지금은 처음 나가는 거라 설레면서도 긴장이 많이 되거든요. 그냥 어이없는 실수만 안 했으면 좋겠어요. (오히려 팬들이 올스타전에 기대하는 건 그런 실수가 아닐까요? 마음 편히 가지세요.) 아! 감사합니다.


얼마 전엔 조동화 선수 응원가로 화제를 모았어요.

룸메이트 조동화 선배가 4할 타자의 기를 받고 싶다고 부탁해서 기꺼이 응했어요. 공개된 동영상으로 보면 민망한데 경기장에서 들으면 좀 괜찮게 나오는 것 같아 다행이에요. (자신 있게) 평소 노래를 좀 괜찮게 부르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팬들과 소통하다 보니 이재원 선수에게 붙여진 별명도 많아요. 노안이라는 별명 알고 있어요?

물론이죠. 신인 때 사이판 훈련을 가서 완전 시커멓게 탔었거든요. 그때 포털사이트에 이재원을 치면 HOT 멤버 이재원이랑 당시 제 사진이 나란히 나오는데…. 어휴, 그건 제가 봐도 좀 심하더라고요. (웃음) 사실 지금 얼굴이 중1 때 얼굴이거든요. (더 큰 웃음) 성격상 크게 신경 안 써요. 인천고 돼지라서 인돼라는 별명이 있는 것도 아는데 전 사실 돼지보다 고릴라 쪽에 가깝다고 생각해서 공감은 잘 안 돼요.


주전 포수 이재원, 4번타자 이재원, 수위타자 이재원. 이처럼 여러 가지 타이틀 중 가장 애착이 가는 타이틀은 뭔가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주전 포수죠. 올해 목표 중 하나가 다른 것보다 포수로서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거였어요. 그런데 지금 꾸준히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까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성적과 관계없이 만족하고 있어요.


포수가 타격왕을 차지한 건 1984년 이만수 감독이 마지막이에요. 그만큼 포수가 체력적으로 힘들기 때문이 아닐까요? 30년 동안 나오지 않는 포수 타격왕에 대한 욕심은?

4할엔 욕심이 없지만 아까 말한 것처럼 타격왕엔 도전해보고 싶어요. 이제 시즌 절반 이상 지났으니 다치지 않고 더 노력해야죠. (얘기가 나왔으니 돌리지 않고 물어볼게요. 4할 도전은 어떨 것 같아요?) 솔직히 4할에 대한 욕심은 그다지 없어요. 그런데 굳이 4할에 얽매이기보단 그렇게 큰 목표를 세워놓고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다 보니 지금처럼 높은 타율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아요.


2군의 설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이재원 선수니까 여전히 2군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을 것 같아요.

저도 선배님들한테 좋은 얘기 많이 들었으니까 후배들에게도 조언을 해주려고 하는 편이에요. 사실 야구가 잘 안 풀리면 그 스트레스를 술 마시고 노는 걸로 푸는 선수들이 있는데 기회는 언젠가 오거든요. 하지만 그렇게 놀면서 시간을 보내면 그 기회를 못 잡게 되죠. 그런 것들이 정말 아쉬워요.


드디어 유망주라는 알을 깼는데 그동안 기다려 준 SK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해요.

현진이랑 비교하면서 실망도 하셨을 텐데 그럼에도 응원을 많이 해주셨어요. 정말 감사하죠. 제가 인천에서 나고 자란 인천사람이니까 인천에 대한, SK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요. 앞으로도 인천에서 계속 야구하면서 좋은 선수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참 애증이 많을 것 같아요. 이재원이 생각하는 야구는?

(찬찬히 고민하다가) 멘탈 게임? 2군에서 잘하다가 1군에서 도저히 못 하는 선수들이 있잖아요. 그런 건 사실 기술적인 부분보단 떨려서 자기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 더 크거든요. 저도 그런 시절이 있었고요. 이런 걸 극복할 수 있는 선수가 성공하는, 철저한 멘탈 스포츠인 것 같아요.


야구선수로서 목표는요?

포수로서 많은 경기에 나서는 것과 3할 타율에 대한 욕심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다치지 않는 것 같아요. 다치지만 않으면 올해 초 목표한 것도 대부분 이룰 것 같고요. 야구가 참 좋아요. 그래서 야구 정말 오래 하고 싶어요.


인터뷰 감사합니다. 인천의 안방마님 이재원의 활약을 앞으로도 기대할게요!

저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웃음)

Posted by SK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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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21일 문학 야구장 전광판에는 ‘나주환’이라는 반가운 세 글자가 떴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주전 유격수로 SK 왕조를 든든히 지킨 나주환이 대한민국 남자의 의무를 다하고 돌아온 것이다. 오랜만에 함성 가득한 문학구장에 선 그의 마음도 들떴다. 하지만 2년간의 공백은 그의 타격 밸런스를 무너뜨렸고, 허벅지 부상까지 악재가 찾아왔다. 2014시즌, 그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지난 6월 4일, 그가 1,434일 만에 팀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발판의 홈런포를 쏘아 올렸다. 그리고 그것은 부활을 향한 신호탄이기도 했다.

Photographer Lee Yong Han Editor Somin Park Location Munhak Baseball Stadium



‘야구선수 나주환’은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가구를 만드는 직업을 가진 아버지는 두 형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직접 야구 방망이를 깎았다. 세상의 빛을 본 두 아들은 아버지의 바람대로 야구를 시작했다. 둘 다 소질은 있었지만, 끝까지 버틴 건 둘째 나주환이었다. “아버지가 야구를 정말 좋아하세요. 그래서 형제 둘이 야구를 시작했는데, 그 당시 야구부면 정말 많이 맞았거든요. 형은 그걸 못 참고 그만두었어요. 저는 맞으면서도 야구가 재밌어서 계속 했거든요. 형도 여전히 야구를 좋아해서 생활 체육 야구에서 투수를 하고 있는데, 야구 계속 했으면 저보다 잘했을 거라고 매일 그래요. (웃음)”


첫 대답부터 나주환의 유머감각이 돋보였다. 그가 라커룸 분위기 메이커라는 점은 이미 선수들과 팬들 사이에서 알려진 사실이지만, 고등학교 시절 나주환은 군기반장으로 유명했다. “정말 무서운 선배였는데요. (웃음) 그래서 제가 요새 힘듭니다. (이유를 묻자) SK 와이번스 김승희 전력분석 코치님이 제가 3학년 때 1학년이었던 후배거든요. 예전에는 ‘승희야’라고 부르면 라면을 끓여오던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승희야’라고 부르면 ‘코치님이라고 부르셔야죠”라는 말이 나온다니까요. 동문회 하는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군기반장이기도 했지만, 천안북일고를 이끈 4번타자였다. 나주환이 이끈 2002년 천안북일고는 황금사자기, 봉황대기 등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쓸어 담았다. “멤버들이 좋았죠. 제 덕은 아닙니다. (웃음) 선수들에게 동기부여가 된 게 있어요. 그때 야구부 숙소가 지은 지 20년 정도 되어서 정말 낡았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전국대회 우승을 하면 새로운 숙소를 지어주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졸업하고 가보니까 정말 숙소가 새로 지어졌더라고요. 뿌듯했습니다.”


그 시기는 나주환 개인적으로도 많은 다짐을 한 시기였다. 재미있어서 야구 배트를 잡았던 나주환이 고등학생이 되자 진로에 대한 고민에 빠진 것이다. “지명을 받지 못한 선배 중에,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어요. 그때 진로에 대한 걱정이 들어서 힘들었던 시기였어요. 결론은 최선을 다해서 지명을 받자고 생각했어요. 단순하지만 그게 답이었던 것 같아요.”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2003년 2차 지명 2라운드로 두산 베어스에 입단하면서 프로선수의 꿈을 이룬 것이다. 차근차근 1군에서 백업으로 나와 나주환이라는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예상치 못한 소식이 들려왔다. SK 와이번스의 이대수와 트레이드였다. “김경문 감독님이랑 단체 미팅을 하는데 그 이야기를 들었어요. 최선을 다하고 있었는데, 서운했죠. 마음 추스를 시간도 없었어요. 바로 SK 와이번스 매니저에게 전화가 와서 몇 시까지 인천으로 오라는 이야기를 듣고, 다음날 가니까 유니폼을 주시더라고요. 바로 연습을 시작했죠. 다들 모르는 사람들이고, 어제까지만 해도 경기의 상대였는데 낯선 기분이었어요. 그때 도움을 많이 준 게 지금은 KIA 타이거즈에 있는 (송)은범이었어요. 대표팀 하면서 친해졌는데, 집을 구하는 것부터 많은 도움을 줬죠.”


그런데 사람 인연이 참 묘하다. 2014년, 나주환의 트레이드 상대였던 이대수와 나주환이 한 팀에서 만난 것이다. 지난 6월 2일 조인성과 트레이드로 이대수가 7년 만에 SK 와이번스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같은 내야수기에 그에게는 자극으로 다가올 것 같았다. “트레이드되고 초기에는 어제 대수 형이 안타를 쳤는지 기록지 찾아보고 그랬어요. (웃음) 그런데 이제는 정말 친한 형이에요. 얼마 전에 한화랑 경기하면서 대수 형 방망이를 뺏어온 적도 있었는데, 다시 한 팀에서 만날 줄은 몰랐죠. 경쟁상대라기보다는 팀에서 함께 가야 할 존재인 것 같아요. 고참이 팀에서 중심을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이거든요. 지금 SK 와이번스에서는 저나 정권이 형 등이 그런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서 후배들에게 게임 때마다 저도 조언을 많이 해주고요. 그런데 이제 대수 형이 왔으니까 그런 역할도 잘해줄 것 같고요. 저희 팀 자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 같아요.”


2007년 유니폼을 갈아입은 나주환은 수비 실력의 안정과 함께, 최고의 기량을 보여준다. 나주환이 주전 유격수로 우뚝 서는 동안, SK 와이번스도 자연스럽게 최고의 기량을 뽐냈다. 2007 시즌부터 2010 시즌까지 4년 동안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며, 그중 2009년을 제외한 세 번의 시리즈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09년에도 명승부 끝에 2위를 차지했다. 나주환도 그때를 잊을 수 없다. “2010년 시즌이 특히 기억이 남아요. 그때 아시안게임을 목표로 열심히 시즌을 보냈는데, 부상 여파 때문에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했거든요. 최종 엔트리 발표가 난 다음 날, 김성근 감독님이 저를 부르셔서 일주일만 쉬라고 하셨어요. 그래도 하겠다고 말씀드리고 경기에 나갔는데 그날 실책을 두 번 하고 교체됐어요. (웃음) 창피했죠. 그리고 한국시리즈를 하는데 다시 감독님이 부르셨어요. 아시안게임은 아쉽지만 여기서 우승하는 것도 큰 의미다. 그래서 더 과감하게 플레이했던 것 같아요.”


경험하기 힘든 한국 시리즈를 연속으로 네 번이나 참가하면 긴장이 덜하지 않겠냐는 생각도 들었다. 나주환은 고개를 젓는다. “후배들이 한국시리즈 때 어땠냐고 질문을 하면 ‘야, 뭐 별거 없어’ 이러는데, 사실 너무 긴장되죠.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이랑 3차전까지 전승을 하고 4차전을 치르는데도 정말 떨려요. 나 하나 때문에 선수, 코칭스태프, 프런트, 팬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까 하는 부담감이 큰 것 같아요. 그래도 박경완, 김재현 선배님들이 항상 다독여주셨어요. 어차피 시리즈가 끝나고 일주일만 지나면 어떤 팀이 우승했는지, 누가 뭘 했는지 다 잊는다. 항상 했던 대로만 하자고 해주셨죠.”



우승의 추억을 안은 나주환은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기 위해 2년 동안 그라운드를 떠난다. “처음에 공익을 갔을 때는 솔직히 좋았어요. 20살 때부터 프로에서 뛰었고, 운이 좋게 1군에서 백업, 주전으로 항상 시합을 나가서 행복했지만 한 편으로는 제 생활이 없었거든요. 친구도 못 만나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공익을 가서 세 달간은 야구도 안 보고 놀았던 거 같아요. 그런데 이게 참 병인 것도 같은데 어느새 야구를 틀고 SK 와이번스 경기 결과를 확인하게 되더라고요. 중계로 다른 선수들 보면서 나도 저랬을까, 나는 이렇게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운동장에 나와서 연습도 많이 했어요.” 그는 2년 후를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


2013년, 그가 돌아왔다. 하지만 생각대로 시즌이 풀리지 않았다. 떨어진 타격감과 부상까지 겹치며 힘든 시기를 보냈다. 결국, 2013년 단 15경기에 나오면서 시즌을 일찍 끝마쳤다. “저는 제 자신이 준비를 잘했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전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주전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이 악물고 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새 주전이라는 자리에 익숙해졌던 것 같아요. 더 열심히 해야 했던 거죠. 팀도 팬들도 기대가 참 많았는데 부상이랑 겹치면서 기량을 못 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작년 겨울부터 정말 준비를 많이 했어요. 올해에도 아직 성적이 좋지는 않은데 저 나름대로는 아프지 않고, 점점 올라갈 거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웃음)”


결국, 시즌을 일찍 마무리한 나주환은 교육리그 통보를 받는다. 신인들이 주로 가는 교육리그기에 서운한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고마운 일인데, 당시에는 서운했죠. 처음에는 안 가겠다고 하다가 이광근 코치님께서 앞으로가 더 중요하니까 가라고 조언해주셔서 마음을 돌렸죠. 그래도 그렇게 빨리 갈 줄 몰랐어요. 정말 SK 와이번스 프런트가 대단한 게, 교육리그 말을 꺼내고 이틀 후 아침 8시 비행기 표를 끊어주더라고요. 와이프한테 일주일 후쯤 미국 갈 것 같다고 얘기를 했는데 바로 짐 싸서 출발했죠. (웃음)”


미국에 도착한 나주환은 혹독한 훈련을 한다. “당시 김용희 퓨처스 감독님이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신경도 많이 써주시고, 감독님과 특별히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는데, 제 마음을 털어놓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저에게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아요.” 교육리그를 거친 나주환은 마무리 캠프, 스프링 캠프까지 자신을 채찍질하며 다잡았다.



그리고 벼르던 2014 시즌이 시작되었다. 그에게 2014 시즌은 새롭다. 기존에 수비위치였던 유격수에서 2루수로 자리를 옮겼다. “처음에 2루수로 연습하는데 정말 쉬웠어요. 시간이 지나니, 베이스 커버를 들어가는 것과 포메이션이 반대로 되어 있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더라고요. 또, 제가 유격수로서 가지고 있던 데이터가 이제는 소용이 없잖아요. 2루수 자리에서 이 타자의 공이 어느 쪽으로 많이 가는 성향인지, 새롭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2014 시즌이 끝나고 나주환은 FA에 해당하기 때문에 부담도 크다. “FA가 되게 힘든 것 같아요. 제가 원래 야구하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스트레스를 안 받아요. 그런데 지금 저를 비롯한 FA 해당 선수들은 한 타석에 목숨을 매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인생에 한 번뿐인 기회니까요. 그러니까 제가 시즌 초에 성적이 안 좋을 때, 정말 힘들더라고요. 불안하고, 매일 폼도 바꿔보고요. 근데 이제 50경기 정도 치르니까 좀 덜해요. 신경 쓰지 말자. 이렇게 생각하니까 다시 야구가 부담스럽지 않고 재밌어진 것 같아요.”


올 시즌 그의 수비위치 말고 변한 게 하나 더 있다. 결혼식을 올리고 맞이하는 첫 시즌이라는 점이다. 그에게 누군가의 남편이고, 한 아이의 아빠라는 책임감이 생겼다.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게 힘이 많이 돼요. 총각 때는 야구가 안 풀리면 밖에 나가서 술도 마시고 그랬는데, 이제는 집에서 위로를 받아요. 그런데 요즘 와이프가 야구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어요. 야구는 적당히 알아야 하는데 말이죠. (웃음)”


그래서 지난 4월 29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발생한 오심 논란도 더욱 속상하게 느껴졌다. 그날, 상대 투수 한승혁이 던진 공이 나주환의 손등을 강타했고, 주심은 사구를 판정했다. 하지만 당시 카메라에 그 모습이 확실히 잡히지 않았다. 경기를 지켜보는 중계진과 기자들은 단지 영상만으로 오심을 확정 지었다. 당시 프로야구 오심 논란이 매일 벌어지던 시기였고, 주심과 함께 맞은 척 연기를 한 격이 되어버린 나주환도 팬들의 질타를 받았다. “카메라가 아무리 좋아도 육안으로 확인이 안 되는 정도가 있거든요. 심판도 확실히 보고, 포수였던 (차)일목이 형도 제 손을 확인했어요. 그런데 기사에서는 안 맞았다고 확정을 지었더라고요. 손은 아프고, 너무 억울했어요. 만약 결혼하기 전이었으면 참고 넘어갔을 것 같은데, 와이프가 기사랑 댓글을 보고 너무 속상해하더라고요. 그걸 보는 저도 속상하고요. 나중에 제 딸이 인터넷 검색을 하면 보게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죠. 다음날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명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고 싶어요.”



‘아빠 나주환’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 단어를 보니 떠오르는 영상이 있다. OBS 프로그램 ‘불타는 그라운드’에 나온 인터뷰이다. 그는 아들을 낳으면 야구를 시킬 것이냐는 질문에 “좌완투수를 시켜서 FA 대박을 터뜨리겠다”고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결혼하고, 첫째 딸까지 낳은 상황에서 그 다짐은 변함이 없는지 질문했다. “(웃음) 아, 지금은 안 그래요. 이제는 딸을 예쁘게 키워서 FA 대박 나는 선수한테 시집을 보내야 해요. 예전에는 (최)정이 같은 애한테 보내야지 했는데, 요즘 정이면 안 돼요. 요즘 정이가 약해진 것 같아서요. (웃음) 농담이고요. 나중에 아들을 낳으면 야구를 시키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요즘 야구하는 환경도 정말 좋아졌고, 본인만 원한다면 지원해줄 생각입니다. 사실 와이프는 반대하는데, 제가 영상에서 뱉은 말은 지켜야죠. (웃음)”


인터뷰 내내, 가족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났다. 아내에게 한 마디 남겨달라는 요청을 하자 쑥스러운 듯 말을 이었다. “많은 사람이 운동선수와 결혼하는 걸 좋게 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아니에요. 혼자 아이를 키우고, 트레이드되면 바로 이사 가야 하고요. 제가 집에 들어가는 시간도 늦고, 훈련으로 집도 자주 비워요.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죠. 그 고마움을 제가 두고두고 보답할 거예요. 와이프가 옆에 있다는 것 자체가 힘이 많이 되니까 지금처럼만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네요. 사랑한다!”


무거워진 책임감만큼, 남은 시즌에 대한 각오가 대단하다. “힘들었던 일 년에 대한 보상은 4강이 아니고 우승이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잘하면 될 것 같아요. 이런 생각을 하는 팀 선수들이 모이면 성적은 자연스럽게 오를 거라 믿습니다. SK 와이번스는 큰 경기를 많이 해본 팀이고, 지고 있더라도 경기도 뒤집을 힘과 전통이 있는 팀이라고 생각해요.”



SK 와이번스와 자신을 응원하는 팬들에게도 말을 전했다. “작년 시즌을 아쉽게 마무리하고, 올해도 저희 성적이 팬들의 기대만큼 좋지 않은 걸 알고 있어요. 그런데 선수들은 아직 포기를 안 했어요. 지금은 부상자도 많아서 힘든 경기를 하고 있지만, SK란 팀은 힘과 저력이 있는 팀이라고 생각해요. 응원 많이 해주시면 저희 선수, 코칭스태프 모두 힘내서 웃으면서 시즌을 끝낼 것 같아요. 많이 와주셔서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주환이 어떤 야구 선수로 남고 싶은지 물었다. “(고민하다가) 믿음을 주는 선수요. 화려한 플레이가 팀과 팬들의 사기를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된다고는 생각해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실수하지 않고, 안정된 플레이를 선보이는 거예요. 평범한 타구를 놓쳤을 때, 투수의 힘이 빠지고, 그러면 팀이 힘든 경우로 나아가기 쉽거든요. 제가 있는 쪽으로 타구가 왔을 때 투수, 벤치, 팬들까지 무조건 아웃이라는 믿음을 주는 선수로 남고 싶네요.”



***

1,434일 만에 홈런이었다. 단순한 홈런이 아니었다. 두산에게 3-0으로 끌려가던 중에 터진 추격의 발판이었다. 그리고 5회 나주환은 앞서가는 두산과 동점을 이루는 희생플라이를 쳤다. 다시 두산이 점수를 냈지만, 결국 SK 와이번스는 김강민의 끝내기로 기분 좋은 승리를 가져왔다. SK 와이번스만의 저력을 다시 한 번 보여준 대표적인 경기가 아닐까. 사소한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우 같은 커다란 변화를 유발한다는 나비효과처럼, 나주환의 부활을 향한 날갯짓이 SK 와이번스의 반등이라는 폭풍우를 가져오길 기대해본다.


출처 : 'DUGOUT'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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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박경완의 23년은 화려했다. 4차례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2000년과 2004년에는 두 차례 홈런왕에 올랐으며, 국가대표팀이나 소속팀에서 그를 만난 투수들은 한 목소리로 26번을 단 그에게 깊은 신뢰를 표했다. 그렇게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포수로 꼽히는 박경완이 은퇴를 결정했을 때, SK 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대다수의 야구팬들은 놀라움과 아쉬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은퇴한 그가 퓨처스팀 감독으로 새 출발한다는 소식은 팬들을 더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은퇴 후 코치연수나 코치 데뷔가 아닌, 감독으로의 데뷔였기 때문이다. 과연 박경완은 야구인생 2막의 초석을 어떻게 다질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감독으로서 데뷔전을 갓 치른 시점, 박경완 퓨처스팀 감독을 만나보았다.

Photographer Lee Yong Han Editor Hong-Kweon Jeon Location Munhak Baseball Stadium


인터뷰에 앞서 감독이 된 그에게 데뷔에 대한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그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축하에 답했다. “저도 그렇고, 주변 분들께서 이게 축하를 해줘야 하는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오히려 축하해줘도 된다고, 축하해달라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은사님들께도 연락드렸었는데, 김성근 감독님께서는 ‘감독은 선수보다 먼저 운동장에 나와서 가장 늦게 퇴근해야 하는 자리다. 힘들고 고독한 자리인 만큼 인내력을 가져야 하는 순간도 있을 것이고, 항상 지도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셨죠. 조범현 감독님은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너의 은퇴 후 행보가 프로야구사에서 없던 일인데, 빠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고 물어보셨어요.” 사실 감독직을 수락했지만, 아직도 정답을 찾지 못한 박 감독. 하지만 선수시절의 그가 23년간 안정적인 투수 리드로 배터리가 함께 좋은 결과를 얻었듯, 지금도 본인이 잘 해야 자기 자신도, 팀의 미래도 좋은 결실을 맺지 않겠냐는 그다.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인생에서 가장 깊은 고민 끝에 내린 선수생활 은퇴이자 감독직의 결정이었기에 박 감독은 조심스레 은퇴를 결심하게 된 계기를 털어놓았다. “사실, 그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내린 결정이에요. 심지어 식구들에게도 결정하기 전까지 감독 제의가 들어온 것에 대해 함구했었죠. 솔직히 선수 생활을 더 하고 싶었던 마음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이 제가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기 적절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그는 작년에도 같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그 때는 한 해만 더해보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고민을 올해에도 하게 되자, 미련은 남아있을지 모르겠지만 단호하게 은퇴의 길을 택했다. “선수가 감독의 기대치에 못 미치면, 천하의 박경완, 천하의 이승엽일지라도 기용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작년의 경우에는 이런 걸 못 느끼고 감독님을 원망했었는데, 올해 들어서 왜 감독님 탓으로만 생각했는지 반성하게 되었어요. 잠깐의 기회는 올해에도 분명히 있었어요. 그 기회를 잡았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거라고 봐요. 이렇게 생각을 바꾸니 은퇴 결정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 퓨처스팀 감독일지라도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 선수생활 은퇴 후 바로 감독이 되는 사례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박 감독 역시 본인이 최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역사를 쓴다는 느낌, 자신이 잘 되면 자신의 후배들에게 모범사례로 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마치 23년 전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연습생으로 프로 선수의 삶을 시작했을 때처럼. “어느 날, 누군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준비된 감독과 준비되지 않은 감독’ 과연 이 둘의 차이가 무엇일지, 과연 코치연수나 코치 경험 없이 바로 감독이 되는 이는 준비되지 않은 감독일지 말이죠. 그러다 보니 순간적으로 도전정신이 생겼어요. 제가 퓨처스 감독으로서 팀을 이끌어 나가는 능력을 보여주었을 때, 뒤에 은퇴할 후배 선수들도 은퇴 직후 감독직을 맡을 수 있는 길을 열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반면, 안되더라도 후회 없이 해보고 싶어요. 처음 프로에 입문했을 때도 연습생으로 시작했었잖아요?”


사실,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포수라 평가받는 박경완을 선수로서, 혹은 코칭스태프로서 원하는 구단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인천과 SK는 제2의 고향 같은 팀이었기에 쉽게 떠날 수 없었다. 파격적인 감독직 제안도 주효했겠지만, 그의 머릿속에 SK를 제외한 팀은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프로 선수로 23년 동안 쌍방울, 현대, SK에서 뛰었는데, 앞서 두 구단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어요. 그리고 제가 가장 오래 몸담은 팀이 SK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선수들과 구단 관계자와 정도 많이 들었어요. 다른 구단에서 선수 생활을 연장했더라도 코치 생활은 이 팀에서 하고 싶었어요. 다른 구단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하는 것보다 후배들에게 애착이 더 많이 갈 것이고, 제 노하우를 더 깊게 전수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박 감독이 SK를 떠날 수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중학생 시절부터 그와 배터리를 이루었던 친구 김원형 코치일 것이다. 김 코치는 지난 시즌까지 3군에 있다가 올 시즌 1군으로 올라왔다. 그는 은퇴를 고민했던 박 감독에게 최대한 오래도록 선수로 남아있으라는 조언을 했다. 코치로서의 삶을 잘 이해하는 그는 죽마고우의 말에 매우 공감이 갔다. “여러 선수들을 일일이 봐줘야 하는 점도 그렇고, 예를 들어 9시 훈련이 잡혔다고 치면, 코칭스태프는 8시 이전에 나와서 미팅을 통해 준비를 해야 하고 선수들보다 늦게 일과를 마치니까요. 하지만 힘들지 않습니다. 아니, 힘들 수 없습니다. 최대한 기존 퓨처스 선수, 신인 및 신고선수, 그리고 재활군에 있는 선수를 모두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죠.”



인터뷰를 진행했을 때, 박 감독은 한화 퓨처스팀과의 데뷔전을 치룬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연습생의 심정으로 임했다며 경기를 복기하는 그의 모습에서 신인 선수의 설렘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경기 중간에 선수교체를 결심했는데, 실수로 주심에게 통보를 안 한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을까 싶은 실수죠. 그리고 연습경기지만, 전날 밤 타순을 짜는데도 밤을 새며 감독의 고민과 스트레스를 온 몸으로 느꼈죠. 덕분에 몸살이 걸려서 한동안 고생했습니다. 하하하. 그 날 경기는 신인 선수 위주로 이끌어나갔기 때문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어요. 하지만, 스포츠 세계에서 이기고자 하는 열망은 당연한 겁니다. 내년 시즌에 돌입하기 전까지 철저히 준비해서 승리를 거두는 날이 많아져야죠.”


또한 그는 자신의 신분이 선수에서 감독으로 바뀌면서 후배로 부르던 선수들이 한순간에 제자가 되었다. 서로 어색해할 수밖에 없었다. “저를 ‘선배님’으로 불렀던 후배들이라서 그런지 ‘감독님’ 소리를 잘 못하더라고요. 저 역시도 어색했었죠. 하지만 그 어색함도 3주 정도의 시간이 흐르니 눈 녹듯 풀리더라고요.” 그를 보좌하는 코치들도 그의 감독직 시작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 선배, 심지어 신인시절의 박경완을 조련했던 코치도 있는 코치진은 감독으로서의 후배를 존중함과 동시에,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도전하는 자세를 잃지 말라는 마음으로, 무모해보일 수도 있는 그의 의사결정에도 박수를 보내주고 있다.


또한 SK 프런트는 이와는 다른 의미로 박 감독을 도울 방법을 찾았다. 그보다 야구 후배이고 프로무대의 코치경력이 일천한 코치들을 신입 코치로 영입하며 그의 동기부여를 유도한 것이다. “구단에 감사하죠. 저와 후배 코치들은 서로가 부족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만족을 모른다는 자세로 지도에 임하고 있어 앞으로도 시너지 효과가 클 거라고 봅니다.”



박경완의 2군 감독 임명으로 포수 출신 프로야구 감독이 하나 늘었는데, 최근 포수 출신 감독들의 호성적으로, ‘명포수 출신 감독은 모두 명장’이라는 공식이 생겼다. OB 베어스에서 안방마님 경쟁을 하던 김경문 감독과 조범현 감독은 각각 국제대회 우승을 차지한 명감독이 되었기 때문이다. 박 감독도 포수로서의 경력이 감독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명포수가 명감독으로 곧장 이어진다는, 성급한 일반화는 지양하는 모습이었다. “류중일 감독님은 유격수 출신으로 팀을 3년간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려놓은 명장이신데, 그렇다고 유격수 출신 감독만이 명장은 아니잖아요? 다만 포수로서의 경력이 감독 생활에 장점이 될 수 있으니, 이를 토대로 앞으로의 감독 생활을 잘 설계해 봐야겠지요.”


또한 많은 팬들은 명포수 출신인 박 감독에게 ‘제2의 박경완’을 육성하길 바란다. 하지만, 현재 그의 직책은 감독이다. 포수 육성은 대개 배터리 코치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감독은 감독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해요. 배터리 코치가 있는데 저만의 방법론을 내비치는 것은 분명히 월권입니다. 각자 생각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목표는 하나예요. 그리고 박철영 배터리 코치님은 포수 육성 경력이 풍부하신 분이세요. 설령 후배 코치가 배터리 코치였더라도 월권은 잘못된 방법이죠. 감독이라는 권한 안에서, 혹시나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코치님과 상의 후에 결정할 생각입니다.”


포수 육성 이야기를 하던 중, 최근 프로야구계 전체에서 아쉬워하는 ‘대형포수의 부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대형 포수 부재를 논하기에 앞서, 간절함을 잃지 않았던 자신의 23년 선수생활을 복기했다. 그는 그 속에서 이 주제의 답을 찾았다. “저는 지금까지 야구를 해오면서 제 자리를 지킬 의도로 임한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간절하게, 이것 아니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임했죠. 뼈가 부러지지 않는 이상 무조건 내 자리를 지킨다고 다짐했어요. 만약 제가 자리를 비웠을 때 대체 선수가 2경기 이상 좋은 활약을 보인다면, 감독 입장에서 당연히 인상 깊을 수밖에 없어요. 저는 그마저도 허용하고 싶지 않았던 거죠. 지금 KT에 계시는 조범현 감독님께서 쌍방울 배터리 코치로 계셨을 때, 신인이었던 저를 선수로서 아주 강하게 키우셨어요. 대화가 잘 통했기 때문에 저에게는 나침반 같은 존재였죠. 하지만 97년 현대로 트레이드된 이후에는 의지할 사람이 없었어요. 9억이라는 트레이드 머니도 부담감으로 다가왔었죠. 그 때 생존본능이 생겼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 프로에는 그러한 생존본능을 가진 포수를 찾아볼 수 없어요. 롯데의 강민호, 삼성의 이지영, 그리고 저희 팀의 정상호 등 차세대 명포수가 될 수 있는 재목들은 상당히 많아요. 반면, 비단 이 선수들에 국한하는 말은 아니지만, 요즘 후배 포수들을 보면 대개 유약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포수라는 자리는 다른 포지션보다 부상빈도가 높을 수밖에 없어요. 이를 참고 일어나야 팀의 수비시간이 줄고, 투수와 다른 야수들이 안정감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런 투지를 보여주지 않는 포수들이 있어요. 그런 선수들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팀을 힘들게 하는 선수들이죠.”


그렇다면, 과연 감독 첫 시즌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목표는 무엇일까? 우선, 23년간의 선수생활에서 마주한 선배 지도자들을 떠올리며 최선의 지향점을 찾는 게 그가 생각하는 첫 번째 목표다. “프로 생활동안 여러 감독님들을 만나 보았어요. 그 분들의 장단점을 감히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저만의 관점을 통해 좋은 부분을 취하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물론 어떤 감독님의 스타일을 닮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이 상당히 많은데, 이는 누군가를 따라가야 할 문제가 아니라고 봐요. 경험을 통해 만들어 가야 할 문제죠.”


그의 지도 방침은 포지션에 국한되지 않는다. 다만 퓨처스팀에 소속된 다수의 유망주의 기량을 끌어올려 1군의 대체자원으로 발탁하고, 1군에서 재정비를 위해 내려온 선수들을 다시 최상의 컨디션으로 올려 보낼 뿐이다. “감독직을 수락한 후 이만수 감독님을 찾아가 뵈었는데, 어린 선수들을 잘 이끌어 달라고 부탁하셨어요. 퓨처스팀 감독으로서 제가 해야 할 부분이죠. 다만 아직 능력이 다른 선수들이기 때문에 저의 선수생활을 기준으로 평가하기보다는 개개인에 맞추어 지도해야한다고 봐요. 그런 점에서 2년간 재활군과 퓨처스팀을 오가며 1군과의 차이점을 몸소 느낀 게 큰 경험이 되었죠. 신인 시절에 경험했던 퓨처스 생활을 선수 생활 말미에 다시 느꼈고, 시대가 달라졌음을 느꼈어요. 요즘에는 선후배간의 무조건적인 위계질서를 강조하기보다 자신의 의사표현을 할 줄 아는 선수들이 많아요. 그러다보니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많이 느꼈죠. 이뿐만 아니라 1군 선수들을 여러모로 지원해 주는 것도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훈련의 강도는 높일 생각입니다. 초심을 갖고 임하고 있기에 의욕을 갖고 있고, 제가 생각하는 훈련의 강도가 있기 때문에 혹독하게 해 볼 생각이에요. 많은 연습이 모두를 발전시키지 못하겠지만, 발전을 위해서는 많은 연습이 필수적이라고 보기 때문이죠.”



박 감독은 선수시절 자신의 등장음악과 응원가를 기억한다. 문학 야구장 3루에 있는 가로 전광판에 ‘26, 포도대장 박경완’이라는 문구까지 말이다. “다른 시즌도 기억에 남는 순간이 참 많았지만, 저는 올 시즌이 참 기억에 남습니다. 1군에 올라와 타석에 들어섰을 때 그 어떤 선수보다 저를 환호해주셨던 팬 여러분들이 눈에 선해요. 선수 생활 막바지에 더욱 더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던, 팬 여러분들의 사랑이었죠. 사실 팬분들 때문에라도 무조건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진 순간들이 많았거든요.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성실한 모습 보여드리고 싶었고, 운동장에서 만큼은 누구보다 더 열심히 했다고 자부했죠. 그라운드에서 ‘선수 박경완’의 모습은 이제 보여드릴 수 없겠지만, ‘지도자 박경완’도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그는 문학 야구장 내야에 있는 ‘314’라는 숫자판을 보며 회상에 잠겼다. 314는 그가 23년 간 친 홈런 개수로, 홈런이 야구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야구를 꾸준히, 그리고 잘 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숫자다. 이 모든 걸 다시 할 수 없는 게 내심 아쉽다는 박 감독이다. “그걸 보면서 제 자신에게 이야기했죠. ‘너 참 고생 많았다.’ 제 인생의 4분의 3을 야구에 바쳤어요. 42살인데, 33년 동안 야구를 했어요. 저기 적혀 있는 숫자도 중요하겠지만, 제 인생의 전부인 야구를 하면서 고생 많았고, 잘 견뎠고, 잘 이겨내서 후련하다는 느낌이 들었죠. 314라는 숫자, 그리고 그 속에 있었던 선수로서의 수많은 경험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개척해나가야겠죠?”


프로야구 팬이라면 이 소식이 아쉽지 않을 사람 있겠는가? 하지만 감독으로서 야구인생의 2막을 여는 그를, 선수시절의 그보다 더 응원해줄 때다. 그리고 그에게는 초심으로 빛나는 열정과 야구인생에서 느꼈던 간절함, 그를 보좌하는 선후배 코치진, 그리고 그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는 팬이 있다. SK의 미래, 그리고 은퇴 선수들의 새로운 미래를 열 ‘감독’ 박경완의 도전에 박수를 보내보자.


출처 : 'DUGOUT'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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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보석 진주의 탄생은 잠시 껍데기를 연 조개에 모래알이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이물질의 침입으로 고통에 몸부림치던 조개가 그 모래알을 품고 인고의 시간을 견뎠을 때, 모래알은 최상품의 진주가 된다. 윤희상이 그렇다. 어릴 때부터 야구만을 바라보았던 그에게는 부상이라는 고통이 찾아왔다. 그가 8년에 걸쳐 시련을 견디고 나자, 그는 팀의 든든한 선발이 되었고 함께 인생을 살아갈 피앙세를 얻었다. 시련을 극복하고, 진주만큼이나 값진 역할을 하는 윤희상을 만나보았다.

Photographer Lee Yong Han Editor Somin Park

 

만나서 반갑습니다. 요즘 축하할 일이 많죠. 결혼 얘긴 잠시 뒤에 하기로 하고 먼저, 9월 월간 탈삼진왕이 되셨어요. 추석에 선보였던 7타자 연속 삼진은 특히나 대단하던데요.

913일 두산전부터 삼진이 잘 잡혔어요. 마음가짐을 다잡고, 집중해서 경기에 들어가니까 좋은 결과가 나오더라고요. 그다음이 넥센과의 시리즈였는데, 팀이 두 번 다 져서 사실상 포스트시즌 탈락이 확정됐죠. 포스트시즌에 못 올라가니까, 남은 경기는 포스트시즌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던졌죠. 응원해주신 팬분들께 죄송한 만큼 성의 있는 플레이를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평상시 게임보다 집중을 잘하려 노력했죠. 그래서 그런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아요.

 



8월까지만 해도 4점대 중반이었던 방어율을 3.70까지 낮췄고, 후반기에 상승세가 대단했죠.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아까 말했던 것처럼 마음가짐도 다시 하고, 전반기보다 몸도 많이 좋아졌어요. 올 초 WBC 전에 캠프에서 다쳤던 게 이상하게 잘 낫질 않고, 몸도 안 올라왔었는데 후반기에 많이 좋아졌어요.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올스타전이 열리던 날 혼인신고를 했다고 들었어요. 후반기 상승세의 힘은 아무래도 가장이라는 책임감에서 생긴 것 아닐까요?

아직 아이가 없어서 책임감까지는 들지 않는데, 아내가 옆에 있으니까 심적으로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즐거운 일들이 생기니까 엔도르핀이 돌아서 그런가 봐요. 좋은 생각만 하고, 더불어 몸도 좋아지고요.

 

그렇게 인생의 엔도르핀이 된 아내에게 한 프러포즈가 화제가 되었어요. 그라운드 프러포즈는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프러포즈해야겠다고 마음으로 계속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데 딱히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구단 홍보팀으로 일하는 형에게 부탁했더니, 선뜻 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둘이서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나누어서 프러포즈를 기획하게 되었어요. (낭만적인 프러포즈에 부인분이 많이 감동하셨겠어요.) 끝나고 말로는 감동했다고 했는데요. 저는 준비하면서 정말 엉엉 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차분한 거예요. 그래서 조금 아쉬웠어요. 이게 약했던 건가 싶기도 하고요. (웃음)

 

이렇게 행복한 프러포즈까지 연애기간이 8년이라고 들었어요.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가 궁금해요.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제가 2006년에 어깨 수술을 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강남역이라는 곳을 임훈 선수와 같이 가게 되었어요. 그렇게 강남역을 걷다가 길거리에서 아내를 처음 봤어요. 처음 본 순간 반해버렸죠. 연락처를 받고 싶었는데 용기가 안 나서 못 받았어요. 결국, 지나치고 훈이랑 맥주 한 잔을 했죠. 한참을 마시다 자리를 옮기려고 가게에서 나왔는데, 아까 그 여자가 또 지나가는 거예요. 다시 만났는데도 말을 못 걸었어요. 결국,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돌아서 자리를 옮겨서 맥주 한 잔을 더 하고 나오는 길에 또다시 마주친 거예요. 그때는 이제 술기운도 조금 올라오고 용기가 나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연락처를 물어봐서 받았어요. 그렇게 어렵게 연락처를 받았는데, 제가 전화를 해도 아내가 한 통화도 안 받았어요. 그러면 보통 사람들은 두 통정도 전화하고 안 받으면 못하잖아요. 근데 저는 정말 이 여자를 놓치기 싫더라고요. 해볼 때까지 해보고 싶었어요. 그랬더니 10일 만에 전화를 받아주더라고요. 그렇게 연락을 시작했죠.

 

오랜 시간 만난 만큼 연애가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연애하면서 많이 싸웠죠. (웃음) 제가 공익생활하고, 아내가 간호 공부하는 대학이 멀어서 저희가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었어요. 차라리 두 시기가 겹쳤으면 좋았을 텐데, 제가 전역하자마자 아내는 공부를 하러 강원도로 갈 수밖에 없었어요. 서로 보질 못하니까 많이 힘들고, 싸웠던 시기였죠.

 

그렇게 연애를 하면서, 언제 ! 이 사람이다, 이 사람과 결혼하겠다!’라고 느꼈나요?

일단 처음 본 순간 정말 예뻤어요. (웃음) 이 사람이면 결혼해서 아침에 눈을 떴을 때 , 예쁘다이런 생각이 날 것 같았어요. 그렇게 얼굴이 예쁜데, 마음씨까지 예쁘더라고요. 제가 군대 간 2년 반 동안 기다려주고, 2군 생활하면서 힘들 때 절 챙겨주는 모습을 보고 확신이 생겼죠.

 



다시 야구 얘길 해볼게요. 시즌이 끝났는데 몸 상태는 어때요?

몸 상태는 좋은 편이에요. (시즌 전 부상이 있던 어깨는 어때요?) 어깨는 이제 거의 다 나았어요. 투수가 어깨 수술하고 일 년 선발로 뛰기 어렵잖아요. 그런데 잘 쉬었고, 어깨도 괜찮아요. 오히려 어깨 수술을 하고, 조심하자고 생각을 하니까 몸 관리를 더 잘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요즘엔 훈련만 하고 있나요?

우선 운동장에서 훈련을 받고 있고요. 요즘에는 밀린 예비군을 많이 다니고 있고요. 나라를 지켜야 하니까요. (웃음) 1214일에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니까 준비도 차근차근하고 있어요. 웨딩촬영도 갔다 왔고요. 그래도 여유 있게 지내고 있어요. (앞으로 팀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계속 지금처럼 운동하다가 27일에 일본 가고시마로 마무리 훈련을 가기로 일정이 짜여있어요.

 

매년 이맘때쯤엔 가을야구를 하고 있던 SK인데, 지금 훈련만 하는 게 어색할 것 같아요.

그러게요. (한숨) 원래 야구를 하고 있어야 하는데 야구를 보고 있어서요. 아쉬워요. 정말 많이요. 팬들한테 죄송스럽기도 하고요. (요즘 포스트시즌이 한창인데 보셨어요?) , 매 게임 다 보고 있죠. 팀이 6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그중에 저는 포스트시즌을 두 번 경험해봤는데요. 직접 하는 거랑 보는 거랑 또 다르잖아요.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지난해에는 선발 전환 첫 시즌에 10승을 달성했고, 올해는 선발투수 보직에 완전히 어울리는 선수가 된 것 같아요.

선발로 보직 전환이라고 표현하기보다는, 2군에 있다가 1군에 올라와서 2년 동안 선발로 자리를 잡았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선발이라는 자리에 만족하세요?) 저는 선발이 심적으로 편해요. 제가 못 던져서 팀이 지면 제가 패전투수가 되잖아요. 그러면 제 책임이라고 돌리면 되거든요. 그런데 중간계투나 마무리 투수는 앞에서 선발투수가 잘 던져 승을 만들었는데, 그걸 날리는 경우가 종종 있잖아요. 저는 그런 부담감을 갖고 던지면 힘든 것 같아요. 그래서 선발투수가 저에게 딱 맞는 것 같아요. 물론 쉽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 것 같아요.

 

올 시즌 개인 성적은 만족하세요? 목표는 10150이닝이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10승은 못했지만 150이닝이라는 이닝 수를 넘긴 거에 대해서는 만족하고 있어요. 왜냐면 제가 선발로 많이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거든요. 이번 시즌이 9구단 체제다 보니까 휴식일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용병선수들을 쓰는 게 아무래도 유리하니까 저는 게임 출장 횟수 자체가 적었어요. 그런데도 게임당 평균적으로 던지는 이닝이 많았거든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150이닝을 넘겼어요. (10승을 못한 게 아쉽진 않으세요?) 저도 승이 생각보다 없어서 아쉽죠. 그런데 승은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퀄리티스타트에 의의를 두고 싶어요. 제 성적에 대해 100% 만족은 아니지만, 만족하려고 합니다. 못했다 생각하면 스트레스만 받으니까요.

 

선발로서 책임감이 강하신 것 같아요. 매 인터뷰에서도 선발투수로서 꾸준하게 제 몫을 하고 싶다고 강조하기도 했고요. 그렇다면 내년 시즌 윤희상 선수의 목표는 어떻게 되나요?

내년 시즌도 똑같이 선발투수로서 150이닝 정도는 책임지고 싶어요. 선발 로테이션도 지켜가면서, 최대한 많은 이닝을 이끌어 가야겠죠. 그래서 중간계투 투수들이 , 희상이 나오면 6회까지는 몸 안 풀어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믿음을 주는 투수가 되고 싶어요.

 

최근 꾸준한 활약으로, 올해에는 팀 내 역대 2번째 연봉인상률을 기록했어요. 두 시즌 동안 보여준 모습으로 팬들의 기대도 확실히 높아졌고, 이번 연봉 어떻게 예상하세요?

연봉은 뭐 오를 것 같긴 해요. (웃음) 그런데 구단 사정도 있고, 구단 생각은 다를 수 있으니까요. 사실 제 생각이랑 구단이 예상하는 거랑 차이가 크지 않으면 쉽게 사인할 것 같아요.

 

이제는 웃으며 내년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만, 윤희상 선수는 힘든 시기가 길었어요. 2군 생활도 길었고 2006년엔 어깨 수술도 했죠. 그 시기엔 야구선수라는 게 힘들지 않았나요?

저는 어렸을 때도, 힘들었을 때도 매일매일 야구를 하고 싶었고, 지금도 매일 마찬가지예요. 야구 선수라는 게 힘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그 반대로, 야구가 정말 하고 싶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힘들었어요. 어깨 수술 했을 때는 야구를 정말 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었어요. 못해요. 그때 정말 힘들었어요. “, 내가 빨리 포기해야 되는구나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더라고요. (야구를 그만두실 생각마저 했었나요?) 생각해봤죠. 어깨 수술 하고 팔이 워낙 안 나아서 머리로는 야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마음으로는 야구가 정말 하고 싶은 거예요. 그러면서 나이는 점점 먹어가고, 돈은 벌어야 하고. 많은 생각이 들었죠.

 

힘들었던 시기에 팀에서 힘이 되어주었던 존재는 없나요?

아유, 많았죠. (웃음) 모두가 저에게 힘을 주시려고 노력하셨어요. 특별히 생각나는 건 김상진 코치님이요. (코치님이 많이 챙겨주셨나요?) 특별히 챙겨주셨다기보다는, 남자들은 원래 힘들어도 말을 잘 못하잖아요. 정말 힘들 때 전화하면 따뜻한 조언을 한 번씩 해주셨죠. 아버지 같은 분이에요.

 

2군에 있던 시기에 캐치볼을 하다 우연히 발견한 포크볼이 윤희상 선수의 주무기가 되었어요. 포크볼의 위력을 높여 줄 다른 구종 개발은 하고 계신가요?

일단 내년에는 커브를 많이 던질 것 같아요. 올 시즌에 커브를 변형하면서 이것저것 배우고 있는데, 이번 스프링캠프에서도 커브를 많이 연습하려고 해요. (왜 하필 커브인가요?) 제가 우타자들한테 약해요. 원래 오른손 투수는 우타자한테 강하고, 왼손 투수는 좌타자한테 강해야 하는데 저는 의외로 오른손 타자한테 약해요. 그걸 극복할 방법으로 커브가 적당할 것 같아요. 커브를 좀 더 업그레이드시키고, 많이 구사하고 싶어요. 제 커브가 우타자들을 이길 수 있는 구종이라고 생각해요.

 

다소 무뚝뚝해 보이는데, 평소 성격은 재미있는 편이라고 들었어요.

아니요. 재밌지 않고, 오히려 썰렁하다는 타박을 많이 듣죠. (웃음) 개그를 많이 시도하는데 잘 안 먹혀요. (어떤 식으로 시도하시는데요?) 말장난 많이 치죠. 저 혼자 있으면 재미가 없고요. 옆에 재밌는 친구가 있으면 많이 묻어가요. (웃음)

 

작년 올스타전의 강판 사건과 자선 야구대회에서 이대호 선수 따라 하기 같은 걸 보면, 개그 욕심이 있는 것 같아요.

개그 욕심이 없지도 않지만, 많지도 않아요. 그냥 웃겨야지 이런 생각보다는, 야구장 나가서 즐거울 때 나오는 행동들이에요. 자선대회 나갔을 때는 좋은 취지로 야구를 한다는 게 즐겁고, 옆에서 선배님들이 해보라고 하시니까 그냥 즉흥적으로 하게 되더라고요. 올스타전도 처음 나가서 재밌었어요. 그런데 ()정이가 홈런레이스를 나간다고 하는데 배팅볼 투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형이 할게!”하고 했는데 또 의도치 않게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서 웃음을 드린 것 같아요. (올스타전 배팅볼 투수 강판 사건은 팬들 사이에서 올스타전 명장면으로 꼽히기도 하는데요.) 해설위원님들이 해설 20년 했는데 배팅볼 투수가 강판당하는 것 처음 봤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웃음) 저도 재밌었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윤희상 선수를 보면, 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아요. 팀이 자신을 존중해주는 걸 느꼈다고 언급한 걸 봤어요. 윤희상에게 SK 와이번스는 어떤 팀인가요?

지금까지 저를 보호해준 팀이요.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어깨 수술하고, 군대 갔다 오고, 아프다고 했던 선수를 계속 기다려주고, 보호했잖아요. 고맙다는 생각이 많이 들죠. 그래서 이제는 제가 보답할 차례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SK 와이번스와 윤희상 선수를 응원하는 팬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상투적인 말일 수도 있지만, 항상 응원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정말 팬들의 응원 덕분에 힘이 납니다. 올해는 저희가 아쉽게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내년에는 포스트시즌에 올라갈 수 있도록 매 게임 한 구, 한 구에 최선을 다해서 의미 있는 공을 던지겠습니다.

 

***

 

팀의 에이스란 무엇일까. 혹자는 타자를 위협할 만한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라고 대답할 것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타자들의 헛스윙을 불러내는 다양한 변화구를 가진 투수라고 생각 할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팀의 에이스는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고 싶고, 뒤를 이어 던질 선수들을 위해 많은 이닝을 책임지고 싶다는 윤희상같은 투수가 아닐까. 이런 그가 팀의 에이스로서 제대로 실력을 보여준 지 이제 2년밖에 되지 않았다. 앞으로 오래도록 좋은 공을 던지는 윤희상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출처: 'DUGOUT' 11월호

Posted by SK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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