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명의 대스타가 정든 그라운드를 떠났다. '리틀 쿠바' 박재홍은 18일 SK 와이번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가 열리는 인천 문학구장에서 은퇴식을 치렀다. 경기 시작 전부터 비가 오는 궂은 날씨였지만 2만 6573명이라는 많은 관중이 찾아 '선수' 박재홍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 박재홍의 '우익수 홈 송구'로 시작된 이날 경기가 끝나자 '선수' 박재홍을 떠나 보내는 은퇴식이 치러졌다. 


그렇다면 이날 박재홍의 은퇴식 이면에는 어떠한 사실들이 숨어 있을까. 박재홍을 비롯해 행사진행관계자, 이날 중계방송을 담당한 XTM까지 세 가지 시선으로 이날 은퇴식을 되돌아 본다. 1편 ''선수' 박재홍, 마지막 문학구장 찾던 날'을 시작으로 2편 ''박재홍 은퇴식' 팬들의 얼굴에서 보람을 느끼다', 3편 'XTM에게 박재홍 은퇴식은 운명'이 차례로 찾아간다.

 

2013시즌 박재홍의 직함은 '선수'가 아닌 '해설위원'. 은퇴식 전날인 17일 역시 어김없이 NC 다이노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를 중계하며 본분을 다했다. 중계를 끝내고 집에 돌아온 시각은 18일 새벽. 연휴라 차가 많이 막혔다. 18일 오후. 돌아가고 싶지만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선수' 박재홍으로서 마지막으로 그라운드에 설 시간이 됐다.

 

오후 3시. 현대 유니콘스 시절 동고동락한 이숭용 해설위원이 박재홍을 맞이한다. "은퇴식하는 선수가 어떻게 나보다 늦게 왔느냐"고 타박하지만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이후 박재홍은 선수로서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야구장 곳곳을 누볐다.

 

처음 찾은 곳은 선수단 라커룸과 웨이트 트레이닝장. "은퇴한지 얼마 안됐지만 어색하다"고 운을 띄운 박재홍은 "원래도 이 특유의 라커룸 냄새를 좋아했지만 오랜만에 오니까 더 좋다"고 말했다. 이내 박재홍의 발길은 자신이 쓰던 라커룸으로 자연스레 향했다. "지금은 (이)명기가 쓰고 있구나…"라고 자연스레 혼잣말이 나온다. 이어 선수들과도 반갑게 인사했다. 16일 광주 KIA전에서 데뷔 첫 승을 거둔 백인식에게는 "첫 승 축하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기 위해 복도를 걷던 중 박재홍의 걸음이 멈춘다. 자신이 뛰던 시절이 담긴 그래픽월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7년 팀의 첫 우승 순간, 2010년 한국시리즈 우승 직전 덕아웃에서 그라운드로 뛰어나가는 것을 준비하는 선수들 중에도 그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 모습을 보며 감회에 젖은 박재홍은 "사진들만 봐도 어떤 상황이었는지 다 떠오른다"고 사진을 보며 당시를 추억했다.

 

이후 취재진과 간단히 인터뷰를 한 박재홍은 이만수 감독을 비롯한 SK 코칭스태프와 인사를 나눴다. 이만수 감독은 "선수 시절 막바지에 루키로 뛰었다. 작은데 정말 매섭게 잘쳤다. 앞으로 박재홍과 같은 훌륭한 선수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재홍은 3루측 덕아웃도 들러 현대 시절 함께 했던 롯데 김시진 감독과 인사했다. 김시진 감독은 "고생했어"라고 격려한 뒤 "방송 잘 보고 있다"고 덕담을 건넸다.

 




이제 '선수 박재홍'으로 변신할 시간. 박재홍은 양복을 벗고 등에 '62'가 선명하게 찍힌 유니폼으로 갈아 입었다. 오후 4시 30분부터 진행된 그라운드 팬 사인회는 그의 포지션이었던 우익수쪽에서 진행됐다. 사인을 받는 사람은 박재홍의 등번호와 같은 62명. 치열한 경쟁을 뚫고 박재홍을 상징하는 숫자에 포함된 이들이다. 그는 팬들 한 명 한 명에게 정성스럽게 사인을 해줬다.

 

경기 전 마지막 행사인 시구. 박재홍이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내자 팬들이 함성으로 응답한다. 박재홍은 마운드에 올라가서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한 뒤 불쑥 우측 외야로 향했다. 단순한 시구가 아닌 '선수' 박재홍의 마지막을 알리는 진짜 퍼포먼스를 하고 싶었던 까닭이다.

 





이후 박재홍은 마운드가 아닌 우익수 자리에서 홈으로 송구를 했다. 비록 예전만큼의 강견은 아니지만 두 번 튀긴 공은 포수 정상호가 있는 홈플레이트 앞으로 정확히 향했다.

 

경기는 구단이 마련한 스카이박스에서 지켜봤다. 경기 도중 박재홍은 주인공이 아니었지만 어찌보면 은퇴식보다 더욱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박재홍의 은퇴식을 보기 위해 일가 친척이 모두 모였기 때문이다. 박재홍은 "은퇴를 하게 되니까 자연스레 친척 모임이 됐다. 원래는 명절 때나 가능한 것인데"라며 미소 지었다.

 

아버지 박윤영씨와 어머니 조영지씨도 자리를 함께 했다. 이들은 아들의 은퇴식을 보기 위해 이날 아침 광주에서 올라왔다. 박윤영씨와 조영지씨는 "팬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 반복했다. 박윤영씨는 "팬 분들 모두에게 정말 감사하다"며 "자랑스러운 아들이다. 아쉬움도 있지만 언젠가는 그만 둬야 하는 것이지 않느냐"며 아들의 은퇴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다. 조영지씨도 "팬들에게 감사하다. 정말 사랑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며 진심이 담긴 말을 전했다.

 

가족과 함께한 이 자리에서 박재홍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박윤영씨는 아들의 프로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무엇이었느냐는 물음에 1996년 데뷔 당시 30-30을 꼽았다.

 

1996년 박재홍은 홈런 2개만 추가하면 30-30을 달성하는 상황에서 홈런 2개가 잘 나오지 않았다. 이 때 부모님이 인천구장을 찾았고 경기장에 온 첫 날 29번째 홈런을 때렸다. 여기까지는 기억이 일치했다. 이어 박윤영씨는 잠실구장에서 이뤄진 30-30도 지켜봤다고 말했다. 그러자 박재홍은 "안 오시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이 때 옆에 있던 조영지씨가 아버지의 말에 동조하며 경기장에 있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 몰래 30-30이 이뤄지는 장면을 지켜본 것이다. 박재홍은 "아, 그 때 계셨구나…"라고 잠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부모님 마음은 다 같은 가 보다. 

 

경기는 우여곡절 끝에 SK의 5-6 강우콜드 패배였다. 적지 않은 비가 내렸지만 박재홍의 마지막을 함께 하기 위해 모인 관중들은 비에도, 응원팀의 패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경기장을 지켰다.

 

박재홍은 은퇴사를 하던 도중, 그리고 응원단상에 올라가 팬들에게 한마디를 하던 도중 눈시울이 붉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끝까지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은퇴식을 마치고 덕아웃으로 돌아온 박재홍은 눈물 대신 미소를 머금었다. 박재홍 역시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팬들이 끝까지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이날 소감을 밝혔다. 악조건 속에서 이뤄진 은퇴식은 팬들의 사랑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이날 경기장에서의 모든 일정을 끝낸 박재홍은 입고 온 옷으로 갈아입고 '해설위원' 박재홍으로 돌아갔다. 비록 5시간 동안의 선수 복귀였지만 박재홍은 많은 것을 얻고 경기장을 떠났다. 그리고 이는 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듀, 리틀쿠바!"


고동현 마이데일리 기자

Posted by SK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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