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강화 SK 퓨처스 파크에 만난 이석모(28) SK 퓨처스팀 매니저의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 “전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해요. 내가 편하다 싶으면 뭔가 꼭 펑크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제게 수첩은 필수고, 꼼꼼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매니저가 부실하면 팀 전체 선수가 피해를 보게 돼요. 그래서 늘 긴장을 할 수밖에 없어요.”
이 매니저는 SK 야구팬들에게 낯익은 인물이다. 이 매니저는 지난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1군 불펜 포수를 맡았다. 인천 출신인 이 매니저는 강원도 원주고등학교 때까지 선수로 뛰었다. 하지만 일찍 가정을 꾸리면서 생계를 위해 수입이 필요했고, 2009년 SK 불펜 포수가 됐다. 사실 불펜 포수는 매년 계약을 맺는 계약직이다. 그래서 한 팀에서 긴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 하지만 이 매니저는 지난해까지 9년간 불펜 포수를 맡았다. 이 매니저가 팀 내 투수들이 가장 신뢰하는 불펜 포수였기 때문이다. “석모야” 혹은 “석모형”이라는 부름이 있으면 언제든 달려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한 이 매니저는 2016년 구단으로부터 큰 선물을 받았다. 그해 9월 후반기 모그룹 광고에 깜짝 출연했다. ‘이석모 불펜포수’와 ‘SK 선수’간의 연결에 대한 스토리를 담은 광고였다. 당시 광고는 야구계에 큰 화제를 모았다. 프로야구 음지에서 묵묵히 선수들을 위한 광고는 이 매니저가 처음이었다. 이뿐만 아니었다. SK는 그해 10월 깜짝 행사를 열었다. ‘1000경기 출장 기념식’이었다. 구단은 이 매니저에게 ‘골든글러브’를 선물했다.
이 매니저는 당시를 떠올렸다. “엊그제 일 같은 데 벌써 2년이 지났네요. 지난 10년 동안 별 탈 없이 선수들과 잘 지낸 것 같아요. 그리고 항상 성실하게 일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구단에서 좋게 봐주셨어요. 참 고마웠죠. 시상식 때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 매니저는 올해 1월부터 보직이 ‘프런트’로 바뀌었다. SK는 지난 10년간 팀을 위해 묵묵히 희생한 이 매니저를 높이 평가했고, 공석이 생긴 퓨처스팀(2군) 매니저 역할을 맡겼다. “그 동안 불펜 포수를 하면서 전력 분석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고, 프런트가 되기 위해 많이 노력해왔습니다. 사실 제가 매니저를 맡게 될 지는 몰랐고, 구단의 제의가 왔을 때 정말 놀랐어요. 제가 그 자리를 가도 될까. 하지만 욕심이 났어요. 선수들을 위한 일이라, 더 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시간이 참 빠르다”고 했다. 퓨처스팀 매니저를 맡은 지 벌써 6개월이 지났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지난해까지는 시쳇말로 몸으로 때웠다. 그러나 매니저 일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지난해까지는 선수와 같이 움직였죠. 구단이 짜놓은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면 됐습니다.
그런데 매니저로 오면서 제가 그런 스케줄을 직접 관리해야 하는 역할을 맡았어요. 처음에는 ‘와 이런 것도 신경을 써야 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밖에서 볼 때보다, 실제로 해보니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제 말 한 마디에 40~50명의 선수가 움직이니 정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습니다.”
이 매니저는 인터뷰 경험이 거의 없다. 지난 10년간 인터뷰 횟수는 10번 남짓이었다. 인터뷰 중에도 이 매니저의 핸드폰은 쉴새 없이 울려댔다. “이따가 전화드릴게요. 지금 인터뷰 중이라서요.” 오랜만에 기자를 만났고, 인터뷰 자리가 낯선지 이 매니저의 얼굴이 금세 빨개졌다. 그러면서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습니다”라며 웃었다.
실제 일과는 빡빡하다. 인천 강화에 있는 퓨처스파크에 8시까지 도착한다. 지난해까지 1군 홈구장인 인천SK행복드림구장 근처에 살았지만, 새로운 일을 위해 퓨처스파크와 가까운 인천 서구로 이사했다. 그래도 1시간이 넘는 거리다. 집에서 적어도 아침 7시에는 나서야 한다. 야구장에 도착하면 빡빡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오전 8시30분 코칭스태프 회의를 시작으로 9시 선수단 미팅이 차례로 열린다. 선수단 미팅이 끝난 뒤에는 구단 공지 사항을 선수들에게 일일이 전달해야 한다. 또, 엔트리를 정리해 KBO에 전달해야 한다. 오전 사무적인 일이 끝나면 그라운드로 향한다. 혹서기에는 퓨처스 경기 시작 시각이 오전 11시다. 웬만하면, 더그아웃에서 시간을 보낸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일정은 빡빡하다. 정리할 게 한둘이 아니다. 대충 업무가 마무리되는 시간은 오후 6시 전후다.
“큰 아이가 11살입니다. 지난해까지는 야구장에서 ‘석모야’ 혹은 ‘석모형’으로 불리는 모습을 봤는데, 지금은 선수들이 절 ‘매니저님’이라고 부르는 모습을 보고 자랑스러워하더라고요. 이제는 아빠가 선수가 아닌 직장인이 됐다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이 매니저는 인터뷰하는 동안 몇 번이나 어깨를 휘젓는 동작을 반복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몸이 근질근질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여기 불펜 포수 미트도 몇 번 뺏어 낀 적도 있어요. 몇몇 선수들은 ‘공을 받아달라’라고 요청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제춘모 투수코치님이 미트를 뺏어요. 그러곤 한마디를 하죠. ‘매니저는 핸드폰과 수첩만 챙겨야 해’라구요.”
이 매니저에게 ‘어떤 매니저가 되고 싶으냐’고 물었다. 이 매니저는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가족과 같은 프런트가 되고 싶어요. 선이 없고 속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편안한 매니저가 되고 싶습니다.”
스포츠월드 정세영기자 niners@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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