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현이 또 홈런포를 가동했다. 그러나 SK 퓨처스팀(2군)은 마운드가 난조를 보인 끝에 한화 2군에 패하고 연승이 끊겼다.


SK 퓨처스팀은 5일 서산구장에서 열린 한화 2군과의 경기에서 솔로홈런포를 포함, 3안타로 맹타를 펼친 김상현이 분전했으나 마운드가 한화 2군의 타력을 극복하지 못하며 7-10으로 졌다. 연승을 이어오고 있었던 SK 퓨처스팀은 이날 패배로 승리의 흐름을 이어가지 못했다.


선취점은 SK 퓨처스팀의 몫이었다. 1회 안타 하나 없이 점수를 냈다. 선두 윤중환이 볼넷으로 출루한 뒤 도루로 2루를 훔쳤고 김연훈의 투수 앞 희생번트로 3루까지 갔다. 이 상황에서 김상현의 2루 땅볼 때 3루 주자가 홈을 밟았다. 그러나 3회 역전을 허용했다. 2회까지 잘 던지던 선발 여건욱이 갑자기 난조를 보였다. 2사 후 김승현 송주호 한상훈에게 연속 안타를 맞고 2점을 내줬다.



SK 퓨처스팀은 4회 선두타자로 나선 김상현이 조영우를 상대로 좌월 솔로홈런을 치며 가볍게 동점을 만들었다. 그러나 4회 대거 5점을 내주며 주도권을 뺏겼다. 여건욱이 김경언 추승우 정현석에게 연속 안타를 맞았고 1사 후에는 김승현 송주호 한상훈 박노민의 4연타석 안타가 나오며 5점을 내줬다. 재활 등판을 가지고 있는 박희수가 마운드에 올라 불을 끄려 했으나 한화 2군 타선을 막아내지 못했다.


5회에 1점을 더 내준 SK 퓨처스팀은 6회 2점을 쫓아갔다. 선두 김상현이 우전안타로 출루한 것에 이어 상대 실책, 박인성의 안타, 임재현의 볼넷, 대타 박재상의 안타 등이 터져 나오며 2점을 만회했다. 7회에는 턱밑까지 추격했다. 선두 윤중환이 볼넷을 골라 나간 뒤 상대 패스트볼 때 2루를 밟았고 1사 후 김상현의 볼넷으로 만든 1사 1,3루에서 김도현의 2타점 2루타, 그리고 박윤의 좌익수 희생플라이가 연이어 나오며 7-8까지 따라갔다.


그러나 SK 퓨처스팀은 7회 수비에서 2점을 내줬고 더 이상 추격하지 못했다. 김상현은 4타수 3안타 2타점 3득점의 맹활약을 기록하며 최근의 상승세를 이어갔다. 임재현이 3타수 2안타로 멀티히트를 기록했고 10안타 7볼넷을 얻는 등 활발하게 출루했다. 하지만 마운드가 아쉬웠다. 선발 여건욱은 3⅔이닝 9피안타 3탈삼진 7실점으로 부진한 끝에 패전의 멍에를 안았다.


SK 퓨처스팀은 6일 같은 장소에서 한화 2군을 상대로 설욕전을 노린다.


김태우 OSEN 기자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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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운명은 ‘재능이 열정에 미치지 못 하는 것' 일 것이다. 프로는 노력하는 샬리에르보다 천부적인 모차르트가 우대받는 ‘불공평한’ 세계이다. 게다가 재능이 부족한 자가 노력마저 게을리 하면 그 끝은 뻔하다. 무제한 연장전처럼 끊임없는 노력만이 부족한 재능을 메꿀 수 있다. 힘들지만 그것이 프로의  세계이다.


●방출 일보직전에 되찾은 야구의 소중함

SK 박인성(24)은 2013년 겨울을 잊을 수 없다. 팀에서 곧 방출될 것이라는 소문이 귓가에 들려왔을 때의 그 심정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어떻게 입게 된 SK의 유니폼인데…’라는 생각이 뇌리를 찔렀다. 앞으로가 막연했다. 평생을 야구만 보고 살아왔는데 만약 방출되면 어떻게 살아야할지 혼란스러웠다. 일단 군대부터 가자고 생각은 했지만 심란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런데 기적처럼 SK는 마지막 순간에 박인성을 방출 명단에서 제외했다. SK로서는 큰 결정이 아닐지 몰라도 박인성은 인생이라는 항로에 등대가 밝혀진 순간이었다. 동시에 이를 악물게 됐다. SK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싶었고, 다시는 이렇게 살 떨리는 공포를 겪고 싶지 않았다. 그때부터 더 죽기 살기로 매달렸다. 마침 새로 부임한 박경완 퓨처스팀 감독이 그런 모습을 기특하게 봐주었다. 조금씩 출장기회가 늘어나더니 2014년 목표로 삼았었던 퓨처스팀 주전 자리를 꿰차게 됐다. 생애 처음 퓨처스 올스타로도 뽑혔다.



박인성의 장점은 공격적인 플레이 스타일이다. 초구부터 마음에 드는 공이 들어오면 주저 없이 방망이를 휘두른다. 너무 과감해서 코칭스태프가 ‘공을 보는 자세’를 조언할 정도다. 그런 공격성은 주루에서 더 빛난다. 4일까지 27개의 도루를 성공시켜 북부리그 전체 2위다. 더욱 돋보이는 점은 도루 성공률인데 처음 13개의 도루를 하는 동안 단 1개의 도루 실패도 없었다.  박인성은 “도루를 할 때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들어간다. 코치님들은 다리부터 들어가는 슬라이딩이 부상 위험을 줄인다고 가르쳐 주시는데 막상 실전에서 뛰면 머리부터 들어가는 슬라이딩이 조금이라도 빠르니까 그렇게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만큼 필사적인 것이다. 박인성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작은 체구로도 메이저리그 최고 2루수로 올라선 보스턴의 프랜차이즈 스타 더스틴 페드로이아(31)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1군에서 다시 기회가 와도 초구 치겠다”  

박인성은 2012년 SK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프로에 지명은 되지 못했즈만 구단 테스트를 합격해 SK로 올 수 있었다. 아직도 신고선수 신분이다. 휘문고를 졸업한 뒤 바로 프로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아무도 찾아주지 않자 세계사이버대학에 입학해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원래 이 대학은 2년제인데 2년을 채운 뒤에도 받아주는 프로 팀이 없자 1년을 더 다녔다. 만약에 그래도 받아주는 프로 팀이 없었다면 편입을 해서 다시 도전할 생각이었다. 


신고선수가 그렇듯 박인성의 마지막 꿈은 1군에서 뛰어보는 것이다. 이미 박인성은 지난해 1군 데뷔전을 치렀다. 시즌 최종전으로 열렸던 롯데전이었고, 상대투수는 홍성민이었다. 박인성은 “초구를 쳐서 우익수 플라이로 아웃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어쩌면 너무나도 짧았던 1군 경험이었다. 그러나 다시 가야할 곳이라 믿기에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박인성은 “1군에 올라가려면 퓨처스에서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운도 따라야 하는 것 같다. 나보다 더 잘하는 선수도 1군에 빈 자리가 없으면 쉽게 올라가지 못한다. 그러나 만약 다시 1군에 올라갈 기회가 생긴다면 작년보다는 신중하게 임하고 싶다”고 말했다. ‘데뷔타석에서 초구를 치고 곧바로 아웃된 것이 후회되지 않느냐’고 묻자 박인성은 “다시 1군에 올라가서도 초구에 좋은 볼이 들어오면 스윙을 하겠다”고 답했다. 박인성은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다. 스스로도 “낯가림이 심한 편”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야구장에만 나가면 공격적으로 변모한다. 왜 그런지는 본인도 설명하기 힘들지만 원래 플레이스타일이 그랬다고 한다. 타고난 무대 체질인지도 모르겠다.


김영준 스포츠동아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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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포수 조우형(23)은 2013년 8월26일을 평생 잊을 수 없다. 그날은 2014프로야구 신인 2차 지명회의가 열린 날이었다. 설마 했는데 끝까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구단은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대학까지 해왔던 야구인생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부모님을 뵐 낯이 없었다.


그로부터 약 1년이 흐른 2014년 7월. 조우형은 SK 퓨처스팀의 주전급 포수로 뛰고 있다. 그간 많은 사연이 있었다. 확실한 것은 SK로 와서 조우형이 진짜 포수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SK에서 야구공부의 재미를 알다  

조우형은 신고선수로 SK에 입단했다. 신고선수는 등록선수 신분이 아니기에 계약금도 없다. 그러나 장종훈(현 한화 타격코치), 조웅천(현 SK 투수코치), 김현수(두산), 서건창(넥센)처럼 연습생 신화를 써내려간 선수들도 적지 않다. 신인 지명회의에서 지명을 받지 못하고, 이틀이 흐른 뒤 SK에서 연락이 왔다. ‘신고선수로 뛰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막다른 골목에서 기회를 준 SK의 손을 뿌리칠 이유가 없었다. 지난해 11월 SK에 합류했고, 1월부터 본격적으로 훈련을 시작했다.

 

처음에 SK에 들어올 때만 해도 ‘포수왕국 SK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주눅이 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오히려 'SK여서 잘 됐다'는 생각이다. 박경완 2군감독과 박철영 배터리코치 등 포수 레전드들의 가르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휴일인 월요일만 빼고 매일 아침부터 밤 10시까지 훈련의 연속이지만 힘든 것보다 배우는 것들이 많다. 조우형은 “내 야구인생이 정체를 벗어나 발전으로 가는 것을 느낀다”고 말한다.

 

신고선수로 입단한 뒤 처음에 3군에서 출발했다. 그러다 퓨처스팀의 훈련보조요원이 부족하자 퓨처스팀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여기서 돕다보니 경기출장 기회도 생겨났다. 2군 주전포수 허웅이 다치자 출장기회가 더욱 늘어났다. 박경완 감독은 조우형에게 “선수는 목표를 가져야 된다”고 조언했다. 목표가 있으면 지금이 아무리 힘들어도 기꺼이 견딜 수 있다고 했다. 조우형이 고되기로 소문난 SK 퓨처스팀의 훈련을 버틸 수 있는 것도 언젠가 1군 선수가 되어서 신고선수에서 정식 등록선수로 신분이 바뀌는 그날을 꿈꾸기 때문이다. 그날이 오면 2013년 8월26일의 아픔도 웃으며 추억할 수 있을 것이다.



●1군에 서야 하는 절실한 이유, 가족

조우형은 야구를 좋아한 아버지 덕분에 프로야구선수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아버지는 야구부가 있는 강남초등학교로 아들을 전학시키고 야구를 배우게 했다. 자양중-경기고-고려대를 거치는 동안 아버지는 언제나 조우형의 첫 번째 팬이자 든든한 후원자였다. SK 퓨처스팀에 있는 지금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전화를 해 아들을 격려한다.


2살 어린 동생 조재형도 야구선수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조우형의 직속후배다. 경기고 시절엔 형제가 같은 경기에 나간 적도 있었다. 동생은 형의 영향을 받아서 야구에 입문했다. 야구집안이지만 처음에 어머니는 아들들이 운동하는 것을 반대했었다. 어머니는 지금까지 야구장에 딱 한번 왔다. 3학년 때 열린 고려대-연세대의 정기전 때였는데 그 경기를 보고 난 뒤 “야구시키기를 잘 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당시 조우형은 고연전에서 포수 마스크를 썼고, 승리를 따냈다. 그러나 4학년 때 신인 지명회의를 3달 앞두고 부상을 당했다. 이 탓에 신인 지명을 못 받은 것 같아 늘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런 미안함을 갚기 위해서라도 기회를 준 SK에서 야구를 잘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조우형은 굳이 분류하면 수비형 포수에 가깝다. 투수리드나 블로킹, 주자견제 능력에서 비교우위를 갖는다. 스스로도 “포수수비를 볼 때 힘들기보다 재미있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해왔던 포수 자리이지만 SK에 와서 새로 배우는 기분이다. “경기를 나갈 때마다 배움이 생긴다”고 말한다. “투수를 편하게 해주는 포수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조우형의 궁극적 꿈은 팀에 필요한 선수가 되는 것이다. 그날을 위해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말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김영준 스포츠동아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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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상진 2014.07.08 18:20 Address Modify/Delete Reply

    좋아요

  2. 처리 2014.07.09 13:15 Address Modify/Delete Reply

    일군에서볼수있기를

SK 와이번스 퓨처스팀은 요즘 활기가 넘친다. 6월 들어 타선이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2군으로 내려왔던 박정권 임훈 등 주전 타자들이 타격감을 회복하고 돌아가 연일 맹타를 터뜨리고 있는데다 기존 유망주 타자들도 부쩍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4일 현재 SK는 팀타율 2할9푼9리로 퓨처스 북부리그서 경찰청(0.316)에 이어 2위에 올라있고, 팀 OPS(장타율+출루율)도 8할5푼9리로 역시 경찰청(0.905)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퓨처스팀 타격을 이끌고 있는 강 혁 코치(40)의 지도력 덕분이라는 구단 내부의 평가다.

하지만 강혁 코치는 손사래를 친다. 강 코치는 "워낙 자질이 좋은 선수들이 많습니다. 선수들하고 맞춰가는 것이 중요하죠. 맞춤식이라고 할까요? 서로 대화하고 단점을 보완시키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강 코치는 이어 "이곳에 온지 8개월 정도 됐는데, 처음에는 저를 믿지 못했던 친구들이 지금은 잘 따르고 있습니다. 임훈과 박정권도 이곳에 있다가 올라가서 잘 하고 있어 개인적으로 기분이 좋아요"라며 활짝 웃었다.



SK는 강 코치가 선수 시절 마지막으로 몸담았던 팀이다. 지난 2007년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은 강혁은 그동안 제2의 인생을 열기가 쉽지 않았다. 프로 지도자로 일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가 지도자로 첫 발을 내디딘 곳은 리틀 야구다. 2008년 말부터 SK가 운영하던 사랑나눔 야구교실에서 유소년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능력을 인정받아 공익근무시절 인연을 맺은 인천 남구청이 2009년 리틀야구단을 창단해 초대 사령탑을 맡게 됐다.


지난해까지 어린이들을 가르치면서 지도자 능력을 조금씩 키워갔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왔다. 지난해 말 SK가 퓨처스팀 타격코치로 그를 부른 것이다. 강 코치의 지도 철학중 으뜸은 인성 교육이다. 야구 이전 사람이 돼야 한다. 강 코치는 "지도자가 되고 보니 인성 부분도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느낍니다. 더불어 야구는 죽을 때까지 하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유니폼 입고 있을 때가 행복하다는 것을 선수들이 깨달아야 합니다"라며 "그런데 요즘 후배들은 너무 자기 밖에 모르는 것 같아요. 리틀 야구단을 할 때도 인성을 강조했습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고 선수들에게 너무 딱딱한 지도자로 다가가지는 않는다. 형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강 코치는 "후배들하고 재밌게 지내다 보니 나도 젊어지는 것 같아요"라면서 "좋은 글귀 같은 것이 있으면 선수들한테도 보내줍니다.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고, 힘들 때 그런 글귀를 보면 힘이 나거든요. 개인적으로 아는 심리학 박사님이 계시는데 좋은 말들을 보내주십니다. 우리가 선수였을 때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지요"라며 웃었다. 이어 강 코치는 "되도록이면 선수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잘 칠 때는 말안해도 잘 하니까 괜찮지만, 못 칠 때는 엉덩이를 툭 쳐준다든가, 어깨를 두드려준다든가 친숙한 제스처로 편하게 대해주려 합니다. 그게 저의 지도 방식이라면 방식이랄까"라고 강조했다.



강 코치는 선수 시절 승부욕이 강하고 1등에 대한 욕심이 컸다. 남들보다 훈련을 몇 배 했다는 것이 그를 가르친 지도자들의 기억이다. 강 코치도 그런 선수들을 좋아한다. 현재 SK 퓨처스팀 타자중 '될 성부른 나무'로 그는 김도현(22)을 꼽는다. 지난 2011년 넥센에 입단해 2012년 SK로 이적한 김도현은 현재 SK 퓨처스팀에서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 이날 현재 타율 3할5푼7리, 9홈런, 32타점을 기록중이다. 외야수인 그는 매년 1군 경험을 했다. 올시즌에도 3경기에 나가 7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그러나 아직 주전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고 있다. 강 코치는 "SK의 차세대 4번타자라고 봅니다. 파워도 있고, 마인드가 너무 좋습니다. 성격이 두산 홍성흔같은 친구죠. 지금은 단계별로 밟아가고 있으니, 곧 스타가 될겁니다. 지금처럼 열심히 해줬으면 합니다"라고 설명했다.


강 코치는 신일고 시절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하는 등 타격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고교를 졸업하던 1993년 한양대와 OB 베어스 간의 이중 등록으로 물의를 빚어 한국야구위원회로부터 영구 제명 처분을 받았다. 대학 입학 후에도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맹활약을 이어갔지만, 프로에 진출할 수는 없었다. 1997년 실업 야구단인 현대 피닉스에 입단한 강 혁은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 참가해 금메달을 따내면서 영구 제명 징계가 풀렸다. 하지만 그동안 쌓였던 마음고생과 잦은 부상으로 인해 프로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2007년 은퇴할 때까지 프로 통산 2할4푼9리의 타율과 18홈런, 115타점의 기록을 남겼다.

그래서 강 코치는 철저한 전문가가 되고 싶어한다. "개인적으로 선수 때 못다 이룬 꿈이 있었죠. 묵묵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이 분야(타격)에서 만큼은 강혁이 최고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노재형 스포츠조선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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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8월16일, 2011 신인 지명회의가 열린 서울 그랜드 인터콘티넨탈 호텔 그랜드볼룸. 당시 당연히 관심을 끈 것은 각 팀 1순위 선수를 뽑는 1라운드 지명이다. 대부분 팀들이 예상권 선수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했다. 그런데 당시 7번째 순서인 SK가 “경남고 투수 서진용”이라고 외치자 장내는 작은 술렁임이 일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선수가 뽑혔기 때문이다.


서진용은 전국 무대에서 거의 마운드에 오른 적 없는 투수였다. 더군다나 그는 2009년 봄까지 경남고 3루수로만 활약했다. 그러나 그의 강한 어깨와 배짱을 높게 산 이종운 감독의 권유로 그해 여름 투수로 전향했다. 투수로 본격 전업한 지 1년이 지나지 않은 선수를 선택한 SK를 향해 “의외의 선택”이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하지만 SK는 “최고 구속은 146km을 넘어섰고, 볼 끝에는 힘이 있었다. 경험이 부족하다보니 아직 제구력과 운영 능력 등 가다듬어야 할 부분은 남아 있지만 투수로 대성할 수 있는 선수”라고 평가했다. 

약 4년의 시간이 지난 현재, 서진용은 어떻게 성장했을까. 당시 SK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 서진용은 현재 상무에서 뛰고 있다. 상무의 필승 계투요원으로 활약 중인 그는 지난 25일까지 2군에서 25경기에 등판해 3승1패 2세이브 8홀드 평균자책점 3.04를 기록 중이다. 26과 3분의 2이닝 동안 뽑아낸 탈삼진 수는 31개일 정도로, 삼진을 뺏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최고 155km의 빠른 볼이 주무기다. 여기에 커브 등 몇 가지 변화구를 던지지만 직구의 위력이 엄청나다는 평가다. 최근 눈부신 성장세를 보인 서진용은 지난해 제6회 톈진동아시아경기대회 대표팀에 뽑힐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대표팀 경기에서는 위기 상황에서 등판해 실점을 좀처럼 주지 않는 ‘짠물 피칭’으로 윤영환(경성대 감독) 동아시아대표팀 감독으로부터 극찬을 한몸에 받았다.

여기에 서진용은 스타성까지 갖췄다. 184cm, 78kg의 슬림한 체격에 깔끔한 이목구비를 지닌 미남형이다. ‘잘 생긴’ 서진용을 보기 위해 2군 경기장을 찾은 여성팬이 많아졌다는 게 SK 2군 관계자의 설명이다. 성격도 외향적이다. 낯가림이 적고 끼가 많아 어디에서는 환영받는 타입이다. 

지난 15일 인천 송도에서 SK전을 마치고 만난 서진용은 “지난해부터 컨디션이 너무 좋아 걱정일 정도로 몸 상태가 좋다. 좋은 몸 상태에서 등판 기회가 자주 찾아와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고 환하게 웃었다. 서진용의 최종 목표는 1군 팀에서 마무리 투수가 되는 것. 서진용은 “애초에 내 목표는 마무리였다. 선발투수가 되려면 많은 변화구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데 나는 변화구가 그리 많지 않다. 1~2이닝 정도 전력투구하는 게 내 스타일에 맞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해 제구가 잡히면서 내 목표를 마무리 투수로 확실하게 정했다. 내 볼만 던질 수 있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목표”라고 힘주어 말했다. 또, 그는 “SK의 지명을 받고 난 뒤 1군에서 뛰는 게 목표였다. 현재도 그 목표는 같다. 내년부터는 군대 문제를 해결했으니 1군 진입을 위해 뛰겠다”고 다부진 각오를 덧붙였다.  



◆서진용이 내년부터 등번호 16번을 달게 된 사연. 
서진용의 제대날짜는 올해 9월23일. 빠르면 올해 팀 가을 훈련 캠프부터 SK 선수단에 합류한다. 그런데 서진용은 내년부터 큰 이변이 없는 한 16번을 달기로 했다. 16번은 서진용의 롤 모델인 김원형 SK 투수코치가 현역 시절 달았던 등번호다. 현재는 이재영이 16번을 달고 뛰고 있다. 대학시절부터 줄곧 16번을 단 이재영은 2011시즌을 마치고 현역에서 은퇴를 선언한 김원형 코치를 직접 찾아가 이 번호를 물려받았다. 그런데 이재영이 올해 시즌을 마치면 등번호를 건네기로 한 것. 팀의 레전드 선수의 번호인 16번을 달고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한 것에 따른 미안한 마음에 등번호를 건네기로 했다. 서진용은 “이재영 선배가 내 마음을 아시고, 올해 시즌을 마친 뒤 주신다고 했다. 이 16번을 달고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성장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정세영 스포츠월드 기자 niners@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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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우하면 프로배구 삼성화재의 공격수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SK에도 ‘동명이인’ 박철우(23)가 있다. 박철우는 신인이지만 안정된 수비로 퓨쳐스리그(2군) SK의 주전 유격수로 뛰고 있다. 미래가 밝다. SK 코칭스태프는 “신인 선수지만 수비는 어느 정도 만들어져 있다. 근성도 있고, 훈련 태도가 성실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박철우는 아직 완성형 선수라 할 수 없다. 프로에서도 통하는 수준급 수비에 비해 타격이 아직 약하다. 하지만 아직 어리고,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박철우는 방망이까지 잘 다듬어 꼭 1군에 올라가겠다며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신고 선수로 어렵게 SK 유니폼을 입은 그는 더 절실한 심정으로 야구에 매달리고 있다. 그에게는 야구가 전부다.

 

 

◇수비는 자신!

 

박철우는 포항 토박이다. 포항 대해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야구공을 잡았다. 박철우는 “초등학교 때 친구가 야구를 함께 하자고 해서 같이 야구부에 들어갔다. 테스트를 했는데 당시 야구부 감독님이 당장 집에 함께 가자고 하셨다. 내가 보자마자 마음에 들으셨던 모양이다”라며 웃었다. 어려서부터 수비에 두각을 나타낸 그는 바로 유격수를 봤다.

 

박철우는 “(동의)대학교 1, 2학년 때 타격보다 수비에 치중했다. 수비연습 위주로 훈련을 많이 했다. 그러면서 수비에 더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 같다”면서 “대학교 3학년 때 3루도 봤다. 내야 전부를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그의 장점은 좋은 어깨와 타구 예측 능력이다. 박철우는 “어깨가 남들보다 좋은 편이다. 깊숙한 타구를 잡아도 (1루 송구가) 자신있다. 또 바운드를 맞추는 능력도 좋은 편이다”라고 말했다.

 

박철우는 수비력을 인정받고 있다. 본인도 자신있어 한다. 하지만 스스로 100% 만족할 수준은 아니다. 프로에 입문한 뒤 부족한 점들을 채우려 노력하고 있다. 박철우는 “아마추어에서는 무조건 시키는 것을 했다. 프로는 프로답게 알아서 해야 하는 부분들도 있는 것 같다. 멘탈적인 게 크다. 정신적으로 많이 성숙해지는 것 같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롤 모델은 박진만

 

SK는 박철우를 잡아준 팀이다. 박철우는 SK 유니폼을 입은 게 꿈만 같다. 그의 개인 SNS에도 박철우의 이름이 새겨진 SK 유니폼 사진을 당당하게 올려놓았다. 박철우는 “SK는 알아주는 팀 아닌가. 분위기도 좋다. 선배들도 너무 잘해준다. 선수 지원도 좋다. 시즌 전 중국 전지훈련까지 다녀왔다. 박경완 감독님이 신경을 많이 써주신다”고 말했다.

 

박철우가 SK에 온 뒤, 놀란 이유가 또 있다. 바로 SK 베테랑 내야수 박진만(38) 때문이다. 박철우는 “박진만 선배님이 수비하는 것을 봤는데 놀랐다. 공 처리도 편안하게 하고 모든 게 부드러웠다. 프로에 와서 처음 보고 딱 느꼈다”며 “내 장점이 수비다. 특화된 수비력이다. 박진만 선배님처럼 수비를 잘하는 선수로 인정을 받고 싶다”고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목표는 당연히 1군!

 

박철우는 타격에 집중하고 있다. 수비와 달리 타격에 아직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박철우는 “아마추어 때는 타격에 대한 생각을 거의 하지 못했다. 하지만 프로에 오니 수비만으로는 1군에 올라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175cm, 70kg의 큰 체구라 할 수 없다. 그래서 타격에서도 파워를 앞세우기보다 정확성을 기르는데 집중하고 있다. 그는 “남들보다 덩치가 좋은 편이 아니라 중심에 맞춰 짧게, 짧게 치려고 한다. 풀스윙을 하기보다 라인드라이브성 타구를 날리려고 집중하고 있다. 배트 중심에 맞추려고 노력 중이다”라고 밝혔다.

 

방망이를 휘두르고 또 휘두르는 박철우의 마음가짐은 남다르다. 박철우는 프로야구 10개 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하고 신고선수로 SK의 유니폼을 입었다. 지명된 선수들보다 더 잘해서 성공하겠다는 오기도 생겼다. 박철우는 “오기? 당연히 생긴다. 신고 선수는 정식 선수 등록도 안 된다. 하지만 6월 1일부터 등록이 가능한 시기다. 어떻게든 정식 선수가 되려고 한다”며 절실하게 말했다.

 

정식 선수 등록 후 목표는 1군행이다. 박철우는 “이제까지 아프지 않고 2군 경기에 계속 뛰고 있다. 남은 시즌 아프지 않고 열심히 해서 꼭 1군에 올라가고 싶다. 갖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1군에서도 뛰고 싶다”고 말했다. 인천 문학구장에서 홈팬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플레이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박철우다.

 

이웅희 스포츠서울 기자 iaspir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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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김연훈(31)이 돌아왔다. 공익근무를 마치고 지난 2월 SK로 복귀했다. 다만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소집해제 후 3개월은 야구를 다시 할 수 있는 몸을 만드는 시간이었다. 강한 훈련에는 이골이 난 김연훈이지만 그 3개월은 인고의 세월이었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간절함이었다”고 김연훈은 떠올린다. 5월 말부터 퓨처스 경기에 출전하기 시작한 김연훈은 어느덧 1군을 꿈꾸고 있다. 꿈꾸는 자는 언제나 청춘이다.


●야구를 떠난 뒤 얻은 깨우침

 

2011시즌이 끝나자 김연훈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이가 꽉 찼기에 병역의 의무를 더 이상은 미룰 수는 없었다. 공익근무와 경찰청 야구단 입대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했다. 김연훈의 최종 결정은 공익근무였다. 야구를 할 수 없는 공백을 택한 것이다. 왜였을까? “사실 지금 와서는 조금 후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당시 시점에서는 정말 야구가 하기 싫었다.” 김연훈은 군산중학교 시절부터 고질적인 허리통증을 안고 있었다. 어떤 훈련도 다 버티는 이미지이지만 시한폭탄 같은 허리와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공익 입대 뒤 “1년 동안은 야구는 쳐다보지도 말자”고 생각했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허리가 낫지 않아 다시 야구를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두려움이 일었다. 주위에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외로웠다. 어찌할 바를 몰라 그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풀었다. 그러다보니 74kg였던 체중은 88kg까지 불어났다. 무서워졌다. 정말로 다시는 야구를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났다. 생활을 바꿨다. 살을 빼는 것은 고통스러웠지만 참았다. 제대 후 SK로 복귀한 현재 체중은 입대 직전과 별 다르지 않다.


다시 입은 SK 유니폼, 김연훈은 “새로 입단한 것 같다”고 말한다. 이제는 정말 야구가 하고 싶어서 하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뛰었던 SK였지만 새로운 팀 같다. 다시 처음부터 어린 선수들과 경쟁을 해도 즐겁다. 당장 2군에서 주전을 잡는 것이 목표다. 그래야 1군의 부름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경기를 뛰면 뛸수록 감각이 돌아오고 있다는 점이다. 유격수와 2루수 글러브 2개를 늘 지니고 다닌다. 팀이 원하면 대수비든, 대주자든 무엇이든 해내야 하는 자신의 쓰임새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이름으로

 

김연훈은 전라북도 군산에서 자라 고등학교(군산상고)까지 다녔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쌍방울의 열혈 팬이었다. 최태원(현 LG코치)이 김연훈의 우상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어느 날 군산구장에서 해태와 쌍방울의 경기가 있었다. 해태 이종범(현 한화코치)이 어린 소년 앞에서 환상적인 활약을 보여줬다. 관중들은 이종범을 향해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 순간 김연훈은 야구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마침 모교인 군산초등학교에 야구부가 있었다.


문제는 야구부에서 김연훈을 받아주려 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부터 김연훈은 말랐고, 작았다. 선생님을 졸라서 겨우 승낙을 얻었다. 그 다음에는 어머니가 고비였다. 어머니는 외동아들이 야구하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김연훈도 지지 않았다. 2주 동안 공부를 전혀 하지 않는 ‘파업’을 했다. 결국 어머니도 손을 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야구였지만 막상 해보니 너무 힘들었다. 중학교 때는 허리가 너무 아파서 운동을 포기하려 했다. 이때 마음을 돌리게 해준 사람은 어머니였다. 처음엔 야구를 말렸던 어머니가 이번에는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끝까지 해야지”라고 김연훈을 타일렀다. 군산상고 졸업 뒤, 받아주는 대학교가 없어서 또 야구를 그만둘 위기에 처했다. 이때도 ‘뭐하면 좋을까’라고 막막했을 때, 기적처럼 성균관대가 손을 내밀었다.



2007년 고향 팀이나 다름없는 KIA가 2라운드 16순위로 뽑아줬다. 계약금은 1억원이었다. 그러나 기회를 줬던 KIA는 2008년 5월4일 돌연 김연훈을 SK로 트레이드시켰다. 투수 전병두와 함께 SK로 오게 된 김연훈은 실망감보다 기대감을 안고 인천으로 왔다. 이곳에서 어떤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예감했다. 실제 2008년부터 4년간 1군 유틸리티 맨으로 활용됐고, 이 기간 SK는 한국시리즈에 모두 진출해 2차례에 걸쳐 우승을 해냈다.


SK 전성기의 영광을 누렸던 김연훈은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팀이 필요로 하는 선수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퓨처스리그에서 30살의 여름을 나고 있다. 서른, 잔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영준 스포츠동아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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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11년만에 세차례 우승한 SK가 또 다른 황금기를 준비하고 있다. 퓨처스리그에서 땀흘리는 그들이 미래의 주인공이다. 특히 4번 타자 고민이 끊이지 않았던 SK에서 차세대 거포 이야기가 나오면 빠짐없이 거론되는 이름이 있다. 4년차 외야수 김도현(22)이 그 가운데 한명이다.

 

김도현은 2011년 2차 드래프트를 통해 넥센에서 SK로 이적한 선수다. 광주 진흥고 출신의 김도현은 그해 드래프트에서 7순위로 지명돼 계약금 4500만원을 받은 기대주다.

 

지난해 플로리다 스프링캠프 첫 자체청백전에서 첫 타석에서 만루홈런을 날려 당시 이호준의 FA 이적을 메울 카드로 거론되는 등 차세대 중심타자감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만수 감독은 “4번 타자로 쓸 수 있는 파워를 갖고 있는 타자다. 힘을 싣는 능력만 키우면 좋은 거포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후 기록상으로도 김도현의 급격한 성장세를 엿볼 수 있다. 김도현은 지난해 퓨처스리그 73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6푼7리, 13홈런 53타점 41득점 7도루를 기록했다. 홈런은 북부리그에서 공동 2위의 성적이었다. 

 

올해에는 한층 물오른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31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3푼3리(96타수32안타) 7홈런 27타점 26득점 2도루(6월2일 기준)의 빼어난 성적을 기록중이다. 삼진이 줄면서 볼넷은 증가했고, 거의 안타수와 비례하는 타점 생산 능력을 보여주면서 차세대 4번 타자라는 평가가 어색하지 않는 기량을 증명하고 있다.

 

 

-올해 모든 면에서 기량이 좋아진 것 같다.

 

“2군에서 뛰면서 부족한 점을 많이 느껴 사실 지난 겨울에 상무 입대를 하려고 했다. 나한테는 그만큼 절실한 결정이 되는 한해였다. 1군에서 뛰기 위해서는 2군에서 확실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 열심히 훈련했다. 내가 힘이 좋은 타자이다 보니 상대 투수가 좋은 공을 주지 않는다. 또 빠른 공에 대응을 하니까 변화구 유인구가 많았다. 내가 치기 좋은 공을 기다리기 위해서는 유리한 볼카운트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선구안을 키우고, 변화구 대처 능력을 집중 훈련했다. 박경완 (2군)감독님과 강혁 타격코치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다. 현재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지만 더워지면서 체력이 떨어졌을 때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가 중요하다.”

 

-퓨처스리그지만 올해 성적이 대단하다.

 

“그 가운데서도 삼진이 줄면서 볼넷이 많아진 것이 만족스럽다. 상무에 지원했다가 타율에서 밀려 떨어졌다. 그 동안 타율에는 신경쓰지 않았는데 이런 경험 때문인지 중장거리 타자이면서도 타율이 높아진 점도 기분이 좋다. (안타수에 비해 타점이 많다는 얘기에) 올해 초반 너무 못쳐서 시합도 못나가던 시기가 있었는데 강혁 코치님과 열심히 준비했다. 홈런도 욕심이 나지만 타점 1위를 한번 해보고 싶다.”

 

-차세대 중심타자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만수 감독님이 기회를 여러번 주셨는데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것 같아 죄송하다. 캠프에서는 잘하는데 이후에 내가 기회를 잡지 못했다. 외야 자원이 워낙 탄탄하고 좋은 선수들이 많지만 그건 핑계다. 기회는 언젠가 오리라 생각하고 긍정적인 생각만 하고 있다. 기회를 잡는 것은 내가 실력으로 돌파해야 할 일이다.”

 

-야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초등학교 3학년 때 체육시간에 배드민턴을 하는 시간이었다. 라켓으로 친구들과 야구하다 당시 야구부 선생님이 ‘야구부에 들어오라’고 하셨다. 내가 체격이 좋아서 그런 것 같다. 그때는 야구보다 축구를 좋아했다. 별로 내키지 않았는데 유니폼을 보고 나서 ‘한번 입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야구부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그리 잘하는 실력이 아니었다. 한번 운동을 하면 프로가 되는 줄 알고 그냥 열심히 했더니 지금까지 왔다.”

 

-요즘 야구를 잘하는 모습에 부모님 기대감도 높아지셨을 것 같다.

 

“운동을 시작할 때 어머니는 반대하셨는데 아버지는 밀어주셨다. 아버지는 고교 때까지 농구를 하셨는데 성공하지 못해서 아들의 운동을 밀어주신 듯 하다. 아직 부모님의 기대에 못미쳐 죄송스런 마음 뿐이다. 작년까지는 기록을 많이 챙겨 보시더니 부담주기 싫으신지 기록도 잘 안보시고, 많이 말씀도 안하신다. 올해 조금 나아졌지만 더 분발해서 앞으로 아들이 야구하는 모습을 재미있게, TV로 보실 수 있도록 하겠다.”

 

-올 시즌 큰 슬럼프가 있었다고 하던데.

 

“강혁 코치님께 고마운 점이 많다. 개막 이후 야구도 뜻대로 안되고, 기회도 적어지면서 야구를 그만 둘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코치님이 훈련도 하기 싫어하는 나를 붙잡고 거의 전담으로 저한테 많은 신경을 써주셨다. 늘 좋은 문구가 있으면 얘기해주시면서 힘을 북돋아 주셨다. ‘지금은 1군에 자리가 없지만 젊으니까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가 꼭 기회는 온다’며 포기하지 않도록 이끌어 주셨다. 아마 코치님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내가 겉으로는 밝지만 속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편인데 그런 부분까지 생각해서 최대한 스트레스를 안주려고 하신다.”

 

-오랜 2군 생활은 힘들다. 긍정적인 생각을 유지하는 노하우는 무엇인가.

 

“보통 영화를 보거나 노래를 들으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신나는 노래보다 발라드를 많이 듣고,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차분해지는 느낌을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M.C. The Max와 이승기를 좋아한다.”

 

-최근 동갑내기 박계현이 1군에서 깜짝 스타로 등장했다,

 

“계현이와는 중학교 동창이다. 광주 출신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어울려 친하다. 첫 안타를 쳤을 때 ‘축하한다. 앞으로도 잘해라’라고 응원해줬다. 포지션이 달라 경쟁하는 위치는 아니지만 워낙 자신감이 넘치는 친구이고 열심히 해서 잘할 줄 알았다. 배울 것도 많다. 계현이를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도 하면서 나도 상상을 해봤다. 1군에 콜업됐을 때 ‘그만큼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해봤다. 친구가 잘하니까 좋은 자극제가 된다.”

 

-자신의 장점은 무엇인가. 1군에 오르기 위해 보완할 점은.

 

“힘이다. 잘 치지 못하가다도 언제든 장타를 기대할 수 있는 타자다. 강하게 치지 않아도 멀리 보낼 수 있다. 하지만 1군에서 뛸 때는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내 기량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좌투수에 대한 약점은 늘 노력하는 부분이다. 1군에서 만난 투수들은 모두 좌완이었다. 처음에는 류현진(당시 한화)이었는데 삼진 2개를 당했고, 이후 (넥센 앤디)벤헤켄을 두서너번 만나 5-6차례 타석에서 삼진 3개를 당했던 것 같다. 좌투수가 나왔을 때 내 이름이 먼저 떠오르게 하고 싶다. 다른 부분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데 좌투수를 상대로는 아직 부족하다. 또 1군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공격만 잘해서는 어렵다. 수비도 꼭 뒷받침되야 한다.”

 

-어떤 선수가 되고 싶나

 

“안타, 홈런을 못치더라도 자기 스윙을 하는 선수, 쉽게 죽지 않아서 다음 타석에 더 기대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 돈도 많이 벌고 싶고, 명예도 중요하지만 늘 초심을 잊지 않고 신인처럼 항상 열심히 하는 선수가 되겠다.”

 

-팬들에게 인사를 한다면.

 

“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길게 보고 있다. 지금은 SK팬들이 제 이름을 잘 모르시겠지만 퓨처스리그부터 타율, 타점,  홈런을 차근차근 올려서 그 성적을 그대로 1군에서 보여줄 수 있도록 하겠다.

 

이정호 스포츠경향 기자 alp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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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박경완 SK 퓨처스팀 감독이 연신 함박웃음이다. 바라볼수록 흐뭇한 ‘진짜 물건’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박경완 감독을 웃게 한 선수는 바로 우완 이승진(19)이다. 186cm, 83kg의 탄탄한 체구를 앞세운 이승진은 고교시절 야탑고 에이스로 활약하며 프로야구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고교 3학년 초 이런저런 잔부상에 시달리며 많은 이닝을 소화하지 못했고, 2014년 신인지명회의에서 지명 순위(7라운드)가 뒷로 밀렸다. 그럼에도, 자질 만큼은 상위 라운드로 평가받았다. 특히, 기본적으로 우수한 체격조건과 안정적인 투구 밸런스, 부드러운 팔 스윙 동작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140km 중반대의 빠른 직구만으로 타자를 잡아낼 수 있다는 점이 지명 당시 SK의 시선을 사로 잡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무대에 바로 뛰어든 이승진은 ‘1군용 선수’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입단 직후 재활군에서 3개월의 시간을 보냈지만 이후 몸 상태가 좋아지면서 신인으로는 이례적으로 광저우 퓨처스 전지훈련에 합류하는 행운을 잡았고, 이후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같이 입단한 동기들이 대부분 루키군(3군)에 소속돼 있지만 이승진은 예외다.

 


현재 퓨처스팀에서 착실히 선발수업을 받고 있다. 당초 퓨처스팀에서 보직은 추격조였다. 그런 그가 선발 자원으로 발돋움한 계기는 이달 15일 LG전이다. 당시 1이닝 동안 7실점한 윤석주를 구원해 2회부터 마운드에 오른 그는 6과 3분의 1이닝을 6피안타 3실점(비자책)으로 틀어막으면서 코칭스태프의 눈도장을 받았다.

 

이어 프로 데뷔 후 첫 선발 등판 경기였던 지난 20일 화성과의 퓨서스 경기는 자신의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는 한 판이었다. 당시 21점을 뽑아낸 동료들의 화끈한 지원사격을 등에 업은 이승진은 넥센 강타선을 상대로 6이닝 동안 탈삼진 4개를 곁들이며 6피안타 2실점(비자책)으로 틀어막고 승리투수가 됐다. 프로 데뷔 첫 승리였다. 당시 직구 최고 구속은 144km에 머물렀지만 직구의 제구가 완벽했고, 슬라이더와 커브, 포크볼 등을 적절히 섞어 던지며 상대 타선을 효과적으로 봉쇄했다. 경기 뒤 박경완 감독은 “선발 이승진이 수훈선수이며, 6이닝 무자책을 기록하는 등 이전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빠른 성장세를 과시 중인 이승진의 가장 큰 무기는 성실함이다. SK 관계자는 “굉장히 성실한 선수다. 주위 동료들로부터 ‘어린 나이에도 사람이 진국이다’라는 평가를 받는다. 막내라 고된 훈련과 함께 궂은일도 많이 하지만, 인상 한번 쓰지않는 선수”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코칭스태프의 평가는 어떨까. 김상진 SK 퓨처스팀 투수코치는 이승진을 두고 ‘도화지와 같은 선수’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습득력이 빠르다는 것이다. 김상진 코치는 “어떤 이야기를 하면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습득 속도가 아주 빠르다. 무엇보다. 메카닉적인 부분을 선수에게 말하면 받아들이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직 경험적인 부분에서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성격도 밝고 운동장에서의 훈련 참여도 굉장히 성실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근 SK는 이명기, 한동민 등의 신예 야수 자원들의 성장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이제는 투수 쪽에서도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해 힘을 보탤 차례다. 그 중심에 우완 이승진이 있다.

 

 

■이승진과의 일문일답.

 

-퓨처스리그에서 첫 승을 올렸는데 당시 기분이 어땠나?

 

“프로 선발 데뷔전에서 승리를 따내서 정말 기분이 좋았다. 프로 첫 승리를 기록할 수 있게 많은 도움을 준 박경완 감독님, 김상님 투수코치님 등 코치님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 이런 기세를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프로에 와서 가장 많이 느낀 점은 무엇인가?

 

“제구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 때는 직구 구위만 가지고도 상대를 압박할 수 있었지만 프로에서는 제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절대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발 데뷔전에서 승리는 따냈지만 28일 부진했던 것은 제구에 여려움을 겪었고, 결국 대량 실점을 했다.”

 

-닮고 싶은 선수가 있다면?

 

“김광현 선배님과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선수, 그것도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전국구 명성을 얻을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

 

-최근 가장 신경쓰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제구력을 끌어올리는 게 가장 힘들다. 현재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부분이다. 또한 김상진 투수코치님께서 포크볼을 알려주셨는데 실전에 사용해도 될 정도로 많이 좋아졌다.”

 

-현재 멘토가 있다면?

 

“이한진 선배가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여러 구질과 마음 가짐에 대해서 많은 조언을 해주신다.”

 

정세영 스포츠월드 기자 niners@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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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고려대는 14년 만에 춘계리그 우승컵을 차지했다. 전국대회 우승은 2001년 추계리그 우승 이후 5년 만이었다. 누구보다 2승 평균자책점 0.69를 기록하며 마운드를 버텨준 에이스의 역할이 주효했다. 이 선수는 결국 최우수선수상을 받았고, 그해 8월에 열린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1순위로 비룡군단 유니폼을 입었다. 주인공은 SK 오른손 투수 이창욱(30)이다.


SK는 지난 16일부터 열렸던 한화와의 원정 3연전에서 '1승'보다 값진 '이창욱'이라는 선수 발굴에 성공했다. 이창욱은 17일 경기에서 2이닝 1피안타 무실점 호투하며 프로 지명 8년 만에 값진 첫 승을 거뒀다. 끝내기를 맞을 수 있는 연장 11회 등판해 첫 타자 정범모(27)에 안타를 허용했지만 정근우(32)와 김태균(32), 외국인 타자 피에(29)를 포함한 후속 여섯 타자를 퍼펙트로 막았다.


이창욱의 등판과 결과가 값졌던 이유는 그동안 그가 밟아온 험난했던 여정과 맞물려있다. 이창욱은 지명 후 계약금만 1억3000만원을 받은 유망주였다. 당시 스카우트였던 허정욱 매니저는 "시속 140km대 초반의 직구를 던졌지만 볼끝과 제구가 좋았다"며 "선발보다는 중간 투수로 1~2년 안에 쓸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고 회상했다. 실제 포크볼을 주종으로 사용하는 이창욱의 변화구 각도는 예리하다. 개인 통산 첫 번째 등판이었던 지난 15일 문학 두산전(1⅓이닝 2자책점)에서는 포크볼을 결정구로 왼손 타자 김현수(26)와 정수빈(24)을 삼진 처리했다.



좋은 공을 가지고 있었지만 문제는 '부상'이었다. 이창욱은 지명 직후 모교인 군산상고에서 훈련을 하다가 어깨를 다쳤고, 곧바로 수술대에 올랐다. 끝이 보이지 않는 재활의 시작이었다. 허 매니저는 "입단 후 어깨 통증 때문에 재활군에 있었고, 수술과 재활을 반복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김경태 재활군 코치가 본 이창욱의 첫 인상은 '불안'이었다. 김 코치는 "부상 전력 때문에 불안해서 제대로 던지지 못하는 것 같았다"며 "자세히 보니 투구폼에서 문제가 보여, 기본적인 동작들을 수정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귀띔했다. 지난해부터 2군에서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한 이창욱은 안정된 기량을 뽐냈다. 무엇보다 아프지 않은 게 고무적이었다. 타구에 맞아서 재활군에 내려간 적은 있어도 어깨 통증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었다.


마인드도 바뀌었다. 김 코치는 "처음 창욱이를 만났을 때는 많이 어두웠다. 프로로서 자기 몫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힘들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회복하고 생활을 밝게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첫 번째 목표였다. 나중에는 어깨가 안 아프고 자신감이 생기니까 자연스럽게 많이 밝아졌다"고 고마워했다.



미완의 대기였던 이창욱이 '1군 투수'로 급성장한 터닝포인트는 지난해 9월에 참가한 교육리그였다. SK는 9월17일부터 34일 동안 미국 애리조나에서 열린 교육리그에 총 33명의 선수단을 참가시켜 선진야구 습득과 유망주 발굴에 힘썼다. 미국 마이너리그팀 및 멕시코 프로팀과 21차례 연습경기를 치렀고, 이창욱은 팀에서 유일하게 2점대 평균자책점을 찍으며 교육리그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쉽지 않았던 구단의 결정을 의미 있게 만든 '호투'였다. 사실 이창욱은 교육리그 참가가 불분명했다. 류선규 당시 육성기획팀장은 "투수쪽에서 누구를 데려 가야하는지 고민이 많았다"며 "그 중에서도 이창욱은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선수"라고 돌아봤다. 이유는 있었다. 보통 20대 초중반의 젊은 선수들이 가는 교육리그에서 올해 나이 서른인 이창욱이 뛰는 건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류 팀장은 "어깨 부상을 당하고 실전에 나온 게 지난해 처음이었다"며 "고민 끝에 넣었지만 그게 전환점이 됐다"고 밝혔다.


교육리그에서 인스트럭터로 참여했던 가이 콘티는 이창욱을 올 시즌 기대주로 찍었다. 콘티는 2004년 메츠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한 체인지업 마스터로 유명하다. 2005년에 FA(프리 에이전트)로 팀에 합류한 통산 219승 투수 마르티네즈로부터 '하얀 아버지(White Daddy)'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반한 게 이창욱이다. 다소 늦었지만 의미 있는 첫 발을 내딘 이창욱의 미래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배중현 일간스포츠 기자 bjh1025@joongang.co.kr

Posted by SK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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